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시골의 밤에는 별빛이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밤이 깊어갈수록, 쏟아지는 별빛에 압사할 것만 같아 초반에는 오래 올려다 볼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하늘을 보면서 걸을 수 있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는 눈을 뗄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말이다.
“그러다가 넘어지면 놓고 갈 거야.”
자신을 보라는 듯 한 하나마키의 목소리는 장난스러웠다. 하늘에서 눈을 떼고 그를 바라보자 눈부신 웃음으로 답하는 하나마키가 있었다.
“같이 걸으면서 하늘만 보는 건 뭐야. 나는 안보고 싶어?”
장난스럽게 말하는 말에 사랑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사랑스럽게 자신을 봐 달라 하는 그의 말에 ‘이제부터는 너만 봐야지’ 하며 웃었다. 항상 그와 헤어지는 것은 하루가 다 지나간 늦은 저녁이었지만, 언제나 아쉬웠다. 집에 돌아가면 괜히 아른 거리는 핑크색 머리카락과, 자신을 온전히 봐주던 맑은 눈동자 생각이 났다.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항상 헤어질 때 아쉬워 죽을 것 같은 표정을 하면, 하나마키는 웃으며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 진다며 타박했다.
“헤어지기 싫어.”
그에게 아무렇지 않게 어깨동무를 하고 말하자 ‘어째 매일 똑같이 그러냐.’라고 묻는 말에 그저 웃어 보였다.
“ 질리지가 않아. 매일매일 보는데도.”
그 말에 하나마키는 잠시 당황한 듯 멍하니 보다가 고개를 돌려버렸다. 마츠카와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하나마키는 붉어진 얼굴을 반쯤 가려서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무렇지 않게 부끄러운 말을 잘도 한다며 웃어온 건 조금 진정된 후였다. 다 와가는 하나마키 집에 마츠카와는 조금 조급해졌다. 마츠카와는 분홍색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주며 하나마키를 바라보았다.
“이런 걸 사랑이라고 하지 않아?”
마츠카와의 말에 하나마키의 눈이 커졌다. 하나마키가 고개를 옆으로 돌려 마츠카와를 보자 진지한 눈동자가 자신을 꽤 뚫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 사이에도 이런 감정은 있지.”
얼버무리려던 하나마키의 목소리는 떨려왔다. 긴장한 투가 역력히 드러나 조금 안쓰러웠다.
“너도 나랑 같이 있을 때는 기분이 좋다고 했잖아. 뭔가 간질하고 더 같이 있고 싶고,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아까 고개를 돌려서 보지 못했던 하나마키의 새빨간 얼굴이 지금에서야 보였다. 하나마키는 당황했는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거리기만 했다. 그것마저도 멈추고는 가만히 마츠카와를 바라봤다.
“나도 너랑 같이 있으면 간질거려, 너무 간질거려서 고통스러울 때도 있어.”
다시금 말을 이어가는 마츠카와를 보며 하나마키는 눈을 피했다.
“제일 좋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너고 제일 슬플 때도 네 생각을해. 그래야 내 기분이 좋아지니까.”
덤덤하게 이어나가는 마츠카와의 말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숙였다.
“네 생각을 하면 하루가 좋아. 항상 그랬어.”
하나마키는 흐느끼는 것 같았다. 어깨를 들썩였다. 한발자국 앞에 있는 그를 가서 안아주었다.
“이렇게 고백을 갑자기 하면 안 됐는데, 미안해.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용기가 안 날 것 같았어.”
그를 달래는 마츠카와의 목소리에는 다정이 흘러 넘쳤다. 그런 목소리에 더욱 어깨를 들썩이던 하나마키는 그대로 그를 안아왔다. 품에 안겨 몇 분을 보낸 하나마키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나도... 네 생각이랑 같은 생각을 해왔어.”
훌쩍임을 멈추지 못하고 연신 울먹이는 하나마키는 힘들게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차마 말할 수가 없었어. 네가 싫어 할 까봐.”
이 부분에서 하나마키는 오열할 듯이 미간을 좁히며 눈물을 참아왔다. 그런 하나마키의 얼굴에 마츠카와는 자신의 옷소매로 하나마키의 얼굴을 살살 닦아내주었다.
“ 내가 어떻게 미워해.”
마츠카와는 안심했다. 자신과 같은 생각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잔뜩 굳어져 있던 어깨에 힘이 풀렸다. 하나마키가 우는 데도 기쁨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항상 앞에 선을 두고 당기고 밀고 하던 끈이 뚝하고 끊어진 기분이었다. 속이 시원하고 이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다.
“짜증나게 여기거나 하지는 않을까, 잠깐 놀아 줬다고 기고만장해진 거냐고 할까봐 걱정했어.”
“내가 어떻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해.“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말에 놀라 바로 대답하고는 볼을 살살 쓸어주며 눈물을 닦아 내주었다. 도대체 자신이 어떻게 보였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한 마츠카와는 다시 하나마키를 안아왔다. 거의 훌쩍임이 잦아들자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보지 마.”
이제야 창피한지 고개를 돌려 피하는 하나마키를 보며 사랑스럽다는 듯이 웃어왔다. 그리고 마츠카와의 사귈까? 하는 말에 다시금 하나마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이러는 거 보려고 놀리는 거지, 진짜.”
새빨개진 얼굴로 말하는 하나마키에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하고는 머리를 쓰다듬어 왔다. 하나마키는 부끄러운지 연신 눈을 피했다.
“평소에는 애교도 잘 부리면서, 이럴 때는 왜 그렇게 피해.”
마츠카와의 말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하며 성을 낸 하나마키는 붉어진 얼굴로 씩씩대었다. 하나마키는 뒤돌아서 먼저 걷기 시작했다.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지 먼저 걷는 하나마키를 따라잡아 같이 걸어가는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물었다.
“너는 어때.”
단박에 모른다고 대답하며 피하는 하나마키의 말에 별들이 다 봤는데도 거짓말 할 거냐며 놀리듯이 물었다. 조금 걷던 하나마키는 멈춰 서서는 마츠카와를 바라봤다.
“ 다 알면서 묻지 마... 괜히 부끄럽게, 대답 들으려고 계속 묻는 거 다 알아.”
하나마키의 새빨개진 얼굴로 툴툴대며 대답하자 마츠카와는 피식 웃어 보였다.
“듣고 싶어서 그랬어.”
다정하게 그를 안아오며 말하고는 동그란 머리를 연신 쓰다듬어 주었다. 잠시 토닥여주던 마츠카와는 손을 잡고 다시금 하나마키의 집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 이렇게 되면 집에 보내는 것도 안 아쉬울 줄 알았는데. 더 아쉽게 느껴지네.
바로 앞에 보이는 하나마키의 집에 마츠카와가 말하자 하나마키가 늦었으니까 조심히 들어가라며 마츠카와를 바라봤다.
“ 나도 아쉬워. 내일봐”
그 말을 하고 대문 안으로 사라진 하나마키는 대문 틈 사이로 마츠카와가 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마츠카와는 대문 밑으로 보이는 하나마키의 신발에 왜 들어가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하다가 피식 웃으며 뒤돌아섰다. 그리고 꽤나 멀어졌을 무렵 대문 밑에 운동화가 사라진 모습에 조금 더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마츠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왔구나.2 (0) | 2017.01.12 |
---|---|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 왔구나.1 (0) | 2017.01.06 |
3.화살기도 (0) | 2016.12.10 |
2.어여쁨 (0) | 2016.12.10 |
1.바람이 분다 (0) | 2016.12.10 |
글
아직도 남아있는 아름다운 일들을
이루게 하여 주소서
아직도 만나야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여 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할 때
네 얼굴이 떠올랐다
퍼뜩 놀라 그만 나는
눈을 뜨고 말았다.
화살기도-나태주
아이가 오고간 지도 꽉 채워 일주일이 되었다. 여름이 덮치듯 와 기승을 부렸다. 매미가 시끄럽게 울고 파란 하늘에는 바람 한 점 없었다. 선풍기에만 의지하고 있던 아이와 마츠카와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서려있었다.
“너무 더운데... 안 되겠다.”
마츠카와는 울리지 않던 풍경을 치우고 거실의 커다란 창을 닫았다. 그리고 집안과 어울리지 않게 우뚝 서 있는 에어컨을 틀었다. 한결 낫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앉은 그는 티셔츠를 펄럭거리고 있던 아이를 바라보았다.
“살 것 같다.”
아이는 동그란 이마를 굴러 떨어지는 땀을 닦아 냈다. 참기 힘들었는지 일어나 에어컨 앞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더위를 식혔다. 아이는 아주머니의 걱정과는 다르게 열심히 공부했다. 마츠카와는 아이가 공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학창시절까지 돌아볼 정도였다. 아이와 조금 친해 졌을 무렵엔 이런 것도 배우냐는 마츠카와의 말에 아이는 요즘은 더 어려워져서 시험 보기 힘들다고 푸념했었다. 에어컨 앞에서 더위를 식히고 온 아이는 더는 못하겠다고 퇴짜를 놓았다.
“간식이라도 먹을까?”
마츠카와의 말에 아이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의 끄덕임에 마츠카와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를 열었다. 과일은 다 먹었고, 아침에 먹는 플레인 요거트는 아이의 취향이 아니다. 아 그러고 보니. 잠시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냉동실을 열어 바로 앞에 놓여 있는 슈크림 봉투를 꺼냈다. 저번에 아이가 좋아하는 거라며 한 가득 사와 먹고 마츠카와의 몫으로 남겨둔 것이었다. 마츠카와는 봉투에 든 슈크림을 접시에 옮겨 담고 아이 앞에 놓았다. 더운 가운데 시원한 슈크림에서는 흰 연기가 났다. 아이는 슈크림을 보더니 기분 좋은지 마츠카와를 향해 환히 웃었다.
"저 이거 좋아하는 거 기억하셨네요?“
환히 웃으며 물어오는 아이에게 마츠카와는 저번에 한가득 먹던 게 인상 깊었다고 대답했다. 전에 볼에 가득 밀어 넣고 우물거리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마츠카와는 얼린 슈크림이 아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아이의 입으로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다 먹고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는 아이를 보며 마츠카와는 다음에는 더 많이 사다둬야겠다 생각했다.
"고맙습니다. 아저씨는 뭐가 좋아요? 단건 별로 안 좋아해요?"
아이는 슈크림을 먹어서인지 한층 밝은 톤으로 물었다. 마츠카와는 아저씨 아니고 형이라니까... 하고 중얼거리고는 아이의 질문에 고민했다.
"단건 모르겠고 치즈햄버거는 좋아해."
"입맛은 애 같네요"
단박에 날아오는 말에 피식 웃고 마츠카와는 자신이 번 돈으로 사먹으니까 상관없다고 받아 쳤다. 음식 취향은 꽤나 비슷했다. 단 것, 짠 것, 매운 것, 신 건 둘 다 자주 안 먹고, 쓴 건 마츠카와만 먹는 듯 했다.
"아, 엄마가 빨리 오랬는데."
마루에 걸린 시계를 보며 짧은 탄성을 내뱉은 아이는 서둘러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족과 다 같이 식사하는 날이라 신나 보이는 뒷모습이 조금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퍼뜩 자신의 생각이 징그럽다 생각한 마츠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저씨. 저 내일부터 시험이라 일찍 올 것 같아요."
신발을 꿰어 신은 아이의 말에 마츠카와는 끄덕이며 앞이나 잘 보고가라 배웅했다. 아이가 황급히 떠난 대문은 휑했다. 일찍 잘 준비를 하고마저 책을 읽을까 생각하던 마츠카와는 향을 피워 냄새가 밴 방으로 들어갔다. 다소곳이 놓인 사진에는 남자와 여자가 웃으며 서있었다. 마츠카와는 익숙하게 향을 피우고 꼽은 뒤 가만히 향의 연기가 올라오는 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마츠카와는 저녁일과를 마치고 몸을 씻기 전, 부모님께 문안 인사드리는 듯이 합장을 했다. 아무 말 없이, 두 손을 모으고 합장을 하던 그는 번쩍 눈을 떴다. 그리고는 잠시 당황한 듯 손을 내리고 사진을 바라보다가 그 자리를 피하듯 일어났다.
"뭐지... 더워서 허해진 건가..."
뒷목을 만지며 나온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아까의 이질감에 미간을 좁힌 그는 목욕을 마칠 때까지 기도를 방해한 무언가가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했다. 물을 한 잔 마시고 옷을 편하게 갈아입자 어둑한 밖에서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야, 늦은 시간에."
그의 중얼거림에는 불쾌함이 서려있었다. 밖으로 나가 대문을 열자 후덥지근한 바람에 땀방울이 잔뜩 흘러내린 아이가 큰 반찬통을 들고 서있었다.
"아저씨 아직 안 주무셨네요? 이거 엄마 심부름이에요."
고기를 먹다 온 건지 숯불 냄새와 고기 양념 냄새가 묻어있었다. 마츠카와는 아이가 안겨준 반찬 통을 옆으로 보며 무엇인지 물으려 했으나, 아이가 먼저 말했다.
"고기 재워둔 거래요. 그냥 구워 드시면 된다고 했어요."
아이에 말에 연신 끄덕이던 마츠카와는 아이를 똑바로 보았다. 그러자 아까 합장 때의 느낌에 멍하니 아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이는 멍하니 자신을 보는 마츠카와 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어... 어... 괜찮아."
마츠카와는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이는 늦었으니 안녕히 주무시라 말하고 몸을 돌려 집으로 뛰어갔다. 아이가 뛰어가는 뒷모습에서도 눈을 떼지 못하며 바라보던 마츠카와는 아이가 사라지자 반찬통과 아이가 사라진 길목을 번갈아 봤다. 하늘거리던 분홍빛 머리칼의 생각에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지 멍하니 있던 그는 대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반찬통을 집어넣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도 그는 왜 그 애 생각이 난 거냐는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밤이었다.
'마츠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왔구나.2 (0) | 2017.01.12 |
---|---|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 왔구나.1 (0) | 2017.01.06 |
[마츠하나]고백 (0) | 2017.01.05 |
2.어여쁨 (0) | 2016.12.10 |
1.바람이 분다 (0) | 2016.12.10 |
글
무얼 그리 빤히 바라보고
그러세요!
이쪽에서 보고 있다는 걸
안다는 말이다
제가 예쁘다는 걸
제가 먼저 알았다는 말이다.
어여쁨-나태주
다음날, 햇볕이 쨍쨍한 오후가 되자 그 아이가 다시 문을 두드렸다. 늦은 점심을 먹고 치우고 있던 터라 느릿하게 현관으로 나가자 어제 들었던 목소리가 마츠카와를 불렀다. 대문을 열자 햇빛을 받아 쨍한 아이의 분홍색 머리가 보였다. 대문을 두드리던 아이는 고개 숙이며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했다. 긴장한 어투였지만 신경 쓰지 않고 들어오라 한 뒤, 바람이 드는 마루에 앉혔다. 시원하게 잘라둔 수박을 가지고 나오자 조금 풀린 듯 한 표정에 웃음이 나왔다. 분홍색 머리는 나이 또래답게 짧고 단정하게 깎여있었고 피부는 하얀 편인 것 같았다. 남자치고는 예쁜 편이라고 생각하며 빤히 바라보자 슬슬 눈치를 보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저 뭐 묻었나요……."
우물쭈물하며 묻는 말에는 어색함이 서려 있었다. 그 말에 가만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어보인 뒤 아니란 한마디 해주자 다시 수박을 먹는데 집중하는 것 같았다. 일어나 책을 몇 권 집어 가져와 앞에서 읽자, 주변을 둘러보던 아이가 물었다.
"아저씨는 혼자 사시는 거예요?"
아저씨라는 호칭에 가만히 아이를 바라보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맑은 눈동자에 그저 질문에 대답만 해주었다. 그 질문을 시작으로 궁금한 것들이 보따리를 푼 것처럼 쏟아 져 나왔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시골은 너무 심심하지 않아요? 작가라고 들었는데 무슨 글 쓰세요? 아까까지 어색했던 말투는 거의 사라졌다. 그저 종알종알 입을 놀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근차근 대답을 해나가자 일일이 반응해왔다. 나이 이야기에는 생각보다 젊어서 놀라했고 그럼에도 이 시골이 좋다고 말하자 특이하다고 하였다. 친화력이 좋은 편인지 이리저리 떠들어 오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 아, 공부해야지."
아이는 여기에 온 목적이 생각났는지 자신의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책을 펼치고 작은 글씨가 빽빽이 쓰여 있는 페이지를 읽다가 말할 것이 다시 생각났는지 마츠카와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제 이름은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밝게 지은 미소에는 티 한 점 없이 고와보였다. 가만히 바라보던 마츠카와에게 다시 한 번 이름을 말해주고는 아저씨 이름도 말해 줘야죠, 라며 당돌하게 말했다.
“잇세이. 마츠카와 잇세이.”
자신의 대답이 만족스러운지 끄덕이고는 공부에 집중하는 듯 했다. 책을 내려다보고 있는 분홍색 정수리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이 닿는 곳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분홍 머리가 어제 본 하늘의 색과 유사했다. 머리카락 색으론 잘 나올 수 없는 하늘의 오묘한 색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아이에게는 위화감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동글한 정수리와 하얀 피부는 분홍빛의 머리색과 잘 어울렸다. 동그란 지구를 싸고 있는 구름과 같이 느껴져 피식 웃었다.
“아저씨 왜 자꾸 빤히 쳐다보고 그래요.”
자신의 눈을 의식하는지 책을 보면서도 연신 힐끔 이는 모습이 퍽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츠카와는 미안하다 말하고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마츠카와가 집중하자 아이도 힐끔 이는 것을 멈추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책 한 권을 거의 다 읽어 갈 무렵, 해는 한 풀 꺾여 산에 걸려 있었다. 아이는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라 생각하자 아이는 공부가 다 끝났는지 공책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정수리만큼 동글 거리는 콧잔등이 잠시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배고파요. 저 저녁도 먹고 가도 되요?”
당당한 아이의 말에, 배고프면 먹어야지 하며 일어난 마츠카와는 부엌으로 향했다. 어제 아이가 가져온 반찬, 샐러드용 채소, 나물, 읍내 마켓에서 산 냉동 햄버그. 냉장고를 뒤지며 이정도면 두 명은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냉동 햄버그부터 꺼내 두었다. 달군 후라이팬에 햄버그를 올려 굽고 채소를 다듬었다. 장아찌와 나물 반찬을 조금씩 옮겨 담고, 있는 밥을 퍼 식탁위에 올려뒀다. 햄버그가 지글 거리는 소리를 내니 어느 샌가 아이가 옆에 와있었다.
“햄버그다.”
후라이팬에서 익어가는 햄버그를 보며 말한 아이는 뒤집개로 햄버그 하나를 뒤집었다. 노릇하게 익은 햄버그에 나머지도 마저 뒤집은 아이는 기분 좋은지 콧노래를 불렀다. 채소를 다듬고, 물기를 털어내 접시에 나눠 담았다. 그리고 아이가 구운 노릇한 햄버그도 옆에 담고 식탁에 올려두었다.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먹어라.”
예의 상 인사를 하자 아이가 밝은 목소리로 잘 먹겠다 말하고는 젓가락을 들었다. 인사를 했음에도 마츠카와가 먼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기 시작하는 아이의 행동이 귀여운지 마츠카와는 미소 지었다.
“아저씨는 왜 아까부터 저를 빤히 보세요?”
어디 이상해요 저? 아이는 햄버그를 젓가락으로 가르며 물었다.
“아니 그냥 머리카락이……. 예뻐서?”
아이에게 많고 많던 이유 중에서 근본적인 이유를 말해주자 눈꼬리를 휘며 환히 미소지었다.
“그런 거였어요? 특이하기도하고 어렸을 때부터 많이들 예쁘다고 해주시더라고요.”
자신도 예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당연하게 말하자 마츠카와는 그랬겠네 하며 받아쳐주었다. 볼을 가득 채워가며 먹던 아이가 식사를 마쳤는지 젓가락을 내려놨다. 지던 해는 어제와 같은 빛을 내며 하늘을 물들여 갔다. 그 빛이 아이의 분홍빛 머리카락과 동화되어 빛났다. 그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아이는 가만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만 좀 보시라니까요.”
아이는 보지 말라 했지만 말투는 명백히 즐기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 말에 마주 미소 지어오며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시선을 뺏기지 않으려 노력하자 해는 빠르게 산 너머로 넘어가 버렸다.
'마츠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왔구나.2 (0) | 2017.01.12 |
---|---|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 왔구나.1 (0) | 2017.01.06 |
[마츠하나]고백 (0) | 2017.01.05 |
3.화살기도 (0) | 2016.12.10 |
1.바람이 분다 (0) | 2016.12.10 |
글
바람이 분다.
창문이 덜컹댄다.
거 누가 날 찾아왔소?
하늘 끝에서런 듯
한 소절의 비명소리.
나태주-바람이 분다
하늘하늘 부는 바람에도 더운 기운은 가시지 않았다. 풍경이 흔들리는 소리는 아름다웠지만 더위에 그조차 생각하기 힘들었다. 마츠카와는 마루에서 정원을 내다보았다. 여름은 간간히 피는 꽃들 빼고는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나무 대문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마츠카와는 천천히 대문으로 다가갔다. 사람이 자주 오는 집이 아니다 보니 오는 사람은 정해져 있지만, 예의 차리듯 누구세요 라고 물으니 익숙하고 경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옆 골목을 꺾으면 있는 벚나무가 흐드러진 집에 사는 하나마키씨가 수박을 샀다며 조금 잘라 들고 오셨다. 한시 괜찮다고 말하는 데도 들으시지 않을 것을 아니 같이 드시는 건 어떻겠냐며 안으로 모셨다. 요즘은 어떻게 사냐는 질문에 평소같이 대답했다. 하나마키씨는 익숙하다는 듯이 마루가 아닌 방으로가 사진 앞에 놓인 향로에 향을 하나 피워 넣고는 합장으로 했다. 중요한 의식이라도 된다는 듯이 오래 합장을 한 뒤 일어난 그녀는 조용히 창문을 열어둔 거실 탁자에 수박을 올려두고 앉았다.
“차라도 내오겠습니다.”
금방 갈 건데 뭘 그러냐며 만류하는 그녀의 말에도 부엌으로가 녹차를 타왔다. 그리고 조그만 다과그릇에 평소에 그녀가 즐겨먹던 생각과자도 조그맣게 담아 가져가니 기억해줘서 고맙다며 미소 지어 왔다. 남자 혼자 사는데 청소할만하냐고 묻는 그녀를 먼지는 자주 털어 준다고 안심시킨 뒤 웃었다.
“아주머니도 가끔 와서 청소해 주시고 아저씨들도 정원 가꾸러 자주 오시니까 말이죠.”
그녀는 그건 우리 일이었으니까 놓을 수가 없는 거지, 라고 쓸쓸히 말했다. 그녀는 꽤나 지난 일이지만 회상하듯 집 안을 바라 봤다.
“가실 때도 우리를 챙겨주셨으니까. 평생 은인이나 다름없으시지.”
집안을 다 둘러본 그녀는 차를 호록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그래서 내가 여기 자주 오는 거 아니니 하며 웃어 보였다. 여유롭게 차를 마시던 그녀는 용무가 있었는지 말할 것이 있었다며 마츠카와를 친근히 불렀다.
“잇세이, 내 아들 본 적 있지? 타카히로”
그녀의 말에 예전에 많이 놀아 줬죠 하며 끄덕였다. 어릴 때 자주 놀러 오다가 자신이 머리가 크니 자연스레 멀어 졌던 어린 아이였다. 그런 아이를 지금 와서 왜 그러시는 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말했다.
“ 이번에 수험생이 됐는데. 집에서는 좀처럼 공부 하는 걸 못 봐서. 잇세이가 글 쓸 때 옆에 데려다 두고 있으면서 공부하는 거라도 봐줄 수 있을 까 해서 물어 보러 왔어.”
괜찮니? 하는 그녀의 표정에는 아들에 대한 염려가 서려있었다. 그녀의 말에 이제는 쓸 글은 없지만 신작 준비 할 때 옆에서 공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마츠카와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럼 내일부터 부탁해도 될까 잇세이? 네게 폐 끼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라고 말하는 그녀는 고맙다며 웃었다. 대문을 나가면서도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에게 조심해서 들어가시라고 인사했다.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대청마루로 가서 앉았다. 아까보다 해가 져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나마키 타카히로…… 이름을 중얼거리는 그는 그 하나가 그 하나인가 하며 꽃을 바라봤다. 분홍머리. 그는 분홍머리에 동그란 뒤통수를 웃었다. 지금 수험생이라니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지라고 중얼거린 그는 나이를 세어보며 고개를 저었다.
“ 늙어가는 걸 한탄해봤자 지.”
늙은이 같이 중얼거린 그는 저물어 가는 하늘을 바라봤다. 저물어 가는 하늘의 색이 그 아이의 머리색을 생각나게 했다. 더욱 어두워져 오는 하늘에 가만히 창문을 닫고 안의 불을 켰다. 그러자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오셨나하고 천천히 나가자 기다리지 못해 마츠카와를 부르는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마츠카와가 대문을 열자 분홍빛 머리 앞에 서있었다.
“어... 아저씨......?”
큰 반 찬 통을 든 아이가 마츠카와를 보며 말했다. 순간 얼굴을 굳혀 오자 아이는 흠칫 놀랐다.
“엄마가 가져다 드리라고 하셔서요.…….내일부터 오게 될 하나마키 타카히로에요.”
아이는 반찬 통을 건네주며 말했다. 그런 뒤 아이는 머뭇거리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갔다. 마츠카와는 돌아가는 분홍빛 뒤통수를 눈을 떼지 못한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진짜 분홍색이네......”
중얼거린 그는 아이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본 뒤 다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두워지는 하늘 끝에 구름은 분홍빛을 띠고 있었다. 시원해진 바람에 다시 창을 연 마츠카와는 산 끝자락에 걸린 분홍빛 구름이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마츠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왔구나.2 (0) | 2017.01.12 |
---|---|
[마츠하나]산앵두가 굴러 왔구나.1 (0) | 2017.01.06 |
[마츠하나]고백 (0) | 2017.01.05 |
3.화살기도 (0) | 2016.12.10 |
2.어여쁨 (0) | 2016.12.10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