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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별님 생일 축전입니당 늦었지만 정말 생일 축하드려요 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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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인가….”
비가 올 듯 말 듯 하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자, 활짝 핀 여름 수국을 보던 나카하라는 가지고 있던 우산을 폈다. 조부가 돌아가시고 큰 정원을 자주 둘러보지 못해 걱정하던 차에, 시간이 나는 날이 하필 비가 오는 오늘이라니. 혀를 차며 거의 다 둘러본 정원을 전체적으로 훑어보던 나카하라는 뭔가 검은 인영이 담장을 넘는 것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경면주사를 갈아 결계를 세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담장을 넘어 들어올 수 있는 것은 수준 높은 퇴마사조차 불가능했다. 나카하라는 일부러 담장 쪽에서 시선을 거둬 못 본 척을 하며 다시금 수국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 손 가득 들어차는 수국은 여름을 한껏 머금고 있었다. 이곳을 담을 넘어 들어온 거라면 아무리 인간이어도 보통을 아닐 텐데. 꽃을 보는 척하며 머리를 굴리던 나카하라는 손에 올려둔 푸른 수국을 다시금 내려두고 다른 하얀 수국을 들어보았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질척거리는 정원길을 걷는 소리가 생생히 들렸다. 나카하라는 일부러 돌아보지 않고 시종에게 어떤 수국을 따오라고 말할지 골라보며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여기는 사람도 요괴도 함부로 올 곳이 아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등 뒤까지 가까워지자 품에서 부채를 꺼낸 나카하라는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요괴의 기운마저 느껴지지 않음에 긴장하던 그는, 막상 뒤를 돌아보니 자신과 키가 비슷한 정도 사내아이가 있어 잠시간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애가 결계를 넘은 건가…? 나카하라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에게 ‘이름.’이라고 짧게 물었다. 아이가 당황한 채로 나카하라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자, 나카하라는 부채로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그러자 갑자기 나타난 귀와 아홉 개의 꼬리가 나타나고 가볍게 때렸음에도 기를 맞아서인지 그 구미호는 아프다는 듯 머리를 연신 문질렀다. 그 귀와 꼬리가 나타나자마자 나카하라는 조금 뒷걸음질을 치며 공격적이게 부채를 내밀고 구미호에게 뒤로 물러나라 일렀다.
“구미호가 퇴마사 집에 들락거리다니. 죽고 싶어서 그러냐? 이제 막 구미호가 된 모양인데 어서 돌아가.”
“나카하라 할배를 찾아왔어.”
나카하라는 그의 한마디에 얼굴이 굳어졌다. 누군가 마을에서 나카하라를 저렇게 호칭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조부일 터였다. 나카하라는 ‘전 주인님은 이미 이곳 분이 아니셔. 그러니 돌아가라.’라고 말하고는 등을 돌렸다. 하지만 그 구미호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전부 맞으며 나카하라를 쫓아갔다. 나카하라는 정원을 빙빙 돌아가며 그 구미호를 떨어트리기 위해 애썼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퇴마해 버릴 수도 없고. 귀찮음에 한숨을 내쉬며 이리저리 발걸음을 옮겼지만, 구미호는 나카하라와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종종걸음을 걸으며 그에게 더 가까워졌다. 집에 거의 가까워졌을 때, 나카하라는 아직도 자신을 쫓아오는 인영을 향해 몸을 돌려 소리쳤다.
“퇴마사 집에서 계속 얼쩡거리면 아무리 수준 높은 요마라도 힘들다는 거 모르냐? 정신 차리고 살려줄 때 돌아가라.”
“난 괜찮아. 할배가 경면주사 뚫을 수 있는 부적을 줬어.”
그리고 그 구미호가 보여준 부적은 분명 나카하라 가문에서 나오는 비단으로 엮여져 있었다. 나카하라는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다 다시금 그 구미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붕대로 감싸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른 한 쪽은 다갈색 눈 안에 푸른 여우불을 담고 있었다. 어디선가 느낀 적 있는 기척에 잠시간 그를 응시하던 나카하라는 다시금 그에게 이름이 뭔지 물었다.
“다자이 오사무. 그쪽은 꼬맹이 나카하라?”
“나카하라 츄야 거든? 할아버지가 그렇게 부르셨어도 너는 그렇게 부르지 마라.”
혀를 차며 대꾸한 나카하라는 그에게 온 이유가 무언지 물었다. 다자이는 잠시 머뭇거리듯이 가져온 짐을 만지다가 그에게 일단 집에 들여보내 주면 안되는지 물었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힘들어. 나카하라는 요괴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다고 중얼거리고는 자신이 쓰고 있던 우산을 던져 주고 자신은 하오리를 벗어 머리에 걸친 뒤 집 쪽으로 손짓했다.
“쓰고 따라와.”
그럼 그렇지, 저 부적 때문에 기척 없이 경면주사를 넘을 수 있었을 것이다. 괜히 긴장했다 생각한 나카하라는 마루 쪽 창을 열어 둔 뒤, 그에게 잠시 처마 밑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웃기게도 그 구미호는 말을 잘 들었다. 우산을 쓰고 몸을 떨며 기다리던 다자이는 수건으로 길을 만들어 두고 몸에 큰 수건을 씌워주는 나카하라를 따라 욕실로 들어갔다. 나카하라는 일단 다자이에게 따뜻하게 씻고 나오라고 말했다. ‘요괴도 감기 같은 건 걸릴지도 모르니까.’라고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자신의 새 옷을 꺼내두고는 비에 쫄딱 젖은 짐을 손가락으로 집어 수건으로 싸매두었다. 다자이는 뜨거운 물만 뿌리고 나온 것인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물을 수건으로 털고 옷을 갈아입은 다자이는, 욕실 앞에서 기다리며 얼마 젖지 않은 머리칼을 쓸어넘기는 나카하라에게 다 씻었다고 말했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누가 볼 새라 그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나카하라는 혹여나 지나가는 수련생이 보고 그가 구미호인 것을 알아채기라도 하는 날에는, 후계자인 자신의 권위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무슨 말을 하려고 입술을 떼는 다자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했다. 결국, 제일 안쪽에 있는 방에 도착한 그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자이에게 ‘왜 온 거야 여기는.’이라고 물었다. 다자이는 왜 이토록 그가 불안하게 행동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일단 나카하라 할배의 뒤를 이은 이곳의 주인이라고 하니 고분고분 행동하며 자신의 짐을 풀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복숭아잖아?”
“응 복숭아. 할배가 내가 가져오는 복숭아를 제일 좋아했어. 이맘때면 항상 가져다 줘서 왔는데… 결국 내가 구미호가 되는 건 못 봤네.”
흰색과 분홍색이 절묘하게 섞인 복숭아를 소매로 닦고 한 입 베어 문 다자이는, 나카하라에게도 먹어보라며 한 알을 굴려주었다. 나카하라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다가 복숭아를 입에 물었다. 달달한 과즙이 터지며 입을 한가득 메웠다. 나카하라는 이렇게 맛있는 복숭아는 처음이었는지, 의심하던 마음은 이미 뒤로한 채 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그걸 보며 ‘피는 못 속이네.’라고 중얼거리고는 작게 웃었다. 다자이는 남은 복숭아는 제단에 올려두고 싶다고 말했다. 가만히 복숭아를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그와 함께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카하라 가의 제단으로 가서 복숭아를 올려두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와 나란히 앉은 채 비가 오는 밖을 내다보며 자신과 나카하라 할아버지의 추억을 속닥거렸다. 꼬리가 일곱 개였을 때부터 만나 꼬리가 하나씩 늘어갈 때마다 나카하라의 할아버지는 스무 살씩 늙어있었다고 말했다.
“인간은 원래 그래.”
“그래서 내기했어. 내가 구미호 되어있을 때까지 살아있으면 할배 사역령 하기로.”
“넌 구미호 언제 됐는데.”
나카하라의 질문에 잠시간 고민에 빠진 다자이는 ‘한 달 전인가? 여기 오는 데는 산을 넘어 오느라 좀 걸렸어.’하고 말했다. 나카하라는 할아버지의 제단을 돌아보며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지 이 주 밖에 안 됐으니까 내기는 이기셨네.’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럼 뭐하냐는 듯이 대꾸했다. 어차피 나카하라의 전 가주는 죽었다. 다자이의 친우이자 부모와도 같은 이였다. 다자이는 ‘이젠 돌이킬 수 없지.’라고 중얼거리고는 추적거리며 마당을 메우는 장맛비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고맙다. 잊지 않고 찾아와서.”
“은근 꼬장꼬장해도 오래 살 것 같던 노인장이었는데. 이제 수다 떨 인간이 줄어서 슬플 뿐이지.”
나카하라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옷을 털고 일어나는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나카하라는 또래의 친구같이 느껴지는 그가 간다고 말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벌써 가게?’라고 물었다. 다자이는 산을 오래 비우면 혼이 난다고 말하며 나카하라가 준 아무렇지 않게 펴고 천천히 빗속을 걸어나갔다. 나카하라는 잘 가라는 듯이 손을 가볍게 흔들어 보이다가 갑자기 돌아보는 그의 행동에 흠칫하고 놀랐다.
“그런데, 할배말이야. 요괴한테 당한 거 맞지?”
“그건 또 어떻게 알았냐…. 뭐 요괴한테 당했지.”
“응, 구미호한테 당했잖아.”
다 알고 있으면서 물었던 거냐. 나카하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복수라도 하려는 건가? 순간 번뜩 든 생각에 품에서 부채를 꺼내려던 나카하라를 보며 웃은 다자이는 ‘걱정 마, 난 안 그러니까. 그리고 그건 다음에 선물로 줄게.’라고 의미 모를 말을 하며 다시금 담장 쪽을 향해 걸어나갔다. 나카하라는 그가 나카하라 가로 온 다른 이유라도 있는지 고민하며 그가 나갈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다자이는 별다른 수상한 일을 하지 않은 채 담장으로 뛰어올랐다.
“아, 맞다. 작은 나카하라는 이름이 츄야였던가? 츄야는 수국을 좋아해?”
나카하라는 뜬금없는 질문에 ‘어? 어.’라고 멍청한 대답을 했다. 나카하라는 자신의 맹한 대답을 후회했지만,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빠르게 담장을 넘어 사라졌다. 비가 와 길이 진창일 텐데도 발걸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다자이가 사라진 담장을 한참 응시하던 나카하라는 기도나 하다 자자고 생각하며 마루의 창을 닫고 수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분명 잠을 자기 위해 시작한 기도였음에도, 마음이 심란해서인지 쉽게 기도를 들 수 업었다. 부채를 내려두고 깜깜한 새벽의 너머가 된 창을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밤을 비추는 듯한 달빛이 구름에 가려지는 모습을 보고는 도로 조부의 제단으로 향했다. 금빛 털을 가진 구미호를 잡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결국 그 요괴를 상대하다 숨을 거둔 조부가 구미호와 친구였다니. 알다가도 모르겠다 생각한 나카하라는 제단 위에 예쁘게 올려진 복숭아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친구는 요괴 안 같네요. 할아버지가 퇴마사 안 같았듯이요.”
후계자가 아닌 그저 손자로서 말한 나카하라는 향을 피운 채 잠시 손을 모으고 있다 재단이 있는 방을 나왔다. 잠자리에 들기도 애매한 시간이라 생각하면서도 내일을 위해 잠자리에 누운 나카하라는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나카하라는 그 뒤로 다자이라는 구미호가 다녀갔다는 것이 꿈같을 정도로 평범하게 시간을 보냈다. 수련생들에게 기를 모으는 방법을 알려주고 할아버지가 지키던 사당의 부적을 채우는 일, 그리고 마을의 결계를 강하게 하는 일을 하며 자리를 지켰다. 가끔 강한 요괴가 나온 다거나, 요기를 정화하기 위해 기도를 위해 정기가 많은 산으로 가 기도를 드리는 일을 제외하면 그다지 특별할만한 일도 없는 직업이 퇴마사였다. 나카하라는 경면주사를 갈아 기름에 개어내고는 그것을 대들보 밑과 대문에 발라내고는 집안사람들에게 마를 때까지 출입을 자제하라 이르고는 전부 방으로 보냈다. 나카하라가의 일과처럼 이루어지는 결계 의식에 가문 내 수련생과 식솔들은 전부 방에서 나오지 않고 조용한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평화롭던 나카하라 가가 시끄러워진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새벽 청소를 위해 빗자루를 들고 대문을 나선 문지기가 무명천에 둘러싸인 커다란 물체에 큰 소리를 내며 집안으로 뛰어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나카하라는 비명 같은 목소리로 ‘도련…아니지, 나리! 나리!’하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하오리를 걸치고 대문으로 향했다. 무명천은 나카하라 가문의 담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길고, 거대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나카하라는 부채를 빼 들고 핏물이 묻어나는 무명천을 들췄다. 그곳에는 금빛털을 가진 구미호가 목을 물어뜯긴 채로 죽어있었다. 나카하라는 구미호 사체를 보자마자 기절한 식솔을 부축해 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수련생 몇 사람을 깨워 깨끗한 숯과 종이, 그리고 경면 주사에 담가둔 천을 가져와 결계를 치고 그 구미호 사체에 부적을 둘러둔 채 숯에 불을 붙였다. 나카하라는 수련생이 기절하는 것을 바라보며 곁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련생들에게 모두를 깨우라 일렀다. 나카하라는 시체에 붙은 여우불이 나카하라 가문의 불꽃에 타 들어가는 것을 보며 주변에 이 짓거리를 한 주범이 있지는 않을까 둘러보았다. 분명 이건 다자이의 짓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예전에 떠난 지 오래인지 작은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아, 일단은 마을 사람이 일어나기 전에 이 요괴의 사체를 없애는 데에 집중했다. 마지막으로 부적을 모아 만든 빗자루로 재를 쓸어모은 나카하라는, 기를 전부 소진해 금방이라도 혼절할 듯이 휘청거렸다. 끝까지 향나무 함에 시체의 찌꺼기까지 담은 그는, 만일 누가 자신을 찾아도 절대 방으로 들어오지 말라 이르며 함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가 괴황지 뭉치를 꺼내 경면주사로 부적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지금이 아니면 절대 담지 못한다 생각한 그는, 상자에 차례차례 부적을 붙이며 그 요괴의 기운을 봉인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부 해결한 뒤 봉인해두다시피 한 법당에 그 상자를 놔두기까지, 꼬박 한나절을 전부 썼다. 나카하라는 법당을 나오자마자 다리가 풀려 고꾸라졌다.
“어이쿠. 조심해야지, 츄야.”
다른 수련생이라는 생각에 ‘고맙다.’라고 중얼거린 나카하라는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고개를 들어 자신을 부축하는 낯선 인영을 올려다보았다. 저 다갈색 눈동자에 푸른 여우불. 그 눈은 분명 다자이었다. 얼마 전까지 자신과 같은 키에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어린 구미호.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엿한 성인 남성의 모습이었다. 나카하라는 이게 무슨 일인지 물으려다 말한 기운도 없다는 듯이 손을 휘적거리며 마루로 힘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다자이는 순수하게 부축해주려는 생각이었는지, 별다른 행동 없이 그가 가는 대로 그를 부축해주었다. 나카하라는 왜 모습이 변했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그런 요괴 사체를 보냈는지 물으려다, 기운 없이 한숨을 내쉬며 마루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 나카하라에게 복숭아를 내밀었다.
“먹어 봐. 괜찮아질 거야.”
‘자네 할아버지도 자주 먹던 이유니까.’ 나카하라는 속는 셈 치고 그가 건넨 복숭아를 입에 물었다. 안에 가득 차는 과즙처럼, 빠져나가 흩어졌던 기운이 다시금 몸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복숭아를 다 먹을 때까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며 손에 쥐고 있던 꽃의 꽃잎을 하나하나 떼어 내었다. 나카하라는 결국 그가 건넨 복숭아를 씨만 남긴 채 전부 먹어치웠다. 숨도 쉬지 않고 먹은 탓일까. 입안의 내용물을 씹으며 천천히 숨을 고르던 나카하라는 마지막 조각이 목 뒤로 넘어가자 곧바로 하고 싶었던 질문을 그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꼬라지가 그게 뭐야?”
“그저 좋은 여우구슬을 먹어 빠르게 자란 것뿐이라네. 아차, 저번에 빌려준 옷은 이제 맞지 않아 돌려주러 가져왔어.”
다자이는 저번에 가져온 것과 똑같은 흰 보자기 안에서 나카하라의 옷을 건네며 말했다. 나카하라는 짜증 난다는 듯이 ‘요괴면 그냥 작게 지내도 상관없잖아! 기분 나쁘게 혼자 커지는 거야!’라고 소리치며 몸에 돌아온 기운으로 그에게 발차기를 날렸다. 다자이는 그의 발길질을 가볍게 피하며 ‘어이쿠, 할아버지랑 키만 같은 줄 알았더니 성질머리도 똑같군그래.’라고 말하고는 키득거렸다.
“그리고, 그 여우는 뭐야. 그런 거 집 앞에 두면 사람들이 놀란다고,”
“전 주인을 죽인 역적이나 다름이 없으니 집 안에 둬주고 싶었는데, 대문에 경면주사를 강하게 발라둬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네. 그리고 사체 하나 처리 못 하면 어디 후계자 이름 부르겠나.”
역시나.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할아버지가 퇴치하려던 놈이었구만.’이라고 중얼거렸다. 대충 예상했던 터라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마무리한 나카하라는 ‘고맙다.’라고 그에게 말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인사에 그저 여우 구슬이 탐나 그런 것이었다고 말하고는 붕대로 가려진 눈가를 누르며 여기를 맞았는데 아파서 죽겠다고 엄살을 피웠다. 물론 나카하라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비웃을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너는 뭘 원해. 요괴가 이렇게 가문에 도움을 주었는데 우리 인간 쪽도 뭘 해줘야지.”
나카하라의 말에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변한 다자이의 모습은, 아무리 봐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저번에 본 모습이 볼도 통통하니 귀여웠는데. 속으로 혀를 차며 중얼거리던 나카하라는 ‘정기 좀 나눠줘.’라고 말하는 다자이에게 얼굴을 찌푸리며 ‘뭐?’라고 되물었다. 다자이는 나카하라가 못 들어서 되물었다 생각한 모양인지 목소리를 키워 다시 그에게 말했다.
“정기를 나눠줘. 포옹이던, 입맞춤이던, 네 할아버지처럼 구슬화로 해서 줘도 돼.”
“난 아직 구슬화 못해. 해도 쌀알만큼 밖에 안 된다고.”
“그럼 입맞춤이 좋겠네.”
‘너희 퇴마사들은 기를 빼고 넣고 할 수 있잖아. 정기 많은 데서 기도하면 정기도 모인다며? 나도 그거 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다자이에게 나카하라는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영문 모를 부탁을 빠져나가기 위해 복숭아 먹고 기를 모으면 되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다자이는 고개를 저으며 ‘살아있는 것에서 가져와야 해,’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 할아버지는 그저 공생 관계였던 것일까. 차라리 뭘 원하는지 묻지나 말 것을 그랬다고 자신 스스로 탓하던 나카하라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자신의 입술에 입 맞춰오는 다자이의 행동에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밀쳐냈다.
“뭐 하는 거야!”
“아, 이거 가지고 안 되는데.”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일단 얼마 없는 기운이라도 차리고 있으라며 그의 어깨를 다독였다. 퇴마사까지 되어 요괴에게 응원을 받다니.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지은 나카하라는 놀란 표정을 지은 채 다자이를 올려다보며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지 입술만 뻐끔거렸다. 그 모습에 다자이는 다시금 나카하라의 입술에 입술을 맞춰오고는, 부드럽게 혀를 내어 그의 입술을 훑고 순식간에 입술을 가르고 혀를 입안으로 내었다. 나카하라는 힘으로는 밀리지도 않고 속수무책으로 입술을 맞대고 부벼오는 그의 행동에 품에서 부채를 꺼내 펼쳐 보이며 그를 밀쳐내고는 크게 숨을 내뱉으며 입가를 닦아내었다. 다자이는 아직도 부족한 건지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입술을 핥아내었다.
“츄야 기운이 할배보다 맛있어.”
“닥쳐! 그런 말 여기서 하지 말라고!”
민망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푸른 옷의 요괴에게 소리친 나카하라는 마지 벌레가 지나간 듯이 간질거리는 입술을 소매로 연신 문질러 닦았다. 다자이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아직 어린 거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고는, 나카하라에게 파란 수국을 건네고는 꽃대를 나카하라의 손에 쥐여주었다.
“산 수국은 정원의 수국들보다 오래 살 거야. 꼭 물에 꽂아둬. 알겠지, 츄야? 시들 때쯤 다시 올게.”
“오면 부적으로 죽여버릴 거야.”
다자이는 으르렁거리듯 위협하는 나카하라에게 환히 웃어 보이며 ‘와, 퇴마사 손에 죽는다니. 그건 기분 좋아?’라고 장난스럽게 물었다.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열 받은 나카하라는 천천히 뒷걸음질을 쳐 담장을 넘는 다자이에게 끝까지 왁왁 거리며 화를 내다가, 그가 놓고간 복숭아 몇 개와 자신의 옷가지를 발로 차버렸다. 그러다가 손에 든 수국을 바라보며 분노 때문에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는 짜증 난다는 듯이 그 수국을 물 병에 꽂아두고 조부의 제단이 차려진 방으로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갔다.
“저 자식이랑 왜 친구 하신 거예요!”
제단에 남은 화를 넋두리하듯이 말하며 하소연을 하던 나카하라는 그저 인자하게 웃는 얼굴의 사진으로 남아있는 조부를 바라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요괴에게는 꼭 보답하렴.’ 전래동화를 읽어주며 강조하던 자신의 조부 이야기가 떠오른 것인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이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죠.’라고 웅얼거리던 나카하라는, 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자이가 가버린 담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수국이 질 때쯤 찾아오기로 한 그의 약조를 다시금 되새기며 흩어진 복숭아와 옷가지를 모아 방으로 가지고 돌아왔다.
***
다자이는 때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그는 꼭 올 때마다 꽃을 꺾어 왔는데, 봄에는 벚꽃을 한 무더기 주워왔고, 여름에는 수국, 가을에는 단풍이 가득 달린 나뭇가지를 가져왔다. 겨울에는 찾고 찾아보아도 볼거리가 많이 없는 것인지 자신의 친구인 너구리가 말린 곶감이나 친구들과 같이 구운 군밤을 가지고 왔다.
“나 이제 정기 구슬 크게 만들 수 있다? 이번에도 여러 개 만들었으니까 가지고 가.”
“에, 싫은데. 츄야랑 입 맞출래.”
기도실에서 기도를 올리던 나카하라는 기도실 문을 벌컥 열고 마루에 누워 상스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다자이를 벌레 보듯 내려다보았다. 다자이는 곶감을 우물거리며 ‘아니면 여우 구슬 줄까? 여우 신부 해.’라고 말하며 되도 안 되는 말을 꺼냈다. 나카하라는 전보다 커진 부채를 들어 그의 머리를 내려치고는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그에게 소리쳤다. 나카하라는 아무렇지 않게 입 맞춰오는 다자이와는 다르게 그의 입술이 닿을 때마다 터질 듯이 뛰어오는 심장이 아프기까지 해 자신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여겼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이게 다 저 여우 요괴 때문이야. 속으로 다자이의 탓을 하며 넘겨버린 나카하라는 ‘왜, 신부 하기 부끄러워?’라고 물은 다자이의 말에 부채를 펼쳐 바람을 내 그를 밀어 넘어트렸다. 나카하라의 주술에 넘어져 놀란 다자이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네 신부 할 일 없어!’라고 소리치는 나카하라를 올려다보고는 도로 일어나 그의 앞에 앉았다.
“그럼 입 맞춰줘. 나는 츄야가 그렇게 주는 게 좋아.”
“시끄러워 인간 희롱은 여기서 끝내고 그냥 구슬로 가져가.”
나카하라는 얼굴을 부채로 부치며 말하고는 붉어진 얼굴을 가리듯이 부채를 들었다. 다자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카하라를 바로 앞에서 마주했다. 나카하라는 자신보다 월등히 커진 다자이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듯 서자 주춤하듯 뒤로 물러났다. 나카하라는 저리 비키지 못하냐며 그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다자이는 비킬 생각이 없는 건지 고개를 숙여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는 ‘츄야, 나 인간은 츄야가 제일 좋아.’라며 운을 띄웠다.
“내 친우가 그러는데. 그건 사랑이래. 맞지?”
“미쳤냐. 요괴가 무슨 사랑이야! 주술 부리지 말고 꺼져!”
다자이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다시금 부채를 휘두르려던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그대로 부채를 잡아 그의 쪽으로 잡아당겨 자신을 품에 안기게 하자 놀란 듯이 눈을 뜨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자이는 품에 쓰러지듯 안긴 나카하라를 가두듯 팔을 감아 안고는, 그의 정수리 근처까지 고개를 숙여 속삭였다.
“나, 츄야 앞에서 그런 주술 못 부리는데.”
나카하라는 귓가에 울리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얼굴이 달아오른 숯마냥 새빨갛게 변했다. 다자이는 귀끝까지 붉어진 그를 보며 작게 키득거리고는 나카하라에게 이제 입 맞춰 줄거냐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들어 ‘일단 이것 좀 풀어봐, 숨 막혀.’라고 말하고는 다자이의 품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달아오른 뺨을 식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게 사랑일 리 없다. 요괴가 어떻게 인간을.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요괴에게 사랑을 느끼겠는가. 하지만 나카하라는 반쯤 모습이 풀려 귀끝을 쫑긋거리는 다자이에게 다가가 입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게 주술이 아닐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천천히 다자이의 뺨을 맞잡은 채 입술을 맞댄 나카하라는 부드럽게 자신을 감싸 안는 구미호의 꼬리의 온기에 봄이 오는 듯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주책없이 뛰는 가슴과 수줍어 발갛게 상기 된 뺨이 그것을 더욱 확실하게 만드는 듯했다. 다자이는 그대로 그를 안아 들어 나카하라가 자신에게 더욱 입 맞추기 쉽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을 핥아오고 입술을 사탕을 먹듯 물고 빨며 물기 어린 소리를 내었다. 그렇게 한참 타액을 나누던 둘은 입술을 뗀 채 서로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내가 츄야처럼 잘해주는 인간도 드물어.”
“그럼 나는 있는 줄 아냐.”
“후후, 사랑해.”
마치 인간과 같이 고백해오는 다자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 나카하라는 얼굴을 붉힌 채 그의 목에 팔을 감아 안았다. ‘벚꽃이 필 때는 내가 말해 줄게.’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귓가에 속삭이며 말하고는 다자이의 머리칼을 천천히 쓸어 넘겨주었다. 다자이는 연신 나카하라에게 약속한 거라고 확답을 구하고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나카하라를 마주 보았다.
“이번에도 벚꽃을 모아올게, 츄야. 츄야가 좋아하니까.”
“오냐, 보자기 가득 가져와라,”
푹신한 흰 꼬리에 둘러쌓인 채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벌써 봄이 왔다는 듯이 웃어버리며 금방 녹아내릴 소복한 눈을 바라보았다. 여느 때와 같이 산으로 돌아간 다자이는, 벚꽃이 펴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카하라의 마을 쪽을 연신 내다보았고,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올 날을 생각하며 앙상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다, 그의 조부의 제단에 다자이가 가져온 곶감을 올렸다.
“이게 다 할아버지 때문이에요. 그 구미호 때문에 혼담이고 뭐고 대가 끊어질 거라고요.”
물론 가주 답지 않은 넋두리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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