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살기도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화살기도-나태주
아이가 오고간 지도 꽉 채워 일주일이 되었다. 여름이 덮치듯 와 기승을 부렸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파란 하늘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선풍기에만 의지하고 있던 아이와 마츠카와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서려있었다.
“너무 더운데... 안 되겠다.”
마츠카와는 울리지 않던 풍경을 치우고 거실의 커다란 창을 닫았다. 그리고 집안과 어울리지 않게 우뚝 서 있는 에어컨을 틀었다. 한결 낫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앉은 그는 티셔츠를 펄럭거리고 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살 것 같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를 굴러 떨어지는 땀을 닦아 냈다. 참기 힘들었는지 일어나 에어컨 앞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혔다. 아이는 아주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 열심히 공부했다. 마츠카와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학창시절까지 돌아볼 정도였다. 아이와 조금 친해 졌을 무렵엔 이런 것도 배우냐는 마츠카와의 말에 아이는 요즘은 더 어려워져서 시험 보기 힘들다고 푸념했었다. 에어컨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온 아이는 더는 못하겠다고 퇴짜를 놓았다.
“간식이라도 먹을까?”
마츠카와의 말에 아이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의 끄덕임에 마츠카와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과일은 다 먹었고, 아침에 먹는 플레인 요거트는 아이의 취향이 아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잠시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냉동실을 열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슈크림 봉투를 꺼냈다. 저번에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며 한 가득 사와 먹고 마츠카와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마츠카와는 봉투에 든 슈크림을 접시에 옮겨 담고 아이 앞에 놓았다. 더운 가운데 시원한 슈크림에서는 흰 연기가 났다. 아이는 슈크림을 보더니 기분 좋은지 마츠카와를 향해 환히 웃었다.
"저 이거 좋아하는 거 기억하셨네요?“
환히 웃으며 물어오는 아이에게 마츠카와는 저번에 한가득 먹던 게 인상 깊었다고 대답했다. 전에 볼에 가득 밀어 넣고 우물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마츠카와는 얼린 슈크림이 아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이의 입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 먹고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아이를 보며 마츠카와는 다음에는 더 많이 사다둬야겠다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뭐가 좋아요? 단건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는 슈크림을 먹어서인지 한층 밝은 톤으로 물었다. 마츠카와는 아저씨 아니고 형이라니까... 하고 중얼거리고는 아이의 질문에 고민했다.
"단건 모르겠고 치즈햄버거는 좋아해."
"입맛은 애 같네요"
단박에 날아오는 말에 피식 웃고 마츠카와는 자신이 번 돈으로 사먹으니까 상관없다고 받아 쳤다. 음식 취향은 꽤나 비슷했다. 단 것, 짠 것, 매운 것, 신 건 둘 다 자주 안 먹고, 쓴 건 마츠카와만 먹는 듯 했다.
"아, 엄마가 빨리 오랬는데."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며 짧은 탄성을 내뱉은 아이는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족과 다 같이 식사하는 날이라 신나 보이는 뒷모습이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자신의 생각이 징그럽다 생각한 마츠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저씨. 저 내일부터 시험이라 일찍 올 것 같아요."
신발을 꿰어 신은 아이의 말에 마츠카와는 끄덕이며 앞이나 잘 보고가라 배웅했다. 아이가 황급히 떠난 대문은 휑했다. 일찍 잘 준비를 하고마저 책을 읽을까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향을 피워 냄새가 밴 방으로 들어갔다. 다소곳이 놓인 사진에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있었다. 마츠카와는 익숙하게 향을 피우고 꼽은 뒤 가만히 향의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츠카와는 저녁일과를 마치고 몸을 씻기 전, 부모님께 문안 인사드리는 듯이 합장을 했다.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던 그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잠시 당황한 듯 손을 내리고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피하듯 일어났다.
"뭐지... 더워서 허해진 건가..."
뒷목을 만지며 나온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아까의 이질감에 미간을 좁힌 그는 목욕을 마칠 때까지 기도를 방해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옷을 편하게 갈아입자 어둑한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늦은 시간에."
그의 중얼거림에는 불쾌함이 서려있었다.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자 후덥지근한 바람에 땀방울이 잔뜩 흘러내린 아이가 큰 반찬통을 들고 서있었다.
"아저씨 아직 안 주무셨네요? 이거 엄마 심부름이에요."
고기를 먹다 온 건지 숯불 냄새와 고기 양념 냄새가 묻어있었다. 마츠카와는 아이가 안겨준 반찬 통을 옆으로 보며 무엇인지 물으려 했으나, 아이가 먼저 말했다.
"고기 재워둔 거래요. 그냥 구워 드시면 된다고 했어요."
아이에 말에 연신 끄덕이던 마츠카와는 아이를 똑바로 보았다. 그러자 아까 합장 때의 느낌에 멍하니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이는 멍하니 자신을 보는 마츠카와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 어... 괜찮아."
마츠카와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이는 늦었으니 안녕히 주무시라 말하고 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며 바라보던 마츠카와는 아이가 사라지자 반찬통과 아이가 사라진 길목을 번갈아 봤다. 하늘거리던 분홍빛 머리칼의 생각에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지 멍하니 있던 그는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반찬통을 집어넣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는 왜 그 애 생각이 난 거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