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다른 커플링

[후쿠모리] 알오버스 임신물.1

송화우연 2019. 3. 29. 02:36

 

 

 

그래서찾으시는 분이 있으시다고 하셨죠?”

나카지마는 눈앞에서 홍차를 홀짝거리는 모리에게 조심스레 물으며 그의 맞은편 소파 자리에 앉았다. 급한 용무로 온 듯하면서도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 남자는 찻잔을 내려놓자마자 제 이름은 모리 오가이입니다. 직업은 의사입니다.’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나카지마는 탐정사에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인 만큼, 여러 사람을 접했기에 굳이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갖은 애를 썼다. 모리가 말하는 것을 적기 위해 수첩을 펼치ㄴ나카지마는 본격적으로 그에게 질문 하기 시작했다.

네 모리 오가이씨찾으시는 분과는 어떤 관계이신 가요?”

그 날 처음 보았습니다만 굳이 관계를 물으신다면생물학적 아이 아버지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생물학적 아이 아버지? 나카지마는 차마 되물을 수 없어 수첩에 조심스레 그의 대답을 적었다. 아무리 탐정사에 별별 사람이 다 온다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네. 나카지마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음 질문을 생각했다. 뭐부터 물어봐야 할까.

그럼 그분과는언제, 어떻게 만나신 거죠?”

이야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인상착의만으로는 찾기 힘든 걸까요?”

나카지마는 조금 당황한 듯이 보이는 남자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읽었다. 별다른 이야기가 아니라면 분명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간에 이야기했겠지만, 그는 초조한 듯이 입술을 뜯었다. 나카지마는 범죄에 가담될 염려가 있어 대충이라도 설명해야 한다고 그를 설득했다. 모리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천천히 입술을 떼었다.

 

***

 

이미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은 술집 안은 시끄러웠다. 서로를 유혹하기 위해 이리저리 뒤섞이는 페로몬 향이 별로 좋게 느껴지지 않아 미간을 찌푸린 모리는 바텐더에게 두 번째 위스키를 부탁했다. 뼈 빠지게 일해서 돈 벌어 놨더니 뭐? 만나는 시간이 적어서 마음이 떠났다고?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변변치 못한 놈이 말은 많아서. 모리는 바로 나온 잔을 그대로 입에 털어 넣고는 씁쓸하게 퍼지는 알코올의 맛에 입맛을 다셨다. 답지 않게 오래 연애한 연인에게 차이고 구슬프게 찾아온 술집은, 무슨 연애의 장이라도 되는 모양새였다. 홀에서 춤을 춘답시고 서로를 유혹하고 부추기는 페로몬들은 알파 오메가 할 것 없이 잔뜩 뒤섞여 구역질까지 날 정도였다. 모리는 굳이 그 판에 뒤섞이고 싶지 않아 바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시 세 번째 잔을 달라고 컵을 내민 모리는, 바로 옆 옆자리에서 조용하게 술을 홀짝거리는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시끄러운 것을 유독 싫어하는 타입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무렇지 않게 이 난장판 속에 섞여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모리는 달아오른 얼굴에 손등을 대보며 열기를 식혔다. 이미 술기운이 올라 잔뜩 붉어진 얼굴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술집에서 술을 마시지 물을 마시러 오겠나. 술기운이 섞여 의미 모를 자신감에 차오른 그는, 턱을 괸 채 그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혼자 왔습니까?”

남자는 잠시 모리를 가만히 응시하다 혼자 왔습니다.’라고 답했다. 남자는 이 난장판 속에서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모양이었는지, 상쾌한 향이 나는 페로몬이 모리의 주변까지 뻗어 나오는 듯했다. 모리는 기분 좋게까지 느껴지는 페로몬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 그의 친우의 말에 의하면 사람 하나 홀리는 미소라고 할 법했지만, 남자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저도 혼자인데 같이 마시지 않겠습니까?”

그 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는지, 아니면 대답을 했는지 모리는 기억하지 못했다. 정확히 기억나는 것은 그와 테킬라를 몇 잔씩 나눠 마신 뒤, 바로 술집 위에 있는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이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제일 위의 층을 골랐고, 모리는 그것이 나쁘지 않아 가만히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술집에서는 조용히 이야기만 나누다가, 둘만 남게 되자 모리는 점차 페로몬을 풀었다. 그가 달달한 향을 몸에 두르자, 술기운이 잔뜩 얹어진 남자가 모리에게 몸을 가까이했다. 두 사람은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입맞춤을 나누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밤이 깊다 못해 새벽이었고, 두 사람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뒤의 기억은 정말 드문드문 떠올랐다. 그만하고 싶다고 밀어내다가도, 자신이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그에게 매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나름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름. 불러 주겠나.”

간간이 기억나는 기억의 파편 속에서는 이런 말도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이름을 알려 주었다는 것일 텐데. 모리는 머리를 싸매고 생각해보아도 생각나지 않는 남자의 이름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삶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하루를 보낸 모리는 다음 날 차갑게 식은 옆자리를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게다가 전화번호도 남기지 않고 호텔 비용 내고도 남을 금액을 협탁에 올려두고 간 것이 그를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어디 걸려도 자꾸 개 같은 놈만 걸리는군.”

한숨 섞인 욕지기를 내뱉은 그는,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몸을 씻으러 욕실로 들어갔다. 그 남자가 씻긴 것인지 몸은 깨끗했다. 하지만 병적으로 깨끗한 것을 집착하는 그에게 샤워를 한 번 더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모리는 씻으면서도, 심지어 그 남자가 미리 결제까지 전부 한 호텔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도 이를 갈았다. 흥신소에 연락해 신원이라도 찾아야 하는 걸까 생각하던 그는, 바쁜 일상으로 돌아오자 그 남자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 그렇게 한 달 하고도 3주가량을 보낸 그는, 얼마 전부터 안 좋아진 몸 상태를 검진받기 위한 병원에서 임신 소식을 받았다.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었다.

 

***

 

모리의 묘사에 따르면, 오메가인 그가 실연의 아픔을 이기기 위해 방문한 술집에서 진탕 마시다가 어떤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의 근처를 지나치면 느껴지는 페로몬이 그가 알파라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을 정도였고, 생긴 것도 나름 자신의 취향이었다고 설명했다. (나카지마는 묻지도 않은 것을 말하는 그가, 그 스스로를 변호하기 위한 것처럼 느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 남자와 함께 술을 마시다가 결국 어찌어찌해서 같이 하룻밤을 보냈고. 다음 날 일어났을 때 그 남자는 사라진 뒤였다.

아니, 그냥 도망간 거라면 별로 화나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돈을 그렇게 많이 놓고 가서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지 모르겠단 말이죠.”

, .”

나카지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수첩에 적어 내리며 어서 자신을 도와줄 동료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쿄카는 아직 미성년자니까 제발 쿠니키다 씨나, 아니면 요사노 씨만이라도. 아니 나오미 씨도 저보단 잘 도와줄 수 있을 텐데. 나카지마는 눈물을 짜내며 그럼 찾으시는 분의 성함도 모르시는 건가요?’라고 물으며 수첩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름은기억이 안 납니다. 인상착의 정도는 충분히 기억하지만요.”

그럼 생김새나 인상착의를 알려주시면 최대한 찾아보겠습니다.”

나카지마는 지금 상황이 총체적 난국이라고 생각하며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카지마가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 넘어갈 무렵, 쿠니키다가 돌아왔다. 나카지마는 쿠니키다 씨, 다녀오셨어요.’라고 인사하며 구세주를 만난 듯 손을 흔들었다. 넋이 나간 그의 표정에 이상함을 느낀 쿠니키다는 바로 나카지마에게 다가와 무슨 의뢰인지 물었다. 나카지마는 ? 그냥 사람을 찾으신다는 의뢰입니다.’라고 힘없이 대답하고는 자신이 이때까지 열심히 적어둔 수첩을 그에게 건넸다. 수첩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쿠니키다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썼다. 쿠니키다 조차 탐정사에서 많은 사건을 해결하면서도 이런 사건은 처음인듯했다. 쿠니키다는 힘없이 늘어진 나카지마를 뒤로 한 채 모리에게 사무적인 투로 말하며 힘겹게 질문을 꺼냈다.

그럼 성함을 모르시는 관계로 저희 탐정사 사원들이 모두 힘을 써 찾아보겠습니다. 그런데 생물학적 아이 아버지라면지금 의뢰인께서는 이.”

. 임신 중입니다만.”

. 알겠습니다.’ 쿠니키다는 그의 말에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곧바로 인상착의를 물었다. 모리는 잠시간 고민하다가 천천히 생각을 더듬듯이 천천히 자신이 찾는 남자에 대해 묘사해 갔다. 검은 정장을 입었지만 마치 전통적인 걸음걸이와 행동, 그리고 한 쪽으로 내려 묶은 반짝거리는 은발, 중후한 목소리,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감정 표현은 확실한 은빛 눈동자. 모리가 그 남자에 관해 말하면 말할수록, 쿠니키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표현이 두리뭉실해서 찾으시는 데 도움이 되실지 모르겠네요.”

쿠니키다가 아무런 대답 없이 모리와 수첩을 번갈아 응시하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자, 나카지마가 마지못해 웃으며 그게 저희가 해야 할 일인 걸요.’라고 답했다. 쿠니키다는 나카지마가 어떻게 이야기하던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람 마냥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다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잠시 전화 통화를 하고 오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나카지마는 답지 않게 정신이 없어 보이는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었지만, 의뢰인이 앞에 있는 자리여서인지 최대한 침착한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임신하신 거면. 아직 얼마 안 되셨겠어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이상하지만 정말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사실 저도 모르고 있다가 벌써 두 달이 다 되어갈 때쯤에서야 알게 되어서요. 이제야 찾기는 뭐하지만 지우든 살리든 아이의 아버지는 필요하다 하니찾으려고 마음먹었습니다.”

냉정한 모리의 한마디에 그렇군요.’라고 대답하며 의미 없이 고개를 끄덕인 나카지마는 급한 발걸음으로 다시 응접실로 돌아온 쿠니키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다. 쿠니키다는 나카지마의 물음에 대답조차 하지 않고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나카지마는 이렇게까지 당황한 그가 오랜 만인지라 그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해하며 쿠니키다를 빤히 바라보았다.

생물학적 아이 아버지를 찾은 것 같습니다.”

쿠니키다의 한마디에 모리는 놀란 눈치였다. 기대조차 하지 않고 온 탐정사에서 이렇게 빨리 일을 처리해 줄 줄이야. 모리는 사업적인 미소를 띤 채 그럼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나카지마는 환히 웃고 있지만 무언가 숨기는 듯한 모리의 미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쿠니키다를 바라보았다. 쿠니키다는 전화를 했으니 곧 올 거라고 말하고는, 잠시 나가 있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모리와 나카지마만이 남은 응접실에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을 다물었다. 나카지마는 속으로 어서 쿠니키다가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적막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어 빠르게 일이 처리되길 바랐는데. 탐정사 분들께서 잘 처리해주셔서 무척 기쁩니다.”

아하하. 저희가 더 감사하죠. 항상 무슨 일이든 편안하게 의뢰해주세요.”

나카지마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끝에 들어온 사람은 쿠니키다가 아니었다. 모리는 단정하게 유카타를 차려입고 하오리를 어깨에 걸친 남자를 보고 놀란 듯이 크게 뜬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 사장님! 무슨 일 있으신가요?”

모리는 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그의 모습보다, 나카지마가 그를 부르는 호칭에 더욱 놀란 듯했다. 눈만 커지는 것이 아니라 어이가 없다는 듯이 입까지 벌리며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하던 모리는 당신이 여기 사장이었습니까?’라고 물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절 찾아왔다고 하셔 급하게 걸음 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입니다.”

모리는 그 이름을 듣자마자 침대에서 자신이 그를 부르던 이름을 기억해냈다. 낯부끄러운 기억이 따로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모리는 벌써 두 달 전 이야기를 지금에야 끌고 와 죄송합니다만.’이라고 운을 띄우며 힘들게 입술을 떼었다.

제가 탐정사를 찾은 것은 당신을 찾기 위함이었습니다, 후쿠자와 유키치씨. 저는 당신의 아이를 가졌습니다.”

자종치종을 듣고 오지는 못했던 모양인지 후쿠자와는 엄청나게 놀란 모습이었다. 나카지마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이 보아왔던 사장님의 모습 중에서 가장 놀란 모습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당황함 속에서 먼저 입술을 떼어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사태의 당사들과는 별개로, 당황스러운 상황에 낀 나카지마는 두 사람이 어서 무슨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기나긴 정적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