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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모리]그리움의 끝

송화우연 2019. 1. 28. 23:56

낙자루님의 썰을 기반으로 쓴 후쿠모리 입니다. 후쿠모리는 전혀 안나옵니다. 사망 소재 유의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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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모리 오가이의 손에는 어울리지 않는 장도가 들려있었다. 고요한 섬마을에서 치러진 장례에는 간부인 오자키 코요만이 참석했다. 현 간부 중 한 명인 나카하라는 작은 섬마을인 만큼 장례에 많은 사람을 부를 수 없는 것은 이해한다고 했지만 갈 수 있는 인원이 왜 한 사람뿐인지 물었다. 불만을 표하는 그에게 오자키는 덤덤한 목소리로 유서에 적힌대로라고 대답했다. 모리의 장례는 생전 마피아 보스의 장례라고 하기에는 조촐하기 짝이었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의사 선생이라고 불렀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모리는 죽기 전, 정확하게 자신의 장례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적어두고 떠났다. 장례를 치룰 곳, 장송곡, 와야 할 사람들의 목록과 사람들의 주소, 그리고 같이 묻어야 할 물건과 자신이 묻혀야 할 곳 등. 그는 살아생전처럼 스스로의 죽음도 계획하고 있었다. 모리는 섬마을 바닷가 근처 공동묘지에 묻히고 싶어 했다. 오자키는 답지 않게 운치 있는 곳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왜 그 자리를 골랐는지는 옆의 묘지를 보고 금방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무덤들보다 서로 가까이 위치한 두 무덤은 두 사람이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물론 땅에 묻힌 시체가 옆으로 손을 뻗을 리 없었지만, 오자키는 이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가까이 있으니 좋을 거라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듣지 못할 혼잣말이었다. 상쾌한 파도소리와 다르게, 사람들의 표정은 엄숙하고 슬퍼보였다. 물론 얼마 없는 이웃사촌 중 한 사람이 떠나 그런 것도 있을 테지만, 몇 주 전에 죽은 그의 연인을 따라 간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보였다.

어울리지 않는 장도는 그의 연인의 것이었다. 그는 이미 모리의 무덤 옆에 차게 식은 채 묻혀 있는 사람이었다. 오자키는 가만히 모리가 묻히는 것을 바라보다가 옆의 무덤에 시선을 던졌다. ‘후쿠자와 유키치’라고 적힌 묘비를 바라보던 오자키는 가만히 그 묘비 앞에 서서 모리가 바라보던 바다의 전경과 무덤을 한눈에 담았다. 마을 사람들은 의사인 그가 시름거리는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는 정처 없이 바닷가를 걷는 것을 보고는 저러다 바다에 뛰어들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웠다고 말하는 마을 사람들은 슬픈 눈으로 흙이 덮여지는 그의 관을 응시했다. 오자키는 눈물을 보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어차피 두 사람은 만났을 테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추모하는 이들에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길지 않은 유서엔 남겨진 이를 위한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았다. 가까웠던 한 사람만이 장례에 참석 해주길 바란다는 말이라던가, 섬 밖에 자세한 이야기를 알리지 말고 진행해달라는 말은 남겼다고 말할 만한 것도 아니었다. 그 대신, 종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글들은 두 사람의 사랑에 도피에 관한 이야기였다. 흔하디흔한 연애사와 같이 쓰여 있었지만 몇 날 며칠을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고, 담담하게 나열 되어있는 모리의 필체가 두 사람의 애틋함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다.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었을 때와 다르게 둘만을 바라보며 지내고 싶었다는 말은, 평범한 문장임에도 힘을 줘 눌러쓴 것처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두 사람의 일상은 사랑의 도피라는 거창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게 평범했다. 바닷길을 산책하고 마을을 지나다니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 진료소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진찰하고 함께 식사하고 같은 침대에서 잠에 들고. 이런 평범한 일상이 서로 함께 함으로서 마치 특별한 하루 같이 묘사되어 있었다. 답지 않게 행복했노라고 말하는 문장에 작게 웃은 오자키는 거의 묻힌 모리의 관을 바라보았다.

오자키는 다시 한 번 그가 부탁한 마지막 절차를 확인하고는 성냥에 불을 붙였다. 장례를 치루는 중인지라 백사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홀로 모래를 밟고 선 오자키만이 하얀 의사가운과 어두운 색의 하카마를 태우고 있었다.

[후쿠자와 공이 남기고 간 하카마도 의사 가운과 함께 태워 주게나. 이제 더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가만히 타들어가는 옷가지들을 바라보던 오자키는 후쿠자와의 관 안에는 무엇이 들었을지 생각해보며 남은 유서를 찬찬히 읽어 내렸다.

[후쿠자와 공이 먼저 가서 다행이야. 그 사람은 이런 그리움을 느끼지 않았으면 싶으니까. 위에서 호의호식하다 천국에서 만나길 기도해야겠지.]

오자키는 답지 않은 종교관이 섞인 문장을 바라보다 거의 다 타들어간 의사 가운과 하카마를 바라보았다. 활활 타오르던 옷가지들은 불을 꺼트리며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채 마지막을 향해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채 가고 싶으니 이 편지도 태워주게. 마지막을 지켜주어서 고맙고... 또 해야 할 말이 있을까? 유서는 처음이라.]

끝까지 제멋대로. 오자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는 꺼져가는 불씨에 종이 뭉치를 던져버렸다. 죽어가던 불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종이를 태우며 다시 일어났다. 오자키는 그렇게 불길이 다시 죽어갈 때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불이 꺼지고 난 뒤에도 한참을 잿더미를 지켜보던 그는, 천천히 백사장을 빠져나오며 모리가 소중하다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장도를 생각하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 와중에 그걸 손에 쥔 채 묻힐 생각을 하다니, 어지간히 사랑하고 있었구나. 바닷바람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던 오자키는 다시금 잿더미가 남아있는 백사장을 연신 돌아보며 바닷가를 벗어났다. 오자키는 섬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며 모리의 장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딱히 해줄 말이 없었다. 그저 죽은 모리 오가이의 손에는 후쿠자와 유키치의 장도가 들려있었다고 말하면 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