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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했다. 별이 우수수 떨어질 것처럼 뜨던 마을도 그 날만 되면 별 하나 없이 보름달만 덩그러니 떠있었다. 항상 달빛에 의지해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는, 그날따라 엄숙한 표정으로 대화하는 부모님의 눈치를 살피며 마당 구석에서 나뭇가지로 그림자를 따라 그리며 놀고 있었다. 그러기를 몇 십분, 자신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빠른 걸음으로 가자, 그녀는 아이의 입에 설탕과자를 물리며 말했다.
“아가, 목욕하자.”
오랜만에 하는 밤 목욕에 고개를 끄덕거리던 하나마키는 달달한 향이 나는 욕간에 들어가 앉았다. 아이의 어머니는 그가 씻는 것을 바라보며 머리를 연신 쓸어주었다. 욕간에 띄워놓은 꽃잎들로 장난치듯 물장구를 치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그의 몸 구석구석을 닦아내었다.
“어머니, 오늘은 무슨 좋은 날이어요?”
하나마키가 해맑은 목소리로 묻자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매일매일 같은 나날이지. 우리 예쁜 히로.’ 라고 답해주었다. 몸을 씻은 하나마키는 부드러운 명주 천으로 몸이 닦여졌다. 그리고 부드러운 피부에 기름을 잘 펴 발라 피부가 맨질맨질 해지도록 한 뒤, 평소 입던 옷과는 다른 비단옷들이 겹겹이 입혀졌다. 그의 어머니는 옷을 입히며 입술을 연신 깨물었다.
“어머니?”
그는 옷을 보며 머리를 갸웃했다. 평소 입던 옷이 아닌 펄럭이는 비단 옷. 게다가 금실로 수놓아진 무늬까지 화려하여, 아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여기 어서 앉아 보거라.”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이를 끌어 앉혀서는 얼굴에 분칠을 하고 눈에 색 분을 얹었다. 붉은 색의 분이 그의 분홍빛 머리와 잘 어울렸다. 화장까지 마친 아이의 머리카락을 곱게 묶고 틀어 올려 다시금 묶은 뒤, 소나무 가지같이 뻗어 올라간 비녀를 꽂았다. 그러고는 그녀가 하던 분홍빛 자개가 박힌 뒤꽂이를 빼내어 같이 꽂아주었다.
“내 아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아가.”
그녀의 울음 섞인 말에 일어나 그녀를 마주보았다. 가만히 안겨있던 아이도 자신이 무슨 상황에 놓였는지 짐작하는 것 같았다. 들어올 때 보였던 대문 앞에 꽂힌 푸른색 화살이 그 이유였을 것이라. 아이는 연신 울음을 삼키는 어머니를 토닥여 주었다.
***
시간이 지나 자정이 되자, 대문 밖으로 푸른색 가마가 하나가 왔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를 배웅하며 가마에 오르는 것을 도와주자 하나마키가 미소 지으며 어머니의 볼을 쓰다듬었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는 돌아올 거예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삼키던 그녀는 결국 울음을 터트려 버렸다. 그녀의 눈물을 연신 닦아주던 하나마키는 출발하는 가마에 손을 거뒀다. 그리고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뒤를 바라보았다. 가마는 마을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섰다. 산을 하나 넘고 두 개를 너머서면서도 가마꾼들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이때까지 보았던 나무 중에서 가장 큰 나무의 앞이었다. 가마꾼들은 가마를 나무 앞에 놓고는 돌아갔다. 하루 반나절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채 이동한 하나마키는 눈앞이 희끄무레했다. 게다가 가마는 밖에서 열지 않으면 열리지 않는 구조여서 인지 혼자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하나마키는 그저 천천히 호흡에 집중했다. 가마의 조그만 창밖으로 숲의 향기가 느껴졌다. 청량한 향에 가만히 눈동자를 굴려 밖을 바라보지만 산짐승 하나 기척이 없어 한숨만을 내쉬며 가마 벽에 기대었다. 몸은 많은 천들에 감싸여있어서인지 답답했고 기력이 없어 손가락 하나 까닥 할 수 없었다. 하나마키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잠을 청하는 일 뿐이었다.
***
“맛층, 인간들이 너를 너무 사랑하나 본데. 또 뭘 보냈어.”
‘이게 벌써 몇 명 째야.’ 나무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하는 오이카와의 말에 나뭇잎을 접어 풀피리를 만든 마츠카와라 불린 사내가 나무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냥 내버려둬. 이번에도 굶어 죽게. 그게 그 아이에게도 좋을 걸.”
마츠카와는 자신이 만든 풀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희미하게 들리는 풀피리 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는 가마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럴 운명이 아닌 것 같은데.”
오이카와의 중얼거림이 들리지 않았는지, 마츠카와는 풀피리만 계속 불어댈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소맷자락에서 꺼낸 천도복숭아를 베어 먹으며 가마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의 기척을 읽었다. 마츠카와가 풀피리에 흥미를 잃고 산 짐승들을 돌보거나 책을 읽다 졸음이 찾아올 무렵, 아이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던 오이카와는 하늘로 돌아가자는 마츠카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맛층, 내일도 여기 올 거지?”
오이카와의 물음에 마츠카와는 잠시 생각하다가 끄덕였다. 오이카와는 그에게 잠시 기다리라 말하고는 나무 밑으로 내려가 가마 안으로 천도복숭아 두 개를 넣어주었다.
“죽지 마렴. 네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야, 꼬맹이.”
낮선 목소리에 살며시 눈을 뜬 아이에게 웃어준 오이카와는 다시 나무위로 올라가 마츠카와가 열어둔 하늘 문으로 들어갔다.
“답지 않게 인정이라도 생긴거냐, 오이카와?”
마츠카와의 물음에 ‘오이카와씨가 자비롭지 않았던 적이 있었나-’ 라며 너스레를 떨던 오이카와는 은 접시에 담긴 살구를 집어 한 입 베어물었다.
“네가 나에게 온 공물을 챙기는 건 처음 봐서.”
마츠카와가 서책을 뒤적이며 말하자 오이카와는 흘리듯이 그에게 말했다
“신기한 운명 이길래, 조금 눈여겨봤어.”
“무슨 운명 이길래.”
오이카와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들어온 사내가 오이카와에게 되물었다.
“이와쨩! 엿들은 거야? 그런 취미 별로 좋지 않다고-.”
오이카와의 타박에 아랑곳 하지 않으며 가지고 온 서책들을 책상위에 차곡차곡 쌓아둔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말했다.
“네가 관심이 가면 뭔가 불길하다고.”
오이카와는 싸늘한 그의 말에 볼을 부풀리며 아이처럼 그에게 매달렸다.
“이와쨩-. 나 이래봬도 운명의 신이라고? 너무한 거 아니야-?”
칭얼대는 목소리로 말하며 이와이즈미의 목에 팔을 감아 안자 이와이즈미는 거슬린다는 듯이 팔꿈치를 그의 복부에 찔러 넣었다.
“이와이즈미, 너무 그러지마. 나는 오이카와가 저렇게 관심을 가지는 건 너 이후로 한 번도 본적이 없어서 흥미로운데.”
마츠카와가 읽던 서책을 덮고 이와이즈미가 쌓아둔 책 위로 올려두며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혀를 차며 ‘그게 뭐 좋은 거라고 흥미를 가지냐. 악취미네.’ 라 중얼거리고는 책 안 쪽에 도장을 찍었다. 오이카와는 둘의 대화에, 너무하다는 말을 하곤 융단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래서 무슨 운명이냐니까.”
천도복숭아를 와작소리를 내며 먹은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다시 물었다. 오이카와는 안 말해 줄 거라며 혼자 토라진 듯이 소파의 벽 쪽을 보며 있다가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다시 돌아 누웠다.
“내 눈에는 운명의 실이 보여. 그 사람이 얼마나 살지, 누굴 만날지, 누구와 사랑할지, 내 물레에 돌려보면 대충 각이 선단 말이지?”
오이카와의 설명에 이와이즈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것만 몇 번을 말하는 거야. 살면서 수 백번은 들었을 거다.’ 라 말했다. 오이카와는 그의 말을 넘기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신이잖아? 그러니까 실도 은 색 실로 되어있고, 영생을 살아가니까 더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어. 그리고 우리는 운명의 상대도 은색실로 이어져 있고 말이지.”
오이카와는 연설을 하듯이 큰 동작으로 자신이 말하는 것에 집중시켰다. 물론 다들 별로 관심 없다는 듯이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듣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네가 줄곧 설명해서 우리도 알아.”
‘그래서 그 아이는.’ 마츠카와가 재촉하듯이 묻자 오이카와는 몸을 편하게 돌려 누웠다.
“그 아이도 은색 실이었어.”
놀란 눈을 한 마츠카와와 이와이즈미를 보며 ‘꽤 흥미로운 일이지?’라 말하며 웃은 오이카와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서 아이의 가마에 천도복숭아를 넣어두고 왔어.”
오이카와의 폭탄선언에 이와이즈미가 들고 있던 다 먹어 가는 천도복숭아를 떨어트렸다. 마츠카와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오이카와의 발언에 멍하니 오이카와를 바라보다가 헛웃음만 낼 뿐이었다.
“야! 죽으면 그 아이 운명이라 치지만 은색 실이라며! 그러면 우리가 데려와야 하잖아!”
이와이즈미의 고함에 오이카와는 잔소리 듣기 싫다는 듯, 귀를 막았다. 그러고는 손사래를 치며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와쨩, 아무리 은색 실이라지만 천도복숭아를 먹고 버틴 ‘사람’은 없다는 거. 알잖아? 우리에게만 그냥 복숭아지 사람들에게는 독이 든 열매 같은 거라고-.”
‘그냥 내림굿을 아직 받지 않은 무당일 수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 말자고~’ 태평하게 이야기하는 오이카와의 말에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이와이즈미는 마츠카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네 공물이잖아. 그럼 그 아이의 은색 실이 너와 이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겠네.”
이와이즈미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마츠카와는 코웃음을 치며 ‘아이가 살아 있을 리 없잖아 이와이즈미.’라며 손사래를 쳤다. 마츠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와 오이카와, 두 사람은 무언의 동의를 하며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
그 시각 하나마키는 새벽의 추위에 눈을 떴다. 옷을 아무리 겹겹이 입고 있다 해도 느껴지는 숲의 추위는 무척이나 매서웠다. 하나마키는 손을 마주 비비며 옷자락을 더욱 여며다가 옷 위에서 나뒹굴던 열매를 발견했다. 어두운 가마 안에서 작은 창을 열어 새벽빛을 받는 열매를 확인했다. 복숭아처럼 발갛게 익은 열매에 하나마키는 열매를 몇 번 매만지더니 그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달달한 물이 입 안 가득 퍼지고 아삭거리는 과육을 씹자 허기가 심히 느껴졌다. 하나를 다 먹어갈 무렵 다시 보이는 다른 복숭아를 빈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다 먹은 씨앗을 창문 밖으로 버렸다. 하나마키는 손에 쥐고 있는 복숭아를 보다가 그것을 소매 안에 넣어 두고는 몸을 웅크렸다. 허기가 조금 가시자, 피로한 몸을 누르듯 잠이 몰려왔다. 하나마키는 꾸벅거리며 졸다가 무릎에 머리를 기대어 잠을 청했다.
***
하나마키를 깨운 것은 낯선 목소리들이었다.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하나마키는 게슴츠레 눈을 떴다. 하늘빛 도포를 걸친 남자가 짙은 녹색 도포를 입은 남자에게 어서 열어보라는 듯이 부추기고 있었다. 녹색 도포를 입은 남자는 마지못해 머리를 긁적이다가 땅에 떨어진 무언가를 발견하자 표정이 무섭게 굳었다.
“야, 오이카와. 복숭아 벌써 먹었다.”
마츠카와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오이카와는 ‘어디어디?’하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다가왔다. 풀잎사이로 보이는 큰 복숭아 씨앗에 오이카와는 한숨을 내쉬었다.
“죽었겠네. 묻어줘야 하니까 어서 열어봐 맛층.”
마츠카와는 오이카와의 말에 내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잔뜩 좁힌 채 가마 문을 열었다. 하나마키는 가마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뜨고는 아직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을 끔뻑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그런 하나마키의 한 마디에 마츠카와와 오이카와의 낯빛은 흙색으로 물들었고, 당혹감을 숨길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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