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츄]우당탕탕 회장님!!.6
나카하라는 그 뒤로 삼 일간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오죽했으면 집에서 일을 하는 (물론 자신만의 주장이지만.) 다자이가 나가고 싶어 하는 눈치를 보였다. 휴가가 시작된 후로 삼 일 동안, 나카하라의 주된 일정은 먹는 것, 자는 것뿐이었다.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를 꼬드겨 어딘가로 나가고 싶다는 의견을 펼쳤지만, 다 수포로 돌아갈 뿐이었다.
“츄야, 그렇게 누워만 있다가 침대에 곰팡이가 생겨도 모르네.”
“그런 말을 네가 할 줄은 몰랐다.”
침대에 누워 키득거리던 나카하라는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다자이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다자이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지 오래였지만, 혼자 나갈 생각은 없어보였다. 나카하라는 ‘어디 볼일이라도 있냐? 장보러 가게?’라고 물으며 감자칩을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데이트라도 갈 생각이었는데... 츄야가 다 망쳤다네.”
나카하라는 투덜거리는 모습이 꽤나 귀엽게 느껴졌는지 아무런 대답 없이 그를 응시했다. 마치 연애를 하던 때가 떠오르는지 가만히 다자이를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핸드폰을 들어 뭔가를 검색해보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자신의 투덜거림에 반응하지 않는 나카하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뚱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아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야, 다자이,”
“츄야랑은 말 안 할 건데.”
“여행 갈래?”
“응?‘
흐름이 전혀 이어지지 않는 대화에 다시 나카하라 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자이는 무슨 말인지 그에게 물었다, 나카하라는 반쯤 누워있던 상체를 세워 앉아 기지개를 켜고는 조금 뜸을 들이며 말했다. ‘뭐 여행 자주 가지도 않고, 오붓하게 시간도 보내면 좋으니까.’라는 말로 포장을 하던 나카하라는 그래서 어떤지 물었다. 물론 다자이의 표정은 이미 긍정적인 답변을 주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나카하라는 다시 한 번 그에게 물었다.
“난 좋아. 그래서 어디가 좋은데? 휴양지로 가자.”
다자이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의 다자이였다면 시큰둥한 목소리로 두 번째 허니문이라도 되느냐는 둥 반응했을 것이 분명했지만, 삼 일간 나카하라와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낸 터라 어디로라도 탈출하고 싶을 뿐이었다. 가서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마사지도 받아야지. 한껏 들뜬 듯이 나카하라에게 어디로 갈 것인지 묻던 다자이는 뭔가 찾아보는 나카하라에게 문뜩 떠오른 행선지를 말했다.
“우리 괌으로 가자. 괌 어때?”
“아, 그럴까? 확실히 지금이면 사람도 없고 좋겠네.”
일본 사람들이 사랑하는 휴양지.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곧바로 괌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쉬러가는 여행은 그 조차도 들뜨게 만들었다. 신나게 자리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꺼낸 다자이는 나카하라에게 옷은 뭘 챙길 건지 물었다. 나카하라는 일단 대충 짐을 챙기고 못 가져온 건 사자고 말하며 겨우겨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앞으로 휴가 받을 거면 꼭 이렇게 받아야해 츄야?”
“세 시간 전이랑 너무 취급이 다른 거 아니냐?”
아까까지는 휴가를 받아서 자기만 한다고 면박을 주던 다자이가 신나하자 피식 웃은 나카하라는 강아지 같이 옷을 꺼내 캐리어에 던져 담는 다자이를 불렀다. 기분이 좋은 다자이는 평소의 다자이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곧바로 나카하라의 앞에서 ‘왜 츄야?’라고 물은 다자이는 품에 안겨오는 나카하라의 행동에 그를 안아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말을 잘 들어봐라.”
“츄야가 평소에도 이렇게 귀여우면 생각해볼게.”
다자이는 부드러운 미소를 띤 얼굴로 나카하라를 내려다보다, 뻗힌 머리 사이로 드러난 이마에 입 맞췄다. 나카하라는 역시 연애 초창기의 분위기와 비슷한 느낌의 다자이를 보며, 자신만 늙어가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다. 역시 그 안티 에이징 크림, 샀어야 했나. 가만히 생각해보던 나카하라는 자신의 뺨이나 이마에 연신 입 맞춰오며 ‘츄야, 오늘 따라 귀엽네?’라고 수작을 거는 다자이의 말에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가 안 귀여워 보일 때도 있었냐?”
“응, 저번에 같이 놀자고 해놓고 자버렸을 때? 좀 안 귀여웠지.”
“뒤 끝 쩌네. 그 다음에 엄청 놀아줬으니까 됐잖아. 그것 때문에 허리 아파 죽겠다고.”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말을 맞받아치며 말했다.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 빼고는 전부 귀엽다고 중얼거리며 옷을 하나하나 캐리어 쪽으로 던져 넣었다. 나카하라는 그런 다자이에게 ‘많이 귀여워해라. 아니면 국물도 없어.’라고 말하고는 자신도 짐을 하나하나 넣기 시작했다.
***
“덥고 습하네.”
“이정도면 덜한 편인데. 진짜 더울 때는 나다니면 죽는다.”
현란한 하와이안 셔츠를 빼입고 나타난 두 사람은 공항을 나와 자신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는 리무진에 오르며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카하라의 요구에 입은 하와이안 셔츠를 펄럭이던 다자이는 ‘어서 숙소 가서 쉬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고는 차 창문에 머리를 기댔다. 늘어진 야자수들과 무성한 수풀들은 이국적인 모양새를 내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창문에 기대있는 다자이에게 일단 짐부터 풀고 가고 싶은 곳이 있는지 물었다. 다자이는 잠시 생각이라도 하듯 대답이 없다가, ‘그냥 침대에서 에어컨 바람 쐬면서 누워있고 싶은데.’라고 대답했다.
“야, 그건 집에서 하는 거랑 똑같잖아.”
“하지만 여기는 해외잖아. 이국적인 정취는 창문너머로도 잘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츄야랑 침대에서 노는 것도 좋은데.”
나카하라는 뻔뻔스럽게 말하는 다자이의 말에 고개를 저으며 조금만 쉬고 나갈 거리고 말한 나카하라는 파란 하늘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을 바라보았다. 백화점이라도 갈까. 하지만 저렇게 투덜거리는 다자이를 데리고 나갔다가는 별로 좋은 결과는 얻지 못할 것이 분명했기에 고민하던 나카하라는 다자이에게 밥부터 먹자고 제안했다.
“게 먹자. 너 게 좋아하잖아. 코코넛 크랩 어때.”
“에, 코코넛 크랩? 그거 맛있데?”
다자이의 시선을 돌리는 데 성공한 나카하라는 쾌재를 부르며 코코넛 크랩을 먹은 사람들이 올린 블로그를 그에게 찾아 보여주었다. 다자이는 커다란 게다리를 가진 코코넛 크랩에 사로잡혀 어서 이것을 먹기위해 나가야한다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카하라는 도착과 동시에 짐을 가지고 호텔로 들어가는 그를 따라가며 작게 웃었다.
코코넛 크랩은 성공적이었다. 껍질을 가르자 나오는 부드러운 속살은 정말 어디에서도 먹기 힘든 맛이었다. 입이 짧은 다자이조차도 접시가 깨끗이 접시를 비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카하라는 그렇게 맛있었냐고 물으며 배불러서 움직이지도 못하겠다고 말하는 다자이에게 조금 걷자고 말했다. 다자이는 배불러서인지 아까보단 이타적인 모습으로 ‘그래 뭐, 배부르니까 좀 걷자.’라고 나카하라의 제안을 수긍했다. 다자이는 은근슬쩍 나카하라의 손을 잡고 괌의 시내를 걸었다. 낮 시간대여서인지 날씨는 꽤 더웠지만 두 사람은 손을 놓지 않고 시내에서 눈에 띄는 것을 같이 구경하며 천천히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하지만 햇볕의 열기는 무시할 것이 못 되었는지 곧바로 백화점에 들어온 두 사람은 에어컨으로 완벽하게 시원한 안을 돌아다녔다.
“이건 어떠냐? 너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츄야 취향... 엄청 별로야.”
‘사준다고 해도 뭐라 하네.“
나카하라는 자신이 가리켰던 정장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자이를 응시했다. 분명 잘 어울릴 것 같은 데를 연발하던 나카하라는 아무런 말없이 다른 매장 쪽으로 걸어가는 다자이를 따라 걸었다. 다자이는 이 매장 저 매장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입힐 옷들을 보는 나카하라에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그에 굴하지 않았다. 뭐라도 건져야겠다는 할인 판매전에 참전한 사람과 같이 백화점을 돌아다니던 그는 결국 딱 좋은 시계를 발견하고 그건 어떤지 다자이에게 물었다.
“옷이 싫으면 이건 어때?”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에는 들지만, 나카하라를 어떻게 놀릴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나카하라는 아무런 대답이 없는 다자이의 모습에 ‘그냥 갈까?’라고 물으며 다시 다른 매장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냐. 나 이거 좋아 츄야.”
돌아서는 나카하라의 손을 끌어당기며 말한 다자이는 어서 보러 들어가자며 그를 매장 안으로 이끌었다. ‘커플 시게로 맞출 거지?’ 다자이의 물음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거린 나카하라는 매장 직원에게 다자이와 본 시계를 부탁했다. 가격이 많이 나가는 시계는 아니지만 이렇게 같이 나와서 고른다는 게 더 의미 있는 거니까. 기분 좋게 시계를 보며 매장을 나선 나카하라와 다자이는 반쯤 꺼진 배와 아픈 발로 인해 백화점 광장에 있는 카페에 음료를 사 앉았다. 장소가 장소이니 만큼 아이들과 함께 있는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많이 보였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나카하라는 ‘직원들한테 괌으로 여행 갔다고 하면 놀랄 수도 있겠다.’라고 중얼거렸다.
“왜?”
“거의 가족 단위로 오는 곳이기도 하고... 사실 우리 주변에 재수 없는 인간들은 괌에 잘 안 오잖냐. 일반 사람들이랑 부대낀다고.”
“우린 그러려고 온 거잖아. 그리고 우리도 가족인데, 츄야.”
나카하라는 연유가 잔뜩 들어간 커피를 휘젓는 다자이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뭐... 그렇지.’라는 말로 시큰둥하게 넘겼다. 결혼은 한 사이이지만 아이도 없고 딱히 연애할 때와 변함이 없기에 연인 이상, 부부 미만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던 나카하라는 당연히 가족이라는 듯이 말하는 다자이의 한마디에 상기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다자이는 일부러 모른 척을 하며 분수대에 손을 뻗고 있는 아이를 구경했다.
“난 아이는 별로인데, 츄야 닮은 애는 좀 보고 싶긴 해.”
“난 너 하나 간수하기 바쁘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네.”
다자이가 바라보는 쪽을 같이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너 하나만 있어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는 말이야.’라고 덧붙이고는 그의 손을 잡았다.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사고를 많이 쳐서 힘들다는 말인 줄 알았다고 장난을 치려했지만 굳이 이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은 연인을 넘어서 부부로 가는 과정을 온전히 받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이국적인 땅에서 서로를 더욱 알아가던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웃어버렸다.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한참을 그 광장 안 커피숍에 앉아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도 구경하고, 백화점에서 준비한 공연도 보며 가만히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은 이제 일어날 준비를 하며 다음 행선지를 정하려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안고, 하루에 너무 많이 돌아다니면 좋지 않다. 짐도 많으니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건 어떤가.”
“하지만... 아직 사쿠노스케 씨 바지를 덜 봤는걸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시간 내서 나오겠어요. 이렇게 해외 나왔을 때 쇼핑도 하고 그래야죠.”
“그럼 잠깐 앉기라도 해라.”
다자이와 나카하라는 익숙한 목소리에 서로 눈을 마주보며 잠시간 고민했다. 물론 다자이의 생각과 나카하라의 생각의 전혀 달랐지만,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생각하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나카하라가 다자이를 말리려는 손이 더 빨리 나갔지만, 그 다자이가 누구던가. 입이라면 그 누구보다 빠르게 놀릴 수 있는 남자가 아니던가.
“안고! 읍.”
곧바로 입이 막혔지만 두 세 자리 뒤에 있던 두 사람에게는 충분히 들릴 만한 외침이었다. 나카하라는 한숨을 내쉬며 삐뚤어진 밀짚모자를 푹 눌러쓰고 고개를 들었다. 분명 죽일 듯한 눈빛이겠지. 한숨을 내쉬며 사카구치와 오다를 보며 손을 흔들던 나카하라는 차마 사카구치와 눈을 마주 할 수 없었다. 그의 옆에 있던 다자이만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자네들도 여행 온 건가? 이게 무슨 인연인가!’라고 말하며 천연덕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네 사람은 휴가 차 나온 여행이 이렇게 파란만장 해 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눈빛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인 오다와 신나는 표정인 다자이의 사이에 선 사카구치와 나카하라는 불안한 눈빛을 나누며 남은 이번 여행의 일정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