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주로 다자츄네요. 아직 사귀지도 않지만요

--------------------------------------------------------------

모리에게 보고를 마친 나카하라는 절망스러운 표정을 한 채로 힘없이 의자에 기대 있었다. 고개까지 젖히니 영락없는 시체 같다고 생각하던 다자이는 한숨만을 푹푹 쉬는 나카하라에게'지원자라도 받았으면 좋겠는데. 일반인은 없는 건가?'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다자이가 입을 열자마자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너는 닥쳐. 보스가 더 이상 기밀 임무에 인원 늘려서 일 벌리지 말고 있으라 하시니 말이야. 오다라도 데려다가 쓰란다.'라고 말하며 엄지손톱을 잘근거리기 시작했다.

"오다사쿠라도 여동생 역할을 시키는 편이 낫지 않을까."

나카하라의 기분이 좋아지라고 한 농담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자이의 농담은 역효과였다. 제발 조용히 하고 있으라고 말하던 나카하라는 입을 열 힘도 없는지 그를 죽일 듯이 노려보는 것으로 위협을 대신했다. 이제는 아예 책상에 머리를 대고 엎드린 나카하라는 차라리 위험 지대에 파견 되는 것이 훨씬 나았던 것 같다고 생각하며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 때, 전화벨이 울렸다. 나카하라는 자신이 위장으로 쓰이는 핸드폰이다 보니 그저 남자에게서 온 연락이거나 광고 전화일게 분명하다 생각하며 가만히 휴대전화를 응시하기만 했다. 그는 전화를 무시할지, 아니면 받을지 고민을 하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쥬세이입니다."

"츄야군, 역시 오다군은 조금 무리일 것 같으니 츄야군이 들어가는 것으로 생각해 두는 편이 좋을 것 같네. 일단 훈련에서 돌아오는 요원 중 차례대로 지원을 알아보고 있으니 힘써주게나."

'일반전화이니 이만 끊겠네. 코요가 도움이 필요하면 세이프 하우스에 들리라더군. 고려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카하라가 대답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지나간 모리의 전화는 나카하라의 걱정만을 키울 뿐이었다. 원망스럽게 끊긴 전화를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신경질 적으로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지고는 자신의 눈치를 보는 다자이를 향해 따라오라 말하며 기숙사를 나섰다.

***

"보스, 제가 가봤자 여동생은 무립니다만."

"그 정도는 나도 안다네. 그저 긴장 풀라고 농담한거니까 말이야."

'오다군이 여동생이라니 전혀 위장이 안 되지.' 모리는 손사래를 치며 웃고는 오다에게 걱정 말라고 이야기 했다. 그에 반해 오다는 모리와 다자이 사이에 끼어 고생하고 있을 나카하라의 얼굴이 생생한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업무 보고를 마쳤다. 새로 발견된 가이드가 도주 중 생포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리는 듣던 소식 중 제일 반가운 소식이라며 사무실을 나섰다. 그 또한 평범하게 지냈던 대학원생이었다. 대부분의 가이드나 센티넬은 청소년기에 발현되어 시설로 보내지는 것이 대부분이니 이 나이 대의 초기 발현자는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다자이도 그렇고... 요 몇 년 사이에 성인 발현이 늘었군요. 가이드이던 센티넬이던 말입니다."

"그만큼 세대가 변화하고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고 청소년 발현자가 줄어든 것도 아니지 않나."

안정제를 맞은 그는 의학실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원체 몸이 약해 주기적으로 받곤 했던 정밀 검진에서 가이드 판정을 받은 그는, 결과를 믿을 수 없다며 그를 데리러온 요원들을 피해 달아나서는 종적을 감추었었다. 작전부는 다자이의 도움으로 몇날 며칠 동안 위성사진을 찾은 결과 그를 생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워낙에도 말랐던 몸이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도망 다닌 흔적으로 가득 했다. 모리는 의학팀에게 최대한 치료를 부탁하고는 깨어나거든 전부 나가있으라 명령한 뒤, 보고를 하러 온 안고에게 그의 상태를 물었다. 센티넬과 같이 안정화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일반 사람과 확연히 달라진 힘과 파동이 그에게 혼동을 주며 정신 착란까지도 갔을 수 있다고 설명하던 안고는 그의 몸에 치료되지 못해 잘게 남은 상처를 응시하며 요원들에게 쫒긴 경험도 스트레스에 한 몫 했을 거라 말했다.

"그러게 다자이처럼 다짜고짜 잡으러만 가면 안 됐는데 말이지. 시간이 워낙 없다보니 실수 했군."

모리는 고개를 저으며 그의 이름을 확인하고 책임자를 적는 란에 스스로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차라리 센티넬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리는 '아쿠타카와군이 잘 버텨줘서 다행이군.'이라 중얼거리고는 사카구치에게 그의 유전 정보를 볼 수 있는지 물었다. 사카구치는 미리 준비해둔 아쿠타카와의 유전 정보가 띄워진 화면을 넘겨주며 그에게 하나하나 설명을 시작했다.

“변하기 시작한 세포와 아직 남아있는 세포가 공존하고 있어 아직 불안정 합니다. 성인 발현이기에 이 부분은 시간이 좀 걸릴 듯 합니다.”

흥미롭다는 듯이 세포들이 떠다니는 화면을 바라보던 모리는 ‘불안정하다면 기다려야겠지.’라고 중얼거리며 그의 신체 구조를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사카구치는 ‘기다린다 해도... 직접 받아들이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니 여유롭게 잡으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직접 해결 방안을 만들 수 있는지 묻는 모리에게 쉬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풀어보지 않은 문제이지만 분명 어떻게든 해답은 찾아 낼 것이다. 하지만 사카구치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모리의 의중을 파악할 수 없는지 입술을 차마 쉽게 떼지 못했다.

“자네라면 분명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지.”

모리의 은근한 부추김에 다시 시선을 피하며 미간사이에서 흘러내린 안경을 추켜올린 사카구치는 마지못해 ‘한 번 해보겠습니다만... 가능 할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모리는 마지못해 한 그의 대답에 웃으며 ‘너무 심각한 것 같군, 안고 군. 그저 새로운 분야를 연구한다 생각하면 되지 않나?’라고 되물으며 아쿠타카와가 누워있는 산소 탱크를 최대한 어둡게 만들었다.

“그저...요즘 생각할 것도 많고 신경써야할 문제들도 많아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겁니다.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마치 무거운 짐 위에 짐을 더 얹은 듯한 부담감이 몸을 답습하는 듯 했지만, 사카구치는 익숙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최대한 괜찮은 말로 포장하여 어물쩍한 상황을 넘겼다. 비밀의 비밀을 가지고 있는 조직이다 보니 의심을 잡았다고 하더라도 이것을 쉬이 의심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왜인지 묻는 다고 하더라도 그의 보안 등급이 자신보다 훨씬 위인만큼 말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가 있으리라. 사카구치는 ‘고맙군.’이라고 대답하며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리를 바라보며 마지못해 마주 미소 지은 채로 아쿠타카와의 병실을 나왔다.

***

잔뜩 짜증이 난 채로 건물을 나오던 나카하라는, 위장임무 철직을 잊지는 않은 모양인지 건물 밖을 나서자마자 숨을 가다듬으며 최대한 선한 얼굴을 한 채로 캠퍼스를 가로질렀다. 그 뒤를 따라오던 다자이는 빠르게 나가는 그를 성큼성큼 따라가며 발걸음을 맞추었다.

“쥬세이-, 어딜 가는 지는 말을 해줘야지 않겠나.”

위장용 이름으로 나카하라를 부르며 뒤에서 어깨동무를 한 다자이는 고개를 숙여 ‘츄야, 세이프 하우스로 가는 건가?’라고 작게 속삭여 물었다. 나카하라는 목덜미에 닿은 그의 팔이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오랜만에 닿는 자신의 힘이 없이 눌러왔던 욕구를 풀어내자 그가 어깨동무를 한 팔을 쳐내고는 그보다 앞서 걸어 나갔다.

“아, 요즘 못했더니 조절이 안 되는군. 미안해.”

다자이의 사과에 ‘필요하면 재깍재깍 이야기해. 그 정도로 담아두지 말고.’라고만 대꾸했다. 다자이는 들키기 싫었던 모양인지 대답 없이 시선을 돌려버리고는 빠른 속도로 캠퍼스를 벗어나는 그와 발걸음을 맞추지 않고 조금 떨어져 그의 뒤를 밟았다. 모퉁이를 돌고, 다시 상점가 쪽으로 향한 뒤, 사람이 점점 사라지자 다시 모퉁이를 돌아 상점마저도 없는 주택가로 들어섰다. 복잡하게 얽힌 경로로 가는 통에 그를 놓칠까 싶던 다자이는 그대로 나카하라의 뒤통수에 시선을 두었다. 다자이는 꽁지머리로 묶어놓았던 머리가 풀어져가는 것도 모른 채로 열심히 걸어가는 나카하라의 모습이 먹이를 찾아 움직이는 펭귄과 비슷한지, 아니면 사막을 횡단하며 영역을 정비하는 햄스터와 같은지 고민했다. 그렇게 다른 생각에 잠겼을 무렵, 타운하우스가 몰려있는 주택가로 들어가는 나카하라를 놓칠 뻔 한 다자이는, 조금 느려진 그의 옆으로 걸어가 다시 발걸음을 맞추기 시작했다.

“누님이 오신 거라면 역시 하나인가.”

주택가이지만 가장 안쪽이라 입주민조차 드문 곳, 알록달록한 타운하우스의 끝자락에 동떨어진 주택 한세대가 가장 안 쪽 숲의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 도착한 둘은 익숙하게 도어락의 번호를 풀었다. 나카하라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이미 예상한 것인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한숨으로 막막한 심정을 풀어낼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내가 잡입 할 거고. 이번 일 틀어지면 너나 나나 같이 죽는다.”

‘그리고 이번 임무 중에 사진 찍지 마. 찍으면 너만 죽여 버린다.’ 나카하라의 으름장에 고개를 끄덕거린 다자이는 미리 구비해두었던 정보 처리용 초소형 카메라를 어쩌면 좋을지 생각하며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posted by 송화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