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츄]서로에게 새겨진
긴 이야기를 최대한 짧게 줄인게 화근이었는지 좀 허술한 네임버스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중에 편집하거나 더 덧붙일수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은 이야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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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간지러웠던 팔목을 그저 모기에 물린 것이라 생각해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둔 것이 화근이었다. 나카하라는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점과 같이 나타난 이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학교 갈 준비를 시작해도 늦을까 말까한 시간 대였지만,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다자이...오사무...?”
붉게 올라온 자국 사이로 선명하게 보이는 이름을 하나하나 읽어보던 나카하라는, 익숙한 이름에 기함하며 팔목을 연신 문질렀다. 하지만 사인펜으로 쓴 어린애들의 장난도 아니었으니 지워질리 만무했다. 나카하라는 이걸 어쩌면 좋은지 생각하다, 지각한다며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시계를 확인하고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급하게 씻으러 들어갔다. 차라리 펜과 같은 걸로 그려놓은 것이라 물에 씻겨 내려가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몸을 씻은 그는, 머리만을 대충 털어내고 최대한 빠르게 옷을 꿰어 입었다.
“츄야-. 조금만 더 걸리면 지각이라고?”
아, 벌써 시간이. 매일 아침 질리지도 않고 찾아오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나카하라는 기다리라며 소리쳤다. 티셔츠 위에 걸친 교복 셔츠를 잠굴 새도 없이 가방을 챙기다 눈에 들어온 팔목밴드를 찬 나카하라는, 정신없이 휘몰아친 아침에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섰다. 아침을 먹고 가라며 종용하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그저 우유만 한 팩 챙긴 나카하라는, 초여름의 아침 햇볕 사이로 보이는 다자이의 모습에 다시 팔목이 간지러워지는 기분이었다.
“또 아침은 물 건너 간 모양이군. 어제 늦게 잤나? 그러다가 평균 키도 못 넘는다네.”
“아 진짜 키 이야기하면 죽인댔지 너!”
다자이의 놀림에 아프지 않게 등짝을 때린 나카하라는 키득거리며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자이의 눈을 제대로 마주할 수 없었다. 뭔가 열이 오르는 듯한 기분에 ‘늦게 안 잤다고...’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린 나카하라는, 다자이에게 늦었다며 뛰자고 말하며 먼저 발걸음을 서둘렀다. 평소였으면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도착했을 학교인데도, 팔목에 생긴 그의 이름 하나로 모든 것이 바뀌는 기분이었다. 다자이는 교문을 넘어가자마자 다행히 지각은 면했다며 과장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평소였으면 언제는 지각 했냐며 받아치던 나카하라였지만, 오늘은 그저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최선이었다.
“츄야, 오늘 뭔가 다른데?”
“뭐...뭐가 다르냐? 똑같구만.”
말을 더듬은 혀를 자책하듯 살짝 깨문 나카하라는 자신의 팔목에 찬 밴드는 왜 찬 건지 묻는 그의 물음에 그저 삐끗한 거라고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심한 것은 아니냐고 물은 다자이에게 나카하라는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순간, 다자이가 그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나카하라는 이름 근처에 그의 손이 닿자마자 반응하는 듯한 이름의 열기에 그의 손을 뿌리쳤다.
“아...아파서...”
‘미안하다.’나카하라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다자이에게 선수 치듯 사과하고는 그대로 반에 먼저 들어갔다. 다자이는 뭔가 어색하게 팔목근처를 연신 긁어대는 나카하라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종이 친 뒤 반으로 들어갔다. 바보 츄야, 어차피 같은 반인데. 다자이는 제일 구석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엎드린 나카하라를 바라보다 자리에 앉았다. 서로 옆집에서 태어난 같은 연생이어서인지 어릴 때부터 떨어질 줄 몰랐다. 좀 커서는 서로 다른 관심사 때문에 거리가 생겼음에도, 둘은 다시 서로를 찾았다. 뒤 늦게 들어온 담임선생님은 특유의 느긋한 말투로 이름을 불렀다. 다자이는 자신이 이름이 호명되자 대답하고는 나카하라의 이름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선생님이 부르는 그의 이름을 가만히 입 안에서 굴려보던 다자이는, 딴생각을 하고 있던 것인지 허둥지둥 대답하는 나카하라의 목소리에 작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여름이 완전히 도래한 것인지 낮의 교실은 잔뜩 달궈진 후라이팬 같았다. 그래도 점심시간 종소리를 듣고 빠져나간 인원 때문인지, 수업시간 때보다는 열기가 많이 식은 상태였다. 다자이는 4교시부터 내내 엎드려있던 나카하라에게로 다가갔다. 모두가 점심을 먹기 위해 나간 뒤의 교실은 답지 않게 적막감만 맴돌았다. 다자이는 ‘츄야, 오늘은 지각이라 도시락 안 가져왔지?’라고 물으며 그의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 안 먹을 거다. 니 혼자 다 먹어라.”
엎드린 팔 사이로 들리는 그의 웅얼거림이 귀엽다고 생각하던 다자이는 ‘아프면 양호실로 가자.’라고 말하며 밴드를 찬 그의 손목 근처를 잡아보았다. 그러자 일어날 것 같지 않던 나카하라가 그의 손에서 팔을 빼내고는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야...아픈 데를 자꾸 만지면 어쩌냐?”
“안 아프잖아.”
다자이의 한마디에 나카하라는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평생 그에게 거짓말을 해보겠다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던 나카하라였다. 아니라고 뒤 늦게 대답한 나카하라는 손목을 잡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자이는 ‘아침에 그 손목으로 가방 걸고 나왔지 않나. 물론 크로스백이라 금방 맸지만.’이라 말하며 그를 추궁했다. 나카하라는 치밀하지 못한 자신의 변명에 대답을 얹지 않았다. 그저 뭐라 변명해야할지 머릿속을 헤집으며 시간을 벌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그 아픈 손목을 책상에 두고 엎드려 있었고 말이지.”
빼도 박도 못하는 다자이의 한마디에 나카하라는 한숨만 나오는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다자이는 어디 변명해보라는 듯이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네가 들으면 이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야.’ 힘겹게 입을 뗀 나카하라는 천천히 그에게 설명을 하려는 듯이 팔목 밴드를 만지작거렸다. 하지만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힘겹게 말을 이어나가며 그에게 팔목을 보이려 하자, 먼저 말을 끊어버리고는 대뜸 ‘츄야, 내가 머리 넘긴 모습 본 적 있나?’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왜 하필 지금 그런 질문을 하는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너는 더워도 머리는 안 까잖아.’라고 대꾸했다. 다자이는 여유롭게 웃으며 ‘그렇지?’라고 대답하고는, 귀를 전부 가리고 있는 자신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 귀 뒤편에 머리카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이름을 그에게 확인시켜주었다.
“츄야가 오늘 아침부터 이상한 게 이것 때문이라면, 나도 이미 알고 있었다네. 나도 자네와 닿을 때마다 느껴지니까 말이야.”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가 머리카락을 완전히 넘겨 보여준 이름은 분명 자신이 평생 써온 이름이었으니 말이다. 자신과 가까이 있어서인지, 이름은 짙은 붉은 색을 띠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만져 봐도 된다고 허락하자마자 손을 뻗어 그의 몸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을 쓸어보았다. 그러자 고동치듯 두근대는 자신의 손목의 느낌이 생소에 서둘러 손을 뗐다.
“마치 상처같이 두근거리지?”
다자이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린 나카하라는 손목을 보여 달라는 다자이의 부탁에 천천히 팔목 밴드를 빼내었다. 나카하라는 마치 빤히 보고 있는 그의 앞에서 옷을 벗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푸른빛이 진해진 손목의 이름을 그에게 보여준 나카하라는, ‘진짜네...’라고 중얼거리는 다자이에게 ‘그럼 진짜지 가짜냐.’라고 대꾸했다. 다자이는 신기한 듯 이름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나카하라는 간질거리면서도 뜨거워지는 기분이 생소한지 입술을 잘근거렸다.
“나는 꽤 오래 전에 생겼었는데. 츄야는 어려서 그런가, 이제 생겼네?”
다자이의 말에 ‘죽인다. 진짜.’라고 말한 나카하라는 다시 손목에 밴드를 찼다. 그러자 다자이는 이제 다 알았는데 왜 다시 차는 거냐며 타박하고는 그의 밴드를 빼서 자신의 주머니로 가져갔다.
“아 부끄럽다고!”
“하지만 나도 이제 머리 넘길 수 있는걸. 츄야도 한번 느껴보게나 나와 같은 불편함.”
한마디도 지지 않는 다자이의 말에 짜증난다는 듯 궁시렁 대던 나카하라는 그대로 손을 깍지껴 잡아오는 다자이의 행동에 미처 손을 빼내지 못했다. 다자이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이렇게 잡고 있으면 안 보이긴 하는데 말이야.’라고 말하고는 어떠냐는 듯이 그를 보며 웃었다.
“학교에서 그러지 마라... 지금은 그냥 이거 끼고 있을 거다. 하교하면 잡든가 말든가.”
나카하라가 손을 빼내 그대로 밴드를 끼며 말하자, 다자이는 ‘그건 잡아달라는 이야기지? 츄야.’라고 말하며 피식 웃었다. ‘네 마음대로 해석해라.’ 퉁명스럽게 말하는 데도 나카하라의 입꼬리는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흘러내린 자신의 머리칼을 다시 귀 뒤로 넘긴 다자이는 머리칼 근처에 걸린 듯이 보이는 그의 이름을 만져보고는 다시 그의 손목 위로 손을 옮겼다. 나카하라는 그만 좀 더듬으라며 그의 손을 아프지 않게 쳐냈지만 다자이는 ‘왜 기분 좋은데.’라고 대답하며 연신 그의 손과 팔 근처를 맴돌듯 매만졌다. 그러자 나카하라는 자신도 질 수 없다는 듯이 그의 손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와 그의 머리칼 사이에 숨어있는 자신의 이름을 더듬었다. 다자이는 그의 행동에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돌려 그가 만지기 편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정적 속에 여름을 알리는 매미 소리 때문인지 손끝에서 느껴지는 고동이 누구의 두근거림인지는 차마 알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