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츄] 옥상, 도시락, 그리고 고백
티 한 점 없는 파란 하늘과 그는 꽤나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그의 푸른 눈망울이 낮의 높은 하늘을 담고 있다면, 하늘거리는 주황빛 머리가 방과 후 그와 돌아가는 저녁 길에서 보는 노을과도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굳이 그게 아니어도, 시원 털털하고 널찍한 그의 성격 또한, 하늘과 비슷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서도.
“어이, 다자이. 뭘 보냐?”
다자이는 자식의 책상을 탕탕 두드리는 츄야의 행동에 시선을 들었다. 언제 온 것인지 그는 도시락 가방을 흔들며 ‘점심시간 이라고. 옥상가자.’라고 하며 자신을 일으키며 연신 끌어 당겼다. 평소 같았으면 빨리 오라고 소리만 쳤을 그가 끌어당기자, 다자이는 의문스럽다는 표정을 내비치며 ‘츄야, 스스로 갈 테니 이 것 좀 놔주게나.’라며 자신의 옷깃을 잡은 손을 톡톡 건드렸다.
“아? 그럼 빨리 쫒아와. 오늘 계란말이 엄청 잘 됐으니까.”
아, 계란말이 때문이었나. 다자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보폭에 맞춰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올랐다. 어느 샌가부터 둘의 점심은 하루 일과가 되어있었다. 물론 다자이가 츄야의 도시락을 뺏어먹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츄야는 굳이 2인 분의 도시락을 싸들고 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몇 일간 계속되자, 다자이는 ‘왜 도시락을 내 것까지 싸들고 오는 건가. 츄야는 바보인가?’라며 그를 놀리듯이 물었던 적이 있다. 츄야는 잠시 동안 대답 없이 그를 응시하다 ‘그냥 거지새끼 밥 한 번 먹이자는 심정으로 싸 온다. 왜.’라며 받아치고 어물쩍 넘어가버렸다. 그렇게 둘은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츄야는 계속해서 다자이의 몫까지 도시락을 싸왔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츄야, 이렇게 잘생긴 거지는 없다네. 안 그런가?”
‘돌았구나, 드디어.’ 츄야는 다자이가 대충 깔은 담요를 펼치며 도시락을 열었다. 확실히 가지런히 도시락 통 안에 나열되어있는 계란말이는,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였다. 츄야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에게 자신이 만든 계란말이를 보이며 ‘어때, 보이냐? 이 형님 솜씨.’라고 말했다.
“흐응... 츄야도 꽤 하잖아?”
다자이는 익숙하게 젓가락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츄야는 젓가락을 받아들고 계란말이를 하나 입에 넣으며 그에게도 어서 먹으라고 손짓했다. 다자이는 ‘그럼 사양 않고.’라고 말하며 젓가락으로 계란말이 하나를 입에 넣었다. 노란색의 귀여운 계란말이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졌다. 게다가 사이에 들어간 고소한 치즈가 밥과도 잘 어울릴만한 맛이었다. 다자이는 아무런 말없이 계란말이가 입 안에서 사라질 때까지 곱씹었다.
“맛있으면 맛있다고 말해.”
‘쿨럭.’ 사래가 들린 듯한 기침을 몇 번한 다자이는 목을 가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리듯 ‘맛...있군.’이라 대답했다. 츄야는 그런 그의 웅얼거림을 들은 것인지 히죽이듯 웃으며 연신 그에게 ‘뭐? 뭐라고? 못 들었는데?’라며 그를 놀렸다.
“츄야, 맛있다네.”
츄야는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으며 ‘오늘은 내가 이겼다?’라고 대답했다. 다자이는 해맑은 그의 웃음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계란말이 하나를 집어 들었다. 잠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날씨 좋네-. 계속해서 비오더니.”
츄야는 밥이 들어있는 도시락 통 뚜껑을 열며 말했다. 다자이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밥을 젓가락으로 떠 입으로 가져갔다. ‘천천히 먹어라. 안 뺏어간다.’라고 말하는 츄야는 그의 앞에 차를 따라 놔주며 자신도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입에 담긴 음식 들을 전부 삼키고는 그가 따라놓은 차를 홀짝이며 장난스레 말했다.
“아, 이렇게 평생 먹으려면 츄야와 사귀는 수밖에 없는 건가.”
다자이의 장난기 가득 묻어나는 말에 츄야는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 다자이는 그런 그에게 샐쭉 미소를 지으며 ‘장난일세.’라고 덧붙이려는 순간, 츄야의 입에서 튀어나온 ‘그럼 사귀자.’라는 말에 다자이는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간의 정적이었다. 운동장에서 소리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일까,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츄야는 다자이의 놀란 표정에 자신도 당황한 듯 했다. 그는 얼굴을 화끈거리지 않을까 한 정도까지 붉히며 ‘야 임마, 당연히 장난이지!’라고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마치 그의 머리 색 마냥 붉어졌다.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씩씩대는 그의 표정을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야, 다 먹고 내려와.”
츄야는 분에 이기지 못한 것인지 그대로 일어나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옥상을 내려갔다. 얼굴마저도 노을빛으로 물들 정도로 당황했던 건가. 다자이는 가만히 남은 계란말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것을 만들었을까. 하루하루 지겹지도 않게 싸오는 도시락은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다자이는 사실 모르지 않았다. 매번 아침마다 귀찮음을 감수하고 그가 왜 도시락을 싸오는지. 그가 왜 귀찮을 정도로 자신을 챙기는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이 도시락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안 된다네.”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츄야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중얼거린 다자이는 다시 계란말이를 입에 밀어 넣었다.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이겠지만, 서로 받아주기 벅찬 마음은 끝이 좋지 않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다자이는 아직 반도 먹지 않은 도시락 통을 하나하나 닫았다. 자신의 마음도, 그의 마음도 이렇게 쉽게 정리된다면 바랄게 없겠다고 생각한 그는, 그대로 담요 위로 누워버렸다. 하늘은 푸르렀고, 그의 눈도 똑같은 빛으로 반짝였다. 다자이는 마지막으로 스쳐지나가던 눈물 고인 그의 눈을 생각하지 않으려 하며 몸을 뒤척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끝났다는 종소리에도 움직이지 않은 채, 그를 훔쳐보기라도 하는 듯 간간히 하늘을 힐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