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모리]이게 만일 꿈이라 할지라도
폐허가 된 도시를 좋아할 리 없는 두 사람은, 멀리서 보기엔 오랜만에 만난 연인과도 같았다. 마치 서로를 소중한 듯 끌어안은 듯 보였지만, 한 사람의 등을 파고든 장도는 사랑보단 죽음에 가까웠다. 후쿠자와는 울컥거리며 피를 토해내는 모리를 꽉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장도를 관통한 그는 힘을 빼앗긴 듯 축 늘어졌고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벌릴 때마다 피를 토했다. 후쿠자와는 모리에게 제발 말하지 말아 달라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모리는 고집이라도 부리듯 입술을 달싹거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모리는 얼마 남지 않은 힘으로 손을 들어 피가 묻지 않게 후쿠자와의 뺨을 쓰다듬었다. 후쿠자와는 고인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설사 그의 눈물이 흘러내리더라도 그것은 피와 섞여 눈물로 보이지 않을 것이라. 후쿠자와는 그를 감히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쟁의 잔재가 날아다니며 타오를 듯이 붉었던 하늘은 점점 걷히는 듯 보였다. 때마침 모리의 손이 그대로 힘없이 떨어졌다. 후쿠자와는 마른 장미꽃잎이 떨어지는 감각이 이런 걸까, 라고 생각하며 그를 다시 바라보았다. 피에 물든 그는 장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고 칠흑 같은 흑발이 흐드러지게 그의 품에서 펼쳐졌다. 후쿠자와는 그런 그를 품에서 놓을 수 없어 한참 동안 그를 안고 있었다. 되찾은 푸른 하늘과 평화로운 도시는 그가 사랑하는 것이었다. 후쿠자와는 그것을 가만히 곱씹으며 그를 품에 안은 채, 도시의 온전히 자신들에게 돌아온 도시를 느끼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나왔다.
***
그 붉은 선혈은 쉽사리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후쿠자와는 그 이후로도 멍하니 밖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누군가 자신을 부르며 들어와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무뎌진 것이다. 대부분의 탐정사 사원들은 그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그저 큰일을 치르고 난 뒤의 여운이라고 여겼기에 그에게 별다른 말을 건네지 않았다. 후쿠자와는 사장실에서 나오는 일이 극히 적어졌다. 만약 일정이 없는 날에는 집에서 쉬는 일도 잦아졌다.
“쿠니키다 씨, 사장님은….”
“오늘도 댁에 계신다. 보고할 거라도 있다면 나에게 가져오도록 해.‘
나카지마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쿠니키다의 앞에 서류뭉치를 두고 갔다. 탐정사의 모두는 후쿠자와를 위해 무언가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고 염려했지만, 그들은 그에게 어떤 위로와 응원을 보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 시각, 후쿠자와는 아직도 잠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거실에 나와 있었다. 그는 멍하니 시선을 두고 있음에도 몸을 곧게 세운 채 바른 자세로 앉아있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후쿠자와 공?”
“별로….”
그의 무릎을 베고 누운 모리는 긴 흑발을 늘어트린 채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있지만,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는 모리를 쓰다듬으며 ’정말 없다. ‘라고 대답했다. 모리는 그의 쓰다듬을 받으며 배시시 웃어 보였다. 후쿠자와는 그의 미소에 미소로 답했다. 비록 그 미소가 힘이 하나도 없었지만, 모리는 그런 그가 아무래도 괜찮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후쿠자와가 이런 거짓과도 같은 환영에 휩싸인 지는, 그의 손으로 모리를 죽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뒤였다. 눈앞에 그의 붉은 색이 아른거리고, 매일 밤 그가 악몽의 주인공이 되어 찾아왔을 때. 후쿠자와는 힘없는 아침에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그 환영은 몇 번을 보아도 자신이 죽인 그였다. 배고프니 식사를 준비해달라는 뻔뻔스러운 모리의 부탁에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후쿠자와는 일어나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차렸다. 커피까지 마신 두 사람은 괘나 이상적인 아침을 보냈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탐정사까지 배웅해준다는 말에 사양하지 않고 그와 산책을 겸해 발걸음을 옮겼다. 답지 않게 들뜬 후쿠자와는 모리와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탐정사에 거의 다 왔을 무렵, 후쿠자와를 발견하고 ’누구와 그렇게 즐겁게 대화하세요, 사장님? ‘이라고 묻는 나카지마의 악의 없는 질문에 그는 멍하니 모리와 나카지마를 번갈아 보았다. 일행과 함께 나왔는데 보이지 않는 건가? 질문하려던 후쿠자와는 평소보다 밝은 표정으로 ‘무슨 일 있습니까? 표정이 좋지 않은 데요.’라고 물으며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후쿠자와는 그 둘 중 누구에게 대답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나카지마는 그의 대답에 ‘아…. 네 그럼 사무실에서 뵙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탐정사 쪽으로 뛰어갔다. 후쿠자와는 그런 나카지마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눈으로 좇았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후쿠자와가 그가 환영이라는 것을 온전히 깨달은 것은 그 뒤로 한참 뒤였다. 물론 그것을 알아챈 이후에도 그의 생활은 변함없었다. 오히려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으며, 그가 없는 현실을 계속해서 부정할 뿐이었다.
“후쿠자와 공, 오늘도 집에 계실 예정이신가요? 탐정사는 어쩌시고 말이죠.”
“내가 없다고 탐정사는 무너지지 않으니 상관없다. 나에게는 네가 더 중요해.”
똑바로 누워 후쿠자와의 뺨을 쓰다듬던 모리의 모습은 생전 모습 그대로였다. 후쿠자와의 애정 어린 말이 좋은지 푸스스 웃던 그는, 생기있게 얼굴을 붉혔다. 후쿠자와는 닿는 촉감이랄 것도 없는 그의 손을 겹쳐 잡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 얼마나 달콤한 벌인가. 후쿠자와는 자신의 손으로 죽여 땅에 묻은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것조차 행운이라 여겼다. 비록 자신의 머릿속에서 살고, 제대로 만질 수조차 없는 그였지만. 후쿠자와는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후쿠자와는 죽음을 바라면서도 열렬한 사랑을 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삶에 지쳐갔지만, 모리 만큼은 놓을 수 없었다. 모리가 후쿠자와의 앞에 존재하는 하루하루가, 그의 숨을 붙여놓고 있었다. 그는 이 지독히도 달콤한 악몽에서, 제발 그의 손에 죽기 전까지 깨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