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코요츄]류의 일임홍-등나무의 동백꽃
남코요츄 교류회에 들고갔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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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볕은 누군가를 노리는 듯이 집중적으로 내리쬐었다. 그것을 창문가에서 가만히 쬐고 있던 나카하라는 눈부시게 빛나는 해를 가리려는 듯 블라인드를 천천히 내려 닫았다.
“츄야, 한동안 장마였어서 이런 햇볕도 오랜만이잖니.”
천천히 블라인드를 내려버린 나카하라를 부드럽게 설득한 오자키는 가만히 찻잔을 내려놓으며 완강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나카하라는 ‘눈이 부셔서 무립니다.’라 대답하며 일부러 반항하듯 블라인드를 닫아버렸다. 오자키는 나카하라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그의 투정을 받아주었다. 나카하라는 그런 그의 여유로운 반응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지, 고개를 돌리며 최대한 표정을 숨겼다.
“뻔뻔스럽게 5년 만에 나타나서는 약혼부터 한 게 그렇게 마음에 안 드니?”
그의 빈정거림이 섞인 물음에 억세게 문 입술이 벌어지려는 찰나, 노크한 문 너머로 ‘오자키님, 나카하라 가주님께서 당도하셨습니다.’라고 말하는 사용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갈 데 없는 말은 다시 입술 사이로 넘어가고, 오자키는 다시 얌전해진 나카하라의 반응에 ‘나가겠네.’라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모님께서 오셨는데, 직접 나가보아야겠죠, 부인.”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표정. 먼저 일어난 오자키는 앉아있는 나카하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그대로 의자에서 일어나 그를 지나쳐 나갔다. 이미 예상한 일인지 따로 그를 잡지 않고 같이 발걸음을 돌린 오자키는 싸늘한 그의 어깨에 오자키 가문의 하오리를 걸쳐주며 웃었다.
“고집은 여전하구나. 츄야”
오자키가 입고 있는 붉은 하오리는 마치 붉은 피를 뒤집어 쓴 것과 같아 늦은 밤 사람을 놀라게 만든다. 나카하라는 길게 늘어진 대청마루를 지나가다 본 오자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연못 속 잉어들을 바라보고 있던 것인지 한참 물속을 응시하던 그는, 나카하라의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려 ‘부인.’이라 부르며 아는 척을 하였다.
“둘만 있을 때는 그런 호칭 삼가해달라 말했지 않습니까 형님.”
나카하라의 싸늘한 한마디에 ‘그래도 보는 눈이 많지 않니.’라고 말하며 나카하라의 뒤에 있는 방을 가리켰다.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모임의 뒷정리를 하는 사용인들의 수다 소리가 닿은 것인지, 그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술에 검지 손가락을 대었다.
“이제 막 회의가 끝난 참인 모양입니다?”
나카하라의 물음에 천천히 마루로 다가간 오자키는 ‘부인이 저를 그리워할까 싶어 빨리 끝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나카하라에게 내려오라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나카하라는 그런 그의 친절에도 불구하고 주춧돌로 바로 발을 딛고 내려와 그의 옆에 섰다.
“이제 그렇게 까지 해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어리지 않으니까요.”
나카하라의 말에 ‘부인의 어리광을 받고 싶어 그러는 것이니 내킬 때 기대시길.’이라 대꾸한 오자키는 나카하라의 걸음걸이에 보폭을 맞추어 걸으며 연신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나카하라는 그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그를 올려다보지 않았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 없구나. 그래도 그때는 나에게 이렇게까지 곤두서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투정부리듯이 말하는 오자키의 발언에 거슬린다는 듯 미간을 찌푸린 나카하라는 ‘스스로 깨달으실 때도 되었다 생각합니다만.’이라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오자키는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와 함께 정원을 벗어났다. 정원의 입구에 다다르자, 회의에 참여했던 의원들과 같이 온 그의 부인들이 입구 앞에서 사용인들의 인사를 받고 있었다. 그들은 조용히 지나가던 둘을 발견하자마자 반갑다는 듯이 농담 섞인 안부인사를 했다.
“오자키님, 다음 회의 때 뵙겠습니다. 신혼이셔서 인지 두 분 사이가 무척 좋아 보입니다”
오자키는 한 의원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여유롭게 ‘의원님께서도 부인과 항상 사이가 좋지 않으십니까. 두 분을 따라가려면 한참입니다.’라고 대답하고 웃어 보였다. 그런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의원과 그의 부인은 기분 좋은 웃음을 띄우며 수다를 그칠 줄을 몰랐다. 부인은 일부러 나카하라에게 아는 척을 하며 다음에도 같이 우리 오메가끼리 다과라도 즐기자며 그의 손을 잡았다. 자신의 손등을 훑고 지나가는 긴 손톱. 나카하라는 소름 끼치는 그녀의 견제에 손을 빼내려는 찰나, 오자키가 그의 표정을 알아차렸는지 그의 손을 빼 맞잡고는 ‘부인, 너무 밖에 나와있어서 인지 지치신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그녀를 향해 미소 지어 보였다.
“나중에라도 좋은 차가 들어오면 의원님께 연락 드리겠습니다, 부인.”
최대한의 예의를 갖춘 채로 그들을 배웅하던 그는, 모두가 사라지자 손톱이 긁힌 나카하라의 손등을 보며 괜찮은지 물었다. 그러나 나카하라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대꾸하며 그의 손 안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었다.
“저도 피곤한지 어서 방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오자키는 장식이 단아하게 걸쳐져 있는 그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으며 어서 들어가자는 말을 돌려 말했다. 나카하라는 그런 그의 말에 사용인들이 열어주는 문을 군소리 없이 들어가서는 저택의 맨 안 쪽, 그의 방으로 향했다. 그가 전부 물린 것인지 뒤따라 오던 사용인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오자키는 방문이 닫히자 마자 나카하라의 머리에 꼽힌 비녀를 빼내 주며 ‘예전처럼 자유분방한 머리도 상관없는데 말이다. 긴 머리, 답답해 하지 않았던가?’라고 물으며 흐트러진 나카하라의 머리칼을 쓸어 내렸다.
“어차피 여기가 아니어도 길러야 했을 머리입니다. 형님의 부인 아니었어도 이쪽의 알파들은 자기 오메가가 제멋대로 하는 걸 싫어하니까요.”
나카하라의 대답에 ‘하긴, 네 아버지가 그러긴 했지.’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그를 의자에 앉히고 그의 머리카락을 빗으로 빗겨주었다. 마치 천천히 의식이라도 행하는 듯한 그의 손길이 익숙한지, 나카하라는 그런 그를 밀어내지 않고 받아내 주며 거울을 빤히 응시했다.
“이제 오자키이니, 네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단다.”
아이를 달래듯이 말하던 오자키는 그의 머리칼을 하나로 모아 묶어주고는 거울 너머로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오자키를 빤히 보던 나카하라는 ‘비싼 돈 주고 팔려온 부인이 말을 안 들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대답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부러 대외용으로 만들어둔 불편한 복장을 갈아입을 생각인지 오비를 풀어내던 나카하라는 ‘옷 갈아입는 것까지 지켜보시려고 하십니까?’라고 말하며 붉은 빛 옷자락을 벗어내었다. 오자키는 ‘잠시 나가있지, 라고 말하고는 여닫이 문을 열어 방 밖으로 나와 방 가까이 오지 못하고 수군거리던 사용인들에게 경고하듯, 입술에 검지를 댄 채 그들을 응시했다. 마치 언제 어디서라도 듣고 있다는 듯한 그의 행동에 고개를 조아린 그들은 황급히 그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시간이 조금 흘렀을까,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를 보며 미소 짓고는 옆에 앉아도 되는지 물었다. 나카하라는 마지못해 그에게 끄덕여 보이고는 그가 옆으로 와 앉자 그가 기대지 못하게 자세를 바꾸어 앉았다.
“오늘은 같이 자야겠더구나. 안 그래도 네 사용인이 네 히트사이클 예정일이 온다고 좋아하던데.”
오자키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그를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나카하라는 더 이상의 반항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 다고 생각한 것인지, 기댄 채로 ‘주신 약은 잘 먹고 있으니 예정일은 안 올 겁니다.’라고 말하고는 그가 실망한 표정인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오자키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도 몰래 잘 먹고 있단다. 아주 지켜보는 눈이 많으니 억제제 한 알을 먹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라고 말하며 장난에 동참한 어린 아이의 웃음을 띄었다. 나카하라는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웃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를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오자키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입술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그래도 보는 눈이 많으니 어쩔 수 없이 침소는 같이 들어야겠지.’라고 말하고는 그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나카하라는 그의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앉아서는 반항하기도 피곤하다는 표정을 하며 눈을 감았다.
알파들만이 인정받는 가문에서, 학교에 다닐 때 조차 다른 형제들과 마주치지 않도록 더 일찍 출발하던 것을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한숨을 쉬며 자신의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오자키를 응시했다. 어릴 때부터 옆에 붙어서 자신을 친형제 못지않게 챙겨주던 그였다. 삭막하기 그지없던 집안에, 자신을 보며 어머니를 죽여서 태어난 오메가라 말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나타나서는 허영심밖에 모르는 아버지에게서 자신을 사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서려 마음껏 때리기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나카하라는 어릴 때와 다름없이 다정하게 웃기만 하는 그의 얼굴에 차마 주먹을 날릴 수가 없었다.
“부인, 그리 뜨겁게 보면 나라도 부끄러운데 말입니다.”
아침 잠이 섞인 무거운 목소리로 말한 그는, 부스스 눈을 떠 나카하라를 향해 미소 지었다. 오자키의 말에 ‘뜨겁게 본 게 아닙니다만. 그리고 형님, 그런 낯 간지러운 말은 어디서 배우셨습니까.’라고 대꾸하며 몸을 돌려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려 했다. 오자키는 나카하라를 뒤에서 끌어안고 ‘츄야가 사랑스러우니 저절로 입에서 나오는 구나.’라고 말하고는 흐트러진 나카하라의 노을 빛 머리를 쓸어 내리며 정돈해 주었다. 나카하라는 일부러 대답하지 않으며 뒤에서 자신을 안아온 그에게 더 자겠다고 말하고는 방해하지 말라는 듯, 그의 손을 쳐냈다. 그런 투정조차 기분 좋게 받아드린 오자키는 나카하라의 허리를 더욱 끌어안은 채 그의 머리칼 사이에 코를 묻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확실히 기간이 기간인지라 억제제를 먹어도 동백꽃 향이 짙어지긴 했구나.”
오자키의 말에 나카하라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무슨 짓이냐며 소리치려는 찰나, 사용인이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며 방문을 노크해오자, 오자키가 먼저 선수 치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용인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발갛게 달아오른 나카하라의 뺨을 보며 ‘요새도 당황하는구나. 네가 잘 때도 많이 맡았으니 부끄러워할 필요 없단다, 츄야.’라고 말하고는 흐트러진 분홍 빛 머리카락을 대충 쓸어 넘기며 방을 나섰다. 처음부터 불쾌해하는 자신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혼자서라도 결혼생활을 즐기려 오자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츄야는 그의 베개에 애꿎은 화풀이를 하며 얼굴을 진정시켰다.
“츄야님. 일어나셨다면 주인님과 함께 식사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카하라는 자신을 달래려고 노력하는 나카하라 가에서 온 유모의 말에 일부러 대꾸하지 않았다. 유모는 대꾸도 하지 않는 나카하라의 행동이 익숙하다는 듯, 물러가겠다며 조심스레 방 문을 닫았다. 오자키는 여유롭게 식사를 하던 도중, 혼자서 어정쩡하게 돌아오는 그의 유모의 모습에 ‘오늘도 부인은 침상에서 밥을 먹겠다지? 내가 어제 꽤나 괴롭혀서 인지 무리를 하였으니 잘 보살피도록 하거라.’라고 말하고는 기분 좋다는 듯이 식사를 계속했다. 유모는 그의 한마디에 화색이 돌며 ‘그렇습니까?’라고 되물었다.
“많이 무리 하셨나 봅니다. 원래 더 일찍 일어나 산책하시던 분이신데 말입니다.”
그의 반가운 한마디에 꼬리를 물었다는 듯, 그의 옆에서 나카하라의 식사를 정리하던 유모가 그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오자키는 여유롭게 말을 지어내며 ‘너무 예뻐서 새벽까지 못 놔주었으니 못 일어날 만도 하지.’라고 대답하였다. 그의 흰소리에 기쁘다는 듯이 ‘두 분이 사이가 좋으시니 저희 가문까지 기뻐합니다.’라고 말하던 유모는 말할 거리가 생겼다는 듯이 신나는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농담도 지나치십니다.”
오자키는 신나 보이는 유모를 보며 가증스러움이 담긴 코웃음을 쳤다. 그러자 그의 뒤에서 조용히 서있던 오자키의 비서가 그에게 넌지시 말을 얹었다. 오자키는 뭐 어떠냐는 듯이 웃으며 ‘나카하라 가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한다지. 후사가 생기면 자신들의 몫도 톡톡히 떨어질 테니까.’라고 말하며 미지근하게 식은 차를 들이켰다. 그의 비서는 그래도 없는 말을 지어내면 나중에 뒷감당이 안 된다고 말하며 그에게 자중할 것을 권했다.
“내가 하는 말 중에 지어낸 말은 없다. 내 품에 안고 잤으니 내가 괴롭힌 게지. 집사도 알지 않나? 어린애 취급은 질색하는 아이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장난스레 웃음을 지으며 대답한 오자키의 말에, 비서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그를 따라갔다. 그리고 서재로 들어가는 그에게 실례하겠다며 같이 들어가서는 ‘오늘은 일정이 없는 걸로 아는데, 무슨 일 있나?’라고 묻는 그에게 궁금한 것이 있어 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으로 왔다고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네가 궁금한 거라니 놀랍구나. 나에 대한 거라면 다 아는 줄 알았더니.”
오자키의 말에 ‘도련님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이라 말한 비서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츄야님께서 오자키 가문으로 오셨으니 나카하라 가문에게는 이제 원조하지 않아도 되는데, 어째서 그리 신경을 쓰시는가 궁금해서 여쭙고 싶었습니다.”
비서의 말에 오자키는 알았다는 듯이 웃으며 ‘하긴, 게다가 츄야가 보는 앞이라 너도 주저하는 것이 보이더구나. 그건 나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야.’라고 말하고는 잠시 고민하듯이 결이 좋은 마호가니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그 집안이 든든한 뒷배경이 없어 전전긍긍하고 있는 건 그대도 알고 있지?”
비서는 그의 말에 오자키가 손을 대지 않아도 나카하라가 자신의 힘으로 가문을 나올 수 있었을 거라 설명하며 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반문했다. 오자키는 그의 말이 전부 정답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렇긴 하지, 내가 손대지만 않았으면 시간을 벌 수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을 거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츄야에게 힘을 주고 싶어서 돌아가고 있는 거란다. 비록 그게 그 아이의 자존심을 건드는 방법이어도, 그 사람들이 츄야에게 무릎을 꿇고 비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말이지.”
오자키의 말에 비서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그의 뜻을 이해했다는 듯이 ‘알았습니다.’라고 말하고는 그에게 고개 숙여 보였다.
“네가 도와주어서 무척 수월해졌어. 고맙구나.”
고개 숙여 보인 비서에게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듯한 그의 말투에 ‘그저 가주님의 행복을 바랄 뿐입니다.’라고 대답한 비서는 서재를 나섰다. 그리고는 우리 도련님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분이시라 중얼거리며 나카하라가 아직 잠들어 있는 방문에 조심스레 노크했다.
“츄야님, 들어가겠습니다.”
나카하라는 오자키의 비서가 놓고 간 억제제 약통을 빤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런 고집, 끝까지 유지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나카하라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작정이라도 하고 달려든다면 자신은 이미 그의 품에서 아이처럼 울며 매달릴 것이라. 그렇게 생각한 나카하라는 한숨과 함께 누가 볼 새라 약통을 서랍 안으로 넣어두고 아예 몸을 틀어 돌아누웠다. 흰 시트 끝에 드리우는 햇빛이 오늘은 날이 좋다는 것을 알려주는 듯해 나카하라는 블라인드 사이로 보이는 정원을 내다보다가 시야를 가리는 블라인드를 올렸다. 환하게 바치는 햇빛과 아름다운 정원의 풍경이 창문 가득 눈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예쁘네……”
해를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와 꽃밭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레국화의 물결을 보던 나카하라는 중얼거리며 창문을 열어 내다볼까 고민했다. 그러나 정원을 정돈하고 있는 정원사들의 모습에 창문을 여는 것은 포기한 듯싶었지만, 꽃에서는 눈을 떼지 못했다.
“ 츄야, 산책이라도 갈까?”
나카하라는 오자키의 목소리에 창 밖을 응시하던 것을 뒤로하고 돌아 보았다. 언제 들어온 것인지 문 앞에 서서는 그가 창 밖을 구경하던 것을 보던 그는, ‘햇볕이 좋아서인지 만개했더구나. 꽃, 좋아하지?’라고 물으며 나카하라의 곁으로 다가갔다. 나카하라는 그의 물음에 별로라는 듯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다시 침대에 앉으며 ‘오늘은 몸이 안 좋아 쉬고 싶습니다. 형님의 비서에게도 전달 한 걸로 알았는데요.’라고 대꾸하고는 자신의 머리칼을 쓸어 내리는 그에게서 눈길을 피했다.
“나에게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츄야는 푹 잤잖니?”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푸른 빛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변명을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그것을 아는 것인지 오자키는 그런 그의 손을 부드럽게 그러잡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그가 피하려고 할수록 더욱 집요하게 얼굴을 마주하던 오자키는 그가 고개를 숙여버리자 ‘츄야는 짓궂구나. 내가 계속 괴롭혀 주는 것이 좋으니?’라고 말하고는 하얀 나카하라의 뺨을 매만졌다. 살살 쓰다듬듯 매만지던 그의 손은 그의 고개를 들게 하여 그와 시선을 마주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나카하라는 잔뜩 이골이 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형님이라면 충분히 괴롭히실 수 있지 않습니까.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제가 싫어하는데 이렇게 괴롭히고 계시면서 말입니다.”
오자키는 화를 내며 말하는 그의 모습이 투정하는 어린 아이와 같다고 생각하며 ‘내가 그렇니?’라고 되물었다. 나카하라는 그에게 스스로 생각해보라 말하고는 그대로 그의 손을 쳐내며 고개를 돌렸다. 오자키는 뒤돌아버린 그의 머리칼을 응시하며 피식 웃었다. 어릴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뒷모습. 아담한 체구의 나카하라를 뒤에서 끌어안은 오자키는 ‘제가 이렇게 부인을 생각하는데 부인은 매정하십니다.’라고 속삭이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끌어안음에 화들짝 놀란 나카하라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는 듯 버둥거리다가 이내 포기해버리고는 더욱 힘을 주며 버티는 그의 품에 기대어버렸다. 오자키는 그가 쉽게 포기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연신 헤실헤실 웃는 얼굴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말랐구나. 밥을 더 많이 먹여야 하는 걸까.”
오자키는 뼈마디가 만져지는 팔뚝과 손가락을 매만지며 그에게 말했다.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더 먹으면 힘들어서 죽을 지도 모릅니다.’라고 대꾸하고는 자신의 손에 깍지를 껴오는 큰 알파의 손을 바라보았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어야 할까. 순간적으로 느껴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진 츄야는 그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그에게 쏘아붙이듯 중얼거렸다.
“눈칫밥이야 많이 먹어서 괜찮지만 형님이 괴롭혀서 먹어도 살이 안 찌는 겁니다.”
오자키는 그의 말에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마주 놓아버리고는 그를 침대로 밀어 눕혔다. 순간적인 그의 행동에 미처 반항할 새도 없었던 나카하라는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올려다보며 놀라 크게 떠진 눈을 끔뻑거렸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괴롭히는 것이라면, 진짜는 시작도 하지 않았단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충분히 위협적이라고 느낄만한 것이었다. 흩어진 나카하라의 머리칼을 쓸어 넘겨준 오자키는 ‘내가 왜 네게 손대지 않고 억제제를 챙겨주고 네가 좋아하는 것으로 집을 채워주는 지 생각해보렴.’이라 말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나카하라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마주했다. 입술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그는 한 순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위험하다. 은은하게 풍겨오던 등나무 향이 짙어지기 시작하자, 숨을 참으려 해도 계속해서 그의 향기가 밀러 들어왔다. 마치 머릿속을 헤집어 놓듯 쳐들어오는 페로몬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로 진했다. 이제 한계라고 느꼈을 때, 나카하라는 그대로 그를 밀어버리며 숨을 골랐다. 오자키는 나카하라가 힘없는 손으로 자신을 밀어내자 그 손바닥에 입 맞추며 마지못해 져주듯, 그에게서 떨어져 주었다.
“보렴, 아직 진짜 괴로운 것은 시작도 하지 않았어.”
힘이 빠져 일어나지도 못하는 그를 보며 말한 오자키는 그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넘겨주며 미소 지어 보였다. 오자키는 장난은 이 정도로만 하자는 듯, 침대에서 일어나 겨우 몸을 일으킨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문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생각났다는 듯 그를 힐끔 돌아보고 말했다.
“확실히…… 네가 아이라도 낳는다면 나카하라 가문에서 널 이길 세력은 없겠더구나.”
나카하라는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나가버린 그를 빤히 응시하다 뒤 늦게 화가 치미는지 베개를 던져 방문을 맞추었다. 그러나 오자키에게 그의 화가 닿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순간의 두근거림이 화가 되어 자신에게 떨어지는 것 같다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짜증나는 분풀이를 침대 시트에 해대며 먹먹해지는 가슴의 통증에 다른 이불을 끌어안고 그대로 얼굴을 묻었다.
오자키는 아까의 여유로운 모습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흐트러져있었다.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방문을 닫고 나온 그는, 방까지 걸어온 기억조차 희미했다. 서재의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는,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최대한 다시 여유를 찾으려는 듯 심호흡했다. 하지만 그가 끓어오르는 열기를 식히려 할수록, 야속하게도 아까까지 곁에서 맴돌던 동백의 향이 온 몸을 간질이는 듯 했다.
“가주님, 급한 용무라도 있으셨습니까?”
생전 본 적 없는 그의 모습에 뒤늦게 서재로 들어와 멀찍이 떨어져 서있던 그의 비서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오자키는 ‘별일 아니다.’라고 말하고는 그에게 수습하지 못한 자신의 표정을 숨기려는 듯 의자를 등 뒤로 돌려 앉고는 소매로 입가를 가렸다. 머리가 어질해질 정도의 열기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다시금 생각나는 붉어진 나카하라의 얼굴에 다시 눈을 뜬 오자키는, 한숨을 내뱉으며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려 하며 미간을 좁혔다.
“가주님, 다자이님께서 츄야님을 뵙기 위해 방문을 하신다고 전화를 주셨는데…… 오늘은 무리라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에게 할 말이 있던 것처럼 보이던 비서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자, 오자키는 의자를 도로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확실히 무리하여 몸이 안 좋다고 말해뒀으니 그 편이 낫겠지. 그러나 잠시 생각하던 오자키는, 분한 듯 자신을 노려보던 그를 떠올렸다. 설레도록 붉어진 얼굴을 하던 나카하라의 얼굴이 일그러지던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인지 마음속에 박혀 떠나가지 않았다. 열기에 흘린 땀을 식히던 오자키는 그럼 나가보겠다는 비서를 다시 불러 세웠다.
“부인도…… 결혼하고 나서는 친분이 있던 친구를 집에 들이지 못했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군. 그리고 침실과 가까운 응접실이나 방을 사용하면 되니까.”
‘다자이지만...... 뭐 상관 없나.’ 비서는 오자키의 중얼거림을 듣지 못했다는 듯 바로 알겠다고 말한 뒤, 서재를 나섰다. 오랜만에 나카하라의 웃는 얼굴이라도 볼 수 있는 걸까 생각하던 비서는, 기쁜 소식을 어서 전하고 싶다는 듯 발걸음을 빨리 했다.
“부른다는 내 친구가 너였냐……?”
나카하라는 여유만만하게 응접실에서 손을 흔들어 보이는 다자이에게 쏘아붙였다. 그 오자키의 비서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도 주려는 부모와 같은 얼굴로 말할 때 알아차렸어야 했다고 생각하던 그는, 다자이의 맞은편에 앉아 사용인이 내온 금잔화 차를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잔에 떠있는 꽃잎이 하늘하늘 날리듯 펴지자, 그제야 찻잔을 든 나카하라는, 사용인들이 나간 뒤에야 ‘그래서 무슨 일인데.’라고 그에게 본론을 물었다.
“에이, 츄야. 우리가 언제 용건이 있어 만나던 사이인가? 그저 친구가 결혼 했으니 방문해 주는 것은 예의일 것 같아서 말이야.”
‘게다가 코요 형님께서도 계시니 일석이조 아닌가? 굳이 딱딱하게 인사드리러 가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라고 말한 그는 우러난 차를 홀짝이며 마음에 든다는 듯이 미소 지어 보였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라. 네가 인사 안 하고 갈건 이 집 마당에 있는 개도 알 테니까.”
나카하라의 말에 다자이는 농담 섞인 말투로 ‘벌써 들켰군.’이라 대꾸하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피식 웃는 나카하라의 표정이 아까보다 풀어진 것이 보이자 ‘잘 지냈나?’라고 때 늦은 안부를 물었다. 나카하라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보다시피, 집보다 호화롭게 생활하고 있다.’라고 대꾸해주었다. 다자이는 그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닌지 의미심장한 미소를 띤 채로 차를 홀짝거렸다. 잠시간의 정적은 차를 비우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거의 바닥을 보이는 차를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카하라는 ‘결혼한 지 몇 달이 넘어가는데, 가족 지인을 통틀어 처음 보는 사람이 너라니 기분 나쁘네.’라고 말하며 그를 응시했다. 다자이는 오자키를 향한 원망이 섞여있는 그의 말투에 아무런 대답 없이 찻잔을 만지작거렸다.
“솔직히, 그렇게 화내고 그러면 친정 보내버리지 않냐? 나 막 찬장도 부수고 그랬는데. 찻잔도 다 깨고…… 화내라고 한 건데 웃더라. 짜증나는 사람.”
오자키에 대한 험담을 주절주절 늘어놓던 나카하라는 ‘집에서도 연락 없더라. 잘 지내시긴 하냐?’라고 가볍게 가족의 안부를 물으며 화제를 넘겼다. 다자이는 그의 물음에 ‘츄야, 그런 집은 이제 생각할 필요 없다네.’라고 말하며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피하듯 차를 홀짝거렸다. 나카하라는 반박할 거리도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리고는 본심을 내비치듯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짜증나잖아 팔아넘기듯 보내버리고 돈 받았는데 잘 살기라도 하나 궁금하니까.’라 말하고는 입술을 짓이기며 화를 삭였다.
“가족도 남편 된 사람도, 다 사랑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고…… 남들에게 보이는 게 중요해서 지위 앞에서 벌벌 대잖아.”
나카하라는 밖에 대기하던 사용인들이 들을 새라 목소리를 죽이고 분한 마음을 토해 씹어내듯 말을 뱉었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말에 잠시 고민하듯 그를 응시하다가 완전히 비어 꽃잎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츄야, 형님이 자네를 사랑하는 건 이 집안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을 것 같은데.” 다자이의 말에 코웃음을 친 나카하라는 ‘새장에 새를 예뻐하는 거와 뭐가 다르냐.’라고 투덜거리며 대꾸했다. 다자이는 그의 찻잔에 다시 차를 따라주며 ‘그러니까 그렇게 부수고 화내도 웃으면서 받아 주신 거 아닌가.’라고 말하고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결혼 전에도 항상 자네가 곤란할 때마다 손쓰시던 건 형님이었으니까.”
‘지금도 손 많이 쓰고는 계시지만.’ 그와 눈을 마주한 다자이는 의도가 깔린 한마디를 던졌다. 츄야는 그의 의미심장한 다자이의 말에 잠시 생각하듯 차를 홀짝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잠시간의 정적이후, 나카하라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다자이가 따로 단서를 흘릴 새도 없이 파고들며 ‘지금 무슨 상황인건 데.’라고 다자이를 추궁하던 나카하라는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하는 표정의 그를 재촉했다.
“알겠다네, 알겠어…… 정말 자네도 정말 돌려 말할 줄 몰라서 문제야.... 지금 자네 가문, 내부에서 뇌물과 횡령 혐의로 고발당해 전부 검찰에 이송되었다네. 한 명도 남김없이 지금 재판에 올라갔어.”
청천벽력과 같은 그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나카하라는 연신 그에게 ‘그 인간들 전부 잡혀간 거야?’라고 되물었다.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네 부모, 형제들이 사치스럽게 자네 앞에서 거들먹거릴 수 있었던 이유도 전부 그것들 때문이니까.’라고 대꾸하고는 이제 놓아달라며 나카하라가 잡은 멱살을 가리켰다. 나카하라는 그의 셔츠를 놔버리고는 소파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그렇게 원망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벌을 받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다는 듯이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던 나카하라는, ‘역시 형님은 자네에게 아무런 말도 안 해주셨나보군.’이라 중얼거리는 다자이의 말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소파에 기댔다. 허무하기 짝이 없는 복수다. 게다가 당사자는 알지도 못하는 복수. 허탈함에 한숨마저 나오는 상황이 꽤나 웃긴지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었다.
“사실 나카하라의 주식이 대폭 폭락했을 때, 내가 살까 했다네.”
나카하라는 해맑게 ‘나 슈퍼에서 세일로 대게를 샀다네.’와 같은 가벼운 말투로 말하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다자이는 언짢은 듯 보이는 그의 표정이 웃긴지 소리 내어 웃으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래도 자네가 있으니 나카하라는 망하게 두지는 않을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제일먼저 사려고 들어갔을 때는 이미 누가 전부 매입한 뒤였더군.”
‘누가 산건지는 바보 같은 츄야도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네.’ 잠시 사고회로가 멈춘 듯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던 나카하라가 깨달은 듯 눈을 크게 뜨자, 다자이는 ‘나는 그럼 남은 차나 즐기고 가보겠네. 오자키 가문의 차는 맛이 좋으니까.’라고 말하며 그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야, 다자이. 다음에 연락할게.”
‘고맙다.’ 이어지는 인사는 그가 응접실을 뛰어나가는 소리에 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다자이는 개의치 않는 다는 듯, 문을 박차고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 재미있다는 듯 키득거렸다.
“형님께 죽어나겠군.”
그의 중얼거림은 아무도 듣지 못한 듯 했지만 다자이는 살벌한 말과 다르게 즐겁다는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두었다. 그리고는 겉옷을 챙겨 그가 나간 곳과 반대되는 응접실 문으로 나온 뒤, 마주친 사용인에게 나카하라가 뛰쳐나간 방향까지 알려주는 여유로움을 내비쳤다.
오래간만의 뜀박질에 숨이 턱 끝까지 치달았다.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았던 그의 서재가 마치 구석으로 숨기라도 한 듯 멀게 느껴지던 나카하라는 ,숨을 고르며 다시 꾸준하게 등나무 향기가 점점 짙어지는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내리 누르며 위협하던 그의 향기가 길을 만들 듯 그에게로 가는 복도를 감싸고 있었다. 짙은 그의 페로몬은 나카하라의 예상대로 오자키의 서재 안에서 풍겨오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어질어질 할 정도로 풍겨오는 페로몬의 향에 코와 입가를 가렸다. 억제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페로몬의 자극에 손끝이 떨렸다. 나카하라는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당겼다.
“후우……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을 텐데……”
나카하라는 분명 어젯밤, 자신의 앞에서 억제제를 먹고 잠에 들던 그를 기억했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이 먹는 것과 같은 알약 두 알을 삼킨 그는, 이로써 한 달도 무사히 지나가겠다며 지나가듯 중얼거렸었다. 나카하라는 땀에 젖어 서재 한켠의 소파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아까 자신의 위협하던 페로몬의 농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무게였다. 그럼에도 나카하라는 천천히 발을 떼며 다가가서는 그의 머리맡에 앉았다. 오자키의 향 때문일까, 본능적으로 흘러나오는 은은한 동백의 향에 눈을 뜬 오자키는 나카하라를 올려다보며 잠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츄야?”
방안 가득 자욱한 등나무 향 사이에서 느껴지는 동백꽃의 은은함에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그저 열 기운 가운데의 환각인 것인지 모를 목소리로 나카하라를 부르던 오자키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진짜 츄야인가……’라고 중얼거렸다.
“……저 맞습니다.”
나카하라는 자신을 만져보라는 듯 가물거리던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대어주었다. 오자키는 그의 뺨을 살살 쓸어보고는 그대로 그의 어깨에 기대오며 연신 진짜라며 중얼거렸다. 나카하라는 페로몬이 조절되지 않아 난감한 그에게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조금씩 자신의 페로몬을 흘리며 그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오자키는 나카하라가 최대한 절제하고 있다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다는 듯,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비며 그의 향에 심취해 있었다. 땀에 젖은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던 나카하라는 오자키를 안심시키듯 그의 이름을 속삭이며 평소보다 강한 억제제를 가져다 준 비서에게 꼭 감사인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성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듯한 오자키는 그대로 자신보다 아담한 나카하라를 자신의 품에 안아버리고는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나카하라는 당황한 기색을 내비치면서도 정신없이 자신의 몸에 얼굴을 맞대는 그의 모습이 새로운지 미소를 띤 채로 그를 안아 주었다.
“츄야, 코요라고 불러주지 않으련?’
나른한 목소리로 투정 섞인 물음을 하던 오자키는, 고민하듯 입술을 꾹 다문 나카하라의 눈을 응시했다. 그저 몸을 맞대고 있는 것만으로도 취하게 되는 것인지 촉촉이 젖어있는 눈동자가 마치 정사 뒤의 쾌감이 뒤섞여있는 것 같았다. 나카하라는 붉어진 얼굴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코요.’라고 그를 불렀다. 그러자 오자키는 그대로 풀어진 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었다. 그저 본능에 따르는 그의 어린아이 같은 행동에 놀라 몸을 뒤로 빼려던 나카하라는, 오자키의 저지에 곧이곧대로 그의 입맞춤을 받아낼 수밖에 없었다. 오자키의 혀가 그의 입술을 훑으며 그를 달래듯 입술을 벌려갔다. 나카하라 그가 스스로 입술을 벌릴 때까지 그의 입술을 물고 빨던 오자키는 그대로 그가 입술을 벌리자마자 나카하라의 입안을 헤집었다. 그의 등나무 향이 뒤섞여 온 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녹아버릴 것 같이 혀를 얽어오던 둘은, 오자키의 페로몬 향이 멎어 갈 때쯤 입술을 떼고 숨을 천천히 고르며 서로를 응시했다.
“하아…… 내가 실례했나 보구나.”
거친 숨소리가 오가는 방안에서 먼저 말을 뗀 것은 오자키였다. 계속해서 숨을 고르던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실례…… 엄청 하긴 했죠.’라고 중얼거리며 타액이 흐른 입가를 소매로 닦아내었다. 오자키는 피식 웃으며 ‘그래도 이렇게 오랜만에 품에 앉으니 기분은 좋구나.’라고 말하며 나카하라의 새빨갛게 익은 얼굴을 더 잘 보기 위해 머리칼을 넘겼다.
“...더 강한 억제제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습니다.”
오자키의 말을 피하듯이 중얼거린 나카하라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작게 웃기 시작하는 오자키의 행동에 그를 빤히 응시했다. 오자키는 ‘미안하구나, 얼굴이 새빨개진 츄야도 귀여워서 말이야.’라고 대답하고는 그의 뺨을 쓸어주며 ‘다음번에는 일부러라도 약한 것을 찾아야겠습니다, 부인.’이라 말하며 나카하라와 시선을 마주했다.
“차...차라리 그럴 거면 그냥 말하고 하면 되잖아요. 억제제 먹을 필요도 없이.”
오자키는 그의 말에 놀란 듯 잠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크게 뜬 눈으로 나카하라를 바라보던 그는, 자신이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챈 나카하라의 얼굴이 새빨개지자 크게 웃어오며 ‘그럼 다음부터는 그리 해야겠구나.’라고 대꾸했다.
“아...아니....매번 그러는게 아니라... 나중에라도 그럴 수 있다는 거죠!”
나카하라가 수습하려 할수록 그의 웃음소리는 커져만 갔다. 결국에는 나카하라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못 말한 것이니 그만 웃어주세요...’라고 할 때까지 웃은 오자키는, 손사래를 치며 미안하다 중얼거렸다.
“ 뭐... 언젠가는 꼭 필요한 절차 아니겠습니까, 부인”
일부러 그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 심산인 것인지 눈웃음을 지으며 말한 오자키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 맞춰 주고는 그를 마주보았다. 먼저 시선을 피한 것은 나카하라 쪽이었다. 오자키는 자신의 품에 안겨 얼굴을 가리는데 급급한 나카하라의 등을 다독여주며 웃고는 아까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듯 그를 불렀다.
“그만 부르십쇼……”
투정부리듯 웅얼거리며 그를 밀어내는 나카하라의 행동에 ‘그럼 부인, 부르지 않을 테니, 조금 진정하셔야겠습니다.’ 라고 대꾸하고는 발갛게 열이 오른 그의 뺨을 매만져 주었다.
“우리 츄야…… 사랑스럽기도 하지.”
나카하라는 마치 세상의 가장 귀한 보물이라도 다루는 듯 하는 그의 행동이 더욱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듯 했다. 이제라도 그의 품 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을 쳐보았지만, 오자키는 그를 내려주지 않을 것이라는 듯 품에 끌어안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
“잠시만…….잠시만 이리 있자. 너무 오랜만이라 감회가 새로우니 말이야.”
오자키의 말에 버둥거리던 나카하라는 ‘이제 계속 이럴 거면서 뭘 그럽니까….’라고 중얼거리고는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서로의 빠른 심장소리를 맞추듯 서로에게 귀 기울이던 둘은, 누가 먼저랄 새 없이 서로를 눈동자에 비추며 마주보았다.
“오늘따라 솔직한 이유는 역시 다자이 덕분인가.”
웃으면서 말하는 오자키의 말에 찔리기라도 한 듯 움찔거린 나카하라는 ‘아니...뭐 들은 게 없지는 않습니다.’라고 대답하며 뺨을 긁적거렸다.
“뭐... 말하지 말라 한건 아니지만. 괘씸하긴 하구나.”
‘내가 말해도 늦지 않았을 터인데.’ 오자키가 말을 덧붙이며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나카하라는 스스럼없이 뺨을 쓰다듬어주고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것 같은 오자키의 행동이 마냥 부끄럽게만 느껴졌다. 그런 그의 손을 잡아 내린 나카하라는, ‘이미 늦었습니다...처음부터 말해주셨으면 그런 소동은 안 일으켰을 텐데. 형님이 나쁜 겁니다.’라고 삐진 아이처럼 투덜대었다.
“하지만... 츄야가 그렇게 성질부려도 나는 좋았는데 말이다. 그것도 하나의 추억이지?”
나카하라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 오자키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마치 어린 연인의 이정도 투정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집을 부수지 않아서 다행이지. 예전의 츄야였다면 전부 때려 부쉈겠지?’라고 농담하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나카하라는 피식 웃었다.
“형님은 예나 지금이나... 영문을 모를 분이십니다.”
이해하기를 그만두자는 듯 한숨을 쉬던 나카하라는 키득거리며 ‘우리 츄야의 관해서는 상식이 없는 편이긴 하지.’라고 대꾸하는 오자키의 말에 손을 내저었다. 부끄러운 말 좀 그만하라며 밀어내는 나카하라를 껴안은 오자키는, 그의 귓가에 ‘동백꽃이 사랑스러운 탓이라 생각하거라.’라고 속삭이며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내렸다. 그 한마디에 다시 얼굴이 새빨개진 나카하라는 한숨과 함께 ‘등나무 때문입니다.’라고 대꾸하고는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날, 열린 창사이로는 동백꽃인지, 등나무인지 모를 향이 창문 사이를 들여다보던 나무를 타고 온 저택으로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