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다자츄

[다자츄]그대 손을 잡고라면 어디든지(서울편).2

송화우연 2019. 5. 12. 14:53

 

 

오랜만에 하는 여행의 피로 때문인지 일찍 잠에든 나카하라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나른하게 잠에 취한 상태의 그는, 따뜻하게 맞닿는 온기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부스스 눈을 떠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살폈다. 아직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해 초점이 없는 눈을 연신 깜빡이던 나카하라는 잘 잤나, 츄야?’라고 묻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푹 자는 츄야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네.”

너는이 새벽에 왜 깨어있는 거야.”

해가 길어진 계절이 되어가는 중에도 어둑한 창밖은 아직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보였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물음에 대답대신 작게 웃어보였다. ‘그래도 평소보단 잘 잤어.’다자이는 속삭이듯 말하고는 나카하라의 부스스한 머리칼을 쓸어 넘겨 이마에 입 맞췄다. 나카하라는 평소에도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그가 조금 걱정 되는지 더듬더듬 손을 뻗어 뺨을 매만져 주었다.

못 자겠으면 깨우지.”

잘 잤다니까 그러네.”

다자이는 자신을 쓰다듬는 나카하라의 손을 겹쳐 잡은 채 눈을 감았다. 아직 아침은 오지 않았고, 두 사람은 시간이 많았다. 그렇게 타지에서의 첫 새벽을 보낸 두 사람은, 다시 그대로 잠이 들어 느지막한 아침에 눈을 떴다.

이번에 먼저 눈을 뜬 사람은 나카하라였다.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벽면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에 얼굴을 찌푸린 그는, 다시금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다자이는 정말로 새벽 내내 잠을 들지 못했던 것인지 이제야 이불을 몸에 두른 채 잠에 빠져있었다. 나카하라는 오래 잠이 들어서인지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돌리고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곧바로 스트레칭을 하며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 시내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역시 닮은 듯 하면서 뭔가 다르단 말이야. 크게 펼쳐진 전광판이라던가, 높고 낮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도심이라던가. 정감 가는 풍경을 바라보다가 곧바로 주방으로 향했다. 사다둔 음식이 전혀 없어 아침부터 나가 사 먹어야하는 것이 확정이었다. 하지만 커피는 포기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비치된 캡슐 커피를 한 잔씩 내린 그는, 아직 잠들어 있는 다자이의 옆에 커피가 담긴 머그컵을 두고는 자신은 테라스로 나가 더욱 가까이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미세먼지 때문에 고생한다는 다른 후기에 비해 오늘 한국 하늘은 깨끗하기만 했다. 나카하라는 가만히 숲에 둘러 쌓여있는 호텔 주변을 둘러보다, 며칠 있다가는 호텔에서 시간을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하며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 다자이. 이제 일어나. 해가 중천이다.”

나카하라의 거친 모닝콜에 몸을 뒤척이던 그는, 조금만 더 자고 싶다 웅얼거리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나카하라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씻고 나올 때까지 정신 차리라고 말한 뒤, 옷가지를 하나씩 벗으며 욕실로 향했다. 나카하라는 지금이 두 번째 하는 샤워인데도 불구하고 점점 익숙해지는 호텔 구조에 작게 피식 웃었다. 이러다가 집같이 느껴지면 어쩌지. 시답지 않은 걱정을 하며 머리를 감던 그는, 평소보다 오래 걸린 샤워를 마치고 샤워 가운만을 입은 채 욕실을 나왔다. 다자이는 정신을 차리는 중인 것 같았다. 이리저리 굴러 시트에 얼굴을 박고 엎드려 있던 그는 나카하라의 인기척이 느껴지자마자 나 안자고 있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카하라는 어서 몸뚱이부터 일으키라고 잔소리를 해대며 얼굴에 기초 제품을 발랐다.

오늘은 뭐 할 거야 츄야?”

글쎄……. 너는 뭐하고 싶은데?”

자유 여행인 만큼 최소한의 계획을 가지고 온 두 사람은 잠시간 고민에 빠졌다. 분명 하고 싶은 것들을 목록으로 적어왔었지만, 막상 무엇부터 해야 할지는 고민이 되기 십상이었다. 나카하라는 가만히 자신의 수첩을 펴서 적어 놓았던 목록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일단 아침을 먹어야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아침은 호텔에서 먹고 가자. 막상 이 근처 나가면 한국에서만 파는 음식 먹어야 하잖아.”

그래, 그럼 아침은 여기서 먹고 이참에 쇼핑부터 싹하고 다시 호텔 와서 쉬다가 나갈까? 여기 동네는 밤에 더 멋지다는데.”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계획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딱히 쇼핑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나카하라의 최대 즐거움 중 하나를 뺏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나카하라는 사야할 목록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는 조금 들뜬 목소리로 한국은 마사지 기계가 많다네. 그것도 한 번 보자.’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마사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저 어서 호텔에서 된장국과 쌀밥을 먹고 조금 포만감을 가진 상태가 되었으면 싶은 마음뿐이었다. 여행지에서 배를 곯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었으니까.

일단 아침밥부터 먹고 츄야 가고 싶은 데는 다 들려보자.”

다자이는 약 3시간 뒤에 자신이 뱉은 말에 후회했지만,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었다.

 

***

 

다자이! 여기!”

어디 백화점이라도 가서 명품 쇼핑이라도 할 줄 알았던 다자이는, 명동 번화가 중심에서 가게를 이리저리 찾아다니는 나카하라를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카하라는 가게마다 들어가 마스크 팩을 종류별로 사고 있었다. 이건 누님 드릴 거, 이건 보스, 이건 누구, 이건 누구라고 연신 중얼거리며 물건을 사는 그에게 너무 똑같은 것만 사는 거 아니야?’라고 묻던 다자이는 다 다른 거라고 설명하는 그에게 그저 고개를 끄덕여 보일 수밖에 없었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은 곳인데 오늘은 평일 낮이라 비교적 사람이 적다고 설명하던 나카하라는 이정도면 되었다며 두둑하게 들린 쇼핑백을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시원한 거 먹으면서 다른데 가자.”

또 뭐 살게 있어?”

, 아직 남대문 시장은 안 가봤잖아.”

다자이는 그에게 지금 산거 그 시장에 팔러 가는 건 아니지?’라고 물어보려 했지만, 분명 한 대 맞은 것이 분명했기에 말을 아꼈다. 나카하라는 천천히 명동 번화가를 나와 큰 도로를 따라 걸어 나갔다. 그리고 중간에 보이는 프랜차이즈 밀크티 전문점에서 음료를 하나씩 물고 나온 두 사람은, 더운 기운이 조금 가셨는지 기분 좋은 미소를 띤 채 걸어 나갔다. 건널목을 건너고, 큰 백화점을 지나(이때 다자이는 여기는 가지 않는지 물었지만, 나카하라는 나중에 라고 말 할 뿐이었다.) 골목 안으로 들어선 두 사람은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모르는 사람마냥 두리번거렸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만큼 길게 이어진 상점들, 길 한복판에 큰 가판대를 두고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일본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나카하라는 잠시간 둘러보다가 양말이 종류별로 있는 상점 앞에서 가판대에 걸린 양말들을 바라보았다.

츄야, 나 양말을 이렇게 많이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그러게. 요새 많이들 사간다는데 너도 애들 줄 거 몇 개 골라가.”

벌써 캐릭터 양말을 몇 가지 고른 나카하라가 다자이에게 말하자, 다자이도 나름 귀여워 보이는 양말을 한 켤레씩 고르기 시작했다. 호랑이는 아츠시 군에게, 이 귀여운 토끼는 쿄카 쨩. 그리고 나비는 요사노 씨, 타니자키 남매는 똑같은 양말로 사다줘야겠군. 그렇게 하나씩 고르던 두 사람은 금세 쌓인 양말 더미를 보며 웃었다. 여행지에 와서 양말을 사가는 사람이 우리라니. 다자이는 속으로 우습다고 생각하며 계산을 마쳤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양말을 들고 나와 나카하라에게 뭘 샀는지 물었다.

그냥 내 거랑 부하들 거. 보스 거랑 누님 거 몇 개.”

다자이는 꽃무늬가 화려한 버선을 여러 개 산 나카하라에게 그거 설마 츄야가 신으려고?’라고 되물었다. 아무리 츄야의 패션센스가 꽝이라지만 어떻게 이럴 수가. 나카하라는 자신을 놀리듯이 말하는 다자이에게 아니라고 소리치며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자신의 것이 아니라 변명하기 시작했다.

내건 아니고 누님이랑 보스 드리게. 되게 따뜻하데.”

모리 씨가 그거 신고 있는 거 사진으로 찍어 보내줘.”

싫거든. 내가 왜.’ 나카하라는 다자이에게 혀를 내밀어 보이며 놀리듯 대답하고는 점점 시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점점 안으로 걸어 들어갈수록, 맛있는 냄새와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종 거리 음식들, 그리고 식당. 게다가 건어물을 펼쳐놓고 파는 모습에 시선을 빼앗긴 다자이는, 멸치가 가득한 상점을 가리키며 나 이거 사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멸치는 왜?”

사장님이 좋아하셔.”

사장님은 멸치가 아니라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거지만……. 항상 멸치로 고양이를 유혹하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후쿠자와를 생각하던 다자이는, 제일 작은 상자의 멸치를 샀다. 한국 멸치는 뭔가 다를 수도 있으니까. 분명 받고 고양이에게 줘볼 생각에 신나할 후쿠자와의 얼굴을 생각하던 다자이는 그거 염분 있어서 고양이 주려면 삶았다가 줘야하는데.’라고 말하는 나카하라에게 손을 내저어보였다.

그러면 다시마 국물 내실 때 넣어 끓이시라하지 뭐.”

다자이의 시큰둥한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보인 나카하라는 건어물 상점들 사이사이에 위치한 관광객용 먹거리를 파는 가게를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자며 그를 끌고 들어갔다. 아까 가게에서 보았던 한국 김이 먹기 좋게 묶음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상상도 해보지 못한 허니 버터 아몬드와 같은 과자도 많이 팔고 있었다.

츄야, 이거 김 과자래. 근데 우리나라 김 과자랑 좀 다르게 생겼다.”

먹고 싶으면 사봐.”

쿨하게 말한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들고 있던 김과자를 바구니에 담았다. 선물용, 먹어 보고 싶었던 과자를 두 바구니 가득 담은 두 사람은 이능력을 최대한 쓰지 않고 어떻게 들고 갈지 걱정하며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나카하라와 다자이의 손에는 이제 그 무엇도 들 수 없을 만큼 짐이 가득했다.

우리가기 전에 여기도 한 번 더 오자. 다음에는 백화점도 들리고.”

진심이야?”

다자이는 자기는 두고 가라고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혼자 호텔에 남는 것은 싫었다. 그가 없는 호텔이라니 여행을 온 의미가 없잖아. 투덜거리면서도 알겠다고 대답한 다자이는, 택시 정류장에 길게 늘어져 있는 택시 중 하나를 잡아타고 짐을 두고 나오기 위해 호텔로 돌아갔다.

 

***

 

나카하라는 낮 동안의 쇼핑이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한층 더 신나보였다. 다자이는 이제 살 것이 거의 없어졌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렇게 많이 사놓고 더 살게 있어?’라고 되물었다.

당연하지, 여행을 왜 왔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츄야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맛있는 것도 먹으려고 왔지.”

그래서 맛있는데 데려가려 하잖아.”

나카하라는 연신 투덜거리는 다자이를 끌고 시청 공원을 가로질렀다. 초여름의 햇볕을 받아 푸릇하게 빛나는 잔디를 지나간 두 사람은, 양쪽으로 크게 자리 잡은 호텔 건물 사이로 길을 찾아 가며 큰 길과 이어져있는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카하라는 많은 한식집 가운데에서도 정갈하게 보이는 가게를 보고는 찾았다고 중얼거리며 그를 데리고 들어갔다. 다자이는 이제 한국 음식 먹는 거야?’라고 물으며 직원이 안내해준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가이세키 요리점과 같이 되어있는 좌식은, 안이 뚫려 있어 편안히 앉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완벽한 좌식이었다. 푹신한 방석을 깔고 조금 어색하게 양반다리를 한 나카하라는 정 자세로 밥 먹어야 할 것 같은 곳이네.’라고 말하며 웃어보였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곧바로 상이 차려졌다. 천천히 하나씩 나오는 일본 요리와는 다르게 상에 가득 차려진 기본 반찬들을 보며 이걸 어떻게 다 먹으려는 건지 묻던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건넨 전을 하나 받아먹어 보고는 식사를 시작했다. 배고프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막상 먹으니 허기짐이 느껴졌다. 고기 완자와 각종 전들이 처음에 나오고, 불고기 양념을 재워둔 소고기와 함께 나온 씻은 배추김치로 말은 주먹밥. 그리고 맑은 고깃국과 식사용 밥. 그리고 맑고 시원한 동치미까지. 이곳에 와서 먹었던 식사 중 가장 배불리 먹은 두 사람은 한국 사람은 정말 하루 종일 먹는 다는 데 사실 인가봐.’라고 중얼거리며 후식으로 나온 식혜를 홀짝거렸다.

그러게... 많다고는 들었는데 이렇게 푸짐할 줄은 몰랐다.”

근데 다 맛있었단 말이지.”

가만히 벽에 기대앉은 그는, 말랑거리는 떡을 디저트용 포크로 살살 눌러보다가 입에 넣었다. 보들하고 쫄깃한 떡 안에는 달콤한 팥소가 들어있었다. 나카하라는 식혜 안에 밥알을 휘젓는 다자이에게 앞에 유명한 길이 있다는 데 좀 걸을까?’라고 물었다. 다자이는 소화도 시킬 겸 괜찮다고 말하고는 아직 배부름에 몸을 가누지 못하니 조금만 있다가 가자고 그를 설득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도 한동안 일어나지 못하던 두 사람은 겨우 자리를 옮겨 덕수궁 돌담길을 걷기 시작했다. 천천히, 은빛 벽돌들이 반짝이는 길에, 푸른빛이 도는 기와가 얹어진 길은, 그 어디에도 없을 산책로였다. 중간 중간 보이는 소나무가 어우러지며 사진으로 남긴다면 손색없는 작품이 될만한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안 와봤으면 진짜 아쉬울 뻔 했네. 배부르게 먹기를 잘했다.”

그러게, 정말 예쁘다.”

나카하라는 벽을 중간 중간 만져보며 말하고는 뒤 따라오는 다자이를 돌아보았다.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그가 신나 보이는 미소를 짓자 마주 웃어보였다. 이런 여행을 하기위해 츄야랑 왔지. 조금 속도를 내 나카하라를 따라잡은 다자이는 그가 도망가기라도 할까 걱정되는 사람마냥 손에 깍지를 껴잡았다. 나카하라는 가만히 손을 잡고 같이 가.’라고 말하는 다자이에게 바람이 새는 소리를 내며 웃어보이고는 그의 손을 잡아당겨 고개를 숙이게 해 뺨에 입 맞췄다. 고등학생이라도 된 듯 풋풋한 스킨십에 웃어버린 다자이는 얼굴을 붉히며 사람이 없으니까 해 준거야!’ 라고 소리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도상으로는 길게 보였던 길도, 뭔가 함께 걸으니 짧다고 느껴지는 듯 했다. 나카하라는 택시대신 버스를 타보자고 말하며 버스 노선표가 주르르 늘어져있는 곳에 서서 이리저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디 가게 츄야?”

우리 호텔 언덕 아래에 경리단 길 있잖아. 거기 가보고 싶어서. ... 이태원 가는 버스가 있는데 이걸 타고 이태원부터 가볼까.”

다자이는 서울 투어 버스를 알아보며 들어보았던 거리 이름에 흥미를 가지며 그와 함께 버스 노선표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알아볼 수 없는 단어였지만 뭔가 정감 가는 느낌에 영어라도 어눌하게 발음해보던 다자이는, 검색 끝에 이태원으로 가는 버스를 찾아내었다. 게다가 남산 길을 지나간다니 그보다 더 좋은 코스는 없을 거라 말하던 나카하라는 바로 온 버스를 가리키며 그에게 어서 타자며 그를 이끌었다.

 

***

 

우리 고궁 투어 가기로 한 날은 언제지?”

그거 날짜 정하기만 하면 돼. 언제가 좋아?”

다음 일정을 체크하며 길을 걷던 두 사람은 한강진역이라고 쓰여 있는 지하철 입구를 지나 조금씩 세련된 건물들이 들어서는 거리로 점차 발걸음을 옮겼다. 건물 하나하나가 특색 있게 느껴지는 거리는 건물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나카하라는 요새 입소문으로 유명하다는 커피 전문점을 찾아 골목길로 들어갔다.

츄야, 그런데 여기가 이태원이야?”

이태원 끝이래. 이리로 쭉 가면 중심가라는데?”

골목길 바로 앞에서 찾은 카페로 들어선 두 사람은, 특이한 인테리어로 이루어진 카페 안을 두리번거리며 커피와 초코 밀크를 한잔씩 사서 나왔다. 한 번 쯤 죽치고 앉아있고 싶을 만한 카페인 것 같다고 말한 나카하라는 달콤하다 못해 진하게 입에 붙는 초콜릿에 놀란 눈을 하고 빨대에서 입을 떼지 않았다.

평소에 단건 입에 잘 안대면서 잘 마시네.”

응 완전 맛있어.”

고개를 끄덕거리며 빨대를 젓던 나카하라는 천천히 이태원 중심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태원은 어떻게 생각하면 이상한 동네와 같이 보였다. 일본 라멘, 프랑스 빵 집. 볼링장, 화덕 피자 전문점과 나가사키 카스텔라 전문점, 터키 과자점이 쭉 늘어선 거리는 여기가 이태원...?’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천천히 거리를 걷던 두 사람은 별의 별 나라가 전부 섞여있는 거리를 둘러보며 신기함에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다른 나라이기에 더욱 특별해 보이는 걸까. 나카하라는 결국 다 마신 음료 컵을 버리고 터키 아이스크림을 손에 쥔 채 다자이와 함께 걸었다. 해가 길어져서인지 저녁 시간대임에도 하늘은 아직 파란 빛을 머금고 있었다. 이태원 거리를 지나며 본 케밥을 하나씩 손에 들고 걷던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거리 한복판에서 보이는 성인용품점에 호기심을 가지며 구경을 하기도 하고, 유럽에서 파는 유리 공예 물품을 파는 전문점을 구경하기도 했다. 그렇게 여러 군데를 오가며 구경하다가 이태원 거리의 끝이 거의 다가올 때쯤에서야 핑크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을 보며 예쁘다고 중얼거렸다.

츄야, 여기 카페 예쁘다.”

다자이가 가리킨 곳은 반짝거리는 귀걸이와 목걸이 팔찌를 파는 가게를 옆에 둔 카페였다. 아담했지만 온 창이 유리로 되어있었고 중간 중간 보이는 식물들이 카페를 더욱 아늑하고 푸근하게 보이게 만들었다.

다리 아픈데 잠깐 앉아 있다가 갈까?”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즉흥적인 판단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얼마 없는 자리를 잡아 음료를 시켰다. 다자이는 걷는 도중 흘린 땀을 식히는 나카하라에게 즐거운지 물었다. 나카하라는 당연한 소리를 왜 묻는 거냐며 그를 타박했지만, 표정은 어린 아이와 같이 기쁜 모습이었다.

츄야랑 여행 오니까 즐겁네. 이제 어디를 가도 츄야가 없으면 허전할 것 같아.”

오냐 평생 같이 있어줄 거니까 걱정마라.”

그거 프러포즈야?”

착즙해서 나온 오렌지 주스를 마시던 나카하라가 다자이의 물음에 사례가 들렸다.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공격에 당황한 모양새였다. 다자이는 아무렇지 않게 나카하라에게 휴지를 건네고는 난 무조건 좋아.’라고 냉큼 대답했다. 겨우 기침을 멈춘 나카하라는 그런 건 좀 무드 있게 하게 해줘라.’라고 말하며 입가를 닦아내었다. 다자이는 아무도 모르는 외국에서 이렇게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도시 사이에 일몰을 보고 있는 것도 나름 무드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지 뭐 어때?’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맞잡아 오고는 손등을 살살 쓸어보았다.

사람 많은데서 풍기문란 저지르지 마라...”

아까 먼저 뽀뽀한 사람은 누구더라?”

다자이는 붉어진 나카하라의 뺨을 보며 소리 내 웃었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 둘만 서로를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다자이는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을 가슴 속에서 중얼거리며 그의 손을 깍지 껴잡았다. 분홍빛을 흩뿌리던 하늘은 점차 암청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두 색이 오묘하게 섞여 더욱 예쁘다고 생각하던 두 사람은 사람이 많아진 이태원 입구 거리를 걸어 나가 경리단 길로 향했다. 경리단은 또 다른 느낌의 거리였다. 조금 더 아기자기한 거리의 느낌이랄까.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꽃집이나, 큰 솜사탕을 파는 것을 구경하던 나카하라는, 줄이 늘어선 츄러스 가게를 지나 많은 사람이 가는 골목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골목 안은 다시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리저리 반짝이는 수공예품을 파는 가게나, 작은 개인 카페, 그리고 향수 공방 등 아기자기한 상점들이 늘어져 있었다. 게다가 일본에서 많이 보던 우유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는 모습에 일부러 저거 우리나라에도 많이 팔던데.’라고 하며 아는 척을 했다.

골목길을 지나 경리단 큰길로 나오자, 답지 않게 큰 교회가 하나 있었다. 주택가와 맞물려 있어서인지, 저녁 예배를 드리러 교회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간혹 보였다. 두 사람은 교회를 건너 천천히 호텔이 있는 언덕이 어느 쪽으로 가야 있는지 지도를 살폈다. 그 순간, 옆에서 맡아지는 고기 냄새에 고개를 돌린 두 사람은 맥주 컵 위에 감자튀김과 고기가 같이 나오는 컵에 담긴 음식을 발견하고는 곧바로 그 쪽으로 향했다.

한국 사람들은... 먹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 같아.”

그러니까. 어떻게 들고 다니면서 이런 걸 먹을 생각을 하지.”

시원한 맥주를 빨대로 빨아 마시고 곧바로 고기를 먹은 나카하라는 한국에서 파는 기상천외한 음식을 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먹고도 이렇게 들어간다니 믿기지가 않네. 다자이는 천천히 언덕길을 오르며 우리 여기는 가까우니까 또 오자.’라고 말하며 더위를 잊게 해주는 맥주를 마셨다. 마냥 신나기만 한 한국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자튀김을 입에 물고 한국은 배달 음식도 다 맛있데.’라고 말하며 내일은 꼭 호텔에서 뭔가를 시켜 먹어보자고 말했다. 다자이는 먹으면서 먹는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결국 웃음을 터트렸고, 나카하라는 살짝 오른 술기운에 얼굴이 벌개져서는 왜 웃어!’라고 소리쳤다.

지금 츄야 얼굴만 보면한동안 울 일은 없을 것 같아. 상상만 해도 너무 재미있어서.”

그렇게 장난스럽게 대답한 다자이는 그의 주먹을 피하기 위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고, 왁왁 거리며 쫒아오던 나카하라는 결국 다자이를 잡아오며 기분 좋게 웃어버렸다. 아쉽지 않은 날이 없었지만, 서로가 있었기에 한없이 즐거운 두 번째 날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