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츄]나와 너의 사계.1

카테고리 없음 2019. 12. 29. 18:08

나카하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몸 바쳐 일한 회사에서 갑자기 날아온 청천벽력같은 해고 통지에 어안이 벙벙한 나머지 그날 하루 업무를 날렸고, 다음 날에는 몸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연고 없는 도시에서 아프기까지 하니 서럽다는 생각에 애인에게 연락했지만, 권태기에 접어선 연인 사이는 파탄 직전이었다. 나카하라는 이게 인생이라면 차라리 살지 말자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인생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열 때문인지 헛웃음까지 나기 시작했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이 없어. 차마 확인 사살이 될까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말 대신 한숨을 내쉬며 옆으로 돌아누운 그는, 얇다 못해 부서질 것 같은 자신의 원룸 벽을 멍하니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나아야 한다. 나아서 새 일도 구하고, 애인과도 관계를 풀고,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으며 이것도 다 추억이었다고 회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강박적으로 생각하며 냉장고를 뒤지던 그는, 남아있는 작은 당근과 양배추, 그리고 절반 정도 남은 토마토소스를 겨우겨우 긁어 찾아내었다. 냉동실에 있던 반쯤 남은 소세지까지 꺼내니 조금은 호화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카하라는 열 기운에 어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어릴 적 먹던 수프를 생각하며 모든 재료를 대강 손질해 냄비에 넣었다. 그리고 물 아주 조금과 토마토소스를 넣고 바글바글 끓여버렸다. 나카하라는 자신이 시골에서 지낼 때, 이런 토마토소스에 무엇을 넣어 끓여 먹어도 맛있었던 기억 때문인지 자신만만하게 거침없이 냄비를 뒤적거렸다. 게다가 그가 가지고 있던 모든 고민도 같이 넣고 끓이는 것인지 냄비에서 시선조차 떼지 않았다. 지금 느끼는 서러움, 외로움도 연기와 같이 증발해서 날아가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그는, 채소가 숨이 죽고 맛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불을 껐다. 그는 그릇에 대강 완성된 수프인 것 같은 음식을 담고 숟가락으로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것 같이 보이는 음식을 뒤적거리며 식히다 입에 넣었다. 자신이 시골에서 맛보던 음식과 비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로 정말 별 볼 일 없는 맛이었다. 나카하라는 그 맛이, 자신 스스로를 더 비참하게 만드는 맛 같았다. 하지만 그는 꾸역꾸역 수프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두 입 사라지던 수프의 바닥이 보이고 마지막 당근 한 조각이 남았을 때, 그는 주저했다. 끝까지 먹을 것인가, 아니면 여기서 그만둘 것인가. 이 기분 나쁜 달큼함이 담긴 채소를 입으로 가져갈까, 아니면 그대로 저 하수구에 내보내 버릴까. 나카하라는 거의 뭉개지기 시작한 당근을 숟가락 위에 올렸다. 그리고 몇 번을 입가로 가져가려 했지만, 부대끼는 배 안에서는 무엇이 들어가던 거절당할 것 같았다. 별거 아닌 결정 하나도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나카하라는 지쳐 있었다. 회사도, 연인도, 그 무엇도 자신을 위로해줄 만한 것은 없었다. 나카하라는 도시는 원래 이런 것이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안했지만, 그것은 도리어 나카하라에게 화살로 날아왔다. 결국, 나카하라는 그 당근이 담긴 그릇을 싱크대에 넣고 미련이 생기기 전에 물에 담가버렸다. 여기도 저기도 부대끼는 일들뿐이다. 나카하라에게는 이 음식마저도 고된 일로 느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카하라는 무미건조하게 자신이 가기를 원하냐고 묻는 애인의 답장에 오지 않아도 상관없고 여기서 끝내자는 답을 보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회사에도 이때까지 쓰지 못했던 연차들을 전부 몰아 쓴다는 말을 남긴 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산 감기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 전부 털어버리고 내려가자. 더부룩한 속을 풀 수 있는 무언가를 먹으러 가면 이런 생각도 안 들겠지. 나카하라는 속으로 자신을 위로하듯 중얼거리며, 나른하게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이불을 둘렀다. 하지만 두꺼운 겨울 이불에도 그의 몸 한가운데에서 느껴지는 시린 기운은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나카하라는 익숙하게 그것을 참아낼 뿐이었다.

***

“...진짜 돌아왔잖아.”

모든 것을 뒤로한 나카하라는 결국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에 도착했다. 아무도 남지 않은 집은 예상외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카하라는 이미 얼굴도 가물가물해진 자신의 모친이 앉아있던 마당의 텃밭을 지나, 지갑 제일 안쪽에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익숙한 나무문에는 여전히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카하라는 몇 가지 남지 않은 초라한 짐을 집 한구석에 내려두었다. 어차피 자신의 물건이라고 칭할만한 것은 얼마 안 되는 옷가지들과 소지품뿐. 그 외에는 전부 못쓸만한 것들을 겨우겨우 고쳐가며 가지고 있던 것뿐이었다. 나카하라는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 고철 덩어리나 덜렁거리는 나무 조각들은 자신 또한 녹슬고 낡아 보이게 할 뿐이었으니 말이다. 깨끗하지만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통에 집 안을 두리번거리던 나카하라는 아침부터 허기짐을 채우지 않고 와서인지 요동치는 배를 부여잡고 잠시간 방 한가운데에 걸터앉았다. 어차피 제대로 된 밥은 청소를 끝낸 뒤에 해 먹으면 되니까. 막연하게 고개를 끄덕거린 그는, 짐이 든 배낭을 방 한구석에 치워두고 주방 맨 안쪽 서랍에 있던 걸레를 꺼내 물에 적셨다. 집안의 구조는 자신이 어릴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시골을 떠나 상경한 지 많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이 집은 여전히 그대로 그가 어렸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나카하라는 먼지가 없는 집을 더 깔끔하게 청소했다. 누군가 내버려 두지 않고 관리를 해주었던 게 분명하다고 여긴 나카하라는, 나중에 마을 어르신께 누구인지 여쭈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카하라는 더욱 깔끔해진 집을 둘러보다, 아무것도 없는 냉장고를 열어 안을 바라보았다. 깔끔한 안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가만히 응시하던 그는, 결국 고민을 끝내고 가벼운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겨울이 거의 끝나간다고 하지만 쌀쌀한 바람이 그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흘린 땀을 식히기 더없이 좋다는 듯이 바람을 지나쳐 걸어갔다. 읍내로 나가지 않아도 소소한 생필품을 살 수 있는 작은 가게가 있는 언덕 아래로 내려온 그는, 겉옷을 입지 않은 것을 조금 후회했다. 마을의 가게에서는 오랜만에 본 그를 반기는 마을 주민들을 여럿 마주쳤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그 인사에 대강 마주 인사를 하다 눈치를 보듯 가게에서 필요한 물품만을 빠르게 골라 나와버렸다. “뭐가 좋다고 실실 웃으면서 인사하는 거야.”

쓰고 나왔던 캡모자를 눌러쓰며 그가 중얼거렸다. 나카하라의 눈에는 미소짓는 마을 사람들의 인사가 성공한답시고 시골을 떠난 자신이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왔다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오래 하기에는 머릿속의 고민을 날리는 추위가 점점 몸을 타고 올라와, 나카하라는 얇은 옷을 여민 채 빠르게 언덕을 올랐다. 비명이 나올 듯이 이가 떨렸다. 나카하라는 들어오자마자 난로를 피웠다. 오래 이곳을 떠나있었지만, 난로에 불을 피우는 것은 아직 잊지 않았다. 작은 불쏘시개에 성냥으로 불을 붙인 그는, 안에 든 나무가 천천히 타오르는 것을 보며 살짝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불은 금세 힘을 받아 점점 타오르기 시작하며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이제 저녁 준비를 하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 맥주 한 캔, 잘 손질된 닭 다리 살과 우유, 대파, 그리고 꼬치. 만약 찬장 안을 뒤져서 간장이 나온다면 좋겠지만, 그건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을 듯했다.

나중에 읍내에 나가서 왕창 사 와야지.”

물에 대파를 씻으며 손질하던 그는, 찬장을 열어보며 나온 아주 소량의 찹쌀과 밀가루, 그리고 소금과 설탕, 간장을 보며 쾌재를 불렀다. 분명 모친이 이 집을 떠나고도 경황이 없어 치우지 못했던 물건들인 듯했다. 나카하라는 우유에 닭고기를 담가두고 대파를 먹기 좋게 썰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하나하나 꼬치에 정성스럽게 끼워 닭꼬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카하라는 자신이 도피하듯 도망쳐 온 것이라도, 이 순간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적 가장 특별했을 때만 먹었던 이 닭꼬치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기에. 말없이 꼬치를 끼우던 그는, 생각보다 양이 많다고 중얼거리며 주방 뒤의 창고에서 작은 화로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문 바로 앞의 마당으로 가지고 나와서는 난로에 넣어두었던 숯을 몇 개 꺼내 얹었다. 연기는 철망을 얹자 금세 사그라들었다. 나카하라는 대강 철망에 기름칠한 뒤, 꼬치를 굽기 시작했다. 한 개는 소금을 조금 많이 뿌리고, 하나는 간장 소스에 담가 먹을 생각에 약간의 간이 될 만큼만 뿌렸다. 연기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나자, 입안에서는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카하라는 겉옷까지 챙겨 입고 나와 추위를 느낄 새도 없이 꼬치를 전부 구워버렸다. 따끈한 김이 나는 닭꼬치들은 접시 위에서 영롱하게 기름져 보였다. 나카하라는 두 접시나 되는 닭꼬치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지 뭐.’라고 중얼거리며 마루에 있는 테이블에 접시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준비해 두었던 차가운 맥주, 그리고 간장 소스와 혹시나 모를 싱거움을 대비한 소금을 앞에 놓다가, 깜빡하고 잊은 화로의 불을 끄고 다시 안으로 돌아와 테이블 앞에 자리를 잡았다. 싸늘한 밖과는 다르게 안은 포근하게 온기가 감돌아 소소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잘 먹겠습니다.”

나카하라는 자신만이 있는 집에 인사를 건넸다. 따뜻한 온기, 그리고 맛있는 음식. 모서리가 살짝 탄 꼬치를 하나 들어 올려 간장 소스를 찍은 그는, 행복하게 제일 마지막에 꽂힌 큰 닭고기를 대파와 함께 베어 물어 빼냈다. 육즙과 대파의 달달함이 기분 좋게 간장과 어우러져 입안에서 침이 쉴새 없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렇게 꼬치 하나를 다 먹어갈 무렵, 탄산이 쏘는 맥주를 벌컥거리며 마신 나카하라는 이게 사람 사는 거지.’라고 중얼거리며 기분 좋게 미소를 지었다. 근래 지었던 웃음 중 가장 환한 웃음이었다. 닭꼬치 하나가 나무토막으로 돌아오자, 나카하라는 소금구이 닭꼬치를 하나 더 집어 들었다. 번들거리는 기름에 느끼할 만도 한데, 아작거리는 대파와 함께 느끼함이 한 수를 접고 들어간 듯했다. 나카하라는 짭조름한 입가를 훑으며 맥주를 홀짝거렸다. 그렇게 두 번째 닭꼬치를 절반 정도 먹었을 때쯤, 갑자기 바로 앞 현관이 열리며 알지 못하는 남자가 현관문을 활짝 연 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나카하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이 놀란 얼굴이었다. 나카하라는 그 영문 모를 남자가 서 있는 현관 쪽을 바라보며 입안 가득 닭꼬치를 물고 있었다. 조금 웃기는 상황이었지만 곧바로 소리치지 못한 그는, 빠르게 입안에 든 음식을 삼키고 당황한 기색을 감출 새도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누구인지 물었다. 하지만 나카하라의 질문 대신 남자는 다른 질문을 던졌다.

나카하라 아주머니네 아들인가요?”

그런데요. 댁은 누구신지?”

남자는 이제야 안도했는지 익숙하게 현관을 닫고 집 안으로 들어와 나카하라의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본 그는 이런 시골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수려한 외모였다. 나가서 연예인이나 할 것이지 이런 시골에서 뭐 하는 거래. 나카하라는 입에 남은 파 조각을 씹으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고, 그 남자는 아무런 말 없이 나카하라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색한 시간이 몇십 초 흘렀을 때, 남자의 시선은 두 접시나 나온 닭꼬치로 향해있었다. 나카하라는 닭꼬치와 남자를 번갈아 보다가, 자신에 손에 들려있던 마지막 닭고기 조각을 입에 물었다.

먹고 가도 돼요?”

댁은 누구냐니까요. 그리고 우리 엄마 알아요?”

, 저는 다자이 오사무입니다. 여기 건너편에서 허브농원을 하고 있는데. 일단 먹으면서 설명하면 안 될까요?”

나카하라가 대답할 새도 없이 다자이는 그의 앞에 앉아서 웃어 보였다. 나카하라는 어처구니가 없는 이 상황에서 헛웃음을 지으며 굶었습니까? 하나 드세요.’라고 말하며 소금구이 하나를 건넸다.

간장 찍어 먹어도 돼요?”

그럼 이걸로 먹어요. 여기 소스.”

얻어먹는 주제에 별걸 다 찾네. 나카하라는 자신이 먹던 간장 소스를 그의 앞으로 밀어주었다. 다자이는 조심히 간장 소스를 찍어 닭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부드럽게 찢어지는 닭고기가 유독 맛있어 보이는지, 나카하라는 그가 먹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자이는 닭꼬치를 우물거리다 자신을 바라보는 나카하라에게 맛있네요. 아주머니가 하시던 거랑은 조금 다르지만.’이라고 말하며 남은 닭고기 조각을 파와 함께 입에 물었다. 나카하라는 자신의 모친을 잘 안다는 듯이 말하는 이 다자이라는 남자가 미심쩍기 그지없었다. 아니, 나도 모르는 엄마 닭꼬치 요리법을 지가 어떻게 안다고? 나카하라는 비웃음이 가득 담긴 얼굴을 하고는 그를 바라보며 먹기 싫어요?’라고 말하며 위협적으로 닭꼬치를 뺏으려 했다. 하지만 다자이는 가볍게 그의 손을 피하고 다시 간장 소스를 찍어 닭고기를 입에 물었다.

원통형 소스 통 없어요? 그걸로 먹어야 좋은데.”

그냥 이렇게 먹어요. 애도 아니고. 그래서 우리 엄마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인 건데요?”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는 듯이 닭고기를 씹었다. 여러 번 되새김질하듯 아주 꼭꼭 씹던 다자이는, ‘그냥 상부상조하던 사이에요. 물론 제가 먼저 신세를 지긴 했지만요.’라고 답하며 대파를 쏙 빼먹었다. 나카하라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상부상조요?’라고 되물었다. 궁금한 것이 쏟아지는 나카하라와는 다르게, 다자이는 닭꼬치를 다 먹기 전까지는 대화에 집중하지 않을 모양새였다. 나카하라는 마음속으로 '참을 인' 자를 새기며 그가 마지막 조각을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다자이는 마지막 닭고기를 먹으며 이야기하자면 길지만으로 운을 띄웠다.

조금 안 좋은 일을 하다가 도망치고 있었는데. 이왕이면 잡혀서 죽어도 친구가 좋아하던 바다 근처인 인적 드문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곳으로 왔거든요. 근데 일주일간 빵 한 쪽 가지고 다녔더니 굶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나카하라 아주머니가 살려주셨어요.”

나 생각보다 위험한 사람을 들인 거 아닐까. 나카하라는 아무렇지 않게 소금구이 닭꼬치를 들어 먹기 시작한 다자이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자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에게 그때도 씻고 나오니까 닭꼬치 하나 쥐여 주셨었는데 말이죠.’라고 중얼거리며 닭꼬치를 한입 베어 물었다. 나카하라는 추억을 회상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공짜로 배를 채울 수 있어서 좋은 것인지 모르겠는 다자이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콧노래까지 부르며 신나하던 다자이는 닭꼬치에서 큰 파 조각을 골라내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나카하라에게 물었다.

, 그럼 이름이 츄야이려나?”

그건 또 어떻게 아는 겁니까?”

그때 처음 먹었던 닭꼬치가 츄야가 취업한 날이라서 하신 거였던 게 기억이 나서요. 그쪽이 츄야 맞죠?”

츄야. 다자이는 기름기로 살짝 번들거려진 입술로 천천히 발음을 내뱉었다. 기분 좋은 미소를 띈 눈꼬리가 퍽 예쁘게 휘어지는 것이 나카하라의 눈에 들어왔다. 나카하라는 어머니가 도시로 나간 자신의 취업을 축하해주었다는 것에 뭉클해지기도 전에 그가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통에 그냥 나카하라라고 불러요!’라고 소리치며 접시를 그의 앞에 밀어주었다. 이왕 많이 한 거 같이 먹을 사람이 있는 게 낫겠지. 합리화라도 하듯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던 나카하라는 이제는 당당하게 자신의 것이라도 되는 양 닭꼬치를 먹는 다자이에게 먹고 집으로 가요. 내일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찾아갈테니까 연락처 좀 주시고요.’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닭꼬치 하나를 끝내고 막대를 테이블에 내려두었다.

여기, 사실 내 집인데.”

뭔 소리야 그건 또.”

나카하라는 웃으며 말하는 다자이에게 코웃음을 치며 닭꼬치를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물었다. 다자이는 정말 믿지 않는 듯이 보이는 나카하라에게 유언장 못 봤어요?’라고 물으며 간장소스를 듬뿍 묻힌 닭꼬치를 한입에 넣었다. 나카하라는 유언장을 보지 못했다. ‘이게 엄마가 남긴 전부란다, 사랑한다 츄야.’라고 적힌 편지에는 유언장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기 때문에, 그저 조촐한 장례식을 치르고 빠르게 현실로 몸을 돌렸었다. 나카하라의 모친이 남긴 것은 자신의 장례 비용과 그리고 차곡차곡 모았었던 큰 금액의 저축. 그리고 코팅되어있던 연락처가 들어 있던 작은 편지 봉투 하나.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오기 전에 전부 들이켰던 캔맥주의 취기 때문인지 어질거려지는 머리를 부여잡고 다시 유언장이요?’라고 되물었다.

. 아주머니가 다른 건 몰라도 이곳은 제가 관리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서요. 물론 바로 앞에 집이 있지만, 아주머니 계실 때는 여기서 살다시피 해서 저는 상관없었어요.”

이왕 들락거릴 거라면 제 앞이어야 할 거라고 하시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명의를 변경해주시더라고요.’ , 엄마. 왜 하필. 나카하라는 크게 한숨을 내쉬려다 입술을 깨물어 참았다. 생각을 하자 생각. 그럼 다시 그 좁디좁은 자취방으로 올라가야 하나. 아니, 이 남자한테 사정사정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으려나? 푸른 빛이 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을 하던 나카하라는 갑자기 다자이가 웃기 시작하자 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다자이는 키득거림을 넘어 그대로 크게 웃음을 뱉어내고 있었다.

왜요, 사람이 난감한 거 보니까 웃깁니까?”

아하하, 아뇨. 그냥 아주머니랑 진짜 닮아서요. 아주머니도 요리를 세 가지 이상하실 때 매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생각하시더라고요.”

나카하라는 그가 자신의 모친에 대해 시답지 않은 것까지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자신도 잘 모르는 습관까지도. 다자이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그냥 여기서 지내요. 나는 잘 곳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쪽은 아주머니 아들인데요.’라고 말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는 아직도 웃음이 멈추지 않은 듯이 드문드문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마지못해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왜 당연한 걸 선심 쓴다는 듯이 말하는 것 같지. 나카하라는 마음속에 남은 찜찜함을 뒤로 한 채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 공짜는 아니고 조건이 있어요.”

뭔데요. 이상한거면 저 그냥 나갑니다.”

나카하라는 갑자기 조건을 내거는 다자이의 말에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하며 팔짱을 낀 채,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다자이는 별거 아니라고 대꾸하며 자신의 저녁밥을 간간히 해주고, 집 앞에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 줬으면 좋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나카하라는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들어주지 못할 조건은 아니었기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다자이는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내뱉고는 이제 저녁 걱정은 없겠다며 환한 웃음을 내비쳤다. 아니, 허브농원씩이나 하는 인간이 채소나 저녁은 사 먹으면 되잖아. 나카하라는 그의 웃는 얼굴에 침을 뱉듯 이 말을 내뱉을지 잠시간 고민했지만, 아주 조금 남은 사회생활의 잔재를 이용해 참아내었다. 아직 모르는 게 많은 이 남자는 자신에게 밥을 얻어먹게 된 것이 마냥 기분이 좋은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돈은 이제 어디서 벌지. 나카하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하자고 생각하며 악수를 청하는 다자이의 손을 덥석 잡아 흔들었다. 그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어서 움직여야 했다. 도망쳐온 도시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면 나카하라는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잘 부탁해요, 츄야.”

언제 봤다고 츄야야 츄야는.”

, 우리 말 놓을까? 츄야가 먼저 놓았으니까 나도 놓을께

나카하라의 눈에 다자이는 한없이 대책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런 대책 없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사납게 말하는 자신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치며 남은 닭꼬치를 먹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아까의 적막이 생각나면서도 그의 등장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았다. 수프로 끓어버리려고 노력한 외로움이 단박에 닭꼬치에 꽂혀 누군가의 배 속으로 사라진 기분이었다. 아직 잘 알지 못하는 이 남자는, 순식간에 자신과 모친의 공간이었던 이곳에 들어왔다. 엄마도 이래서 못 내쫓은 거 아닐까. 다자이가 자신의 집에서 더 가져온 맥주를 홀짝거리며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그 많던 닭꼬치 더미 중 마지막 꼬치를 먹는 다자이를 보며 생각했다. 도망쳐온 시골에서 보내는 겨울 첫날밤치고 무척 따뜻해서, 나카하라는 굳이 이불을 두르고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길고 긴 겨울밤이 집 앞 소나무를 훑고 지나가고, 다자이는 여전히 달과 같이 미소를 띤 채 술에 취해 주절거리는 나카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그 미소를 마주 보며 자신도 헤실거리는 미소로 마주했다. 편안함에 몸을 맡긴 채, 그는 도시에서는 겪을 수 없던 따뜻한 겨울밤을 보냈다.

 

posted by 송화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