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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것을 삼켜도 금방 토하고 싶어졌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들로 식탁을 가득 채워도 헛구역질만 할 뿐이었다. 모리는 변기를 잡고 속을 게워내려 몇 번을 노력했지만, 그 수고는 전부 허투루 돌아갔다. 그는 소화하지 못해 몸 한구석에서 고여 있는 것들을 전부 내려 보내고 싶었다. 사랑, 추억, 슬픔, 그리움 등. 이리저리 얽히고 하나로 덩어리져 있는 그것들은 갑자기 모리를 짓누르기도 했고, 숨 한번을 들이 쉬지 못할 정도로 목을 조여 왔다. 참을 수 없이 아프게 만들기도 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눈물이라니. 모리는 부서질 듯 아픈 몸보다 자신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의 주체를 찾을 수 없어 탄식했다.
모리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병의 원인은 간단했다. 후쿠자와의 부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모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사람이니 잊자고 생각했는데. 후쿠자와가 죽고 난 뒤 모리는 뒤돌아 볼 새도 없이 앞만을 보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후쿠자와를 뒤로 버려두고 혼자 걸어 나왔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일까. 힘없이 침대에 늘어진 모리는 스스로의 모순에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흘렸다.
억지로 케이크 다섯 개를 연달아 먹기도 하고, 고급 레스토랑을 빌려 일부러 식탁 가득 음식을 내오라 시키기도 해보았다. 그토록 좋아하던 가게의 만쥬 차즈케를 전부 사들여 먹어보기도 해보았지만, 결국 전부 그것들은 모리의 안에서 내뱉어졌다. 소화 시키지 못해 삼키지 못한다. 모리는 겨우겨우 정신을 차려 수액이 떨어지는 것을 가만히 구경했다. 이런 것으로 삶을 연명하게 될 줄이야. 가만히 눈을 감던 그는, 자신이 어떻게 식사를 했었는지 곱씹어 보며 가늘어진 팔을 편하게 늘어트렸다.
따뜻한 쌀밥과 미역, 두부를 넣은 된장국. 간소하지만 정성을 들인 반찬 중에서는 채소 절임을 좋아했다. 스키야키를 먹을 때면 말도 없이 먹어치워 항상 속도가 맞지 않았다. 항상 밥을 먹을 때도 차를 마시곤 했었다. 모리는 후쿠자와가 먹는 모습이라면 아직도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은 밥 한술 떠넘기지 못하고 있지만, 모리는 누구보다 배부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산이 부서진 감정들의 조각은 하나도 맞는 것이 없었고 모리는 굳이 그것들을 맞추려 들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자신이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솔직하지 못해 괴로운 것보다는 차라리 뻔뻔하게 무시하는 편이 좋겠다고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날카로운 것에 그대로 꿰뚫려 있던 후쿠자와는 이미 모든 것을 예견한 표정이었다. 바보 같은 표정이라 생각하던 모리는 그를 빤히 바라보며 자신도 무언가가 관통한 것은 아닌지 자신의 복부와 흉부를 더듬거렸다. 어느 한 곳으로 피가 전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지만, 아무 곳에도 상처는 없었다.
대수롭게 여기지 않은 아픔은 간간히 심장을 조였다. 손에 꽉 쥔 채 이리저리 흔들고 거칠게 다루는 듯한 고통. 모리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내쉬길 반복했다. 입은 쓰고 건조했지만, 그 흔한 사탕 하나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물 한 모금을 겨우 머금은 채, 나눠마시던 모리는 한 방울씩 떨어지던 수액의 조이개를 조금 풀었다. 알싸하고 시원한 느낌의 팔목에서는 무언가 삽입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도 먹는 거라면 먹는 거겠지. 모리는 아무것도 입에 못 댄 자신을 위안하기 시작했다.
죽을 입에 대었다 구역질을 하기 몇 번. 모리는 겨우 흰 죽 한 모금을 삼켰다. 물을 많이 넣고 끓인 죽에서는 쌀 비린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모리의 마른 몸은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모리는 다시금 죽을 입에 물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 막혀있던 목구멍을 겨우 열어 죽을 삼킨 모리는 차라리 손목에 꼽힌 카데터가 수액 말고 죽을 넣어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그는 세 번째 숟갈을 입에 담았고, 그것이 그날의 마지막 시도였다.
모리는 왜 슬픔을 소화시킬 수 없는 것인지 생각했다. 그냥 씹어 삼켜 배설물로 나오는 것처럼, 이렇게 몸뚱이를 잠식해버린 감정도 그대로 씹어 삼켜 몸 안을 돌다 내뱉어지면 그만일 텐데.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던 모리는 후쿠자와의 자상 부위와 같은 곳을 연신 문질러 보았다. 심장 부근, 조금만 빗겨 지나갔다면 살았을지도 모르겠군. 이미 늦은 말을 중얼거리던 모리는 어서 소화가 되라며 배를 문질러주 듯 감정이 고여 있는 그 주변을 연신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말도 안 되는 말이었지만, 모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은 어쩔 수가 없다고 자기 자신을 합리화했다. 삼켜지지 않는 것도, 소화가 되지 않는 것도 전부 그의 탓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을 전부 담아 삭혀두던 자신의 탓도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원망은 남아있는 사람의 몫이었고,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모리는 빗줄기같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힘도 없었다. 직면한 커다란 덩어리의 감정을 소화 시킬 수 있을까. 이것이 유일한 모리의 걱정이자, 희망이었다. 모리는 그렇게 앞에 놓여 있는 슬픔에 절여진 사랑 한 조각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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