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안고]당신의 기일에는 언제나
사카구치 안고는 일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시 퇴근에 어색하게 집으로 들어섰다. 작년에도 이런 정시 퇴근은 딱 한 번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낸 그는, 오다가 즐겨 사오던 감자와 고기를 식탁위에 올려두고 주머니를 뒤적여 작은 메모지를 꺼냈다 .
“야채를 먹기 좋게 썬다...”
메모지의 첫 번째 문장을 그대로 읽은 그는, 냉장고 안에서 당근을 꺼내고 막 사온 감자를 물에 씻어내었다. 덕지덕지 묻어있던 흙들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가는 것을 보던 그는, 바로 얼마 전에 나카하라가 알려준 대로 감자 껍데기를 벗겨내었다. 평소에 해왔던 일이 아닌 만큼, 그의 손놀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카레를 누구보다 즐겨먹는 오다나, 요리를 꽤나 하는 나카하라만큼 능숙하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감자를 깎아야할까 생각해보던 그는, 손끝을 빗겨나간 감자 칼의 섬뜩함에 다시 감자를 깎는 일에 집중했다. 모난 곳도 전부 처리한 감자와 당근을 바라보던 그는 관리가 잘 된 나무 도마와 칼을 꺼냈다. 평소 오다가 자주 요리하던 카레에는 큼직한 당근이 주였지만, 사카구치는 조금 더 작은 편이 먹기 편했다. 손이 다치지 않게 손가락을 주먹을 쥐듯 모은 그는, 천천히 당근을 썰어가며 규칙적이게 도마를 내리치는 칼의 소리가 유지되도록 노력했다. 둔탁하게 부딪히면서도 어딘가 친숙한 느낌이 드는 소리였다. 요리는 항상 오다가 해서인지 그에게 이렇게 가까이 들릴 일이 없던 소리지만, 가까이에서 듣는 소리도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에 써는 양파는, 눈이 맵기 전에 써는 게 좋다는 말을 오다에게 여러 번 들었었다. 하지만 칼을 거의 처음 잡아보는 사카구치에게는 역부족이었으리라. 눈에 그대로 와 닿는 매운 내가 참기 힘든지, 눈물을 그렁거리며 눈가를 훔치던 그는 한숨을 내쉬며 잠시 양파를 써는 것을 멈추었다. 흐를 듯 말듯 눈가에 고여 있는 눈물을 훔치던 사카구치는 다시 칼을 고쳐 잡고 아까보다 빠르게 양파를 썰어버렸다.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사카구치에게는 그런 것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후... 당신 말대로 양파를 빨리 썰려면 일단 써는 법이라도 쉬는 날 연습해둬야겠네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린 그는, 오목하게 파인 팬을 가져와 버터를 녹였다. 적당히 뜨거운 온도에 버터가 거의 녹아가자 고소한 냄새가 점점 퍼졌다. 사카구치는 기름처럼 흐르게 되었을 때, 양파를 먼저 넣고 주걱으로 볶기 시작했다. 타거나 눌러 붙지 않게 이리저리 볶던 그는, 양파가 숨이 죽어 먹음직스러운 금빛이 되자 감자와 당근을 넣고 버터를 한 숟갈 더 넣었다. 버터와 양파향이 섞인 고소한 냄새를 맡으면 어쩔 수 없이 군침이 돌게 된다는 그의 말이 와 닿는 순간이었다. 사카구치는 아까보다는 천천히 주걱으로 채소를 뒤적거리며 익혀갔다. 채소가 반쯤 익었을까. 오다가 하던 대로 물을 조금 부어넣은 사카구치는, 치킨 스톡을 팬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채소를 더 푹 익히려는 것이겠지만, 이제 진짜로 카레를 끓일 준비를 하려는 듯 냄비를 꺼냈다. 사카구치는 냄비에도 버터를 먼저 녹인 뒤, 고기를 넣어 볶기 시작했다. 오다가 요리를 할 때도 버터를 이만큼씩 넣었던가 생각해보던 사카구치는, 그래서 자신을 부엌에 오지 못하게 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해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고기는 생각보다 빨리 익었고, 사카구치는 팬에서 끓고 있는 채소와 육수를 그대로 냄비로 부었다.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채소들을 바라보던 그는, 물과 고형 카레를 냄비에 넣고 불의 세기를 더 올렸다. 금방 녹아사라진 카레를 멍하니 바라보던 사카구치는 점점 풍겨오는 카레냄새가 성공적이라는 생각에 미소를 띤 채로 안을 저어대었다. 오다의 솜씨를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배운 만큼은 해냈다는 생각에 안도한 그는, 고형카레가 다 풀어진지 확인하고는 뚜껑을 닫았다. 조금만 더 끓이면 자신이 했던 음식들 중 가장 성공적인 카레가 완성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는지, 평소에는 부르지도 않을 콧노래를 소심하게 흥얼거리며 그릇을 꺼냈다. 이 주방을 자주 쓰던 오다가 듣던 노래였던가, 노래 제목을 기억해보던 그는 가물가물한 제목을 나중에 검색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국자로 다시 카레를 젓기 시작했다. 그릇에 담긴 카레는 요 근래 보았던 음식들 중에 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물론 스스로의 요리라는 것에 조금 더 점수를 얹어준 것이었지만, 오다가 이것을 보더라도 같은 말을 할 거라 생각하던 사카구치는 피식 웃으며 2인용 식탁 양쪽에 카레를 놓았다. 식기도 가지런히 놓은 그는, 이제 준비가 되었다는 듯 누군가를 데리러 가기라도 하는 듯 방으로 향했다.
“작년에는 망쳤었는데, 그래도 이번에는 저번 때보다 솜씨가 늘었습니다.”
‘당신이 봐도 맛있겠다고 할 정도입니다. 물론 당신은 제가 만든 거라면 다 먹어주겠지만요.’ 조곤조곤 말을 걸며 나오던 사카구치는, 자신의 자리 맞은편에 작은 액자를 놓았다. 제사를 지내는 듯한 엄숙함은 없었다. 누군가라도 있다는 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사카구치는 카레가 식겠다며 숟가락을 들었다. 맞은편에 보이는 오다는 어서 식기 전에 먹으라는 듯이 미소를 띠며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레를 휘휘 저어보던 사카구치는 ‘그래도 당신이 만든 카레가 더 맛있는 게 당연하잖아요...’라고 중얼거리며 보슬보슬하게 익은 감자를 입에 넣었다.
“다음번에는 저도 안 지도록 더 연습해오겠습니다.”
‘일 년에 단 한번뿐인 정시퇴근을 노려서 말이죠.’너털웃음을 지으며 액자를 바라보던 그는, 카레를 다시 한입 먹으며 변함없는 그의 표정만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