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모리]알오버스 임신물.3
모리는 매일 자신이 퇴근할 때쯤 오는 전화가 기다려졌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이런 기분은 거의 느껴본 적이 없던 그는 이렇게 챙김을 받는 느낌도 나쁘지 않다고 여기며 병원 복도를 가로질러 휴게실로 향했다. 아이는 아직 있는지도 모를 만큼 작고,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다. 그나마 아이의 아버지가 조금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 다행인 걸까. 오늘은 뭘 먹으러 가자고 할까나. 예상이 가는 후쿠자와의 물음에 곰곰이 생각해보던 모리는, 휴게실 앞에 햇볕이 드는 창가 앞에서 잠시간 따뜻한 온기를 맞으며 서 있었다. 은은한 볕이 드는 나른한 오후 시간, 이제 올 때쯤이 되었는데 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릴 때면 여지없이 진동이 울린다. 모리는 애라도 태우는 듯 진동이 울리면 다섯 번쯤 울렸을 때 전화를 받는다. 전화 너머의 후쿠자와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던하고 곧은 목소리로 밥을 먹었는지 모리에게 묻는다.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딱히 입덧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만.“
모리의 말에도 전화 너머의 후쿠자와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싶었다. 조금은 제멋대로인 모리의 성격을 파악한 것인지 골고루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후쿠자와와 전혀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났다. 모리는 이 걱정이 온전히 자신을 위한 걱정이 아님에도 기분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햇볕을 맞아서인지 달아오른 뺨을 손등으로 식히던 모리는 역으로 그에게 안부를 물으며 오늘은 어땠는지 물었다. 후쿠자와도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고 말하자, 모리는 작게 웃으며 다행이라고 대답했다. 누가 본다면 연인과 다름이 없는 대화였지만, 두 사람은 자각이 없었다. 모리는 후쿠자와와 자신이 서로 책임질 부분이 있으니만큼, 그와의 감정까지 문제가 된다면 두 사람의 사이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심 같은 것은 섞지 말고 조심히 행동하자고 생각했지만, 생각만치 행동이 잘되지 않았다. 모리는 후쿠자와의 고집에 자신답지 않게 끌려다니는 일이나, 그도 자신의 고집은 어지간해서는 전부 들어주던 것을 생각하며 작게 웃었다. 물론 후쿠자와가 자신의 고집을 들어주는 것은 그편이 산모에게 좋다고 설득하여서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멀리하기에는 아까운 사람이라 그런가. 가만히 생각하던 모리는 휴게실로 하나둘씩 들어오는 동료 의사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오늘은 몇 시에 퇴근하는지 묻는 후쿠자와에게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한다는 언질 줬다.
”오늘도 기다리실 겁니까?“
[일과라고 생각하고 있다만.]
하여간 꽉 막힌 사람이라니까. 모리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전화를 먼저 끊지 않고 기다리는 전화 너머의 소리를 잠시 듣고 있다가 전화를 끊었다. 동료 의사들은 미소를 짓고 있는 모리의 표정을 보며 ‘연인인가 보네요, 모리 선생님?’이라고 물으며 짓궂게 그를 놀리기 시작했다. 모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굳이 설명할 이유도 없을뿐더러 아직 아무것도 확실히 하고 싶지 않았다. 모리는 ‘뭐…. 요새 그런 사람이 있긴 하죠.’라고 대꾸하고는 퇴근하면 뭘 먹을지 생각하며 행복한 발걸음으로 휴게실을 나섰다.
그 시각 후쿠자와는 드디어 대기 줄에서 벗어나 만쥬가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나왔다. 저번부터 모리가 생각난다면서 중얼거리던 만쥬 집을 찾는 시간만 이틀, 그리고 매번 품절로 인해 사지 못했던 하루를 끝으로 후쿠자와는 드디어 그 만쥬를 종류별로 살 수 있었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좋아할 생각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줄을 서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속으로 응원을 보냈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무언가 먹고 싶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 않아 고민스러운 나날을 보냈었다. 하지만 에도가와가 무언가 먹고 싶을 때마다 중얼거렸던 것과 같은 행동 양상을 보이는 모리의 모습에, 후쿠자와는 시험차 약 삼 일간 노래를 부르던 딸기 쇼트케이크를 가지고 방문했었다. 그때의 그의 표정이란.
”내가 케이크였다면 기뻤을 것 같군.“
가만히 중얼거리던 후쿠자와는 자기 자신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후쿠자와가 사 온 만쥬를 기웃거리던 에도가와는 그의 한마디에 ‘사장은 케이크가 되기에는 너무 딱딱해.’라고 말하며 모리에게 주려고 산 만쥬가 아닌 작은 봉투에 든 만쥬를 꺼내 먹었다. 후쿠자와는 에도가와가 꾸중하든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에도가와는 풀어진 후쿠자와의 표정을 보며 그를 떠보기라도 하듯 ‘그 남자, 좋아하나 봐?’라고 물었다.
”내가 말인가? 음… 잘 모르겠는데.“
거짓말. 에도가와는 만쥬로 가득 찬 입을 오물거리며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도로 삼켰다. 사장도 다 컸는데 내가 연애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붉어진 얼굴로 멍하니 한곳을 응시하는 후쿠자와는 에도가와의 질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양새였다. 에도가와가 만쥬를 세 개쯤 뜯었을 때, 보다 못한 그가 후쿠자와에게 일러주지 않았다면 후쿠자와는 약속 시각에 늦었을 것이 분명했다.
”사장! 만쥬 가져가야지!“
정신도 같이 차리라고 말해줄 걸 그랬나. 하나 남은 만쥬 포장지를 까던 에도가와는 걱정이 되는지 창문가에 앉아 후쿠자와가 가는 것을 눈으로 좇았다. 그것을 보던 쿠니키다는 사장님께 무슨 일이 있는지 물었지만, 에도가와는 그저 늦바람이 났다며 손을 내저으며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말했다.
”사장도 다 컸는데 뭘.“
그의 앞에 우유 컵을 내려두던 쿠니키다는 에도가와가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굳이 토 달지 않았다.
***
겨우겨우 모리의 퇴근 시각에 맞춰 병원에 도착한 후쿠자와는 병원 입구 곁에 놓여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제는 조금 후끈해진 봄기운이 해를 통해 느껴지는지, 하늘을 올려다보던 후쿠자와는 벤치 뒤에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꽃나무로 시선을 돌렸다. 꽃구경이라도 가지고 해볼까. 꽃구경 정도라면…. 데이트라고 부르지 않을 정도의 만남을 생각하던 후쿠자와는 홧홧해지는 뺨을 손으로 눌러가며 진정시켰다. 이제 여름옷을 좀 꺼내놓아야겠군. 자신의 뺨에 열이 오르는 것을 따뜻한 햇볕 탓으로 돌린 그는, 바람에 보기 좋게 흔들리는 꽃나무를 가만히 응시했다.
”후쿠자와 씨, 일찍 와계셨네요.“
모리는 꽃을 바라보는 그의 뒤에서 그를 부르며 나타났다. 치렁거리는 의사가운 대신 트렌치코트를 입고 나온 그의 옷차림은 완연한 봄이었다. 후쿠자와는 ‘시간을 맞추다 보니 조금 서두르게 되어서 말입니다. 모리 씨는 잘 마치고 오셨습니까?’라고 물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리는 아까 전화상의 후쿠자와와 같이 평소랑 똑같았다고 대답하고는 웃어버렸다. 모리는 후쿠자와에게 조금만 앉아있다 가자고 말하며, 그의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가 바라보던 쪽으로 시선을 돌려 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확인했다.
”아, 꽃이 정말 예쁘게 피웠네요.“
후쿠자와와 같은 시선의 끝에는 꽃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봉오리가 져 있는 꽃도, 이미 꽃잎이 활짝 열린 꽃도 아름답다 생각하던 모리는, 아까까지만 해도 꽃만을 바라보던 후쿠자와가 꽃나무 쪽이 아닌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후쿠자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모리는 꽃을 가리키며 ‘예쁘죠?’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후쿠자와는 꽃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 마냥 시선도 주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주말에는 꽃놀이를 가도 좋겠어요.“
모리는 넌지시 그에게 물으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분명 병원 사람들이 지나가다 보았다면 악마가 천사의 탈을 쓰고 있다며 뭐라 했겠지만, 뭐 어떤가. 후쿠자와의 눈에는 전혀 그렇게 보일 리 없었다. 후쿠자와는 예상치 못한 그의 제안에 눈만 껌뻑이며 아무런 대꾸를 하지 못했다. 후쿠자와는 스스로가 잘 못 들은 것은 아닐지 고민했다. 다시 그에게 ‘꽃놀이 말입니까?’라고 묻고 싶었지만 놀라서 떼어지지 않는 입술에 빠르게 되묻지 못했다. 모리는 뭔가 자신이 실수했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 없는 후쿠자와의 반응에 ‘싫다면 저는 괜찮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자존심 상하는 기분에 금세 미간을 좁힌 그는, 아니라며 일어나는 그를 따라 일어나 앞을 막아선 후쿠자와를 흘겨보았다. 새침데기라는 말이 이렇게 어울리는 사람도 드물 텐데. 후쿠자와는 모릭 화가 나 자칫 심각해질 수도 있는 지금 상황에서도 그가 귀엽게 보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면 분명 그가 더욱 화낼 것이 분명하기에, 말을 아끼며 그를 달랬다.
”예상치 못한 질문이어서 그랬습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꽃놀이. 같이 갑시다.“
횡설수설하며 변명하던 후쿠자와는, ‘그럼 갈 거예요?’라고 묻는 모리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모리는 제어가 되지 않는 감정을 최대한 가라앉히고는 그에게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생각해보라 말했다. 모리는 그 말을 끝으로 그를 지나쳐 걸어나갔다. 후쿠자와는 찡그려져 있던 그의 미간이 풀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열심히 찾아보겠다며 먼저 걸어나간 그의 보폭을 맞춰 따라 걸었다. 약 이 주 동안 함께했던 그의 퇴근길은 이제 익숙한 것을 넘어 마치 자신의 귀갓길과도 같이 느껴졌다. 후쿠자와는 익숙한 길을 걸으며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들을 조잘거리는 모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감정 표현이 풍부한 것도 임신 때문이려나. 지금과는 상반된 처음의 그를 생각해보던 후쿠자와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자신이 손에 든 봉투를 본 모리의 모습에 생각났다는 듯이 봉투를 그의 쪽으로 들어보였다.
”그나저나 그 봉투는 뭔가요? 아까부터 신경 쓰였는데.“
평소에는 빈손으로 오던 후쿠자와가, 생각보다 큰 봉투를 들고 온 것을 발견한 모리는 그에게 물었다. 후쿠자와는 그가 얼마나 좋아해 줄지 기대하며 봉투의 상표가 보이도록 모리에게 보여주었다. 모리는 그 봉투에 적힌 상표명을 보자마자 눈빛이 바뀌어 그와 봉투를 번갈아 가며 바라보았다.
”이거 진짜인가요?“
”저번부터 말씀하셔서 사 왔습니다. 모리 씨는 출근하시면 어디 멀리 가기 힘드시니까요.“
모리는 예상보다 더욱 감동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봉투를 받아든 그는, 묵직한 무게의 봉투를 열어보고 더욱 기분이 좋아진 표정이 되었다. 역시 사 오길 잘했군. 후쿠자와는 ‘좋아하시는 맛을 몰라 일단은 전부 사 왔습니다.’라고 말하며 좋아서 뛰기 직전인 듯이 보이는 모리의 대답을 기다렸다. 모리는 어린아이같이 기뻐하고 싶었으나,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 최대한 신나는 감정을 내리눌렀다.
”다 좋아하니 상관없습니다. 감사합니다, 후쿠자와 씨.“
후쿠자와는 그를 그렇게 오래 본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환히 웃는 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진심으로 사 오길 잘했다고 몇 번이나 생각하던 후쿠자와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와서 맛을 보고 가라고 신나는 목소리로 말하는 모리의 말에 손을 내저었지만, 모리는 완강했다.
”이거 정말 맛있습니다. 어서 들어오시기나 하세요.“
갑작스러운 초대에 고개를 연신 내젓던 후쿠자와는, 자신에게 손짓하며 그를 부르는 모리의 행동에 마지못해 그를 따라 들어갔다. 저런 표정으로 부르는데 어떻게 안 들어갈 수 있겠나. 작게 한숨을 내쉰 후쿠자와는 어서 차만 마시고 나와야겠다고 생각하며 후쿠자와가 문 안으로 들어오자 문을 닫고 샐쭉 웃는 모리의 모습에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