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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츄]나와 너의 사계.2

송화우연 2020. 1. 10. 00:18

나카하라는 다자이를 마주한 지 며칠 뒤, 그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더 알게 되었다. 이름은 오사무. 앞에 허브농원을 지인들과 함께 동업하고 있었고 농사보단 회계와 판매 담당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음식은 게. 일 이야기는 대강 얼버무리는 것을 보니 그다지 성실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 다른 정보들을 전부 제쳐두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카하라 자신보다 5살은 어렸다는 것이다. 나카하라는 어린 게 잘도 반말을 쓰며 츄야라고 불렀다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다자이는 그런 잔소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닭꼬치와 함께한 밤에서 며칠 뒤, 나카하라는 하루에 두 대밖에 다니지 않는 시내버스를 잡는 것을 포기한 채 다자이에게 읍내까지 나갈 수 있는 자가용이 있는지 물었다. 다자이는 이제 정말 쌀 한 톨도 없다고 말하는 나카하라의 부탁에 같이 농원을 운영하는 친구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하루 휴가를 내어 그와 함께 읍내로 나왔다. 물론 양해를 구했다는 건 온전히 다자이의 생각이었고, 허브농원에서 들리는 돌아오라는 외침은 마당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카하라에게까지 들려왔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자이의 동업자에게 마음으로 사과를 건넸다.

쌀이랑 간장, 설탕, 소금, 먹을 만한 채소들, 그리고 물...은 네가 준다고 했고, 이제 뭐가 필요하지?”

오늘 저녁밥은 뭔데, 츄야?”

대낮부터 저녁 타령을 하는 다자이의 말을 무시한 나카하라는 겨울 쌈 배추가 나온 것을 보며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를 샀다. 다자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눈에 띄는 판매대가 있으면 나카하라를 끌고 판매대 앞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며 그에게 어서 사라고 말했다. 누가 보면 자기가 이사 온 줄 알겠네. 나카하라는 적당히 다자이의 추천을 걸러 들으며 필요한 식료품과 생필품들을 바구니에 담았다. 꽤 묵직해진 바구니는 점점 혼자 들기 버거워질 정도로 물건이 담겼다. 나카하라는 마지막으로 고기만 사고 어서 돌아가자고 말하며 정육점 앞에서 잠시간 고민한 뒤, 두 명이 먹기에는 조금 많은 양의 고기를 샀다. 다자이는 굳이 그가 왜 고기를 많이 사는지 묻지 않았다. 그저 고기를 먹는다는 생각에 신난 것인지 그가 산 고기가 든 비닐봉지를 자신이 받아 들고 아까 나카하라가 들고 있으라고 했던 연근을 한 손에 든 채 따라갈 뿐이었다.

그래서 무슨 맛있는 음식을 하려고?”

네가 알 거 없는데. 그리고 언제까지 반말 쓸 거냐?”

츄야 은근 쩨쩨하네.”

나카하라는 쩨쩨하다는 다자이의 말에 입이 나와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되새기던 그는 그런데,’라고 운을 떼는 다자이의 물음에 창밖을 보던 시선을 살짝 돌렸다. 다자이는 자신을 돌아보는 나카하라에게 츄야는 나카하라 아주머니께 요리를 배운 거야?’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질문에 잠시간 말이 없이 차가 나아가는 길을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이 입술을 달싹거리던 나카하라는 딱히 그런 건 아니라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냥 먹다가 묻기도 하고, 단순한 것만 그냥 따라만 해본 거야. 엄마 맛은 나도 흉내를 내기도 벅차니까.”

하긴, 그 닭꼬치도 좀 맛이 다르긴 했어.”

나카하라는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말에 수긍하는 다자이가 야속하게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저번에 그렇게 많이 처먹은 놈이 말은 잘한다.’라고 쏘아 붙여주고 싶었지만, 나카하라는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고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그래, 내가 말해서 뭐하냐. 나카하라는 다자이에게 공격적인 말을 내뱉는 대신에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길의 풍경을 눈에 담았다. 도시로 나아갈 때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들과 그 사이로 드문드문 보이는 야생동물이 정말로 자신이 시골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나카하라는 차의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밖을 내다보았다. 차갑네. 머리에 닿는 겨울의 추위가 아까 밖에서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도시에서는 어땠더라. 나카하라는 한없이 온기를 내뿜던 도시의 난방기를 떠올리다가 그다지 즐거운 기억은 아니었는지 한숨을 내쉬고 다시 감각을 머리 쪽으로 집중시켰다. 창문에서 느껴지는 한기는 머리 한쪽 부분의 감각을 앗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느낀 것은 아직 풀리지 않은 피곤 때문인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뭐가 좋더라. 피곤한 몸을 기운 나게 하는 것. 나카하라는 생각날 듯 말 듯이 가물가물한 표정을 한 채 잠시간 눈을 감았다.

.”

간장 고기 조림을 해야겠다. 나카하라의 탄성에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채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감자와 당근 그리고 양파와 파를 넣어 조린 고기를 따끈한 흰쌀밥과 함께 먹고, 입이 너무 달다고 느껴질 때는 다시마 육수로 만든 된장국을 마신다. 나카하라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아까보다는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있어서인지 다자이는 나카하라에게 기분이 왜 갑자기 좋아졌는지 물었고, 나카하라는 그냥, ‘겨울이 추워서 좋네.’라고 대답했다.

 

***

 

고급스러운 맛의 소고기도 좋고 부드럽고 쫄깃한 닭고기도 좋지만 이런 겨울에는 비계가 적당히 붙은 돼지고기가 좋다. 적당한 크기의 고깃덩이를 청주에 절여두고 나카하라는 시내에 나가서 사 온 감자, 당근, 그리고 양파와 대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항상 기본은 감자와 양파였지만, 나카하라는 당근도 나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당근과 감자는 고기와 크기가 비슷하게 썰어내고 대파는 길이감이 있게 썰어낸다. 조금 투박해 보이는 채소들이 간장에 스며들어 뭉글거려질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기대되는지 나카하라는 미소를 지었다. 요리할 동안 방해하지 않겠다던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보이는 자리에서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왜 쳐다보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면서도 생강을 다지는 칼을 멈추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고기를 간장 소스에 재우고, 조림이 들어갈 냄비를 준비했다. 나카하라는 약한 불로 아주 천천히 익히는 거라고 말하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음을 따뜻하게 할 때처럼 화상을 입지 않도록 천천히. 습관처럼 마음으로 중얼거리며 아주 약한 불까지 내린 나카하라는 채소를 먼저 넣고 간장 소스를 한 번 더 그 위로 부어주었다. 열기가 올라올 때쯤에는 엄청나게 맛있는 냄새가 날 것이 분명했다. 당근이 절반가량 익었을 때쯤, 고기를 넣고 약한 불은 그대로 유지한다. 고기가 익으려면 시간이 남았다. 여기서 엄마는 어떻게 했더라. 잠시간 생각을 정리하고 여유롭게 자리를 치운 뒤, 밥을 안친 나카하라는 고기 조림의 냄비 옆에 물이 담긴 작은 냄비를 하나 더 올렸다. 불을 켜자 금세 냄비는 열이 올랐다. 나카하라는 반가운 사람을 보는 듯이 다가오는 열기에 양 뺨이 붉게 물들었다. 그는 이 열기로 더워진 것인지 주방의 작은 창문을 열어두고 겨울의 한기로 몸을 식히며 냄비에 끓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리던 나카하라는 냄비 안에서 기포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하자 불을 줄이고 다시마를 한 장 넣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다시마 물이 우려졌을 때쯤, 된장을 풀고 미리 불려놓았던 미역을 조금 넣어 다시금 냄비에 열이 오르도록 불을 살짝 높였다. 그리고 아까와 마찬가지로 끓기 직전에 불을 꺼버리고 김이 오르는 조림을 확인하였다.

좋은 냄새가 나는데.”

, 안 그래도 엄청나게 잘 됐다.”

다자이의 말에 피식 웃으며 고기를 한 번 찔러본 나카하라는 불을 끄고 뚜껑을 닫았다. 피어오르는 김이 냄비 뚜껑 위로 보였지만, 나카하라는 뜸을 들이기 위해 고기 조림 쪽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된장국까지 전부 준비가 되었을 때, 나카하라는 아까 시장에서 사 온 쌈배추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아삭거리는 채소가 없는 식탁은 조금 심심할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간단한 샐러드를 하기 위해 쌈배추를 잘랐다. 배추를 씻고, 집어 먹기 좋을 만큼 썰어낸다. 그리고 간장과 고춧가루 조금, 식초와 설탕을 섞어 조물조물 무쳐내고는 한 조각을 자신의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급하게 만든 것 치고는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다자이, 밥 퍼라.”

나카하라는 김이 올라오는 밥솥을 턱으로 가리키며 다자이에게 주걱과 밥그릇을 주었다. 다자이는 자신도 손님인데 너무한 거 아니냐며 투덜거렸지만, 나카하라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따뜻한 김이 오르는 고기와 녹진해진 감자와 당근, 양파. 그리고 아작거리며 단맛을 낼 대파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며칠 양이 될법한 고기 조림을 한번 섞어주고는, 큰 대접에 천천히 고기부터 한 덩이씩 담기 시작했다. 밥을 적당히 퍼 식탁에 올린 다자이는, 그렇게 많이 먹을 건지 물으며 자리를 잡고 앉아 젓가락을 놓았다.

이거, 식기 전에 너희 농원에 가져다드려. 원래 인사를 하러 가야 하는데 그건 내가 나중에 뭐라도 준비해서 갈 테니까. 이건 오늘 너 빌려준 거에 대한 감사한 보답이라고 말해라.”

내가 무슨 물건도 아니고. 그런데 츄야, 우리 먹을 건 남아있는 거지?”

나카하라는 가기 싫다는 듯이 미적거리며 뻔한 질문을 해대는 다자이에게 어서 다녀오라고 소리치고는 접시에 음식을 담아 식탁을 차렸다. 아직 열려있는 주방 창문 때문인지 음식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나카하라는 정갈하게 차려진 2인 상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습관처럼 1인분밖에 하지 못해 더 많은 양을 하려니 넘쳐버렸다. 나카하라는 그래도 나눠 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쌀밥을 젓가락으로 살짝 건드려보았다. 이번 해에 도정한 쌀이라 맛있을 거라고 했던 가게 주인의 말대로 밥은 정말 윤기가 흘렀다. 나카하라는 나름의 뿌듯함이 스며들어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다고 여기며 어둑해져 가는 밖을 내다보았다. 해가 짧은 겨울의 낮이 지나간다. 나카하라는 술이라도 꺼내고 싶어 지는 기분이었지만 오늘은 겨울을 잘 나기 위한 만찬으로만 배를 채우고 싶었다. 멀리서 다자이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자 나카하라는 멍하니 하던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춥다고 중얼거리며 들어오는 다자이에게 왜 이리 늦었는지 물었다. 다자이는 계속 일을 떠넘기려고 해서 도망 왔다고 대답하고는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카하라의 앞에 건넸다.

이거,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츄야한테 주래. 고맙다고.”

병 안에 가득 담긴 것은 황금빛을 낸 유자청이었다. 나카하라는 병 너머로까지 보이는 빛깔 좋은 유자의 광택과 그 향긋함에 기대가 된 듯이 미소를 지었다. 공산품이나 다름없는 청과는 때깔조차 달라 감히 비교해 말할 수 없었다. 나카하라는 아까보다 더욱 기분 좋은 표정이 되었다. 그는 다자이에게 조금 들뜬 목소리로 이따가 돌아가면 꼭 고맙다고 전해드려라.’라고 말한 뒤, 꿀단지를 숨기는 곰처럼 주방 안쪽에 유자청 병을 넣어두고는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본격적으로 식사를 할 준비를 하였다.

잘 먹을게 츄야.”

오냐.”

두 사람은 그 한마디로 젓가락을 들고 각자 제일 먼저 먹고 싶었던 음식으로 손을 뻗었다. 나카하라는 고기 조림이었고, 다자이는 쌈배추 샐러드였다. 나카하라는 흰 쌀밥 위로 고기를 올려 간장 소스를 밥에 적시고는 젓가락으로 고기와 쌀밥을 한입에 넣었다. 부드럽게 흩어지며 단내를 풍기는 쌀밥과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돼지고기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포근하게 익혀진 감자를 젓가락으로 잘랐다. 정말 부드러운 맛이었다. 모난 곳 하나 없이 포근한 맛. 나카하라는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고기를 젓가락으로 잘랐다. 다자이는 첫입으로 먹은 샐러드를 삼키고 나서, 바로 다시 아삭거리는 소리가 나는 샐러드를 고기와 함께 먹고 쌀밥을 한입 넣었다. 배추의 단맛과 드레싱의 새콤함이 음식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인지 다자이는 먹던 음식을 다 씹기도 전에 다른 음식을 넣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닭꼬치를 먹을 때보다 정신없이 먹는 다자이를 바라보며 마치 경기에서 승리라도 한 듯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나카하라는 자신이 모친의 요리 솜씨를 비등하게 따라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다자이가 말하는 아주머니랑은 맛이 좀 다르던데.’라는 말이 그의 마음속에 조금 걸려있었기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집의 모든 부분에 모친의 손길이 닿아 추억이 흘러 넘치는 것처럼, 자신 또한 모친의 음식만을 먹고 자랐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모친의 요리를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부심이 생각 속에 잠재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 나카하라는 이정도 자만은 귀엽지 않나 생각하며 된장국을 홀짝거렸다. 두 사람은 밥을 절반 정도 먹었을 때야 서로 대화를 나눌 만큼의 여유를 되찾았다. 어느 정도 배는 찼지만, 충분히 더 먹을 수 있는 단계. 나카하라는 된장국을 섞어 마시고는 조림에 있던 대파와 밥을 먹는 다자이에게 맛있냐?’라고 물었다.

, 맛있어.”

좀 성의 있게 대답해라. 그래서 엄마가 한 것보다 맛있어?”

츄야는 그 말을 신경 썼던 건가? 의외네 신경 안 쓸 줄 알았는데.”

천연덕스럽게 말한 다자이는 음식을 씹으며 조금 당황한듯한 나카하라를 바라보았다. 나카하라는 속내를 들킨 아이처럼 눈을 피하며 맛있으면 좋지 않겠냐고 중얼거리고는 입에 커다란 고기 조각을 담았다. 다자이는 그의 행동에 피식 소리를 내며 웃고는 얼마 남지 않은 밥을 먹기 좋게 젓가락으로 나눠 놓았다. 나카하라는 별다른 말 없이 다자이의 행동을 바라보며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할 뿐이었다.

츄야는 아주머니랑 다르니까 음식에서도 다른 맛이 나는 거야. 지금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딱히 걱정할 필요 없잖아?”

다자이는 나름 간단명료한 대답을 내주었다. 그저 다른 사람. 나카하라는 조금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포슬포슬한 감자가 입에서 녹아내린 맛처럼 조금 아쉬운 맛이었다. 무언가를 놓친 듯이 부족한 기분. 다자이의 충분히 맛있다는 말은 전혀 칭찬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엄마는 뭘 넣었더라. 나카하라는 고민하듯이 젓가락 이로 물었다. 나카하라는 얼마 남지 않은 식사에 집중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를 신경 쓰지 않다가 마지막 쌀 한 톨을 입에 넣고, 멍하니 생각에 잠긴 그를 불렀다.

츄야, 모든 것을 기준에 맞출 필요 없다네. 결국, 츄야가 생각한 모든 것이 츄야의 것이니까.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고 먹어봐.”

무엇이든지.’ 다자이는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난 뒤, 남은 국을 전부 마시고 개수대에 그릇을 올려두었다. 무엇이든지에는 무엇이 들어갈 수 있는 거지? 나카하라는 문득 드는 질문이 입 밖으로 튀어 나가는 것을 막았다. 긴가민가한 그의 말을 해석이라도 하듯이 생각해보던 나카하라는 자신의 바로 앞에 자리를 잡는 다자이를 가만히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카하라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맞추려고 했는지 다자이에게 묻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도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물어보지 않고 조금 더 질문을 담고 있기로 결정했다..

, 남기지 말고 꼭꼭 씹어서 먹어야지.”

다자이는 한두 입 정도 남은 밥그릇을 그의 앞에 밀어주었다. 나카하라는 거의 다 식은 그 밥그릇을 바라보다가, 남은 고기 한 점과 함께 남아있던 밥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양 뺨이 가득해져 천천히 고기와 밥을 씹던 나카하라는 미소를 지은 채 천천히, 체하지 않게 먹어.’라고 말하는 다자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마치 자신의 모친과도 같이 말하는 다자이에게 미묘함을 느꼈다. 그는 분명 다자이였고, 자신의 모친은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다. 나카하라는 그의 다독임에 물밀 듯이 몰려오는 감정이 무엇인지 정의하기 힘들었다. 자신이 떠난 이곳에서의 추억이 모친에 대한 그리움으로 남은 것인지, 아니면 홀로 남은 자신이 지극히 불쌍해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하나 정확한 것은,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것은 참 괜찮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비록 며칠 전 처음 만나 의지는 별로 안 되는 수상한 연하의 청년일지라도, 이렇게 따뜻한 밥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으니 괜찮은 생각이 들었다. 나카하라는 감정이 가득 고인 눈으로 밥그릇을 정리했다. 다자이는 불긋해진 나카하라의 눈가를 신경 쓰지 않은 채 조금만 더 있다가 갈게.’라고 말하고는 주방을 정리하는 그의 옆에서 다 먹은 접시를 건네주었다. 나카하라는 그에게 최대한 눈가를 보이지 않도록 고개를 돌리지 않고 접시를 받아내었다. 개수대 바로 앞에 열린 창으로 들어차는 겨울바람이 나카하라의 붉어진 눈시울을 눌러주었다. 나카하라는 겨울이 추워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접시를 헹궈내고, 다시 그 따뜻한 자리에 앉아 미소를 띤 표정을 한 다자이를 가만히 응시했다.

추운 겨울이라서 좋네.”

그러게.”

나카하라는 아까 자신이 차 안에서 했던 말을 조금 바꿔 말한 다자이의 한마디에 웃어버렸다. 나카하라는 추운 겨울이라 길어진 밤에 숨을 수 있고, 추운 겨울이라 따뜻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나름 괜찮다고 생각하며 달빛과도 같이 따뜻한 유자차 두 잔을 식탁 위에 올려두었다. 향긋한 겨울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