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바람이 분다

마츠하나 2016. 12. 10. 05:24

바람이 분다.

창문이 덜컹댄다.

거 누가 날 찾아왔소?

하늘 끝에서런 듯

한 소절의 비명소리.

나태주-바람이 분다

 

 

하늘하늘 부는 바람에도 더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는 아름다웠지만 더위에 그조차 생각하기 힘들었다. 마츠카와는 마루에서 정원을 내다보았다. 여름은 간간히 피는 꽃들 빼고는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나무 대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츠카와는 천천히 대문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자주 오는 집이 아니다 보니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만, 예의 차리듯 누구세요 라고 물으니 익숙하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 골목을 꺾으면 있는 벚나무가 흐드러진 집에 사는 하나마키씨가 수박을 샀다며 조금 잘라 들고 오셨다. 한시 괜찮다고 말하는 데도 들으시지 않을 것을 아니 같이 드시는 건 어떻겠냐며 안으로 모셨다. 요즘은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평소같이 대답했다. 하나마키씨는 익숙하다는 듯이 마루가 아닌 방으로가 사진 앞에 놓인 향로에 향을 하나 피워 넣고는 합장으로 했다. 중요한 의식이라도 된다는 듯이 오래 합장을 한 뒤 일어난 그녀는 조용히 창문을 열어둔 거실 탁자에 수박을 올려두고 앉았다.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금방 갈 건데 뭘 그러냐며 만류하는 그녀의 말에도 부엌으로가 녹차를 타왔다. 그리고 조그만 다과그릇에 평소에 그녀가 즐겨먹던 생각과자도 조그맣게 담아 가져가니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미소 지어 왔다. 남자 혼자 사는데 청소할만하냐고 묻는 그녀를 먼지는 자주 털어 준다고 안심시킨 뒤 웃었다.

“아주머니도 가끔 와서 청소해 주시고 아저씨들도 정원 가꾸러 자주 오시니까 말이죠.”

그녀는 그건 우리 일이었으니까 놓을 수가 없는 거지, 라고 쓸쓸히 말했다. 그녀는 꽤나 지난 일이지만 회상하듯 집 안을 바라 봤다.

“가실 때도 우리를 챙겨주셨으니까. 평생 은인이나 다름없으시지.”

집안을 다 둘러본 그녀는 차를 호록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래서 내가 여기 자주 오는 거 아니니 하며 웃어 보였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그녀는 용무가 있었는지 말할 것이 있었다며 마츠카와를 친근히 불렀다.

“잇세이, 내 아들 본 적 있지? 타카히로”

그녀의 말에 예전에 많이 놀아 줬죠 하며 끄덕였다. 어릴 때 자주 놀러 오다가 자신이 머리가 크니 자연스레 멀어 졌던 어린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지금 와서 왜 그러시는 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 이번에 수험생이 됐는데. 집에서는 좀처럼 공부 하는 걸 못 봐서. 잇세이가 글 쓸 때 옆에 데려다 두고 있으면서 공부하는 거라도 봐줄 수 있을 까 해서 물어 보러 왔어.”

괜찮니? 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아들에 대한 염려가 서려있었다. 그녀의 말에 이제는 쓸 글은 없지만 신작 준비 할 때 옆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마츠카와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내일부터 부탁해도 될까 잇세이? 네게 폐 끼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라고 말하는 그녀는 고맙다며 웃었다. 대문을 나가면서도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조심해서 들어가시라고 인사했다.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대청마루로 가서 앉았다. 아까보다 해가 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나마키 타카히로…… 이름을 중얼거리는 그는 그 하나가 그 하나인가 하며 꽃을 바라봤다. 분홍머리. 그는 분홍머리에 동그란 뒤통수를 웃었다. 지금 수험생이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라고 중얼거린 그는 나이를 세어보며 고개를 저었다.

“ 늙어가는 걸 한탄해봤자 지.”

늙은이 같이 중얼거린 그는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저물어 가는 하늘의 색이 그 아이의 머리색을 생각나게 했다. 더욱 어두워져 오는 하늘에 가만히 창문을 닫고 안의 불을 켰다. 그러자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오셨나하고 천천히 나가자 기다리지 못해 마츠카와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마츠카와가 대문을 열자 분홍빛 머리 앞에 서있었다.

“어... 아저씨......?”

큰 반 찬 통을 든 아이가 마츠카와를 보며 말했다. 순간 얼굴을 굳혀 오자 아이는 흠칫 놀랐다.

“엄마가 가져다 드리라고 하셔서요.…….내일부터 오게 될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아이는 반찬 통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런 뒤 아이는 머뭇거리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갔다. 마츠카와는 돌아가는 분홍빛 뒤통수를 눈을 떼지 못한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짜 분홍색이네......”

중얼거린 그는 아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뒤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지는 하늘 끝에 구름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시원해진 바람에 다시 창을 연 마츠카와는 산 끝자락에 걸린 분홍빛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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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송화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