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나는 인간의 삶이란 것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자이는 그저 평소와 같이 임무를 마치고 본부로 돌아왔다. 밤부터 시달렸던 터라 물먹은 듯 피곤한 몸을 이끌어 엘리베이터를 타고는, 익숙한 층수를 눌렀다. ‘아, 오늘 임무 나간다고 했던가.’ 층수에 도착해 내려서야 방의 주인이 없다는 것이 기억 난 것인지, 뒷머리를 긁적거리던 다자이는 어쩌겠냐는 듯이 천천히 복도를 따라 걸었다. 방으로 찾아온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 츄야가 올 때 까지만 기다리자고 생각하며 양문으로 되어있는 무거운 목재 문을 당겼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이 이어지다 방에 들어서니 붉은 색 러그가 깔려있었다. 구둣발로 밟자 푹신한 느낌에 ‘호오,’라는 감탄사와 함께 좀 더 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저 넓은 원룸처럼 보이는 방에 침대, 침대 옆에 작은 서랍장과 옷장. 그리고 양 쪽 벽면을 전부 차지하고 있는 구두들. 다자이는 ‘하하, 개수가 더 늘은 것 같군.’이라 말하며 구두들이 가지런히 나열된 진열장에 다가섰다. 나카무라 츄야, 키 150. 한참 작은 키에 즐겨 신는 것은 하이힐, 즐겨 모으는 것은 양주와 하이힐, 좋아하는 것도 하이힐. 다자이는 요즘 들어 츄야가 많이 신었던 듯 한 검은 색 펌프스를 들어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제일 편안하다 했었나.’ 혼자 중얼거린 다자이는 천천히 옆으로 걸어가며 구두를 하나하나 구경했다. 마지막 진열대에 다다르자, 저번에 직접 사왔다고 자랑하던 화려한 장식의 구두가 눈에 띠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예쁘다고 했던 목소리가 귓가를 울릴 만큼 들어왔던 터라 다자이는 고개를 저었다. 다자이는 그 구두의 한 짝을 들었다. 평범해 보이는 검은색 스틸레토 힐, 그리고 뒤꿈치를 중심으로 금빛 나무 덩굴이 구두위에 자란 듯이 구두를 감싸고 있었다. 굽조차도 평범하지 않게 나무 덩굴이 감겨있는 모양새였다. ‘잘도 이런 걸 신고 다니는 군.’ 오탁이 아니라 이것으로도 사람하나는 죽일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자이는 구두를 손바닥 위에 똑바로 세워 올려놓고는 이리저리 빛을 비춰 보았다. 확실히 공예품이긴 한가보군. 고개를 끄덕이며 구두를 이리저리 뜯어보던 다자이는 밖에서 들려오는 또각거리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츄야다. 그렇지만 이미 늦은 듯했다. 다자이의 손바닥 위에 있던 구두는 그대로 대리석 바닥 위로 추락했다. 챙강. 둔탁한 소리가 나고, 구두는 그대로 대리석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이것이 처음에 말했던, 인간의 삶이란 것이 알 수 없는 이유였다. 하필 이럴 때. 또각거리는 소리는 더욱 커졌다. 다자이는 빠르게 구두를 집어 들어 손가락에 걸고는 뒷짐을 지었다.

“다자이-? 니가 여기 왜있어? 여기가 니 방이냐?”

방문이 열리자, 새벽 임무를 마치고 온 것 치고는 말끔한 모습의 츄야가 들어왔다. 꽤나 잔챙이 들이었는지 모자 안의 양 갈래 머리도 치마아래 훤히 들어나는 가터벨트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항상 들락날락거렸는데 뭐 어떤가. 아, 그런데 츄야. 오늘 일이 많았나?”

츄야는 평소와 달리 자신의 임무에 대해 물어보는 다자이를 기분 나쁘다는 듯이 흘겨보았다. 그러면서도 ‘니가 그걸 왜 묻는 건데.’라며 별거 아니었단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별로 안 피곤하겠군. 이것 보게.”

다자이는 부서진 구두를 츄야에게 보여주었다. 츄야는 코트를 옷장에 걸며 뭐냐며 흘끗 보다 경악스러운 얼굴을 하며 고개를 돌려 구두를 응시했다. 점점 다가오며 부서진 금속 조각과 구두를 보던 츄야는 분노를 감추지 않고 시한폭탄이 터지기 직전처럼 부들거렸다.

“그저 손에 올려서 구경하다가 떨어졌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네-. 구두가 너무 부실한 게 아닌가 싶은데 이런 것을 신고 임무에 나갈 수는 있나?”

다자이의 한마디가 기폭제가 되었는지 츄야는 붉어진 얼굴로 폭탄을 터트리듯 소리쳤다.

“이 미친 새끼야! 죽어! 죽으라고!”

츄야의 몸에 붉은 반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어이쿠. 이미 온 팔을 감은 반점에 다자이는 기함을 토했다. 츄야는 이미 이성을 잃은 듯, 다자이를 향해 오탁을 날렸다. 가볍게 피한 다자이는 츄야를 향해 달려갔으나 츄야는 이미 한 번 더 다자이가 서있던 곳에 오탁을 날렸다. 그렇게 두 번을 날리고 나서야, 다자이가 가까스로 츄야의 손목을 붙잡았다.

“어이, 츄야. 그렇게 날리면 아끼는 구두들이 전부 부서진다네.”

‘놀랍게도 구두는 멀쩡하지만.’ 멀쩡한 구두진열대와는 다르게 날아가 버린 침대가 있던 벽면은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본능적인 건가.

“이 씹새끼야... 저 구두...아, 시발 저건 이젠 팔지도 않아...”

다자이는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 건지 씩씩대며 숨을 고르는 츄야의 등을 쓸어주었다. 다자이는 ‘알겠네. 알겠어. 내가 미안하네.’라고 사과했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능력을 쓸까, 걱정이 되었는지 잡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씩씩대던 츄야는 갑자기 조금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시발...시발...한정판이었는데...내 구두...이 시발새끼... 죽어버려어...”

흐느끼는 목소리로 욕지거리를 하던 츄야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다자이는 놀란 눈으로 우는 츄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츄야 자네... 설마... 우나...?”

다자이는 꽤나 충격을 받은 얼굴로 우는 츄야를 바라보았다. 츄야는 우는 자신을 신기하다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다자이에게 ‘개새끼.’라고 소리치며 얼굴로 주먹을 날렸다. 이미 츄야의 우는 얼굴로 당황한 다자이는 차마 피할 새도 없이 얻어맞았다. 아, 맞는 건 오랜만이군. 잠시 생각한 다자이는 그대로 날아가 쓰러졌다.

***

“야 시발새끼야, 일어나.”

쓰려진 건가... 다자이는 지끈거리는 안면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방 안에서 옮겨주지도 않은 건지 아직도 자신이 있는 곳은 오탁으로 인해 부서진 츄야의 방이었다.

“호오...츄야, 오탁을 썼다고 하기엔 깔끔하게 벽만 날아갔군.”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에 내려온 것인지 보스가 문 앞에서 천천히 다자이와 츄야를 향해 걸어왔다. 츄야는 보스가 나타나자 벌떡 일어나 그대로 한쪽 무릎을 꿇어보였다.

“보스...건물을 부숴서 죄송합니다.”

츄야는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사과했다. 보스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이번에는 무슨 일이기에 층의 한 면을 날려버린 건가?’라 물었다. 츄야는 다시 망가진 구두 생각이 나자 화가 나고 분한 마음에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대답했다.

“다자이가...저 새끼가 제 구두를 망가트렸습니다.”

츄야는 최대한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죽인 채 말했다. 보스는 ‘그런가...’라며 다자이를 내려다보았다.

“다자이가 나빴군. 책임지도록 해, 다자이.”

더 이상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에, 다자이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보스는 이제 됐다는 듯 ‘그럼 둘이서 잘 해결하도록 하게’라며 뒤돌아 나갔다. 보스의 구둣발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츄야와 다자이는 긴장을 풀었다.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쉰 츄야는 다시 다자이를 다시 흘겨보았다.

“자 일어나. 넌 오늘 내 노예다. 개새끼야.”

츄야가 방구석으로 날아간 모자를 도로 썼다. 그리고는 다자이를 향해 말하며 어서 일어나라는 듯이 구두를 신은 발로 툭툭 건드렸다.

“츄야...죽을죄를 지었네...”

다자이가 팔뚝으로 얼굴을 가려오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분명 죄를 뇌우 치며 사과하는 것처럼 보였으리라.

“아가리만 털지 말고 일어나 개새끼야. 넌 죽어도 싸.”

그것이 츄야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

“츄야... 언제 끝나는 거지?”

이제는 몇 개째인지 세기를 포기했다. 츄야는 백화점 VIP룸에 구두 상자를 잔뜩 쌓아두며 한 켤레씩 꺼내 신어보고 걸어보았다.

“다자이새끼야, 이건 어떠냐?”

천천히 소파 앞으로 걸어온 츄야가 이리저리 발을 틀어 보이며 ‘괜찮은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그저 감정 없는 어투로 ‘츄야 자네에겐 어떤 구두던지 잘 어울린다네.’라며 장단을 맞춰주었다.

“그래? 그럼 다른 거.”

그런 다자이의 속내를 잘 아는지, 츄야는 쌓아둔 구두 중 다른 구두를 가져갔다. 아, 제발. 다자이는 이제야 자신이 한 짓이 무슨 짓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아- 이건 모양이 별로네.”

다자이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다시 구두를 갈아 신으러간 츄야의 행동에 다자이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천천히 츄야가 열어놓은 많은 박스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검은색의 펄이 반짝이는 펌프스, 검은색 앵클 스트랩 펌프스. 심지어 잘 신은 것 같지 않은 분홍색, 하늘색 스틸레토와 화려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오픈토 슬링백. 다자이는 쌓여 있는 구두를 하나하나 뒤져 보았다. 그리고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던 츄야의 진열대를 생각했다. 흐음... 확실히 이런 디자인은 없었던 것 같은데.... 다자이는 검은 색 앵클부츠를 꺼냈다. 망가트린 구두와 같은 브랜드인지, 뒷 굽에는 나뭇잎이 엉겨 붙어 자라나듯이 세공되어있었다. 이거라면 츄야도 마음에 들어하리라.

“츄야.”

다자이는 구두를 고르는지 상자를 하나하나 열어 구두를 확인하던 츄야에게 다가갔다. ‘왜.’ 츄야는 다자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상자를 열어 다른 구두를 꺼냈다.

“내가 한 켤레 골라왔는데 한번 신어보게나-.”

다자이는 츄야의 어깨를 톡톡 치며 말하고는 뒤에 있던 소파에 앉혔다. 츄야는 자기도 모르게 풀썩 앉혀지자, 다자이를 올려다보며 ‘마음에 안 들면 정말 죽여 버리겠어...’라고 살벌하게 말했다. 다자이는 그런 츄야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꼬은 다리를 조심히 풀어 한쪽 발에 앵클부츠를 신겨주었다.

“같은 굽 모양이라 네가 마음에 들어 할 듯해서 말이지. 역시나 어울리는군.”

‘짜잔-.’ 다자이가 츄야에게 신은 모습을 보여주며 어떠냐는 듯이 말하자, 츄야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또각거리며 방에 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잘 빠진 굽에 부드러운 스웨이드, 편안한 착용감. 츄야는 자신의 양복에도 어울리는 구두에 가만히 거울을 응시했다. 하긴, 벌써 몇 십 켤레는 신어봤는데, 다자이도 이 정도면 다시는 손대지 않겠지. 츄야는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네가 계산해.’라고 다자이에게 말했다. 그리고 몇 개 빼놓았던 상자를 가리키며 ‘저것도.’라고 덧붙였다.

“네네, 분분대로 하겠나이다―.”

장난스럽게 말한 다자이는 옆에 서있던 직원에게 상자와 수표를 건넸다. ‘잔돈은 괜찮아요.’ 싱긋 웃으며 말한 다자이는 거울로 구두를 이리저리 뜯어보는 츄야에게 다가가 어깨동무를 해왔다.

“다시는 안 그러겠네, 츄야. 이제 풀린 건가? 울지 않을 거지?”

어지간히 츄야가 울 때 당황했었는지, 다자이가 물었다. 츄야는 피식 웃으며 ‘평생 갈 거니까 각오해라 새끼야.’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런 츄야의 말에 다자이도 싱글싱글 웃으며 ‘알았네. 알았어.’라 받아쳤다. 직원이 결제한 다른 구두들은 본부로 보내겠다 말하자, 츄야는 끄덕이며 방을 나섰다. 츄야 특유의 대리석 바닥을 내려치듯 또각거리는 구두소리에 다자이는 웃었다.

“이제 큰일 났군. 그 구두소리면 적도 전부 도망가겠어.”

다자이의 말에 ‘원래 그러거든. 구두소리내면서 나오는 마피아 간부가 어디 흔하냐.’라며 웃어보였다. 웃는 츄야의 모습에 미소 지은 다자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렇게 키 작은 마피아 간부도 드물지.”

그리고 다자이는 곧바로 날아온 발차기를 가볍게 피하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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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송화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