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스독/다자츄

[다자츄]십이국기AU.1

송화우연 2017. 5. 1. 14:57

그날은, 그날은 잊을 수 없다. 방 안에 비릿한 향이 감돌아 머리가 아팠다. 아픈 몸을 이끌고, 찢기다시피 벗겨진 옷을 여미고 있을 때 네가 들어왔다. 이미 살 곳곳에 번진 붉은 자국들은 자신이 죽을 것이라 예고하는 듯이 타는 듯한 아픔을 전해주었다. 온몸이 불에 지져져 타오르는 듯 했다. 끔찍하게도 짙게 번지는 피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 앞으로 몸이 고꾸라졌다. 네가 쓰러지는 자신을 받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나를 부르던 너의 목소리가 멀어지는 것은 똑똑히 기억한다. 항상 너는 멀리서 나를 불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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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하라 츄야는 가만히 마차가 지나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 땅으로 돌아오는 것은 근 1년 만인가. 츄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짙은 녹음이 그늘져 이어졌다. 마치 숲에 가려진 마을이라도 되는 듯, 숲길이 이어지다 이제야 도성 문안으로 들어온 것인지 커다란 대문을 지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웃는 모습으로 길거리를 거닐고 있었고, 사람들의 웃음소리에 저절로 창밖으로 머리를 내밀게 되었다.

“나카하라 님, 위험하십니다.”

츄야는 같이 온 시종의 정중한 말투에 창문 안으로 머리를 넣었다. 이곳도 이제는 많이 바뀌었구나. 마차가 인적이 드문 거리로 나가자, 다왔다는 듯이 천천히 멈추었다. 그리고 시종이 먼저 나와 문을 열자, 츄야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마차에서 내렸다. 눈앞에서 보이는 붉은 색 대문을 응시하던 츄야는, ‘변하긴, 하나도 안 변했네.’라고 중얼거리며 옷을 추슬렀다. 그가 마차에서 내림과 동시에 밖에서 기다리던 문지기들이 커다란 문을 열었다. 붉은 문 가운데에 있던 금장이 갈라지며 궁 안의 모습이 들어났다. 자신이 기억하던 궁은 이 붉은 문까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타이호께서 드십니다.”

문지기 한명이 크게 소리쳤다. 츄야는 그런 문지기의 소리침을 무시한 채로 궁 안으로 발을 옮겼다. 궁 안은 따뜻해진 봄철에 피는 꽃이 가득했다. 츄야가 복사꽃, 벚꽃이 만개한 길을 하나하나 둘러보며 걷자, 시종이 뒤를 따르며 길을 안내했다. 이렇게나 바꿔놓았구나. 츄야는 그렇게 가는 길목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구경하며 궁 안을 가로질렀다.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시종의 말이 아쉬울 정도로 궁 안은 아름다웠다.

“츄야, 너무 정신 못 차리는 거 아닌가.”

1년 동안 보지 못했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귀를 울렸다. 츄야는 가만히 뒤돌아 목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쪽이 일을 보던 편전인가. 츄야는 가만히 그가 계단을 내려오는 것을 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계단을 내려오자, 자신도 그의 앞에 서서는 그대로 무릎을 꿇어보였다.

“폐하의 기린, 폐하를 뵈옵니다.”

츄야의 말에 남자는 그에게 다가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남자는 츄야가 바닥에 그대로 무릎을 꿇어 묻은 흙을 털어주며 ‘이런 건 안 해도 된다니까... 고집은.’이라 중얼거렸다. 그리고 다시 그와 시선을 맞춰 서서는 미소 지었다.

“츄야, 돌아와서 기쁘네.”

그의 말에 츄야는 ‘다자이, 네 놈 낯짝은 여전하네.’라고 다자이만 들을 수 있도록 속삭였다. 다자이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웃었지만, 만약 근처에 있던 시종이 들었다면 머리를 조아릴 만한 언행이었다. 다자이는 ‘긴 여정에 피곤하지는 않은가? 처소로 가지.’라고 하며 그를 안내했다. 츄야는 다자이와 나란히 걸으며 다시 길목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을 바라보았다. 츄야는 바람에 따라 하늘하늘 떨어지는 꽃잎을 손을 뻗어 잡았다. 손바닥에 곱게 놓인 보드라운 꽃잎을 바라보던 츄야는 그대로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츄야, 그러면 분명 망가질 텐데.”

츄야의 행동을 전부 보고 있던 다자이는 그에게 말했다. 츄야는 ‘그건 가보면 알겠지.’라고 말하며 그대로 주먹을 쥔 채로 처소로 향했다. 점점 길목의 꽃이 붉어지는 듯하더니 처소 주변은 온통 붉은 동백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츄야는 흐드러지게 만개한 동백꽃을 보며 ‘이제 따뜻해 질 일만 남았는데 잘도 피어있네.’라고 중얼거렸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말에 웃으며 천천히 그의 궁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기와로 만든 궁은, 마치 붉은 동백사이의 연못 같았다. 츄야는 궁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그를 따라갔다.

“츄야의 처소일세.”

새로 지은 것인지 아직도 궁에서는 나무의 향이 진하게 났다. 츄야는 나쁘지 않은지 가만히 올라가는 계단 손잡이를 쓸어보고는 다자이를 돌아보며 ‘내가 무릎 꿇어야해?’라고 물어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자이의 말에 츄야는 바로 돌아서 처소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담하지만 좁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궁에 복도를 거닐던 츄야는 아직도 처소 앞에 서있는 다자이를 보며 왜 들어오지 않느냐는 듯이 쳐다보았다.

“들어와. 차라도 내줄테니까.”

‘내가 내주지는 않겠지만.’ 츄야의 말에 다자이는 피식 웃으며 그의 처소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츄야의 시종은 시종일관 얼굴색이 흙빛이었다. 자신의 주인이 이 나라 황제를 대하는 태도에 좌불안석이 된 듯 했다. 그것은 왕의 신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다자이는 따라 들어오려는 자신들의 신하들을 전부 물렸다. 신하들은 어찌 그렇게 하겠냐며 그를 설득하려 했으나 왕은 단호히 츄야와 둘이 있기를 원했다. 다자이는 츄야의 시종만을 안에 들이고 츄야가 들어간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살만하게 꾸며놓은 안을 구경하던 츄야는 다자이가 들어오자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꽤나 빠르게 정리했네. 엉망이었을 텐데.”

다자이는 책장 옆에 있는 탁자의 의자를 빼 앉으며 ‘이미 전부 계획해두었던 일이었으니까.’라고 답했다. 그의 말에 츄야는 아무 대답 없이 둘러보던 책을 다시 꼽았다. 여유로운 그의 대답이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네게 고개 숙이지 않았다면 어찌했으려고.”

사실 안 하는 것보단 못하는 것에 가깝지만. 다른 책을 펼쳐든 츄야의 말에 다자이는 ‘그럴 리가, 나는 이 나라에서 황제보다 더 황제 같은 재상이 아니었나?’라고 답했다. 츄야는 헛웃음을 지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만약 그가 재상이었을 때 저런 발언을 했었다면, 분명 그의 목은 변방 어딘가에 걸려있었으리라. 다자이는 생긋 웃으며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츄야는 책을 정리한 뒤, 그가 앉아있는 탁자에 마주 앉았다.

“그래서, 네가 실도하게 만든 거야?”

직접적인 츄야의 물음에 다자이는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미소 지으며 ‘나는 그저 황상을 위해, 나라를 위해 조언한 적 밖에 없다네.’라고 대답했다. 츄야는 한 없이 돌려 말하는 그의 대답에 말을 말자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둘이 침묵을 지키고 있자, 시종이 밖에서 츄야를 불렀다. 츄야가 들어오라 말하자, 황제의 앞이라 긴장한 것인지 파랗게 질린 얼굴인 시종이 들어와 탁자에 다기를 올려두고 둘의 앞에서 절했다.

“천한 종이 황제폐하를 뵙습니다.”

다자이는 그런 시종의 말에 ‘됐다. 이제부터는 그리 인사하지 말거라.’라고 말하고는 시종을 바라보았다. 시종은 그의 말에 무슨 영문인지 몰라 떨리는 눈으로 츄야를 올려다보며 당황해했다. 다자이는 그런 시종의 모습에 ‘네 주인이 나카하라이니만큼, 네가 그렇게 인사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나의 기린을 아끼니, 그의 신하마저도 생각한다네.”

다자이는 그렇게 말한 뒤 츄야를 바라보았다. 츄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아이에게 어서 차를 내려주겠냐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는 뜨거운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었다.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이 야무지게 차를 내려내었다. 츄야는 그 광경은 항상 보아도 귀엽다고 생각하며 아이가 차를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시종은 차를 내려 다자이에게 먼저 올렸다. 다자이는 그런 차를 한 모금 마셔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시종을 칭찬했다. 그것을 본 츄야는 의기양양하게 아이가 준 찻잔을 들었다. 맑은 녹색 물이 입안에 머금어 지자, 향긋하게 풍겨오는 꽃향기에 츄야는 기분 좋다는 듯이 웃으며 찻잔을 매만졌다.

“오랜만이군, 그런 웃음.”

다자이의 말에, 츄야는 다시금 풀어진 얼굴을 굳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기린은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만, 그를 향한 마음은 이미 죽이고 싶을 정도의 증오가 되었었다. 그런 증오가 촘촘한 채에 걸러지고 걸러지어 마음속에 앙금처럼 남아있었다. 츄야는 시종을 물리고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직접 죽음으로 몰아넣었냐.”

누구의 죽음인지는 뻔했다. 츄야의 물음에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네. 그저 그의 운명을 다했다 생각하면 될 것을.’이라고 말한 다자이는 아무 말 없이 츄야를 응시했다. 그래,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그는 죽을 운명이었던 것뿐이지. 다자이는 연신 홀짝거리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츄야는 그런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질문을 바꿔 다자이에게 물었다.

“그럼...왜, 내가 죽게 내버려두지 않았냐.”

다자이는 그의 질문에 실소했다. 내가 죽어가던 자네를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다자이는 다시 목을 축이며 목구멍을 틀어막은 말을 도로 삼켰다. 츄야는 아무 말이 없는 다자이가 답답한지, ‘그냥, 그가 죽을 때 같이 죽게 내버려두지. 왜 살렸어.’라고 그에게 좀 더 격양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자이는 그의 발언에 싸늘하게 굳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나라의 기린은 자네여야 하니까.”

‘자네가 없으면 나도 황제가 될 이유가 없어.’츄야는 다자이의 발언에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이해가 안 돼.’ 한참을 등받이에 기대 생각한 츄야가 다 식은 차를 전부 들이켰다. 아까까지만 해도 입 안이 즐거웠던 달달함이, 지금은 입을 떫게 만들었다.

“왜 너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그때도 왜, 겨우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에게 제일 먼저 부탁한 게 네게 고개 숙여달라는 것이었냐고.”

물론 놀랍게도, 그에게 천명이 부과 된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러니 자신이 그에게 고개를 숙일 수 있었고. 자신의 황제로 세울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츄야의 머릿속에서는 엉킨 실타래 같은 질문들이 무수히 걸려 나왔다. 츄야는 그 실타래의 끝을 알고 있었다.

“츄야, 그는 이미 죽었어. 게다가... 전 황제께서는 자네에게도 못할 짓을 하시지 않았나.”

‘츄야 자네, 어찌 그는 그리 감싸면서 자네를 살려준 나에게는 이리도 매정한지 모르겠어.’다자이는 서운하다는 듯 말하며 찻잔을 매만졌다. 츄야는 그런 다자이의 표정에 마음이 약해지는 듯해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또 긴 공백이 이어졌다. 먼저 일어난 것은 다자이었다. ‘아직 집무를 볼 것이 남아있어서.’라고 말한 다자이는 그에게 푹 쉬라는 말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의 처소에서 나오자, 자신들의 신하들이 전부 자신을 기다렸는지 계단 앞에 그대로 서있었다. 다자이는 츄야에게 보여주던 웃음기 가득한 얼굴을 지우고,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명령했다.

“전 황제의 대한 모든 기록을 말소하도록 해라. 무덤 또한 내가 말했던 대로 둬야 할 것이다.”

다자이는 자신의 명령에 고개를 조아린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치졸함에 몸서리칠 듯한 모멸감이 몰려왔다. 이런 복수밖에 하지 못함에 답답한 마음이 더욱 짓눌리는 것 같았다. 신하들은 그의 명령을 이행하려는지 모두 그의 앞에서 떠났다. 다자이는 천천히 걸어 그의 궁을 나왔다.

“어찌 이리도 노력을 했는데 한번을 돌아봐 주지를 않아.”

다자이는 흐드러지게 피어 이제 떨어질 때가 다 되어가는 동백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가 제일 아끼는 그의 꽃이라, 아낌없이 정원에 심어 넣었다. 꽃 사이에서 웃는 그를 바라보기 위해 한 일이었으나 그는 예전같이 웃지 않았다. 다자이는 힘없이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궁녀들은 그가 돌아오자, ‘외출복을 가져가겠사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겉옷을 받아내려 하였다. 다자이는 그런 궁녀들에게 ‘내가 나중에 따로 건네도록 할 터이니 잠시 아무도 들이지 말라.’라고 한 뒤, 모두가 나가자 창문을 열었다. 자신의 창문 너머로 앞에 보이는 흐드러 지는 동백, 그리고 그의 처소를 바라보던 다자이는 그대로 힘없이 주저앉았다.

“자네가 나를 이리 만든 거야.”

그래 그런 거야. 연신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무릎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마치 요람 속에 들어간 듯 안정되는 기분에 한참을 그러고 있던 다자이는, 다시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다. 마치 심장이 꽃전체가 떨어져 낙화하는 동백꽃과 같이 통째로 떨어진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