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모리]새벽을 기다리며

문스독/다른 커플링 2019. 2. 1. 01:48

뭔가 메마르면서도 표현력있는 글을 쓰고 싶은데 힘드네요. 사망 소재 있습니다 유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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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는 가끔 어슴푸레한 새벽 사이의 시간에 아무런 예고 없이 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그럴 때면 항상 같은 환상을 보곤 하는데, 품에 쏙 들어올 만치 몸을 웅크리고 자는 모리가 그의 옆에 누워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자신의 옆에서 잠이 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를 품에 안고 자신도 다시 잠에 들었지만, 이제는 보자마자 이것이 꿈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가능했다.

모리 오가이는 죽었다. 퇴근길에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고였고, 그가 그렇게 세상을 떠난 것을 안타까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후쿠자와도 슬퍼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얼마 뒤에는 그와 교제하기 시작한지 5년 째 되는 날이었고, 안지는 15년이 넘어가는 날이었다. 그날 아침까지도 무엇을 선물로 받고 싶은지 서로 물으며 ‘당신부터 이야기 하십쇼. 또 속 시커멓게 생각하면서 혼자 사오지 말고요.’라고 말하던 모리는 그날 이후로 말이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은 어찌 되었건 살아가야한다고 말한다. 후쿠자와도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억지로 먹는 식사와 같이 꾸역꾸역 살아갈 뿐이었다.

잠에서 깨어나는 일은 모리의 장례가 끝난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죽은 날로부터 한숨도 자지 못한 상태였고, 매우 불안정했다. 의연해보여 다행이라는 사람들의 말이 그의 가슴을 더욱 미어지게 만들었다. 괜찮은 척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벽녘에 잠에서 깬 후쿠자와는 역시 자신이 그가 죽는 악몽을 꾼 것이 분명하다 생각하며 모리를 끌어안았다. 생생하게 느껴졌던 가슴 아픔에 답지 않은 눈물도 흘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 후쿠자와는 정말 자신답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도 모리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곤 했다. 그렇게 행복한 새벽을 보낸 후쿠자와는, 다음 날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옆을 바라보며 한참을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두 번째는 예기치 못한 하루에 일어났다. 무척 힘든 하루였고, 후쿠자와는 몸에 힘이 전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일이 힘들어서라기 보단, 자기 자신에게 치인 듯한 기분이었다. 분명 깰 수 없을 정도로 잠에 빠져들었지만 여지없이 새벽에 눈에 떴다. 모리는 여전히 자신의 옆에 누워 있었고, 후쿠자와는 품에 안았다. 분명 따뜻한 감촉마저도 모리 그 자체였다. 포근한 로션의 향기, 옷에서 맡아지는 섬유 유연제의 향기까지 진짜 같았다. 가만히 모리의 따뜻한 등을 쓰다듬어주던 후쿠자와는 일어나지 않고 곤히 잠든 그를 가만히 보다가 잠에 빠졌다.

그렇게 모리는 몇 번이고 후쿠자와의 옆에 나타났다. 한 번도 눈을 뜬 모리를 본 적은 없었지만, 후쿠자와는 이마저도 행복했다. 그렇게 그는 잊을만 하면 찾아오곤 했다. 후쿠자와는 그런 모리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아주 먼 곳에 있는 그를 잊지 않기 위해 천천히 꺼내보곤 했다. 후쿠자와는 마치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남매들과도 같이 흘려 놓은 빵조각을 따라 걷는 기분이었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과자 집, 자신이 평생을 그리워할 모리를 찾아 헤매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후쿠자와는 모리가 나오는 조건이 있는지 여러 가지 시험을 해보았다. 후쿠자와가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고 아주 힘들 때, 몸이 고단할 때, 그가 이기지 못할 정도로 그리울 때. 후쿠자와는 모리가 보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 조건을 만들어 보았지만, 워낙 예상이 불가능했던 사람이니 만큼 모리는 자주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죽을 만큼 보고 싶어 후쿠자와가 꼴사납게 눈물을 보인 날에도 모리는 쉬이 옷자락을 보여주지 않았다.

‘이제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조차 들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나갔을 무렵, 모리는 그제야 얼굴을 내비쳤다. 후쿠자와는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쉬워 가만히 모리를 바라보며 잠조차 들지 않고 그의 숨소리에 집중했다. 맞닿은 살결에서 느껴지는 심장 소리, 그리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어깨를 보며 느껴지는 그의 호흡. 후쿠자와는 차마 뺨을 만지면 꿈에서 깨어날까 걱정하며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다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아쉬움에 뺨에 손을 대보며 그의 온기를 손끝으로 옮겨왔다. 따뜻한 뺨, 그리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머리칼. 후쿠자와는 더욱 대담해져 그의 뺨을 쓰다듬기까지 했다. 이렇게 모리를 마음에 담아두면 몇 년은 괜찮을 거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후쿠자와의 이 생각은 다음 날 빈 옆자리를 보며 그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모리는 더 이상 후쿠자와의 옆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다. 후쿠자와는 며칠 밤을 새며 그를 기다려 보았지만, 모리가 후쿠자와의 옆 자리에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후쿠자와는 다시금 자신이 흘린 빵 조각을 찾아 모리를 찾기 위해 애썼다. 분명 그리웠지만, 예전만치 비통함에 젖은 밤을 보내지 않았다. 후쿠자와는 가만히 그와 보내었던 시간을 곱씹으며 이겨 낼 수 있는 그리움을 내리 눌렀다.

후쿠자와는 이제 깨는 일 없이 잠을 잔다. 이제는 밤을 새는 일도 없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보내고 있었다. 간간히 느껴지는 따스한 손길이 그의 잠자리를 돕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근거는 없었다. 후쿠자와는 지나다닐 때마다 보이는 곳에 놓여있는 모리의 사진을 바라보며 ‘이제는 신경도 안 쓰나보군.’이라고 중얼거리곤 했지만, 표정은 한결 가벼워보였다. 후쿠자와는 꽉 찬 그리움의 병을 비우는 법을 깨달았다. 그리고 빈 병을 채우는 것도 점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잊지는 못했지만, 더 이상 물에 젖은 종이처럼 상념에 젖어 흐느적거리는 일은 없었다. 깊은 곳에서 막혀 있던 마개가 그대로 뚫린 기분이었다. 후쿠자와는 흘러 내려가는 감정을 느끼며 사진 속 모리를 바라보았고, 모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후쿠자와는 천천히,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며 새벽을 기다렸다. 그가 올지도,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새벽을.

posted by 송화우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