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규칙적인 숨소리, 바로 손을 뻗으면 닿는 곳에 놓인 그의 손. 잡고 싶다는 진심을 뒤로 한 채 뒤돌아 나왔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
애가 타는 사랑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자신답지 않은 반응에 시선이 닿는 곳에 있던 그를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는 자신도, 가끔씩 그를 떠올릴 때면 조여 오듯 아파오는 그 통증이 사랑이었을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가끔씩 끓어오르는 미열이 그의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스스로도 자기 자신이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며 실성한 듯 웃었다. 잡았어도 탈 수 없는 만원 버스와도 같은 사랑이었다.
“문학에 후쿠자와 유키치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건네던 그는, 세월이 무색하도록 그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무뚝뚝하면서도 진중한 모습하며 단정하게 차려입은 정장마저도,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던 그와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모리는 열병과도 같던 사랑의 대상이 눈앞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지 입술조차 제대로 떼어지지 않았다. 내밀어진 손을 바라보며 잠시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그의 손을 맞잡고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이번에 교생으로 오게 된 모리 오가이입니다.”
식은땀이 나는 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모리는 빠르게 손을 빼내었다. 후쿠자와는 어색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이라고 대답하는 모리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분명 들은 바로는 그가 잠시 휴직을 하고 있다고 했다. 모리는 정확하지 못한 정보를 믿은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에게 학교 이곳저곳에 대해 알려주는 후쿠자와를 따라다녔다.
“이 학교를 졸업했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너무 과하게 소개해버렸군요.”
“아뇨. 오래되어서 새로운 곳도 있어 좋았습니다. 후쿠자와 선생님께서는 학교에 꽤나 애착이 있으신 가보죠?”
자연스럽게 넘기고 싶어 생각하던 질문을 그대로 내뱉은 모리는, 잠시 자신을 응시하는 후쿠자와의 시선에 자신이 무언가 잘못했는지 되새겨보았다. 후쿠자와는 불안해하는 모리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교생 실습도 이곳에서 해서인지 이쪽으로 발령받은 뒤에는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모리는 교생시절의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짧게 친 은발, 문학이 아니라 어디 체육계를 나왔다고 해도 믿을 만한 체격은 학생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여학생들의 입에서는 심심할만하면 그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모리는 겉치레의 말로 ‘인기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교생이었던 후쿠자와를 알지 못한다는 듯이 행동했다. 후쿠자와는 그런 모리를 가만히 바라보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점심 식사는 이쪽 복도로 가면 되고, 나는 일이 끝나면 도서부의 일을 도우니 물어볼 것이 있으면 도서관으로 오면 됩니다.”
“네, 여쭤볼게 많을 것 같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서로 고개를 숙여 보인 둘은, 교무실로 돌아가 서로의 자리를 찾았다. 모리는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문학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꿈을 가진 것은 순전히 그 때문이었으니까. 불순한 동기를 그 어디에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모리는 자신이 맡은 반의 출석부를 읽으며 아이들의 이름을 찬찬히 외웠다.
서류를 정리하고, 통신문을 분류하고, 자신이 맡은 반에 인사를 한 뒤, 수업을 참관하고. 생각보다 긴 하루였다고 생각한 모리는 일지를 쓰며 거의 비어버린 교무실을 바라보았다. 단축수업 때문인지 더욱 일찍 가버린 선생님들 중에서 그가 질문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모리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교무실을 나와 후쿠자와가 있을 도서실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려오는 심장에게 주책없게 굴지 말라는 말 밖에 할 수 없던 모리는, 스스로가 짜증나기까지 했다. 벌써 이렇게 앓아 온 것이 몇 년 전인가. 근 십 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었다. 모리는 어서 비밀스럽게 이어온 짝사랑이 사그라지길 바라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아까의 단정한 모습과는 다르게 도서실 구석에서 엎드려 있었다. 모리는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지는 해를 감싸듯 하늘에 퍼지는 노을과 잡지 못했던 손. 홀로 애틋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모리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갔다. 여전히 그가 엎드릴 때의 자세는 고개를 돌린 채, 한 쪽 팔을 빼낸 모양새였다. 모리는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은 듯하다 생각하며 그를 조심스레 불렀다. 후쿠자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모리는 조금 대담하게 굴어보자는 생각에 빠져나온 그의 손을 잡고 흔들어 보았다. 하지만 후쿠자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모리는 가만히 손에 잡은 그의 손을 바라보다 아쉽다는 마음을 뒤로하고 빼내었다. 악수를 할 때와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었다. 후쿠자와의 맞은편에 조심스레 앉은 모리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며 그의 손 바라 앞에 자신의 손을 놓았다.
“그저 어린 날에 치기 어린 상사병인 줄 알았습니다.”
깨지 않는 그에게 닿지 못할 말을 툭 내던진 모리는 열이 오른 얼굴을 노을에 감추며 뜸을 들였다. 다시 이 손을 잡는 다고해도 돌아갈 수 있을 리가 없다.
“매일 밤 되새겨도 사랑이었는데. 이미 지나가 버렸으니 잡을 수 있을 리가 없겠죠.”
조곤조곤 말하던 모리에게는 이 손을 잡을 용기가 없었다. 흘러가는 열병이라고 치부하는 편이 훨씬 나을 거라는 판단에 몸을 일으킨 모리는 혹시라도 그가 깨기 전에 도서실에서 나가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급하게 일어난 그의 손을 잡은 것은 언제 깬 것인지 모를 후쿠자와였다. 모리는 그가 어디서부터 자신의 사랑 고백을 들었을지 예상되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했다. 손을 뿌리치려던 그는, 강한 힘으로 자신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후쿠자와를 돌아보며 ‘제발 그냥 보내주시면 안되겠습니까.’라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그 때의 네 마음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저 내 스스로도 너와 같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모리는 영문 모를 말을 이어가는 후쿠자와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강하게 뛰는 심장 소리, 숨을 내쉬는 것조차 의식 되는 가까운 시선. 모리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어차피 학생이었으니 상관없습니다.’라고 대꾸하고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내가 상관있다만. 내가 그때 잡았더라면 이 감정에게서 도망치지는 않았을 테니까.”
단호하게 말하는 후쿠자와의 말이 마치 사랑고백과도 같이 느껴져 짜증스러웠다. 몇 년을 가슴에 품고 묻으려고 했던 자신이 바보같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도망치듯 나가는 너를 이렇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내 쪽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라는 직함과 걸맞지 않는 말이었지만, 모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이제는 잡혀주겠나.”
모리는 대답할 필요도 없는 그의 물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
긴장한 듯한 발걸음 소리, 실눈을 뜬 사이로 언뜻 보이는 검은 색 머리칼, 나직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와 손끝에 닿을 듯 말듯 하다 멀어지는 온기를 놓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손을 뻗고 있었다.
'문스독 > 다른 커플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쿠모리] 알오버스 임신물.1 (0) | 2019.03.29 |
---|---|
[후쿠모리]사랑 한 조각을 삼켰다. (0) | 2019.02.04 |
[후쿠모리]새벽을 기다리며 (0) | 2019.02.01 |
[후쿠모리]그리움의 끝 (0) | 2019.01.28 |
[후쿠모리]누가 그를 재우지 않았나. (0) | 2019.01.19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