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츄]그대 손을 잡고라면 어디든지(서울편).1
이 글에는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이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 나오는 음식점들은 기존에 있던 곳과 상상을 섞어 적은 2차 연성입니다. 그저 다자츄가 사랑을 가득히 담고 서울을 여행하는 것을 마음 속으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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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야, 우리 얼마나 더 가야 한다고?”
“호텔을 말하는 거면 한 시간 정도는 더 가야 해.”
비행기를 타고 화창한 하늘을 가로질러 도착한 인천공항은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람 중, 유독 눈에 띄는 동양인 두 사람은 누가 보아도 휴가를 내어 온 것이 확실할 정도로 편안한 차림새로 공항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오래 머물다가 갈 계획인지 생각보다 큰 여행용 가방을 끌고 목에는 목베개를 걸고 있던 두 사람 중, 키 큰 남자는 비행기 안에서 힘들었다며 연신 투덜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죽는 줄 알았다니까? 요새 한국이 유명해져서인지 사람도 너무 많고…. 우리 시기를 잘못 선택한 거 아니야? 쫑알대는 남자의 앞에서 걸으며 길을 찾고 있던 작은 남자는 ‘다자이. 제발 입 좀 다물어.’라고 말하고는 찌푸린 표정으로 그에게 시선을 던졌다.
“투정은 호텔 가서 받아준다. 휴가 첫날인데 자꾸 이럴래? 그리고, 한국은 누가 오자고 했어.”
“접니다.”
츄야라고 불린 남자는 ‘그럼 잔말 말고 조용히 있어.’라고 쏘아붙이고는 다시 공항 지도를 보며 택시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을 찾기 시작했다. 어디 유튜브 동영상을 보다가 엄청 큰 게를 먹는 영상에 빠져 한국을 가자고 노래를 부르던 다자이의 고집으로 인해 두 사람의 첫 여행지는 한국으로 정해져 버렸다. 물론 다른 나라를 더 가고 싶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나카하라는 갈 거라면 가고 싶은 곳을 먼저 가는 게 낫다며 바로 한국행 항공권을 예매했었다. 결국, 이렇게 도착한 한국은 일본과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들이 속속히 보였다. 그 나라에는 나라만의 향기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무언가 깨끗하면서도 정겨운 공기를 들이마시던 나카하라는 결국 택시 정류장을 찾았다. 큰 짐을 두 개 다 싣고, 택시에 올라 미리 적어둔 호텔 주소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자 택시는 문제없이 공항을 벗어났다. 다자이는 택시를 타자마자 ‘츄야 덕분에 빨리 나왔다. 호텔 가면 밥 먹고 쉬자 츄야.’라며 오늘 하루 동안 호텔에서 나오지 않겠다는 계획을 나카하라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좀 쉬다가 앞에 큰 공원이랑 식물원 있다니까 산책 정도는 하자.”
“음…. 일단 얼마나 피곤한지 가서 누워보고.”
다자이의 모호한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나카하라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국 여행책을 뒤적거렸다. 이른 아침에 출발했으니까 아직 시간도 많고 조금 쉬다가 시내 둘러보면 되려나. 한국은 땅이 작아서 금방 둘러 볼 수 있다고 설명되어있는 책을 천천히 읽어내린 나카하라는 창문에 기대어 잠이 든 다자이를 당겨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형제끼리 여행 왔나 보구만. 동생이 형을 잘 챙기는 게 보기 좋아.”
“아…. 죄송…합니다? 한국어 모릅니다.”
택시 기사가 잠시 신호가 걸렸을 때 나카하라 쪽을 돌아보며 무어라 하자, 나카하라는 한국을 오기 전부터 연습했던 한국어를 천천히 말했다. 역시 어느 나라든 말을 잘못하면 고생이라니까. 한국은 영어가 낫다던데 영어를 써야 하나…. 그렇게 택시 기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궁금해하지 않고 언어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차는 고속도로를 지나 금세 시내로 접어들었다. 요코하마에서 보던 높은 건물들이 줄줄이 이어진 동네를 지나, 전광판이 많이 걸려있는 번화가를 가로질러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느낀다는 한강까지 건너고 나서야, 한적해 보이는 동네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까지는 회사가 많은 지역이라고 한다면 여기는 주택 지역인가. 다리와 이어진 고가도로를 타고 길고 긴 터널을 지난 택시는 주택이 들어서기에는 조금 높이가 있는 고지로 향하고 있었다. 줄줄이 이어져 있던 주택들이 점점 사라지고 나무가 우거진 숲이 나타나자, 나카하라는 나무가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보기 위해 창문에 얼굴을 붙이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몇 분 지나지 않아 택시는 오르막길의 끝에 위치한 호텔로 들어가 두 사람을 내려주었다. 어느 대도시에나 있는 큰 호텔이었지만, 역시 일본에서 느꼈던 호텔의 느낌과는 사뭇달랐다. 나카하라는 아직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다자이를 겨우 깨워 호텔 안으로 들어가서는, 체크인부터 했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호텔의 직원 두 명과 지배인이 두 사람의 짐을 맡아 끌고 호텔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츄야 한국은 이런 것도 다 해주네.’라고 중얼거리며 졸린 눈을 비벼 잠에서 깨어나려 애썼다. 나카하라가 예약한 스위트 룸은 호텔 최상층에 위치해 있었다. 능숙한 일본어로 호텔에 대해 설명하던 지배인은 지치지도 않는지 두 사람이 묵을 방에 있는 시설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서울의 전경이 보이는 전망, 킹사이즈 침대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욕조, 개인 서재, 개인 트레이닝 룸까지 완비된 최고급형 스위트룸이라고 설명하던 지배인은 각 나라에 귀빈들이 오시면 꼭 이방에서 묵는다며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한국에는 무슨 볼일이 있으셔서 오셨는지 물으며 자주 오셨다면 한번쯤 어디서 뵈었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은 처음입니다. 일이 바빠서 어디를 갈 수가 없어서요. 이번에는 관광 왔습니다.”
다자이가 특유의 사무적인 톤으로 대답하며 지배인을 바라보자, 지배인은 ‘부디 이번 여행에서 한국을 제대로 즐기시다가 가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한 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두 사람을 방으로 안내했다. 나카하라는 급속도로 밀려오는 피곤함에 더 설명할게 남았는지, 짐을 두고 말을 시작하려는 지배인에게 ‘나중에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지금은 저희가 지쳐서요.’라고 말하고는 직원과 지배인을 나가게 만들었다. 다자이는 세 사람이 나가자마자 침대에 드러눕는 나카하라를 보며 작게 웃었다. 그는 거의 녹아버릴 듯이 퍼져버린 나카하라의 옆에 앉아서는 훤히 보이는 서울의 풍경을 바라보다 나카하라에게 물었다.
“츄야 아까까지는 어디 나가고 싶다고 했잖아.”
“시끄럽다. 택시 안에서 퍼질러 잔 사람은 말을 하지 말아.”
눈을 감고 대답한 그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다자이의 시선에 천천히 눈을 떴다. 나카하라는 싱글벙글한 다자이의 표정에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렇게 좋냐?’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이며 아직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나가봐야 알 것같은데… 그전에 같이 목욕이라도 할까 츄야?”
“됐다. 너랑 같이 목욕을 하느니 그냥 누워만 있지. 어차피 같이 목욕해도 누워만 있게 될텐데.”
칫. 가볍게 혀를 찬 다자이는, 그러면 뭐라도 먹자며 룸서비스 메뉴판을 들고 왔다. 레스토랑이 함께있는 호텔이어서인지 여러가지 음식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던 다자이는 ‘츄야는 뭐 먹을 거야?’라고 물으며 그에게 메뉴판을 보여주었다. 나카하라는 메뉴판을 넘겨보며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메뉴들을 왜 여기까지 와서 먹느냐며 다자이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알아둔 곳이 있으니 거기 가서 먹어보자고 말하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응? 더 쉬어야 하는거 아니고?”
“저녁 떄 푹 쉬면 되잖냐. 첫끼는 맛있는거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옷매무새를 정돈하던 나카하라는 힘이 없다면서 침대에 누워있다시피 앉아있는 다자이를 일으켜 세워 그를 꽉 끌어안았다. 다자이는 영문을 모른체 자신을 안아주는 그를 마주 안아주고는 ‘뭐하는 거야 츄야… 나 숨막혀.’라고 말했다.
“힘 준거니까 그걸로 버텨. 가자.”
나카하라는 호쾌하게 웃으며 다자이의 손을 잡고 호텔을 나섰다. 나카하라가 그를 이끌고 간 곳은 바로 앞 남산 공원을 지나 수풀 사이로 들어가야 나오는 이탈리안 음식점이었다. 다자이는 ‘파스타라면 아까 룸 서비스로 먹어도 됐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며 음식점 입구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표지판에 고풍스럽게 적혀있는 음식점 이름을 읽어보던 그는, 안까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 나카하라와 발을 맞춰 걸었다. 그러자 우거진 나무 사이에서 흰색의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이 나왔다. 이런 레스토랑이 왜 이런데 있지. 가만히 건물을 바라보던 다자이는 웨이터에게 두 사람분의 자리를 부탁한다고 말하는 나카하라를 따라 테라스 자리에 앉았다.
“여기가 맛있데?”
“응, 괜찮데. 원래 여기까지 와서 이런 레스토랑은 안 오려고 했는데 위치적으로 가까운게 제일이니까.”
괜찮은 정도로 그냥 왔다고? 다자이는 평소 나카하라라면 하지 않을 만한 행동에 뺨을 긁적거렸다. 일본에서와 같은 파스타를 먹을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 없이 메뉴를 열어본 다자이는 생각보다 독특한 메뉴들을 확인하며 나카하라에게 무엇을 먹을지 물었다. 나카하라는 버섯이 들어간 채식 리조또에, 된장 소스로 드레싱을 만든 루꼴라 샐러드를 고르고는 다자이에게 정했는지 물었다. 다자이는 고추그림이 세개가 그려져있는 매콤한 게살 파스타와 김치 피자 중 어떤 것을 골라야 츄야를 조금이라도 난감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결국은 파스타를 골랐다.
“야, 이거 많이 맵데 괜찮아?”
“난 괜찮다네. 뭐 매워 봤자 시치미 잔뜩뿌린 탄탄면보다 더 맵겠어.”
손을 내저어보이던 다자이는 그 뒤로 파스타를 한 입 먹을 떄마다 물을 세컵씩 비웠고, 결국은 츄야의 샐러드와 리조또를 나누어 먹었다. 나카하라는 그럴 줄 알았다고 중얼거리며 게살 크림 리조또를 새로 시키고는 ‘츄야가 분명 같이 먹어줄줄 알았는데… 그러면 츄야도 막 맵다고 울었을 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매운내로 인해 눈물이 고인 눈가를 닦아내었다.
“자업자득이다 이자식아. 어서 밥이나 먹어.”
혀를 차며 그를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눈물을 뚝뚝흘리며 물수건으로 입술을 누르는 다자이가 귀엽다고 생각하며 마저 식사를 했고, 다자이는 결국 새로 나온 게살 리조또를 먹었다.
***
식사를 마친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막 오후 시간이 된 터라 호텔 안은 체크인을 한 관광객들이 관광을 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도 많이 보였다. 방에 들어온 다자이는 곧바로 침대에 대자로 뻗어 눕고는 짐을 푸는 나카하라 쪽으로 몸을 굴려 누웠다.
“리조또 맛있었어. 한국은 이탈리아 음식도 잘하네.”
“아서라, 이탈리아 음식 먹자고 여기 온거 아니니까. 그리고 너도 어서 짐 풀어. 오늘은 근처 식물원갔다가 요 아래 시내 구경 갈거니까.”
“너무 빡빡하게 굴지마 츄야, 이번 여행은 여유롭잖아.”
기지개를 켜며 대답한 다자이는 옷을 전부 옷장에 걸어두고는 씻고 오겠다고 말하는 나카하라에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그가 씻으러 들어가고, 천천히 몸을 일으킨 다자이는 여행가방에 잘 개어져 있는 옷을 통째로 들어 옷장에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분명 나카하라가 나오면 잔소리를 할만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그가 정리하는 것은 아니니 상관 없다고 합리화하며 옷을 전부 쌓아두었다. 정리가 아닌 정리를 끝내고 여행가방을 닫고 나카하라가 세워둔 곳에 가지런히 세워둔 다자이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형형 색색의 건물들이 이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우거진 수풀을 따라 시선을 두면 작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시내에 도달하면 큰 건물들이 줄줄이 줄을 서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멋있네. 가만히 밖을 둘러보던 다자이는 창문이 없었다면 아슬아슬 했을 만큼의 간격만을 냅둔 채 창문에 붙어 섰다. 그리고는 정말 자신이 공중에 떠 있다고 생각하듯이 밖을 내다보았다.
“그 정도로 좋냐.”
“츄야, 만약 창문 없었으면 나 분명 떨어졌을 거야.”
“어쩌냐… 나는 구하지도 못하는데.”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하는 나카하라에게 너무하다고 말한 다자이는, 샤워가운을 입고 나온 그의 손을 잡아서는 당겨 안았다. 나카하라는 대낮부터 왜이러냐고 물었지만, 막상 싫지는 않은지 그의 품에 가만히 안겨있었다. 다자이는 작게 웃으며 그냥이라고 대답했다. 다자이는 막상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는 이렇게 애정표현을 할 일이 없었어서인지 그가 부족해진 참이었다. 그래서 그를 품에 안고 살살 쓰다듬으며 조금만 더 이렇게 있자고 말한 그는, 품 안에 안겨있는 그의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귀엽다고 중얼거렸다.
“그렇게 좋냐?”
“제일 좋지. 여기도 츄야가 없었으면 못왔을 텐데.”
아니지 안 왔으려나. 곰곰히 생각하는 다자이에게 ‘네가 못 오는 건 비행기표도 안 사고 숙소도 안고르니까 못온거고 이 자식아.’라고 말하고는 그에게 아프지 않게 딱밤을 놓았다. 그리고 그에게 어서 씻고오라고 잔소리한 나카하라는 그를 욕실 쪽으로 밀어넣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받은 긴 휴가에 그에게 여행을 오자고 한 것은 나카하라 치고 과감한 선택이었다. 일본 땅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을 나카하라가 이렇게 선뜻 해외로 여행을 나오게 된 것도 다자이의 공이 컸다. 나카하라는 ‘항상 집에만 있던 애가 무슨 일로 이번에는 해외로 나가니?’라고 묻는 오자키에게도 다자이가 한국에서 게가 먹고 싶다고 해서 같이 간다고 설명하며 그의 핑계를 대었다. 하지만 나카하라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이 여행을 들떠한 사람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말이다. 나카하라는 방금 전까지 다자이가 바라보던 전망을 내다보며 살풋이 미소를 지었다. 이 여행은 요코하마에서 일어난 큰 일을 끝내고 온 여행이기도 했지만, 다자이와 연인이 되고 처음 온 여행이기도 했다. 조금은 연인들이 하는 것도 해보고 그럴까. 누가 들으면 중력으로 눌러버렸을 거라고 생각할만큼 낯간지러운 생각을 하던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나오기 전에 옷을 전부 갈아 입고는 머리를 말렸다.
“츄야, 벌써 다 했네? 조금만 기다려.”
“평생 걸릴까봐 내가 다 준비 해놨다. 그런데… 누가 옷을 이렇게 꺼내놓기만 했냐?”
“나중에 할께. 나중에.”
다자이는 손사래를 치며 그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받아쳤다. 그리고는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다자이는 식물원이 닫겠다며 어서 가자고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나카하라는 호들갑을 떠는 다자이의 모습이 퍽 우스운지 작게 키득거리며 그가 이끄는 대로 호텔을 나섰다. 식물원은 이제 봄이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꽃과 녹음이 절정에 이르고 있었다. 꽃밭은 늦봄의 햇볕을 받아 연신 반짝거림을 유지하고 있었고, 나뭇잎은 빛을 사이사이로 받아내며 점점 푸르러지고 있었다. 야외 식물원 길을 천천히 걷던 두 사람은 간간히 멋있는 풍경이 나올 때마다 멈춰서 그 모습을 눈에 담아내었다. 나카하라는 ‘나무 하나인데도 예쁘다.’라고 중얼거리고는 자신이 한국을 찾아볼 때 같이 알게 되었던 토막 상식들을 하나하나 말하기 시작했다.
“제주도에는 피톤치드가 나오는 나무들이 모여있는 숲이 있데. 그리고 돼지고기가 엄청 맛있다더라.”
“나중에는 거기로 가보자. 제주도도 금방이라고 하니까.”
두 사람은 손을 마주잡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평소라면 누가 죽어가고 있고, 어디에서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나 올릴 시간이었지만, 두 사람은 그런 세계와는 완전히 멀어진 사람과도 같이 느껴졌다. 나카하라는 이능력도, 어디 소속도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다자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만약 이능력이 없는 세상에 우리가 있었다면 이런 기분일까. 잠시 꿈과 같이 느껴지는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낀 건지 웃은 나카하라는 끝을 보이는 식물원 길에 아쉽다는 듯이 뒤를 바라보았다.
“나중에 다시 오자. 어차피 호텔 앞이니까 자주 올 수 있을 거야.”
“그래. 하나도 안 아쉬워. 다시 오면 되지.”
다자이는 한없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 나카하라가 한 없이 귀엽게 느껴졌다. 웃음을 참으며 ‘그래. 나중에 오자.’라고 말한 다자이는 피곤한지 눈을 길게 깜빡이는 나카하라에게 오늘은 쉬는 게 어떤지 물었다. 날이 따뜻해서인지 길어진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지만, 다자이는 오늘 많은 일이 있었기에 빨리 휴식을 취하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리단 길이라는 데도 가봐야하는데….”
이거야말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였다. 다자이는 잠시 고민하다 그가 가려고 했던 경리단 길을 찾아보았다. 아까 츄야가 보던 지도를 찍어두길 잘했네. 잠시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는, 내려가야하는 거리를 확인하고는 오늘은 안된다며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분명 지금 걸어내려가면 츄야는 물론이고 나도 방전이야. 난리도 아닐거라고.
“츄야, 우리 거의 이주하고도 삼일 정도를 머무는데 아직 여유로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아이를 달래듯 머리를 쓰다듬던 다자이는 그를 어르며 천천히 호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 따뜻한 물로 씻어서 더 피곤함이 느껴지는 걸테지. 눈을 비비며 다자이와 호텔 안으로 들어서던 나카하라는 ‘그럼 내일은 꼭 가는거다. 다자이. 거기에 먹을 게 많데.’라고 설명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올라가서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어버릴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다자이는 알겠다고 대답하고는 그의 반응이 한없이 귀여운지 웃음을 참으며 그와 방으로 돌아왔다. 다자이의 예상대로 나카하라는 침대에 눕자마자 눈을 감았다. 잠에 반쯤 빠져있었던 것과 같은 모습이었기에, 다자이도 딱히 나카하라를 깨우지 않았다.
“야, 다자이.”
“응, 츄야.”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잠결에 부른 건지 가늠이 되지 않는 목소리에 대답했다. 나카하라는 잠시 생각 중인 것인지 말을 멈추었다가, 그에게 어눌한 발음으로 ‘나랑 여행 와줘서 고맙다. 사랑해.’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사랑스러운 자신의 연인의 머리칼을 쓸어넘겨주며 ‘나야말로 고마워, 츄야.’라고 대답하고는 그의 이마에 입 맞췄다.
“나도 사랑해. 우리 여기서 좋은 시간 보내자.”
그 뒤로 나카하라는 잠에 빠져든 것인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노을은 천천히 서울 하늘을 덮어가고 있었고, 다자이는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그저 가만히 품에 안긴 자신의 연인을 바라만 보아도 충분히 이 여행은 행복한 여행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