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어여쁨
무얼 그리 빤히 바라보고
그러세요!
이쪽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제가 예쁘다는 걸
제가 먼저 알았다는 말이다.
어여쁨-나태주
다음날, 햇볕이 쨍쨍한 오후가 되자 그 아이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늦은 점심을 먹고 치우고 있던 터라 느릿하게 현관으로 나가자 어제 들었던 목소리가 마츠카와를 불렀다. 대문을 열자 햇빛을 받아 쨍한 아이의 분홍색 머리가 보였다. 대문을 두드리던 아이는 고개 숙이며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긴장한 어투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들어오라 한 뒤, 바람이 드는 마루에 앉혔다. 시원하게 잘라둔 수박을 가지고 나오자 조금 풀린 듯 한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분홍색 머리는 나이 또래답게 짧고 단정하게 깎여있었고 피부는 하얀 편인 것 같았다. 남자치고는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며 빤히 바라보자 슬슬 눈치를 보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 뭐 묻었나요……."
우물쭈물하며 묻는 말에는 어색함이 서려 있었다. 그 말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어보인 뒤 아니란 한마디 해주자 다시 수박을 먹는데 집중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 책을 몇 권 집어 가져와 앞에서 읽자,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는 혼자 사시는 거예요?"
아저씨라는 호칭에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에 그저 질문에 대답만 해주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궁금한 것들이 보따리를 푼 것처럼 쏟아 져 나왔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시골은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 작가라고 들었는데 무슨 글 쓰세요? 아까까지 어색했던 말투는 거의 사라졌다. 그저 종알종알 입을 놀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대답을 해나가자 일일이 반응해왔다. 나이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젊어서 놀라했고 그럼에도 이 시골이 좋다고 말하자 특이하다고 하였다. 친화력이 좋은 편인지 이리저리 떠들어 오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아, 공부해야지."
아이는 여기에 온 목적이 생각났는지 자신의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책을 펼치고 작은 글씨가 빽빽이 쓰여 있는 페이지를 읽다가 말할 것이 다시 생각났는지 마츠카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 이름은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밝게 지은 미소에는 티 한 점 없이 고와보였다. 가만히 바라보던 마츠카와에게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주고는 아저씨 이름도 말해 줘야죠, 라며 당돌하게 말했다.
“잇세이. 마츠카와 잇세이.”
자신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끄덕이고는 공부에 집중하는 듯 했다. 책을 내려다보고 있는 분홍색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이 닿는 곳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분홍 머리가 어제 본 하늘의 색과 유사했다. 머리카락 색으론 잘 나올 수 없는 하늘의 오묘한 색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에게는 위화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동글한 정수리와 하얀 피부는 분홍빛의 머리색과 잘 어울렸다. 동그란 지구를 싸고 있는 구름과 같이 느껴져 피식 웃었다.
“아저씨 왜 자꾸 빤히 쳐다보고 그래요.”
자신의 눈을 의식하는지 책을 보면서도 연신 힐끔 이는 모습이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츠카와는 미안하다 말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마츠카와가 집중하자 아이도 힐끔 이는 것을 멈추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해는 한 풀 꺾여 산에 걸려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 생각하자 아이는 공부가 다 끝났는지 공책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정수리만큼 동글 거리는 콧잔등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배고파요. 저 저녁도 먹고 가도 되요?”
당당한 아이의 말에, 배고프면 먹어야지 하며 일어난 마츠카와는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아이가 가져온 반찬, 샐러드용 채소, 나물, 읍내 마켓에서 산 냉동 햄버그. 냉장고를 뒤지며 이정도면 두 명은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냉동 햄버그부터 꺼내 두었다. 달군 후라이팬에 햄버그를 올려 굽고 채소를 다듬었다. 장아찌와 나물 반찬을 조금씩 옮겨 담고, 있는 밥을 퍼 식탁위에 올려뒀다. 햄버그가 지글 거리는 소리를 내니 어느 샌가 아이가 옆에 와있었다.
“햄버그다.”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햄버그를 보며 말한 아이는 뒤집개로 햄버그 하나를 뒤집었다. 노릇하게 익은 햄버그에 나머지도 마저 뒤집은 아이는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불렀다. 채소를 다듬고, 물기를 털어내 접시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아이가 구운 노릇한 햄버그도 옆에 담고 식탁에 올려두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라.”
예의 상 인사를 하자 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잘 먹겠다 말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인사를 했음에도 마츠카와가 먼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하는 아이의 행동이 귀여운지 마츠카와는 미소 지었다.
“아저씨는 왜 아까부터 저를 빤히 보세요?”
어디 이상해요 저? 아이는 햄버그를 젓가락으로 가르며 물었다.
“아니 그냥 머리카락이……. 예뻐서?”
아이에게 많고 많던 이유 중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말해주자 눈꼬리를 휘며 환히 미소지었다.
“그런 거였어요? 특이하기도하고 어렸을 때부터 많이들 예쁘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자신도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당연하게 말하자 마츠카와는 그랬겠네 하며 받아쳐주었다. 볼을 가득 채워가며 먹던 아이가 식사를 마쳤는지 젓가락을 내려놨다. 지던 해는 어제와 같은 빛을 내며 하늘을 물들여 갔다. 그 빛이 아이의 분홍빛 머리카락과 동화되어 빛났다.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아이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만 좀 보시라니까요.”
아이는 보지 말라 했지만 말투는 명백히 즐기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 말에 마주 미소 지어오며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자 해는 빠르게 산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