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하나

[마츠하나]좋다고 말해

송화우연 2017. 1. 16. 23:54

볼빨간 사춘기 노래가 너무 좋아서 써버렸네요... 개연성 전혀 없는 단편이지만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그리고 노래도 들어보셔요 완전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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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이른 오후, 이때쯤이면 없겠지 싶어 쓰레기를 버리러 나왔던 마츠카와, 방년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조금 늦은 29살. 자신의 추측과는 다르게 아파트 현관 앞 놀이터에서 뛰어오는 분홍머리 남자의 외침에 움찔했다. 아아, 이맘때면 애들이 전부 방학이던가. 아, 입시가 끝났으니 안 갈수도 있겠구나. 담배를 피지도 않는데 입안이 텁텁해졌다. 그가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자 ‘아씨!’라는 격한 말과 함께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이마를 짚었다. 그래...내가 미쳤지 어제. 그래 이게 다 나 때문이다. 세뇌하듯 중얼거리자 경쾌한 딩동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거의 뛰다 싶은 걸음으로 가 현관문을 열자 저 멀리, 복도 끝에서 뛰어오며 ‘제발 그냥 도망가지 말고 이야기 좀 해요!’ 라고 외치는 소리에 문을 다 열지도 않고 몸을 우겨넣으며 문을 닫았다.

덜컥.

문을 닫았다라고 생각함과 동시에 문과 현관을 가로막는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대로 시선을 올리자 ‘씁 진짜 아프잖아.’라며 미간을 한껏 좁히고 있는 그가 보였다.

“저랑 이야기 좀 해요!”

헉헉대며 상기된 얼굴로 소리치는 모습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어떤 말을 해야 그냥 돌아갈까. 솔직히 어떤 말을 하던 간에 그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제 자신이 한 말의 파급력을 자신도 알았다. 그럼에도 더 이상 이야기를 하다가는 , 자신이 말려들 것이 분명했다.

“어제 다 이야기 했어. 나는 더 할 이야기 없다.”

문에 걸쳐진 발이 다칠까봐 더 세게 문을 닫지는 못하고 발을 빼도록 밀어내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저돌적이게 발을 밀어 넣으며 자신에게 경고하듯 읊조렸다.

“그럼 저 여기서 사장님이 저 가지고 놀았다고 소리 질러 버릴 거예요.”

조용히 읊조리는 말에는 진심이 그득히 담겨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다, 열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마츠카와는 현관문을 열었다. 그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의 집으로 들어왔다.

“실례합니다―.”

인사도 잊지 않고 들어와서는 바로 보이는 식탁 의자를 빼서 털썩 앉았다. 그의 두꺼운 패딩이 풀썩소리를 내며 천천히 꺼졌다. 어서 끝내고 내보내자, 그럼 되는 거야 마츠카와 잇세이. 아무 말 없이 냉장고 있던 주스를 꺼내 따라주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할 이야기가 남은 거야 하나마키?”

감사하다 말하며 주스를 받아든 하나마키는 자신을 응시하며 주스를 홀짝였다. 그리고 자신의 물음에 컵을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자기 이야기만 쏙 해버리고 가면 그만이에요? 제 생각은 왜 안 들어요?”

하나마키는 다다다 쏘아내 듯 말했다. 확실히 어제의 자신은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이 없었고, 그의 고백은 솔직했다. 매번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출석도장을 찍던 것도, 말을 트며 친해진 뒤 자신이 좋다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저 장난으로 받아들여 ‘수능치고 와라, 애가 빠졌네.’라며 우스갯소리로 넘긴 것이 화근이었을까. 도대체 어디서 틀어진 걸까. 고개를 젖히고, 손으로 눈을 가리며 제발 꿈이었으면 바래보았다. 하지만 다시 반대편 식탁을 바라봐도 하나마키는 그곳에 앉아있었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너무 미안해. 내 이야기만 하고 가서 정말 미안하다.”

진심으로 사과했다. 자신이 섣불리 말한 것도, 그와 영화를 본 것도, 밥을 먹은 것도, 데이트라는 말에 아무 없이 받아들인 것도.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은 것과 가능한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을.

“사장님은 제가 좋다면서요. 그런데 왜 안 돼요?”

‘제가 10살이나 차이나서요? 아니면 아직 학생이라 서요? 저 이제 대학생 되요! 성인이라고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점점 물기가 서렸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게 아닌데. 눈물이 서린 눈으로 그저 식탁만 내려다보는 그의 앞에 휴지를 밀어 주었다. 아이는 거절하지 않더니 뽑아들은 휴지를 손으로 구겨 버렸다.

“그런 문제보단... 내가 잘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했다. 정말 미안해.”

그의 입장에서는 가지고 놀았다고 밖에 생각이 안 들겠지만. 전혀 그럴 생각도, 마음도 없었다. 심지어 같이 있어 즐거웠고, ‘이렇게 사귀게 된다면 어떨까,’라는 생각마저 문득문득 떠올랐던 자신이지만. 그의 저돌적인 감정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이 들어 있었다.

“제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하세요! 빙빙 돌려 이야기하지 말고요. 저 지금 답답해 죽을 것 같거든요?”

하나마키는 언제 울먹거렸냐는 듯 소리쳤다.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제가 좋다면서요! 좋아한다! 이 말을 했으면 된 거잖아요. 뭐가 더 필요한건지 전혀 모르겠는데요? 사장님은 좋다면서 왜 피해요? 거짓말이에요?”

하나마키가 탁자를 탕탕 치며 소리치자 그대로 그의 입을 막아버렸다. 갑자기 막힌 손에 으브브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도 눈은 여전히 삐죽 날서있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런 저돌적인 면에 그대로 휘말려 버린 거겠지. 일단 진정하라 말하자 하나마키는 자리에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분은 안 풀리는지 식식대는 그를 앞에 두고, 고민했다. 더 이상 뭐라 말을 하던 거짓말 밖에는 답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자신의 감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래. 나도 네가 좋아. 정말, 진짜 거짓말 아니야.”

자신의 말에 하나마키는 놀란 듯이 눈을 키웠다. 그리고는 다시 의심 가득한 눈이 되어 ‘진짜에요...?’라고 물었다.

“진짜야. 그리고 내가 너와 사귈 수 없는 것은... 너가 나를 좋아하는 만큼...내가 너를 신경 써주기에는 내가 너무 나이가 들었어.”

무언가 마음 안에 줄이 뚝하고 끊긴 기분이었다. 아아, 마츠카와 잇세이. 벌써 그렇게 늙은 거냐. 막상 말로 뱉어내니 자기 자신이 찌질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바보에요...? 지금 늙었다고 신세 한탄하는 거예요?”

하나마키는 아까보다 더 격양된 목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이쯤 되면 무슨 말을 하던 간에 혼날 것 같은데.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아니야.’ 라고 말하는 데도 하나마키는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쳤다.

“어떻게 그렇게 소심해요? 와 진짜 새로운 모습이네요. 아니 근데 짜증나게 왜 귀엽지? 180도 훌쩍 넘고 얼굴은 노안인데?”

그래...나도 알지...혼나듯 하나마키가 쏘아 붙일 때마다 고개가 숙여졌다. 한참을 말하던 하나마키는 자세를 바꿔 의자 위에 무릎으로 앉았다. 그리고는 반쯤 서서 그대로 팔을 탁자위로 올려 지탱하며 자신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서 사장님 저 싫어요? 좋아요? 그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해요.”

하나마키의 물음에 아차 싶었다. 이제 도망갈 구멍조차 없구나. 싫다고 하면 그를 가지고 놀아버린 나쁜 어른이 된 것이고, 좋다고 한다면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사귀게 될 것이라. 마츠카와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마른세수를 했다. 이제 정말 어쩔 수 없구나.

“좋아해, 하나. 이건 진심이야.”

자신의 말에 하나마키는 콧방귀를 끼었다. 그리고는 다시금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럼 이제 된 거네요.’라고 말했다.

“잘 부탁해요 사장님. 이제는 사장님 말고 마츠카와씨라고 부르는 게 좋을까요?”

하나마키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하나마키는 자신이 피식 거리며 바라보자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거짓말이라고 하면 진짜 화낼 거예요.’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 모습도 귀여워 보이는 거면 확실히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겠지.

“그래, 좋아한다. 좋아해. 엄청 좋아한다.”

포기하듯 시인해 버리며 ‘잘 부탁한다.’라고 말하자 하나마키는 씰룩거리는 입가가 주체가 안 되는지 입을 가려왔다.

“저도요... 잘 부탁해요, 마츠카와씨.”

귀 끝까지 붉어진 하나마키의 얼굴이 생소하게 느껴져 눈을 뗄 수 없었다. ‘왜 자꾸 쳐다보는 거예요.’라며 얼굴을 가리는 그를 보며 ‘새로운 얼굴이어서.’라고 말하며 웃었다.

“어제 좋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물론 제가 좀 귀여워야죠.”

수줍어하면서도 당당한 하나마키의 모습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을 뻗어 연신 머리를 쓰다듬어보자, 그도 싫지는 않은지 가만히 쓰다듬도록 내버려두었다. 반질거리는 머리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빤히 응시하며 눈웃음을 치는 하나마키와 눈이 마주쳤다.

“나도 고맙네. 좋다고 따라다녀 줘서. 이제는 내가 따라다닐 테니까 화 풀고”

방년이라 말하기에는 나이 들어버린 29세 마츠카와 잇세이, 저돌적인 애인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