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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스독/다자츄에 해당되는 글 38건
- 2018.07.03 [다자츄]레몬, 끝.
- 2018.06.24 [다자츄]한여름의 불꽃놀이. 下
- 2018.06.24 [다자츄]한여름의 불꽃놀이上
- 2018.03.30 [다자츄]십이국기.4
- 2018.03.18 *다자츄 알오버스 임신물 통판/선입금 공지*
- 2018.03.01 *다자츄 알오버스 임신물 'I+I' 통신판매/ 부스 판매 예정*
- 2018.02.27 [다자츄]퇴역군인x소아과 의사
- 2017.11.17 [다자츄] 십이국기.3
- 2017.10.12 *다자츄 수위 팬북 '厚愛談' 통판 신청*
- 2017.10.10 [다자츄]둘만 모르는 고백
글
손바닥에 닿는 굵은 소금의 감촉은 거칠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레몬 껍질에 문질러지자 은은하게 퍼지는 레몬의 향기는 나름대로 기분 전환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카하라는 열심히 껍질을 소금으로 문질렀다. 귀찮지만 뭐든 껍질째 먹기 위해서는 손이 가는 법이라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손에 가득 묻은 레몬의 향에 레몬을 물로 깨끗이 씻어내고는 도마 위에 가지런히 올려두었다. 모양이 한쪽으로 쏠려있어도 향은 가득한 노란 레몬은, 어느 쪽으로 썰어도 예쁘게 썰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나카하라는 날이 선 칼을 천천히 들어 꼭지부터 잘라내고는, 천천히 같은 두께로 레몬을 썰어내었다. 하얀 부분만이 나오는 곳을 지나 레몬의 속내가 드러나자, 그 특유의 새콤한 향이 나카하라의 코앞까지와 맴돌았다. 오래 냉장고에 있어서 상하기 직전 같은 감정도 이렇게 쉽게 잘라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스로가 우스운 생각을 한다는 듯이 피식 웃은 나카하라는 다시 두 번째 레몬을 들어 꼭지를 잘라버렸다.
“츄야, 나 결혼하기로 했다네.”
그 다음, 아니 그 다음의 다음이라도 나의 차례가 오지 않을까. 이렇게 순서를 차례대로 기다리는 레몬들처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곁을 지키고 있다 보면 분명 그가 자신을 돌아볼 날이 있지는 않을까. 아니, 그전에 고백을 제대로 하는 쪽이 더욱 좋았을까. 뒤늦은 후회를 섞어가며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좋은 두께로 썰린 레몬 조각들을 모아 한 그릇에 담았다. 술김에 한 고백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잠든 그에게 아무리 원망해 봤자 그가 들을 리 없다는 것은 자신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덜 마른 빨래에서 나는 텁텁한 향기처럼 좋지 못한 감정이었다.
“구질구질하네.”
순간 집중력이 흐트러져 만들어진 반쯤 잘린 얇은 레몬 조각을 입에 넣으며 중얼거리던 나카하라는 씁쓸하고도 시게 퍼지는 레몬의 맛에 미간을 좁혔다. 분명 설탕과 꿀에 점칠 되어져 있는 것만 먹어버릇해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지만, 나카하라는 그것을 꾸역꾸역 씹었다. 타액과 섞여 조금씩 달콤해지는 과육의 맛이 나쁘지는 않았다. 널리고 널린 사랑에 관한 책에는 항상 달콤하고 절절한 사랑이야기만 적혀 있어 나의 사랑도 그런 것이라 생각했던 적이었었다. 설탕 조림처럼 끈적끈적하기도 하며 새콤달콤하고 상쾌한. 어딘가에서 마셔본 레몬에이드와 같이 맛이 다르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색이 있는 것처럼. 자신의 짝사랑을 가만히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미처 준비 못한 민트가 생각난 것인지 베란다에 있는 화단으로 향했다. 파릇파릇하게 자라난 애플민트를 한 잎씩 떼어내던 그는, 누구보다 기쁜 마음으로 자신에게 결혼 소식을 전한 다자이를 생각했다. 생각보다 오래 갔던 연애였지만 항상 끝은 좋지 않았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안일한 생각을 했었다. 손톱만한 민트 잎을 깨끗이 씻어 물기를 털은 나카하라는 남은 물기마저 빠지도록 키친 타올 위에 민트를 올리고는 손끝에 묻어난 민트의 향을 맡아보았다. 청량함이 코끝만 간질이다 그대로 사라졌다. 준비해둔 작은 병에 레몬을 천천히 깔아둔 그는, 미리 준비해둔 설탕을 솔솔 뿌려대었다.
“츄야, 내 들러리 서 줄 수 있나?”
“야, 언제는 창피해서 싫다더니 뭐라는 거냐.”
“그래도, 츄야만큼 가까운 친구가 어디 있겠나.”
주변에 사람이 널리고 널린 놈이 그런 말을 꺼낸 것에 위안을 받았다. 제일 가까운 친구라는 말에 멍청한 심장이 빠르게 달리는 것도 우습기 그지없었다. 조여 오듯 아픈 것도 이젠 익숙해 진 것인지 그저 알겠다는 대답과 함께 급한 일이 있다 자리를 피했다. 그날 먹었던 것들은 전부 얹힌 것인지 새벽까지 나카하라를 괴롭혔다. 순간 숟가락을 놓칠 뻔 해 다른 층보다 설탕이 더 많이 쌓여버린 것을 보던 나카하라는 하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며 그 위로 레몬과 민트 잎을 한 겹 한 겹 더 올려 쌓았다. 분명 말하지 못한 감정들도 속에서 이렇게 쌓이고 있지 않을까. 재미없는 상상을 하던 그는 병이 반 밖에 차지 않은 것을 바라보며 냉장고에서 레몬을 더 꺼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하게 항상 모자란 타이밍에 그에게 말하지 못한 건 아닐까. 오늘은 비가 와서, 날이 좋으니까, 오늘은 내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그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다자이가 여자 친구가 생긴 날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나네.”
여태까지 그의 생각만 하던 것이 들통 난 것 같아 스스로에게 불만을 토로한 나카하라는 다시 처음부터 레몬을 씻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같이 벗겨버릴 듯이 거친 소금의 촉감은 정신을 맑게 해주는 듯 했다. 이래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어싱 같은 것을 뚫으러 가는 걸까라고 중얼거리던 나카하라는 다시 꼭지를 잘라 규칙적인 모양새로 레몬을 썰어내기 시작했다. 우리 둘의 관계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족했던 너의 감정도 내 넘치는 감정으로 채워준다면 우리 둘은 같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이리저리 꼬투리를 무는 생각에 잠시 칼을 내려둔 나카하라는 반쯤 찬 병을 바라보았다. 이미 레몬의 사이사이에서 눅진하게 녹아가는 설탕이 눈에 띠었다. 이미 녹아내린 것은 돌이킬 수 없으니, 다시 체념한 듯 레몬을 썰어낸 나카하라는 다시금 설탕을 눈이 오듯 안에 살살 뿌렸다. 레몬 특유의 맛이 남을 수 있도록 너무 달지는 않게, 그래도 스스로의 기분은 좋아질 수 있을 만큼 달게. 마지막 레몬 한 조각을 올린 나카하라는 그대로 병 입구에 코를 대고 병 안 가득한 레몬의 향을 들이마셨다. 특유의 새콤하고 씁쓸한 향과 섞여 들어오는 달큰한 향기. 그저 포장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카하라는 자신의 감정을 우겨넣은 듯한 기분마저 들어 급하게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누구도 꺼내보지 못하게 주방 제일 구석에 숨겨둔 나카하라는 앞치마에 넣어둔 전화기가 울리자 앞치마에 젖은 손을 닦고 여유롭게 전화를 받았다.
“왜 또. 그래. 들러리 옷?”
결혼식 때 입을 들러리 옷을 맞춰야 한다고 답지 않게 대답을 재촉하던 다자이에게 대꾸하던 나카하라는, ‘알겠으니까 너나 시간 내. 들러리는 설마 나 혼자냐? 친구 없는 거 티내지 마라.’라고 장난스레 말하며 남은 레몬의 꼭지들과 과육이 들지 않은 끄트머리 부분을 치웠다. 어질러진 주방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그의 말에 대꾸해주던 나카하라는 급하게 전화를 끊는 그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더해 인사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씁쓸한 듯 달콤한 레몬의 향기는 그의 손끝에서도, 마음에서도 쉬이 지워질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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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생각나는 장면대로 쓴거라 상편에 비해 짧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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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의 열기가 펄럭이는 옷자락 사이로 지나갔다. 아무리 시원한 소재로 만들어진 유카타라고 해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나카하라는 최대한 올려 묶은 머리카락이 한 올씩 흘러내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미간을 좁히며 다시 머리를 정돈했다. 부채를 부치는 것만으로는 더위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직접 내린 차의 수색은 마음에 들었지만, 안에 든 얼음이 빠르게 녹아내리며 그것마저도 옅어졌다.
“츄야, 찡그리고 있으니 가뜩이나 성격 나빠 보이는 인상이 더 나쁘게 보이지 않나.”
옆에서 한가롭게 아이스크림을 두 개 째 뜯고 있던 다자이가 신경질 적으로 부채를 부치고 있는 나카하라에게 말했다. 평소 같았다면 그저 무시하고 넘길 말이었지만, 인내심 대신 더위가 차오른 것인지 ‘부채로 맞기 싫으면 그 재앙 가득한 입부터 다물어라.’라고 대꾸하며 머리를 다시 묶었다. 한 낮의 정원에는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나무와 꽃들이 가득했다. 나카하라는 우거진 녹음을 바라보며 옷가지 사이에 더위를 털어버리려는 듯이 펄럭거렸다.
“그래 봤자 더 열만 오를 텐데. 츄야는 바보야?”
‘움직이면 더 더워진다고.’ 열린 창에 기대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벌써 반쯤 사라진 아이스 크림을 아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나카하라는 ‘이렇게라도 해야 좀 시원하지... 다 벗을 수도 없고.’라고 대꾸하며 애꿎은 옷자락만을 더 세게 털어대었다. 다자이는 마지막 한 입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더니, 그에게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정도로 태연하게 ‘그럼 다 벗고 있던가.’라고 말했다.
“내가 누구 좋으라고 벗고 있냐? 미쳤지.”
피식 웃은 나카하라는 아이스크림 스틱을 정리하는 다자이를 바라보았다. 다자이는 ‘당연히 나 좋으라고 한 말이지 않겠나.’라고 말하고는 미소를 지은 채로 포장지를 버리기 좋게 접어 스틱에 묶었다. 나카하라는 방금 그가 먹은 아이스크림이 마지막인지 물으며 그대로 대청마루에 몸을 뉘였다. 하지만 창을 넘어 들어온 햇볕 때문인지, 그렇게 시원하지는 않았다. 그저 바닥의 냉기를 훔치며 몸을 뒤집던 나카하라는 아이스크림이 더 없다는 다자이의 대답에 크게 한 숨을 내쉬며 들었던 고개를 떨어트렸다. 다자이는 나카하라의 머리칼이 반쯤 흘러내려 바닥에 흐트러진 모습이 마음에 든 것인지 그대로 그의 묶인 머리카락을 풀어내었다. 그리고 방금 전에 먹은 아이스 때문인지 시원한 손끝으로 머리카락부터 목선까지 쓸어내려보고는 ‘많이 길렀네.’라고 중얼거렸다. 나카하라도 시원한 손길이 나쁘지는 않은지 가만히 그의 손길을 받으며 ‘시간이 꽤나 지났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의미를 모를 대화를 끝으로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다자이는 그저 노을빛 머리칼이 짙은 색의 마루에 퍼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눈에 담을 뿐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내려 그의 어깻죽지 부근까지 쓸어내렸다. 나카하라는 그의 손이 은근하게 옷자락을 흘러내리게 하자 ‘어제는 참아줬는데 오늘은 꿈도 꾸지마라.’라고 대꾸하며 그의 손을 쳐냈다.
“그냥 쓰다듬기만 할 거니 걱정 말게.”
그를 안심시킨 다자이는 그대로 그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에 누일 수 있게 도와주고는 본격적으로 그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었다. 기나긴 여름 해는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중천에 머물러 있었다. 그사이 그림자는 가려진 것인지 나카하라 근처에 있던 햇볕은 점점 사그라졌다. 더위가 조금 가신 것인지 뒤척거리던 몸을 바로 누인 나카하라는 자신을 빤히 내려다보는 다자이를 올려다보았다. 몇 년을 함께 지내면서도 변한 것이 없다면 저 자식의 외모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꺼낼 말이 마땅치 않은 사람처럼 고민하다 ‘축제하려나.’라고 입을 열었다. 다자이는 곧 할 거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항상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하던 불꽃놀이를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매년 보는 불꽃놀이 보고 싶네.’라고 말하며 같이 보던 다자이의 표정이 생각나는지 키득거렸다. 항상 같은 패턴으로 뿜어져 나오는 불꽃들은 언제 봐도 경이로웠다. 어두운 하늘을 빼곡히 메운 불꽃, 그리고 비처럼 흘러내리다 사라지는 것까지 눈을 뗼 수 없었다. 그것을 생각하니 더위도 참을 수 있을 것 같던 나카하라는 자신을 내려다보며 웃는 다자이에게 왜 웃는지 물었다.
“방금 츄야 표정이 바보 같아서.”
다자이의 대답에 화내지 않고 피식 웃은 나카하라는 ‘바보 같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좋아 죽네. 말은 잘해.’라고 대꾸했다. 다자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내비치고는 그렇게 티가 났냐며 장난스레 물었다.
“어릴 때보다 나름 나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주체가 안 되더라고, 자존심 상하게도 말이야.”
미소를 띤 채로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조심스레 고개를 숙이던 다자이는 그대로 드러난 그의 이마에 가볍게 입술을 맞대고 떨어졌다. 아주 잠시간 맞닿은 것인데도 이마가 화끈거렸다. 나카하라는 갑자기 하지 말라며 부끄러움을 죽이려는 듯 버럭 소리를 치고 몸을 돌려 누웠다. 다자이는 가려진 얼굴을 보지 못해 아쉽다고 중얼거리며 머리카락 사이에 숨은 그의 귀를 살살 매만졌다. 얼굴 못지않게 붉어진 귓가를 쓸어주던 다자이는 ‘그러는 츄야도 숨기는 건 전혀 안 늘었군.’이라 말하며 어린 아이처럼 키득거렸다.
“이번 불꽃놀이도 츄야와 보고 싶네.”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던 다자이는 자신을 힐끔거리는 나카하라를 내려다보며 ‘응? 같이 봐줄 거지?’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물음에 ‘나 아니면 누구랑 본다고 말하는 거야.’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몸을 바로 누워 자신을 응시하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시선을 받아주며 장난스럽게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긴 모양이네? 전에는 하나도 없었는데.‘라고 말하며 그를 놀렸다.
“몇 년이 지났는데. 그래도 이제는 숨기지 않아도 되니 좋긴 하네.”
그때와 다를 바 없는 미소를 띠고 있는 다자이를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그대로 그의 옷깃을 끌어내려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산 중턱을 넘어 돌아가는 노을빛에 비친 그림자가 겹쳐졌다 떼어지자, 다자이는 붉어진 얼굴에 부채질을 하며 ‘갑자기 하지 말라던 사람이 갑자기 하는군.’이라고 말하며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나카하라는 그가 부끄러워하는 것을 아는 것인지 소리를 내 웃으며 ‘복수라고 생각해.’라고 대답하고는 노을빛에 차마 가려지지 못한 그의 붉어진 뺨을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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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공개 가능한 커미션으로 쓴 글입니다. 하편이 올라올 예정이라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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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웠다. 아니, 그런 단어로 형용할 수 있는 더위가 아닌 것 같았다. 나카하라는 흘러내리는 땀에 긴 머리칼을 질끈 묶은 채로 부채를 더욱 거세게 부쳤다. 이런 바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더위였지만, 없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그는 팔이 아플 정도로 부채를 흔들어대며 땀을 식혔다.
“아... 진짜 죽겠다.”
그는 흘러내리는 땀에 옷자락을 펄럭거리며 땡볕의 운동장을 내다보았다. 햇볕이 쨍쨍한 날씨 탓인지,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나카하라는 그런 운동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물이라도 뿌리고 올까...’라고 중얼거렸다.
“츄야, 그러다가 마르지 않으면 눅눅하기만 할 걸.”
나카하라는 익숙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곧바로 뺨에 닿는 병의 차가운 느낌에 흠칫 놀라고는, ‘그래도 그때는 시원할 거 아니냐...’라고 중얼거리며 그가 건넨 음료수병을 받아들었다. 꽤나 목말랐는지, 음료수를 한 번에 들이켜고 있는 나카하라를 바라보던 다자이는 자신의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이런 날씨여서야 오늘 축제는 잘되려나 모르겠군.’이라 중얼거렸다.
“오늘 축제였냐? 그래도 그건 야시장이니까 상관없지 않나.”
‘한 입만.’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뺏어가듯 한 입 베어 물며 말했다. 다자이는 다른 불평 없이 그에게 아이스크림을 내어주고는 ‘밤에는 덜 더웠으면 좋겠군...’이라 대꾸하며 마지막 한 입이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런 날씨에서 하는 보충 수업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나카하라는 그나마 자신의 뺨보다 차가운 책상에 엎드려 느릿하게 감기는 눈을 깜빡거렸다. 다자이는 땀에 절어 그의 이마에 붙은 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고는 작게 키득거리며, ‘츄야, 도대체 왜 보충 학습 신청한 거야?’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혀를 차며 ‘네 자식이 같이 듣자며... 두말 하지 마라...’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유일하게 몸에 닿는 시원한 기분에 나카하라는 그대로 잠에 들것 같았다.
“수업 끝나고 축제나 갈까, 츄야?”
잠시간 잠에 들듯 말듯 나른히 누워있던 나카하라의 귀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나카하라는 그 목소리에 느릿하게 눈을 뜨고는 비몽사몽한 눈으로 목소리의 주체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언제부터 나카하라를 내려다본 건지, 그를 빤히 응시하며 입모양으로 ‘축제.’라고 벙긋거렸다.
“너랑? 단 둘이?”
아직 잠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다시 눈을 깜빡이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애썼다. 다자이는 그런 나카하라에게 ‘그럼, 자네와 나 단 둘이지.’라고 대꾸하고는 이따 이야기 하자며 정신을 차리려는 그의 눈을 감겨주듯 손으로 덮었다. 그의 손은 아까까지의 아이스크림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준 음료수 때문인지, 무척 시원하게 느껴졌다. 나카하라는 눈을 덮은 시원한 손에서 얼굴을 떼지 않은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금세 다시 몰려오는 잠은 그대로 그의 생각을 앗아가기라도 하는 듯, 머리를 백지로 만들었다.
“츄야, 좋아해.”
그의 목소리는 마치 동굴에서 외치는 메아리와도 같게 들렸다. ‘뭐라고?’라고 물으려던 찰나 아까보다도 빠르게 잠의 늪으로 끌어당겨지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암전된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생각을 하길 포기한 듯 싶었다. 그리고 그가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보충 수업이 전부 끝난 뒤였다.
***
“야, 안 깨우고 뭐했냐? 니만 수업 들으니까 좋다 이거야?”
나카하라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는, 창밖으로 뉘엿뉘엿 해가 져가는 것이 눈에 띄였다. 다자이는 창문을 활짝 연채로 이제 선선히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밖을 내다보며 그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렸다고 말했다.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투덜거리듯 말하며 기지개를 펴고, 그에게 ‘야, 문 잠그고 집에 가자.’라고 대꾸했다. 그는 나카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기분 좋은 바람이 들어차는 창문을 하나씩 걸어 잠갔다.
“그나저나 츄야, 아까 한 말 기억나나?”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무슨 말? 축제 가자는 말? 당연히 기억나지 가자, 축제. 초코 바나나 먹을 거야.’라고 말하며 가지런히 정리 되어있는 그의 책상 옆에 자신의 책상을 붙이고는 가방을 챙겨 교실로 나왔다. 여름처럼 뜨거워 보이는 저녁노을은, 생각보다 선선했다. 다자이는 천천히 그의 보폭을 맞춰 걸으면서 ‘가면도 팔려나. 예전에는 꼭 하나씩 샀는데 말이지.’라는 시덥지 않은 말을 하며 그와 대화를 이어나갔다. 학교를 나와 시내로 나갈수록, 유카타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카하라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흘끗거리며 ‘우리도 입고 나올 걸 그랬나?’라고 말하며 볼을 긁적거렸다.
“입고 나왔으면 불꽃놀이 끝난 뒤에나 집에서 나왔을 것 같은데? 그리고 굳이 안 입어도 좋지 않나.”
무엇이 좋다고 특별하게 꼬집어 말하지 않는 그의 한마디에 나카하라는 ‘그러냐...’라고 대꾸하고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다자이는 그의 반응에 피식 소리를 내며 웃고는 점점 들어서는 상점들을 바라보며 ‘이제 열리려는 모양이지? 하긴 조금 이르긴 하군.’이라 중얼거렸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른 곳이나 구경하자며 그를 이끌었다. 이미 열려있는 상점들은 아이들을 노린 것인지 색색의 물풀선과 인형들, 그리고 금붕어 뜨기까지 준비되어있었다. 다자이는 아이들과 같이 온 가족, 연인들을 이리저리 피해 가며 거리 안으로 들어서서는 그에게 ‘뭐 하고 싶은 거라도 있나, 츄야?’라고 물었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풍선 다트 쪽을 가리켰다. 다자이는 그의 선택에 ‘참 자네 같은 것도 고르는군.’이라 말하며 푸스스 웃었다.
“뭐 어떠냐. 이런 건 축제에서밖에 못하는데.”
‘어서가자.’ 나카하라는 다자이의 손을 낚아채듯 잡고는 풍선 다트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카하라는 주어진 다트 5개 중 하나를 집어 들어 신중하게 풍선 쪽을 바라보았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집중한 그의 모습에 다자이는 가만히 웃으며 ‘아까 보충 수업을 그렇게 들었으면 분명 쪽지시험은 만점일 텐데 말이야 츄야.’라고 그를 놀리며 그가 던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팡하고 터진 풍선은 잔재만이 남아있었다.
“좀 닥쳐... 집중하고 있잖냐.”
나카하라는 그렇게 남은 4개의 다트마저 전부 명중시키고는 경품으로 받은 인형을 다자이에게 건넸다. 다자이는 ‘에, 여자 친구에게 받은 경품을 주는 남자친구?’라고 장난스럽게 말하며 피식 웃는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뭔 개소리야. 다음은 사격이다.”
나카하라는 그런 그의 손을 다시 잡고는 사격장이 있는 쪽으로 그를 이끌었다. 다자이는 여름의 열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 차가운 자신의 손으로 넘어오는 열기가 꼭 그와 같다고 느낀 다자이는 시선을 들어 그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살짝 붉어진 나카하라의 귀 끝이 귀엽다고 생각하던 다자이는 사격장에서 한 판을 하겠다고 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인형은 순식간에 양팔 가득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손가락에는 물풍선까지 걸고 걸어 다니던 둘은 그나마 사람이 적은 공원 근처 벤치에 주저앉았다.
“역시 축제는 이런 게 묘미지. 인형은 쿄카 주면 되겠다. 아, 너도 하나 주랴?”
‘따라다니느라 고생했는데. 너도 가져라.’ 다자이는 그가 건네는 사막여우 인형을 받아들며 ‘츄야는 꼭 츄야 같은 것만 주는군.’이라 말하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이게 어디가 날 닮았냐? 니 눈도 이상하구만.’이라 중얼거리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다자이는 계속해서 쿡쿡거리며 웃고는 빙수라도 사오겠다며 일어나서는 자신이 앉아 있던 자리에 인형을 놓아두었다.
“츄야, 외로우면 이 인형이 나라고 생각하고?”
다자이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카하라는 ‘어서 사오기나 해!’라고 버럭 소리를 치고는 웃으며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힐끔였다. 그가 완전히 보이지 않자, 나카하라는 그가 놓고 간 인형을 빤히 응시했다. 꽤나 귀엽게 만들어진 인형은 다른 건 몰라도 눈매만큼은 다자이를 닮아있었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곡선, 뾰족하게 밑으로 향한 눈꼬리 등은 정말 그를 연상 시킬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내가 가지고 있을 걸 그랬나...”
‘닮았네.’ 중얼거리며 인형을 이리저리 뜯어보던 나카하라는 그대로 품에 인형을 안아보았다. 푹신하게 감겨드는 감촉이 나름 괜찮았다. 다자이와 닮았다고 생각해서 귀여운 건지, 아니면 그냥 그가 그런 말을 해서 귀여운 건지 잠시 헷갈린다고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뭐면 어때.’라고 중얼거리며 품 안에 인형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츄야, 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으면 말을 하지.”
갑작스럽게 귓가에 들리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나카하라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자이는 특유의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그를 놀리듯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으면.’이라 말했다. 나카하라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전에 손을 뻗어 자신을 잡아당기는 그의 손에 의해 다시 벤치에 앉혀졌다.
“니...니 새끼가 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냥 인형이 귀여워서 그런 거거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나카하라의 호통에도 다자이는 그저 ‘그래그래.’라고 대답해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신이 쓰고 있던 여우가면을 그에게 씌워주었다. 나카하라는 대뜸 뭐냐며 여우 가면을 벗으려 하였지만, 다자이는 ‘츄야 얼굴이 너무 붉어져서 좀 가려야하는 거 아닐까 해 씌워 준거라네.’라고 말하고는 가면의 눈구멍 사이로 보이는 그의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말에 나카하라는 그제야 얌전히 가면을 쓴 채 그를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누가 가려 달라했냐. 그런 걸로 따지면 네 놈 상판 데기부터 가려야 하는 게 당연하잖아.”
투덜거리는 나카하라의 말에 ‘난 잘생겼으니 굳이 그럴 필요 없다네.’라고 대꾸한 그는, 천천히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가면을 옆으로 넘겨 그의 얼굴을 다시 들춰보았다. 아까보다 많이 가라앉은 그의 얼굴은, 양 뺨만이 상기된 채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츄야, 너무 더워서 폭발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나카하라는 장난을 진지하게 이입해 묻는 다자이가 얄미운지 주먹을 들어 그를 쳐냈다. 나카하라의 반응에 즐겁다는 듯이 웃던 다자이는 그의 주먹에 아프다며 엄살을 피우고는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왔다.
“이제 곧 불꽃놀이가 시작할 테니, 우리 잠시 휴전하는 게 어떻겠나?”
다자이의 제안에 ‘네가 안 나불거리면 나도 안 때리거든?’이라고 투덜거리며 말하던 나카하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검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았다. 붉은 색 노을보다 이제 짙은 푸른색의 하늘이 하늘을 덮어가고 있었다. 나카하라는 점점 사람들이 몰려가는 건너편 강가를 바라보다가, 어서 따라오라는 듯, 자신을 이끄는 다자이를 눈을 쫒았다.
“불꽃놀이 시작하는데 어디 가는 거야! 그거 저쪽에서 하거든?”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한 나카하라는 자신의 손을 잡아오며 ‘명당을 알고 있으니까. 어서.’라고 하며 자신을 이끄는 그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가 자신을 데려온 곳은 강 저편에 있는 작은 전망대였다. 강에 있는 오리들과 물고기들을 관찰하는 작은 난간이 있는 높은 전망대. 다자이는 사람이 없는 곳에 올라서서는 ‘어떤가, 츄야. 잘 보이겠지?’라고 되물었다. 불꽃놀이를 하는 곳을 등지고 서 있던 다자이는, 서늘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좋은지 어서 계단 밑에 서있던 나카하라에게 올라오라며 손짓했다.
“진짜... 여기 오려고 그렇게 서두른 거냐?”
투덜거리며 계단을 오르던 나카하라는 곧바로 터지는 소리를 내며 피어오르는 빛에 시선을 들었다. 어서 올라오라고 손짓하던 다자이는 그대로 그의 손을 잡아 이끌어 난간에 섰다. 휘청 이듯 그에게 기대 중심을 잡은 나카하라는,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자신이 어찌됐던 간에, 환하게 퍼지는 불꽃에 정신이 팔린 듯 눈을 떼지 못했다.
“예쁘네.”
나카하라는 그제야 바로 코앞에서 들리는 다자이의 목소리에 놀라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그의 말에 수긍하듯 ‘진짜 예쁘네.’라고 대꾸하고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듯 시선을 들었다. 하지만 귀 바로 앞에서 울리던 그의 목소리가 신경 쓰이는 건지 연신 귀를 만지작거리며 여유롭게 난간에 기대 하늘을 올려다보는 다자이를 힐끔거렸다.
“츄야, 나 불꽃놀이가 예쁘다고 한거 아니야.”
펑펑 터지는 폭죽의 소리에 묻히지 않고 또렷이 들리는 그의 말에, 나카하라는 ‘그럼 내가 예쁘기라도 했냐?’라고 어설프게 대꾸했다. 혀라도 씹었으면 그 자리에서 죽고 싶었을 거라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곧바로 ‘응, 자존심 상하게도.’라고 들리는 목소리에 그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린 애처럼 불꽃놀이나 좋아하는 츄야를 예쁘다고 생각해버렸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하는 다자이의 표정은, 하나도 재미있어 보이지 않았다. 나카하라는 힘껏 붉어진 뺨을 색색의 불꽃에 숨기던 그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꽤나 인간적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불꽃놀이로 눈을 돌린 나카하라는, ‘나는 예전부터 그랬거든. 멍청이 아니야.’라고 무심하게 말하며 후끈하게 달아오른 뺨을 손으로 가리며 난간에 팔꿈치를 댄 채로 턱을 괴었다.
“츄야, 귀 새빨개졌어.”
‘아이 씨...’ 나카하라는 그제야 넘긴 머리카락을 대충 흩트리며 미간을 좁힌 채로 그를 흘겨보았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든다는 듯, 말없이 미소를 지은 채로 그를 응시했다. 불꽃놀이는 이미 절정에 달하는 듯, 하늘을 빼곡히 메워가며 불꽃을 터트렸다.
“너도 그렇거든...”
나카하라는 작게 웅얼거리는 것처럼 들린 자신의 목소리가 다자이에게 안 들렸을 거라 생각하며 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나 그는 아까부터 나카하라만을 바라보며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서로의 눈을 피하지 않던 둘 중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다자이였다.
“츄야는 나를 좋아해?”
펑펑펑. 터지는 폭죽소리에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소리가 감춰져서 다행이라 생각한 나카하라는,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칼을 다시 귀 뒤로 넘겨주는 그를 바라보며 ‘응. 좋아한다.’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친구로서?”
다시금 물어오는 다자이의 질문에 나카하라는 혀끝까지 내뱉어진 말을 잘라내듯 이로 입술을 물었다. 그리고는 ‘그걸 꼭 말로 해야 알아 듣냐, 너는?’이라 대답하며 난감하다는 듯이 머리를 헤집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접어 웃던 다자이는, ‘츄야 엄청 여유 없는 얼굴이네.’라고 놀리며 대답을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카하라는 ‘조용히 해라...’라고 중얼거리며 후끈거리는 얼굴에 부채질을 해댈 뿐이었다.
“우리 사이를 친구사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간 거, 니가 더 잘 알지 않냐.”
한숨을 내쉬듯 말하며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던 나카하라는, 살포시 웃으며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나저나, 나는 알아챈 지 오래 되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대답하며 그에게 숨기는 것을 못한다는 듯 놀려대었다.
“네 자식도 그거 진짜 못하거든?”
피식 웃으며 다시 턱을 괴던 나카하라는, 마지막으로 터지는 불꽃놀이를 바라보며 ‘티 다 났다고. 나보다 더 났어.’라고 말했다. 다자이는 소리 내 웃으며 ‘우리 둘 다 진짜 바보 같다네.’라고 중얼거리고는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불꽃놀이, 츄야랑 같이 봐서 다행이야.”
불꽃이 사그라진 하늘은, 다시 검푸른 색을 되찾았다. 나카하라는 ‘내년에도 같이 보면 돼.’라고 말하며 그에게 이제 내려가자는 듯이 손을 내밀었다. 다자이는 군말 없이 그의 손을 잡고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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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달빛에 비친 동백은, 어느 붉은 빛보다도 찬란했다. 질 때가 되어 떨어진 꽃은 마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은 모양새였지만, 그것마저도 아름다웠다. 츄야는 떨어진 꽃들 중 그나마 모양새가 온전한 것을 골라 들고 다자이가 친히 자신을 위해 만들어 놓은 산책길을 걸었다. 늦은 밤, 자신의 처소 앞을 지키던 궁녀마저도 꾸벅꾸벅 졸고 있을 무렵, 조용히 밖을 걸어 다니던 츄야는 이 상황을 다자이에게 들키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았지만 걱정에 치우치는 것 보다 동백의 향에 둘러싸이는 쪽을 택했다. 궁 안에서 맡던 희미한 향이 아닌,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의 진한 동백의 향이 숨을 쉴 때마다 온 몸 곳곳으로 번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츄야는 자신이 주워든 꽃을 망가지지 않게 최대한 조심하며 처소로 돌아왔다. 그는 가끔씩 즐기고 싶은 유희거리가 생겨버린 탓에 잠이 부족하지 않을 까 스스로를 걱정했지만, 어차피 없는 잠, 굳이 자지 않아도 된다고 되뇌며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얼마간 눈을 붙인 걸까, 궁녀가 기침하셨냐고 묻는 목소리에 부스스 눈을 뜬 츄야는 ‘일어났으니 걱정말거라.’라고 대답하고는 눈을 비볐다. 잠시 생각한다고 눈을 감은 것이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중얼거린 그는, 궁녀가 가져온 세숫물에 얼굴을 닦아 정돈하며 오늘의 일과를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아침 조례, 상소 읽기, 황제와의 회의. 항상 같은 일정이지만 혹시라도 중간에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기대해보던 츄야는, 정확한 시간에 자신을 데리러 온 환관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지고 있는 예복 중 가장 단정하고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재촉하지 않고 문 앞에서 기다리는 상선에게 금방 나가겠다고 일렀다. 그를 따라 나서자, 평소보다 바쁘게 걸음 하는 모양새가 긴장한 듯 보였다. 굳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지는 않아 말없이 조정을 향해 걸었다. 어느 때보다 이른 시간부터 모여 있는 신하들의 모양새에 의아해 할 새도 없이 조례는 시작되었다. 다자이에게 아침 인사를 할 새조차 없이 시작된 조례에서는, 잠시 동안 적막만이 흘렀다.
“오늘 조례에 급히 부른 까닭은 융국의 왕이 바뀜과 동시에 국경 지대에 약탈과 괴롭힘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아 전쟁 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대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먼저 말문을 튼 것은 다자이였다. 하지만 그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신하들은 황제의 옆에 앉아있는 기린의 심기를 살피며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기린이 피에 대한 거부감이 심하다고 들었을 뿐더러, 몇 년 전에 이루어 졌던 전황제가 시행한 대학살로 인해 실도했던 그가 전쟁이라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할지는 모르기 때문이었다. 츄야는 떨리는 손을 마주잡은 채로 긴장을 삭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견고하게 지켜져 있던 국경지대가 옆 나라의 난동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설명하던 다자이는 신하들이 츄야의 심기를 살피며 이야기를 차마 꺼내지 못하는 모습에 그를 불렀다.
“짐도 타이호께서 노여워하실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백성들이 더 이상 무고하게 죽어나가는 것은 볼 수 없을 것 같군. 타이호, 그대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질문의 화살이 츄야를 향해 돌아왔다. 츄야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하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긴장한 기색을 내색하지 않으려 침착하게 입을 연 그는, 자신을 응시하는 다자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폐하. 융국은 마수를 군에 이용할 정도로 뛰어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 지금 전쟁을 선포한다면 더 많은 백성들이 피해를 입어 지금보다도 더 큰 피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러니 지금은 지켜보자?’ 그의 말을 끊고 들어온 다자이의 한마디는 마치 내리꽂는 칼과 같은 차가움이었다. 츄야는 자신이 하려던 말이 그대로 다자이의 입에서 나오자 아무런 말 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다자이는 ‘그럼 타이호께서는 우리가 언제까지 참아야 좋을 것 같습니까?’라고 되물으며 자신이 보던 상소를 그대로 옆에 내려놓았다. 츄야는 마른 입술을 축이며 최대한 골똘히 생각했다. 옆 나라의 침략의 의사를 밝히고 쳐들어온다면, 국경지대 사람들은 몰살될 가능성에 놓여있었다. 그렇게까지 피해가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속히 국가 측에서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이라 생각하던 츄야는 ‘다음 한 번. 그 한 번이후로는 저희가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다자이는 그가 조속히 낸 대답에 만족한 미소를 띤 채로 대답했다.
“타이호께서 말씀하신 때이니 모두가 그러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곧 국경지대에 다녀온 병사들이 돌아올 때이니 같이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죠.”
다자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린 츄야는, 그의 말에 모두 수긍한다는 듯 고개를 조아린 신하들을 바라보았다. 다자이는 ‘무언가 할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타이호?’라고 물었지만, 츄야는 아무 일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조례는 무거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끝나버렸다. 비록 신하들의 모습은 이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행동과도 같이 보였지만, 나중을 생각한다면 슬기로운 판단인지도 몰랐다. 신하들이 전부 물러난 조정에는 다자이와 츄야만이 남았다. 츄야는 다자이가 먼저 일어날 때까지 자리를 지킬 생각이었는지, ‘왜 나가지 않으십니까, 폐하.’라고 물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다자이는 그의 물음에 ‘타이호께서 일어나시면 같이 일어날 생각이었습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츄야는 전쟁을 안 했으면 좋겠는가?”
‘침략이 들어오기 전까지 대응을 하지 않는 눈치여서 말이야.’ 심중을 찌른 다자이의 물음에 츄야는 고개를 돌려 대답을 피했다. 다자이는 그런 시선을 따라 움직여 그의 시야에 자신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장난스러운 그의 행동에 ‘뭐냐... 얼굴 들이대지 마.’라고 대꾸하며 그를 밀어낸 츄야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정 제일 위의 계단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예전 같았으면 자기가 직접 치러가겠다며 나서는 모양새였을 텐데. 우리 타이호께서는 아직도 겁먹고 계시는 겁니까?”
마치 장난을 걸어오는 말투에 피식 웃은 츄야는, ‘내가 뭐가 겁나서. 그냥 기린이니 피 냄새가 싫을 뿐이다.’라고 답하고는 조정을 나섰다. 다자이는 일부러 여유로운 척을 하는 그의 반응이 마음에 드는지, 피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느 정도 걸었을까. 왜 따라 오냐며 묻는 츄야에게 그저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라 대답한 다자이는, 뒤에서 황급히 자신을 찾는 목소리에 뒤를 돌았다. 다자이는 무언가를 품에 안고 뛰어오는 병사를 응시하였다. 파리하게 질린 얼굴은 참극을 목격했다는 증거일까. 그러나 그가 다가올수록 안색이 파리해지는 츄야의 모습을 발견한 다자이는, 환관을 시켜 그를 멈추게 하였다. 다자이는 금방이라도 휘청일듯한 츄야를 그대로 뒤에 가려준 뒤, 병사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물었다. 막 도착한 병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다자이의 물음에도 쉬이 입술을 떼지 못하던 병사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가 품에 꼭 안고 오던 상자를 그의 앞에 내밀었다.
“국경 방위대장 오다 사쿠노스케의 목입니다. 창에 꽂혀 매달려 있어... 목숨을 걸고 가지고 왔습니다.”
츄야는 온 몸에 미치는 피의 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의 악몽이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눈을 뜨면 보이는 다자이의 용포를 꽉 쥐며 등에 얼굴을 묻었다. 하지만 오다 사쿠노스케의 이름이 나오자, 꿈이라고 생각했던 현실의 무게에 그대로 그의 등에서 얼굴을 뗀 채 그를 올려다보았다.
“궁녀들은 타이호를 처소로 모셔라. 나는 잠시 이 병사와 이야기를 할 터이니. 처소에 도착하면 그곳의 궁녀들에게 목욕물을 준비하라고 일러라. 충격이 말이 아닐 테니 말이다.”
다자이는 자신들의 뒤를 지키고 서있던 궁녀들에게 일렀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츄야는 궁녀들의 시중을 받아 발걸음을 떼었다. 뒷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다자이를 연신 돌아보던 츄야는, ‘지 이야기를 어디다가 가져다 붙이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
자신의 처소 안에 있음에도, 궁 안의 살벌함은 여실히 피부로 와 닿았다. 츄야는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도 다들 말을 아끼며 자리를 지키는 궁녀들과 시종들의 모습에 처소에 조용히 머물며 낮에 처리하지 못한 상소를 보았다. 지금 보아도 집중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지만, 내일 전부하려면 하루 종일 해도 모자를 것 같다고 느껴 상소가 적힌 두루마리를 펼쳤다. 얼마간 글자를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집중조차 되지 않아 종이와 글자만을 구분하고 있던 츄야의 방문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내비쳤다. 궁녀들의 언질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분명 그일 것이라는 생각에 ‘왔으면 들어와야지, 왜 안 들어와.’라고 말한 츄야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다자이의 모습을 응시했다. 제일 친한 친우라고 하던가, 그가 전 황제의 신하였을 때,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던 남자였다. 나름 신의도 있고 자진해서 국경에 갈 정도로 충성심이 깊은 남자라고 들었던 츄야는,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으며 ‘시신을 찾아오라 시켰으니 장례는 최대한 빠르게 치를 생각이라네. 자네는 별로 신경 쓸 것 없어.’라고 대답하는 다자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가 죽었다는 것은, 국경의 군사 대부분이 죽었다는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경은, 융국에서 쳐들어온다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츄야가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음에도, 다자이는 그의 앞에 산호와 호박으로 만든 동백과 청옥의 잎사귀, 그리고 금으로 가지를 엮어 만든 머리 꽂이를 건넸다.
“...지금 이거 줄 때냐? 전쟁 하자고. 지금이 아니면 안 돼. 승산 없어.”
츄야는 마치 진짜 동백과도 같아 나비마저도 속일 듯한 머리꽂이가 무색하게 소리쳤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말을 들은 것인지 듣지 못한 것인지, 다자이는 흘러내린 츄야의 머리칼을 매만지며 ‘아직 덜 말라서 해 볼 수도 없겠군.’이라 중얼거렸다. 츄야는 그런 그의 모습이 답답한지 한숨을 내쉬며 ‘네가 아까 하자고 했잖아.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라고 그를 재촉했다.
“아직 시간은 있어. 군사는 보냈으니 일단 그곳을 정리하고 백성들을 피신시키는 게 먼저라네. 그리고 승산 없는 전쟁이니 만큼, 작전이란 것을 짜보아야겠지. 안고에게는 부탁해놓았어.”
‘그의 유품을 받았으니 오늘은 무리겠지만.’ 다자이는 별일 아니라는 듯 조곤조곤 말하며 불쾌해 보이는 츄야를 응시했다. 츄야는 복잡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바라보며 차라리 울고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한숨을 내쉬자, 그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은 다자이는 ‘츄야, 내가 지금 흥분하게 되면 분명 일을 그르칠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자네와 국가를 위해 전쟁을 나가는 거라네. 그도 친우이기 전에 나의 백성이니까.”
황제와 같은 말투로 말하며 츄야의 뺨을 쓸어주던 다자이는, ‘그리고 나의 기린이 전쟁을 선포했는데 내가 어찌 그냥 지나가겠어.’라고 말을 덧붙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에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은 것은 츄야였다. 대신 화내고 울어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했으리라. 츄야는 눈물이 흘러내리기라도 할까 소매로 눈가를 닦아내 버리고는, 방을 나서려다 뭔가 잊은 듯 돌아보는 다자이를 보곤 얼른 소매를 숨겼다.
“그리고 그 머리 꽂이는... 밤에 꽃구경을 다니는 츄야에게 주는 선물이랄까. 몸이 상하니 자주 나가지는 말게나. 나에게 말하면 같이 나가 줄 터이니 언제든 말하고.”
다자이의 말에 ‘시끄러워. 지금도 내가 때리면 휘청거리는 주제에 너나 잘 해.’라고 대꾸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음 지었다. 다자이는 그의 미소를 응시하다 어서 침소에 들라 말하고는 내일 아침 안고를 함께 보아야하니 환관을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그의 처소를 나섰다. 그가 사라지는 것을 문 너머 그림자로 확인한 츄야는, 그가 준 머리 꽂이를 매만져 보다가 빈 옥함에 넣어두고 장 깊숙한 곳에 밀어 넣었다. 무거운 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점점 차오르는 듯한 상현달이 밤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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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녕하세요 송화우연입니다. 드디어 다자이 오사무X나카하라 츄야 알파 오메가 버스 임신물이 책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5월 5일 디페스타에서 판매를 할 예정이고 그 이후 통판이 시작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리고 제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SAMPLE
이 작은 스틱이 뭐라고 이리도 긴장하는지. 열성 오메가 나카하라 츄야는 변기에 앉은 채, 긴장되는지 손을 바들거렸다. 작은 막대기를 빤히 응시하던 그는 그어지는 줄에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두 줄이었다.
***
다자이는 심각한 표정을 한 채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꽤 심각한 다자이의 표정에, 처리한 서류를 가져가던 쿠니키다마저도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가 다자이.’라고 물으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가만히 컴퓨터 마우스로 이것저것을 클릭하던 다자이는 그를 보며 이리오라는 듯 손짓했다. 그의 부름에 쿠니키다는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게 아니냐고 생각하며 그의 옆에서 그가 가리키는 컴퓨터 안을 바라보았다.
“쿠니키다… 이 사람은 촛불로 하트모양을 만들었다는데… 집 안에서 하면 분명 츄야에게 혼나겠지?”
‘응?’ 쿠니키다는 자신이 생각하던 심각한 문제와 멀어 보이는 질문에 다시 안경을 고쳐 쓰고 컴퓨터 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그가 인터넷이라도 검색을 해본 것인지, 여러 프러포즈 후기들이 가득했다. 쿠니키다는 그런 그의 스크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에게 발끈하며 소리쳤다.
“그럼 아까까지 이런 걸 찾아보고 있었던 거냐!”
***
“유우카가 태어나면… 너랑 이럴 일은 없겠네.”
‘너랑 밥 먹는 것도… 같이 자는 건 더더욱 없겠구만.’ 다자이는 그의 말에 놀란 듯이 가만히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속 웅얼거리며 입술을 오물대는 그의 모습만을 응시하였다. 다자이는 잠에 반쯤 취한 그가 하는 말을 전부 들으며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츄야는 그런 다자이의 눈을 응시하며 ‘그렇지? 역시 힘들지. 아, 이제는 아이가 있으니까… 몸도 못 섞겠고… 너는 결혼 하겠고…’츄야는 그렇게 한마디씩 할 때마다 시선을 점점 옆으로 돌렸다. 츄야의 눈에는 이미 잠이 한가득 차있었다. 그는 나른한 눈을 꾹 감았다 다시 뜨고는 다자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다자이는 그런 그의 뺨으로 손을 옮기고는 살살 쓸어주며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하고 싶나.”
의아한 물음이었다. 마치 네가 원한다면 전부 그렇게 해주겠다는 듯한 그의 말에 피식 웃은 츄야는, ‘네가 무슨 다 해 줄 거냐…?’라고 물었다. 다자이는 ‘되는 거라면.’이라 대답하며 그에게서 특정한 말이라도 들으려는 듯, 그의 생각을 이리저리 살살 들췄다. 마치 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말해보라는 듯이. 츄야는 눈을 점점 느리게 깜빡였다. 그러면서 ‘나는…’이라는 말만 반복하던 츄야는 눈을 깜빡여도 잠이 달아나지 않는지,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안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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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송화우연입니다. 다자츄 알오버스 임신물은 4월 21일 디페스타 부스에 나갈 예정입니다. 3월 중으로 선입금이 진행될 예정이고 그와 함께 통신 판매 폼도 같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그로 인해 티스토리에 모두 공개 되어있던 다자츄알오버스 입신물은 전부 비공개 처리 되었습니다. 제 글을 즐겨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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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님의 썰을 보고 쓴 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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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좋은 침대도, 가장 푹신한 베개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나마 허용치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수면제만이 잡생각을 덜어주었다. 자리가 너무 푹신해서일까, 아니라면 현실이 꿈같아서 일까. 나카하라 츄야는 차라리 전쟁터 한가운데가 더 잠이 잘 왔다고 중얼거리며 이불을 풀썩거리며 뒤척였다. 스탠드 빛 사이로 보이는 날이 서있는 나이프와 만일을 위해 같이 놓아둔 베레타를 보아도 곤두선 신경은 가라앉지 않았다.
“...망할 의사 놈...”
애꿎은 의사 탓만을 하며 혀를 차던 나카하라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일출에 더욱 불평불만을 쏟아내었다. 5시...결국 잠은 못 잤군. 기계적으로 일어난 나카하라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욕실로 향했다.
***
“젠장...”
나카하라는 벌써 5개비 째의 꽁초를 바닥에 바리고 발로 짓이겼다. 피어오르던 담뱃불은 희미한 연기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는 듯이 맞은 편 대학병원을 바라보던 그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병원 안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잠 부족으로 퀭해진 눈과 다크 서클,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미간 주름은 모두가 그를 피하게 만들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병원 로비로 들어선 그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더니, 답답함에 다시 병원 자동문을 열고 나와 버렸다. 여유롭게 순번을 기다리는 사람들,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이질적이게 느껴졌다. 의사는 이제 이것이 일상이라며 익숙해져 보라고 하였지만,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귀가 먹먹한 상태로 싸우는 일상을 반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아직도 이해할 수 없었다.
“...평화군 이라 부를만하네.”
자신이 최전선에서 돌아왔을 때, 훈장으로 수여했던 국회의원이 나카하라와 그의 부대에게 칭했던 말이다. 총질하고 사람 죽이는 부대에게는 걸맞지 않는 이름이었다. 나카하라는 병원을 차마 나서지는 못한 채, 병원 뒤에 있는 정원으로 향하며 다시 담배가 든 케이스를 꺼냈다. 나카하라는 조용한 정원을 둘러보다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 담배를 물었다.
“여기 금연인데.”
나카하라는 지포 라이터를 꺼내든 순간 들리는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처음 보인 것은 베이지색 카고 바지였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꽁지머리를 묶은 채 막대사탕을 물고 있던 수려한 남자였다. 흰 가운은 그의 위치를 알려주는 듯 했다. 나카하라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물었던 담배를 다시 케이스 안으로 넣었다.
“엄청 피곤해보이시는데 ER? 아, 사복인거 보니까 환자인가.”
혼자 나불나불 대던 의사는 ‘옆에 앉아도 되요?’라고 물어보고는 고개를 숙여 나카하라와 시선을 맞추었다. 뭐지 이 성가신 놈은. 입에 있던 담배가 사라지자 허전한지 입맛을 다시던 나카하라는, 그의 물음에 자신이 일어나서 ‘이제 됐습니까?’라고 대답했다. 의사는 재미있는지 연신 미소를 띠고 있었다. 뭔가 놀림 받는 느낌이 드는 얼굴인지라 한 대 치고 싶다고 생각하던 나카하라는 그가 딸기맛 사탕을 건네자 그것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담배 못 펴서 아쉽잖아요. 저는 다자이 오사무, 여기 소아과 근무해요.”
‘근데 그쪽은 진료 다 받은 거예요?’ 날치기 같이 생겼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혼자 친한 척은 다하고 있는 다자이의 모습에 나카하라는 더욱더 담배가 생각났다. 이런 놈은 군대에도 없었는데. 속으로 불만을 중얼거리던 그는, 다자이가 ‘정신과는 3층이에요. 오늘은 사람 별로 없으니까 예약 안 해도 갈 수 있을 것 같던데.’라고 하는 말에 미간을 좁히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순간적으로 튀어 나갈 뻔 한 짧은 말을 가다듬으며 물은 나카하라는 다시 한 번만 더 저 면상이 히죽거린다면 정말 한 대 치자고 생각하며 그의 멱살을 잡을 준비를 했다. 다자이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다가, 그의 살벌해 보이는 표정에 뺨을 긁적이며 대답했다.
“예전에 뉴스에 나왔던 평화군부대 나카하라 소령. 맞나? 제가 그때 유심히 봤었거든요.”
‘높으신 분들 다 계시는데서 그렇게 인상 쓴 채로 설명하고 깽판치고 나온 사람 처음 봤어요.’ 나카하라는 기억 속에 남지도 않았던 일을 다시 상기시키며 그를 잡을 준비를 했던 손을 내렸다. 그 뉴스라면 온 국민이 다 보았다고 말할 만큼 이슈가 되었었고, 그 일로 자신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 못한 것도 아니었으니. 어차피 은퇴 할 생각이었으니 가능했던 일이었다. 나카하라가 손을 내리자 다자이는 이제 안심이라는 듯 숨을 내쉬며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다.
“의외네. 의사 양반까지 그런 뉴스를 챙겨보고.”
나카하라는 입안 구석구석까지 퍼지는 단맛이 거슬리는지 사탕을 씹어 삼켰다. 으적으적 소리가 들린 것도 금방, 남은 막대만을 잘근거리던 나카하라가 말했다. 다자이는 피식 웃으며 ‘다들 궁금해 했으니까요. 이길 싸움이라 해도 전쟁은 전쟁이니까.’라고 대꾸하며 그의 옆에 나란히 서서 벽에 등을 기댔다. 나카하라는 잘근거리던 플라스틱 막대를 꺼내고는 손목에 찬 시계를 바라보았다. 병원을 가기는 글렀으니 오늘은 수면제 두 봉을 한꺼번에 먹어볼까라고 멍하니 생각하던 그는, 다자이의 이어지는 말에 그대로 아까 내렸던 주먹을 다시 쥐어 들었다.
“물론 그건 동료들 이야기고. 나는 그쪽 얼굴이 좀 취향이라 끝까지 봤었는데. 화려하게 생겨서 왜 군인이지 했는데, 깽판 치는 거 보고 성격 더러운 것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날라드는 주먹은 그에게 피할 새조차 주지 않았다. 그대로 뻗어버린 다자이는 그 사이 누가 발견해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발견되지 못했겠지만, 그건 나카하라의 알바가 아니었다.
***
“아야야...”
다자이는 쿠니키다가 건넨 얼음 팩을 받아들고는 뺨에 문질렀다. ‘군인이 이렇게 주먹을 막 쓰면 어째...’라고 중얼거리던 그를 보며 쿠니키다는 자업자득이라며 혀를 찼다.
“방금 나에게 말한 게 사실이라면, 넌 한 대로 끝나서 다행인거다. 나카하라 환자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이 세계를 통틀어서 없을 테니까.”
쿠니키다는 멍이 들것같이 붉어지는 다자이의 피부를 확인하고는 ‘피도 안 나는데 어서 니네 병동 가라.’라고 말하며 그에게 손짓했다. 다자이는 그런 그에게 너무하다 중얼거리며 쿠니키다에게 징징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나카하라씨는 왜 자네에게 직접 치료를 받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면 우리 병원에는 제대한 군인들 전문 복지센터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면 될 텐데.”
한참 얼음찜질을 하던 다자이는 녹은 얼음주머니를 주무르며 그에게 물었다. 확실히 다른 제대 군인들은 모두 그곳에 모여 모임을 가지거나, 치료를 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카하라는 이 병원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처럼, 그 건물로는 가까이 가지도 않았다. 쿠니키다는 환자에 대해 이리저리 말하고 다니는 것은 의사의 도리로써 어긋난다고 그에게 말하며 질문이 많은 그를 내쫒았다. 눈 깜짝할 새에 얼음주머니만을 가지고 휴게실에서 쫓겨난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시 소아과로 향했다.
***
마구잡이로 날아다니는 총알이 벽을 꿰뚫는 소리가 났다. 부서지는 벽 사이로는 부하들이 죽어나갔고, 국가 평화 안전 유지군의 상징인 배지를 단 시체들이 땅에 즐비했다. 총소리가 점점 잦아들 무렵, 나카하라는 벽 너머를 바라보며 빠르게 총을 장전했다. 그리고 팔을 관통한 총알에 의해 그대로 몸이 고꾸라짐과 동시에, 그는 땀범벅인 채로 잠에서 깨어났다. 수면제를 먹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고, 수면제를 먹으면 이런 기분 더러운 꿈밖에 못 꾼다니. 나카하라는 숨을 천천히 고르며 마른 입술을 잘근 거렸다. 어떻게 버텼냐는 물음에 그저 익숙해졌다고 말했지만 이런 지옥 속에서 익숙해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카하라는 마치 아직까지 시체들이 보이는 듯한 느낌에 뭉쳐져 있는 이불들을 전부 펼쳤다. 그래도 꽤나 잤는지, 창밖에서는 동이 트고 있었다. 하지만 푹 잔 것과는 거리가 먼 수면이었기에, 나카하라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고 다시 몸을 뉘였다. 그의 옆에는 항상 놓아두는 나이프와 베레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전투 속에서 다친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어째서 항상 총상의 기억은 항상 무덤에서 기어 나오듯 생생했다. 드러난 팔에 보이는 흉터를 문지르던 나카하라는 다시 자기는 글렀다 생각한 것인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군인 생활을 오래 했었던 그인지라, 군대를 제대한 지금도 그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심지어 제대 첫날에는 침대가 어색해 바닥에서 잘 정도였으니 말이다. 동네를 뛰어 조깅을 하던 그는, 얼마나 왔는지 가늠도 되지 않아졌을 때야 뜀박질을 멈추었다. 해가 중천이 되자 사람들이 슬슬 밖으로 나왔다.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다시 방향을 틀어 돌아가려던 나카하라는, ‘나카하라씨?’라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다.
“이른 아침에 뭐하세요? 설마 나카하라씨가 편의점 가시려는 건 아닐 테고....아 운동이신가?”
시퍼렇게 멍을 달고 있는 다자이가 그에게 아는 체를 하며 다가왔다. 나카하라는 안 그래도 예민해 보이는 인상을 더욱 찡그리며 ‘또 맞고 싶습니까?’라고 그에게 물었다. 다자이는 그에게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내밀며 ‘저 오늘 금쪽같은 휴가 첫 날인데 살려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그가 쉬고 있는 벤치 옆에 낼름 앉은 다자이는, ‘요 근처 사시나봐요?’라고 물었다.
“여기 어디지. 저 D구역 쪽으로 가야하는데."
다자이는 ‘엑, 여기 B구역이거든요? 여기까지 뛰어온 거예요? 와 나카하라씨 완전 괴물이네.’라고 대답하며 방금 산 것인지 물방울이 맺힌 물을 그에게 건넸다. 나카하라는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어 그대로 물 한통을 비워버렸다.
“원래 남이 주는 거 그렇게 잘 받아먹어요? 저번에 사탕도 그렇고.”
다자이의 물음에 나카하라는 ‘이제 죽일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조심해야 할 이유라도?’라고 대꾸하며 그가 준 물통을 구겨버렸다. 하긴. 다자이는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가 구긴 물통을 옆에 있던 쓰레기 통으로 던져 넣었다.
“나카하라씨 부하들은 나카하라씨가 제대해서 슬프겠는데요.”
다자이는 물과 함께 샀던 주전부리인지 반쯤 녹은 아이스크림을 꺼내 물었다. 나카하라는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아쉬워할 부하들 다 죽었는데 무슨 소리인지.’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자이는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에게 사과했다. 나카하라는 손을 내저으며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고 말하겠어. 괜찮아.’라고 답했다.
“그런데 말이 짧아졌네?”
나카하라는 ‘아, 내가 한 대 때렸다고 당신 만만하게 봐버렸네. 이참에 그 쪽도 말 놔.’라고 답하고는 코웃음을 쳤다. 보면 볼수록 그가 군인이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다자이였지만, 굳은살이 잔뜩 있는 마디 굵은 손과, 땀이 흐르는 목덜미에 있는 흉터들이 그가 얼마나 많은 훈련과 전투에 임했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츄야.”
나카하라는 잠시 사고회로가 멈추는 것 같았다. 뭐? 자신이 잘 못 들은 것은 아닌지 그에게 확인 차 되물은 것인데도 굳은 인상이 펴지질 않았다. 하지만 다자이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인지, 여유로운 웃음을 띠고 ‘츄야. 라고 불러봤네만.’이라 대답할 뿐이었다.
“...저번부터 생각한 거지만 네가 내 부대에 있었으면 진짜 좆 빠지게 굴렸을 거다.”
나카하라가 한숨을 쉬며 내뱉은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를 하던 다자이는 ‘내가 군인 안 해서 다행이네.’라고 말했다. 츄야라니. 자신의 부모님이 아닌 이상 남에게서 들어 본적 없던 자신의 이름이 두 번 만난 남자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이 기분이 묘했다.
“츄야는 내 이름 기억하나?”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질문에 나카하라는 멍하니 그를 응시하다 시선을 돌렸다. 다자이는 뺨을 그렇게 쳐놓고 이름도 기억을 못했냐며 툴툴대었지만 다시금 이름을 알려주었다. 나카하라의 귀에 박히게 몇 번을 말하고, 절대 잊지 말라 신신당부를 하던 다자이는, 그가 귀찮아 할 정도로 유난을 떤 뒤에야 떨어졌다.
“그래, 다자이. 다자이 오사무.”
나카하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에게 확답했다. 그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친해진 김에 뭐 좀 더 물어보자며 질문을 던졌다.
“잠 안 오지? 수면제는 먹는데 잘 안 듣고.”
‘눈만 봐도 알겠는데 뭐.’귀신같이 알아맞히는 다자이의 말에 말없이 앞만 보던 나카하라는 주머니에서 담배 케이스를 꺼냈다. ‘술은 많이 마시나? 좋아 할 것 같긴 한데.’ 다자이가 맞는 말만 쏙쏙 골라내 말하자 피식 웃으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다음날 머리 아파서 자주는 안 마신다. 그거 기분 더럽거든.”
자신이 생각한 대로라며 고개를 끄덕거리던 다자이는 ‘그럼 오늘 마실까? 나 3일 휴가라 시간도 많은데.’ 물었다. 지금 시각, 이제 막 오전이 지난 이른 오후. 제대하여 밖을 나다녀본 적 없는 퇴역군인과 매일매일을 병원에서 생활하던 의사. 두 사람이 이 시간에 열린 술집을 찾는 것이 힘들다는 사실을 안 것은, 이미 시내를 한 바퀴 돈 뒤였다.
“야... 그냥 우리 집 가.”
이제 하다하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집까지 닫혀있는 것을 본 나카하라가 말했다. 이쯤 되면 오기가 생겨서 꼭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눈앞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와 함께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각종 선물 받았던 것들이 어디 있는지 생각하던 그는, 집 근처 편의점에서 내려 술을 더 담았다. 다자이는 그저 집에 술이 없으니 샀다고 생각했지만, 나카하라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상자 꾸러미들을 내려 술병을 꺼내는 것을 보고는 혀를 내두르며 ‘이걸 다 마셔? 츄야 말술인가보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 칭찬을 오래 못가 깨졌는데, 나카하라가 그 많은 술 중, 와인 한 병을 다 해치우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
“츄야, 남자랑 자본적 있어?”
술기운이 알딸딸하다 못해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뭐라는 거냐고 되물어가며 그와 대화를 나누던 나카하나는 ‘왜, 나랑 자고 싶냐?’라고 물으며 평소에는 굳이 하지 않을 말들을 그에게 내뱉었다.
“군대에 있으면 별별 놈이 다 있어서 너는 놀랍지도 않다. 아, 나도 그 별별 놈 중 하나지만.”
‘자고 싶으면 네가 꼴리게 해보던가.’ 다자이는 술기운에 게슴츠레 뜬 그의 눈이 야릇하다는 생각을 하며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다자이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거리를 좁혀오자, 눈을 감듯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는 입 맞춰 오는 그의 입술을 맛보듯 한입 베어 물었다. 다자이는 그런 그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허리를 안아 몸을 밀착시켰고, 나카하라도 다자이의 양 뺨을 감싸 잡으며 입안을 헤집었다.
“시발...”
깨질 듯한 나카하라의 기억은 그곳이 끝이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로 거실 소파에 널부러져 있던 그는, 자기 자신이 왜 여기 있는지 조차 기억하기 힘들어했다. 나카하라는 지끈거리는 허리에 작게 욕지기를 중얼거리고는,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다자이를 그대로 소파 밖으로 밀어내 버렸다. 그 충격에 깬 다자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불쾌한 표정의 나카하라를 발견하고는 ‘좋은 아침이네 츄야.’라고 인사했다.
“설명해라. 아니면 반 죽여 놓을 거니까.”
다자이가 벗은 몸을 가릴 새도 없이 나카하라는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그러나 살벌하게 말하는 나카하라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다자이는 아프다며 징징대다가 ‘츄야 자네가 꼴리면 한다하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가 한거지.’라고 말하고는 이제 놔달라며 그에게 애원했다.
“...내가 그랬다고?”
다자이는 다시 되묻는 나카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술에 잔뜩 꼴아서 뭐라고 씨부린거냐, 나 새끼... 한숨을 푹푹 쉬며 머리를 벅벅 긁던 그는, 어서 옷 입고 나가라며 다자이를 재촉했다.
“...그리고 좋다고 매일 하자고 하기도 했는...아, 빨리 나가야지, 그래.”
다자이는 눈에서 불이 나오지는 않을까 걱정될 만큼 살벌한 나카하라의 시선을 피하며 자신의 옷가지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 날 이후,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병원에서였다. 나카하라가 정신 의학과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한 다자이의 일방적인 치근덕거림이었지만. 나카하라의 상태는 전보다는 좋아보였다.
“그 날 잘 잤어요?”
나카하라는 아직도 삐걱대는 허리를 잡고 ‘오냐. 허리 아파서 침대에만 있다시피 해서 좀 잤다.’라고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오히려 밝을 목소리로 다자이는 다행이라며 효과가 떨어지면 다음에도 부르라며 장난스레 말하자, 나카하라는 포기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는 술에 취해서 기억 못 할 텐데. 내가 그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재우는 것도 좀 하거든요. 그러니까 불러요.”
그는 주머니 안에서 포스트잇과 펜을 꺼내 뭔가를 적어내고는 그에게 건네주며 언제든지 연락만하라고 말했다. 나카하라는 받아들까 말까 고민한 듯싶었지만, 다자이는 앞서간 동료가 자신을 부르자 그의 손에 종이를 떠넘기고 가버렸다. 나카하라는 저 난잡하고 어지러운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숫자의 나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는 구기듯이 주머니에 넣은 채로 병원을 나와 버렸다. 지나가던 쿠니키다는 그를 보며 ‘어제 방문하셨는데 오늘은 또 무슨 일이십니까, 나카하라씨?’라고 아는 체를 했지만 듣지 못했는지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또 다자이 자식인가...”
***
나카하라는 지금 상황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현관문 앞에 뻔뻔한 낯짝을 들이밀며 ‘츄야 나왔다네. 문 안 열어 줄 건가? 저번에도 그러더니 왜 그리 튕기나?’와 같은 헛소리를 해대고 있는 다자이 오사무 때문이었다. 저 씹새끼는 부르면 조용히 올 것이지...속으로 욕지기를 중얼거린 나카하라는 현관문을 열어주며 ‘그 주둥이는 섹스할 때 빼고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냐?’라고 쏘아 붙였다.
“아, 하긴 츄야가 내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니. 그래도 자네가 새벽에 깰 때 괜찮다고 말해주면 잠도 다시 잘 들던데, 그건 별로인건가?”
다자이의 물음에 나카하라는 대꾸하지 않고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차라리 군대에 같이 소속했었던 동기나 다른 친구들이 낫지 않나 싶었다. 하지만 그들도 자신과 똑같은 상황이거나, 일찍 퇴역한 자신들과는 다르게 다들 자신들의 부대에 소속해 있는 군인들이 대부분이라 쉽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 깽판을 치고 나왔는데 얼굴 보기도 그렇고... 머리를 벅벅 긁으며 헤집던 나카하라는 이제는 좀 드나들었다고 자신의 집과 같이 편안하게 있는 다자이의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을 내비쳤다.
“왜 하필 네 자식이냐...”
눈가를 문지르며 중얼거리던 나카하라는 벌써 그가 자신의 집에 드나들기 시작한 날짜를 계산해보다가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저 치료나 유흥 목적인 거니까. 그가 사가지고 온 와인을 따던 그는, 익숙하게 잔을 꺼내 와인을 따르며 ‘한잔씩만 마셔야하네. 자네는 술이 너무 약해.’라고 말하는 다자이에게 들리도록 중얼거렸다.
“니도 군대에서 20년 최전선 근무 해보던가. 거긴 마취나 치료용으로 들인 술도 귀하니까.”
나카하라는 그가 따라준 와인을 받아들고는 ‘너는 근데 연병장 한 바퀴 돌고도 죽으려할 새끼니까 그냥 말을 말자.’라고 하며 옆에 있던 아일랜드 테이블에 스툴을 가져다 앉았다. 이제는 뭔가 다자이가 있는 것이 썩 어색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가만히 바라보던 나카하라는 ‘쿠니키다가 이제 수면제 안 먹어도 된다더라.’라고 말을 내뱉었다.
“나도 들었다네. 축하할 일이지. 이제는 혼자도 잘 잔다며? 그 섬뜩한 나이프랑 권총은 아직 못 치운 모양이지만.”
와인을 홀짝이던 다자이는 ‘이건 그 선물이야. 수면제 안 먹으니 좀 더 윤택한 삶이 된 것 같지 않나?’라고 말하며 와인 잔을 들어보였다. 츄야는 그의 반응이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과는 거리가 멀어 잠시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제 안 와도 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무슨 말이든 내뱉기만 하면 두세 달 정도 지속된 이 가벼운 관계는 금방 깨질 터였다. 뭔가 찝찝한 기분이 묻어나는 손을 바라보던 그는 순간, 가까이 다가오는 다자이의 얼굴에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내빼었다.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빤히 보이는데 츄야. 나는 계속 올 거니까 걱정 말게나.”
나카하라는 의중을 꿰뚫린 듯한 그의 발언에 시선을 피하며 ‘누가 네 자식 없다고 걱정하겠냐. 시끄러우니까 썩 꺼지게 하고 싶구만.’이라 중얼거리며 남은 와인을 한 번에 입에 털어 넣었다.
“내가 츄야에게 들이대는 건데, 안 올 리가 없지 않나.”
순간, 한 번에 마셨던 와인을 도로 잔에 뱉을 뻔했다. 그의 반응에 다자이는 몰랐냐는 듯이 그를 빤히 응시하다가 ‘처음부터 말했지 않나. 내 취향이라고.’라고 말을 덧대었다. 그게 플러팅이었냐.
“요즘은 그딴 식으로 작업을 거냐?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한 잔만 마시라는 다자이의 말은 들을 생각도 없었는지 두 번째 잔을 따른 나카하라는 간질거리는 손끝을 비비며 ‘열심히 해봐라. 내가 넘어가게끔.’이라 말하며 피식 웃었다. 마치 네가 할 수 있겠냐는 비웃음이었지만, 다자이는 ‘거의 다 넘어왔다네. 그런데 이 딱딱한 군인 아저씨는 인정하기 싫은 모양이야.’라고 말하며 나카하라를 빤히 마주보았다. 나카하라는 ‘내가 언제...’라고 웅얼거리면서도 슬금슬금 다가와 손을 잡으려 하는 그의 손을 막지 않았다. 간질거리는 손끝은 답지 않게 움츠러들었지만, 다자이는 상관하지 않고 깍지를 꼈다.
“뭐, 이제 곧 솔직해 지겠지.”
누구보다 자신감에 찬 말투였다. 다자이의 자부심 넘치는 말에 푸스스 웃은 나카하라는 와인 잔을 밀어내며 ‘난 원래 거짓말 같은 건 안 하거든?’이라 반박하며 마주 잡은 그의 손을 힘 있게 잡았다. 다자이는 이리저리 고개를 틀며 뭔가를 확인하는 것 같이 살피더니 ‘아직 완전히 솔직하지는 못하지 않나.’라고 대답하며 눈꼬리를 휘어 미소 지었다.
“침대에서만 솔직하면 못써 츄야.”
상큼한 웃음과는 다르게 자신을 놀리는 말투에, 그의 손을 비틀듯 잡은 나카하라는 엄살을 피우며 죽겠다고 하는 그에게 이제 그만하고 네가 하고 싶은 거나 해보라며 툴툴댔다. 손을 빼내 털어낸 다자이는 ‘항상 이렇더라,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츄야가 원하는 거잖아.’라고 반박하면서도 그의 뺨을 쓸어내리고 입 맞췄다.
“네가 꼬시는 거니까 열심히 해보라고.”
그의 반박에 어쩌겠냐는 듯이 대꾸한 나카하라는, 입 맞춰 오는 그의 목에 한 팔을 둘러 안아 몸을 밀착시켰다. 다자이는 너무 꽉 안지는 말라며 당부하고 그에게 짧게 입 맞춰주며 한 팔로 그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솔직하지 못한 감정선은 다시 마주잡은 손으로 연결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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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펼쳐있는 종이를 이리저리 훑어보던 츄야는 정말로 최소한의 것만을 남겨둔 궁의 지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의 질문을 받은 다자이는 무엇이 문제냐는 듯이 ‘당연히 별채도 있고 두어 개 남는 궁도 있으니 상관없지 않나.’라고 말하며 진지하게 종이를 펄럭거리는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회의나 나라가 돌아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네 마음대로 다 처리한 걸 왜 다시보라고 하는 거야.”
츄야는 턱을 괸 채로 노골적이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그의 행동에 자신이 들고 있던 종이를 신경질적으로 책상에 내려두었다. 그런 츄야의 반응도 상관없다는 듯이 웃던 그는, ‘괜찮다네. 아름다웠던 궁들을 골라 놓았고 연못도 내버려두었으니 외국의 대신들도 좋아하지 않겠나. 나는 그저 쓸모없는 것만을 없앤 거라네.’라고 태평하게 말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츄야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듯이 아침에 시동이 아름답게 꾸며주었던 머리장식을 전부 내리고 갈기와 같은 머리칼을 헤집었다. 츄야는 히죽거리면서 모든 반박을 쳐내는 다자이를 상대하려니 여간 머리가 아픈 것이 아닌지, 잠시 관자놀이를 누르다가 체념하듯 말했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말하지 마. 나중에라도 빈이나 황후를 들일 걸 생각 하면...”
‘츄야.’ 그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다자이는 그를 불렀다. 츄야는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섬뜩할 정도의 냉기를 느꼈다. 말을 멈추고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다자이를 응시하던 츄야는, 다시 유하게 웃어오는 그의 미소에 종잡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타이호께서는... 후궁을 수없이 거느리고도 만족할 수 없어 건드리면 안 될 사람마저 건드린 전 황제를 보며 무엇을 느끼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존칭에서는 무게가 느껴졌다. 마치 자신의 어깨를 잡아 누른 듯한 압박감에 츄야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자신이 동요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다자이에게 보이기 싫었다. 하지만 날카로운 칼이 겨누어지는 듯한 그의 말에도, 차마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츄야, 나는 그저 자네 하나 뿐이야.”
다자이가 천천히 그에게 손을 뻗어 숙인 그의 고개를 천천히 들게 만들었다. 츄야는 그가 고개를 들어주었음에도, 이로 입술을 물고 고집을 부리듯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다자이는 그런 그를 빤히 응시하며 ‘그리고 이 나라는 자네나 다름이 없고.’라고 대답하고는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손을 떼었다. 츄야는 그런 그의 말에도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왕은 너야.’라고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자네가 없었다면 나도 없었을 테니까.”
풀어진 츄야의 머리칼이 창호지 너머의 빛에 비쳐져 반짝거렸다. 다자이는 흘러내린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난 황후도 후궁도 필요 없다네.’라고 대답했다. 츄야는 짜증난다는 듯이 ‘내가 먼저 죽을 테니 평생 통치하소서.’라고 대꾸하고는 남은 종이들을 전부 말아 그가 서류를 쌓아두는 곳에 던져두었다. 신경질 적인 그의 행동에 키득거리던 황제는 이제 일어나보겠다는 그의 말에 ‘아직 안 되지. 오찬 시간은 아직 멀었는걸.’이라 말하며 그의 손을 잡아 다시 앉혔다. 그의 말에 자신을 잡은 그의 손을 뿌리친 츄야는, 밖에 서있는 상선의 그림자를 흘긋거리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츄야는 자신을 위해 그의 심기가 자신의 외에 다른 곳에서 미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는 것인지 그의 표정을 살폈다. 다자이는 그런 츄야의 불안함이 있는 그대로를 비춰주는 거울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최대한 유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츄야, 있던 곳에서는 피 냄새가 나던가? 오는 길에 난민이 보이던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츄야는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헤실헤실 웃던 다자이는 ‘아마 없을 거라네.’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의 말대로, 국경근처에서 넘어 오던 중에도, 수도에 도착해서도 피 냄새나 역한 악취라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전 황제의 손에 더럽혀져 악몽 같았던 도시는, 새로 태어나기라도 한 듯 밝고 화사했다. 츄야는 작게 ‘없었어.’라고 중얼거리고는 그를 빤히 바라보던 시선을 점점 떨어뜨렸다.
“다시는 자네의 몸에, 그런 표식이 새겨지는 것을 바라볼 수가 없다네.”
검붉은 색의 얼룩과도 같은 실도의 흔적. 되돌아오는 것마저도 고통스럽던 그 흔적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새겨졌다. 츄야는 그의 말에 ‘네가 이미 실도한 인간과도 같으니 이미 내 목숨은 화롯가에 놓인 종이 신세군.’이라고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해가 벌써 나무를 넘어간 것인지 그림자가 창호지 너머로 비춰졌다. 츄야는 다자이의 시선을 무시하기 위해 그 창호지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난 나라의 일을 했을 뿐이고, 나라의 일은 곧 자네의 일이지.”
‘난 부탁한 적 없어.’ 다소 공격적이게 대꾸한 츄야는 차라리 자신을 죽게 내버려두었다면 새로운 기린이 왔을 거라며 중얼거리곤 점점 흘러 내려오는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노을과도 같은 머리칼을 헤집고 돌아다니던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다자이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았다. 츄야가 뭐하는 짓이냐며 호통이라도 치려했던 찰나, 다자이가 그의 손을 끌어 저의 뺨에 대었다.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행동에 자신의 손을 빼려던 츄야는 ‘자네가 없다면 이 나라를 살릴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는 다자이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 듯 했다. 이제는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었다. 츄야는 심하게 요동치는 심장 근처의 옷자락을 꽉 쥐어오고는, 미친 소리 하지 말라며 그를 밀어내었다. 다자이는 밀린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일어서고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앞에 무릎을 세워 앉아 흐트러진 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헤집었다. 그리고 그를 품에 가두 듯 안아오며 그의 등 뒤의 풍경을 가리고 있는 창의 문고리를 살짝 당겼다.
“그대 말고 다른 기린은 생각조차 할 수 없어. 이 풍경만을 보아도 내가 자네를 생각하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가.”
다자이는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며 창문을 열고는 바로 보이는 츄야의 처소 주변을 감싼 붉은 동백나무의 장관을 보여주었다. 그 붉은 파도가, 전 황제가 일으켰던 피바다와도 같은 모양새여서 인지, 츄야는 그 황홀한 풍경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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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녕하세요. 송화우연입니다. 이제까지 제가 작성했던 수위 글들과 공개하지 않았던 이야기까지 묶어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글의 샘플들은 저의 Tstory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트위터에는 공지를 올렸으나, 혹여 트위터를 하시지 않는 분들께서도 구매를 원하실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본 글은 성인본이니 만큼 성인 인증이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혹여 미성년자이신 구매 희망자분들은 추후에도 재판의사가 있으니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厚愛談'(후애담)
B6/188p예상/22000원 +배송비 3000원
*부디 폼을 작성하시기 전에 정확한 금액으로 입금을 먼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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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나카하라. 그렇게 계속 전전긍긍하는 거면 누가 대신 말해주면 되는 거죠?’
안고의 그 한마디가 문제였다. 츄야는 그렇게 말만 툭 던져놓고 자신이 당황하는 사이 다자이에게 다가가 말해버린 그의 행동이 믿을 수가 없었다. 망연자실하게 응시하고 있던 자신을 힐끔거리던 다자이의 눈빛이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를 않는다. 분명 그렇게 툴툴 거린 것도, 짜증내며 밀어낸 것도 다 자신을 좋아하고 있어서 라는 걸 알아버린 거야. 짜증과 부끄러움에 머리를 헤집던 츄야는 다른 여학생들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하는 다자이를 엎드린 팔 사이로 힐끔거렸다. 그러다가도 다자이의 시선이 자신의 쪽으로 향하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그를 피했다. 하교시간에도 같이 가겠다며 정한 주번은 서로를 어색하게 만들 뿐이었다. 어제는 사정사정을 해 친구와 순번을 바꾸었지만, 다들 약속이 있다는 오늘은 그를 어떻게 피해야 할지만 고민 하는 그녀였다.
“츄야, 자나?”
바로 앞에서 들린 그의 목소리에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이미 들켰을 거라 생각한 그녀는 ‘아니야... 깼어.’라고 말하며 엎드리고 있던 탓인지 눌린 앞머리를 정돈하며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나 피해?”
‘내가? 언제?’순간 혀라도 깨물듯이 놀란 츄야가 격하게 부정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다자이는 그의 말에 ‘어제 주번 말없이 넘긴 것도 그렇고, 자꾸 등교할 때 두고 가는 것도 그렇고. 점심시간에 이렇게 계속 자는 척하고.’라고 그녀의 만행을 하나씩 꺼냈다. 츄야는 이미 다 들켰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잘근거리다 ‘나 안 피했거든. 니가 예민한 거야.’라고 말하고는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식은땀이 흐를 듯이 섬뜩했다. 안고의 말 때문에 그런 것이 분명해. 그의 말에 조개마냥 입술을 꾹 닫은 츄야는 ‘나는 할 말 많은데.’라고 하는 다자이의 말에 더욱 고개를 숙였다. 그런 그녀의 반응이 답답하다고 느낀 다자이는 한숨을 내쉬며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알아도... 피하지 말고 좀 들어주게 츄야.’라고 말하고는 흐트러진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어주며 맞은편에서 일어났다. 그의 말에 더욱 불안감만 차오르는 그녀의 속은 이미 안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찼다.
“차이는 걸 입으로 직접 듣고 싶은 사람도 있냐고...”
그가 교실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한 츄야는 물기가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눈을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거면 다정하게 쓰다듬지나 말지. 속으로 욕을 하던 그녀는 그대로 다시 책상 위로 엎드리며 눈물이 새어나오지 않도록 눈을 감아버렸다.
***‘나카하라에게 들켰습니다, 다자이군. 당신이 나카하라를 좋아하는 걸요.’
안고의 말은 다자이에게 청천벽력이었다. 그 눈치 없는 츄야에게 친구 이상으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자신의 인고의 시간이 전부 무너지는 듯한 말이었다. 그 말만은 하고 돌아서려던 안고를 붙잡은 다자이는 멀리서 망연자실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츄야를 힐끔거렸다. 다자이는 얼마 전 다른 친구의 물음에 자신이 친구이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며 손사래를 치던 그녀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안고, 누가 말해준 건가?”
다자이의 다급한 물음에 안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렇게 티내는데 누구라도 알아채고 나카하라에게 말했나보죠. 직접 물어보세요.’라고 대꾸하고는 다시금 가던 길을 가버렸다. 그 이후 츄야의 행동은 눈에 띄게 어색해져 갔다. 자신을 피해 등하교를 하는 것은 둘째 치고 주번마저 다른 친구에게 말없이 넘겨버리고 자신을 피했다.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차라리 싫다하면 모르겠지만 다른 여학생이랑 대화를 나눌 세면 긴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어색하게 가리며 자신 쪽을 힐끔거리는 그녀의 눈빛이, 다자이는 화살 같다고 느껴졌다. 그러다가 대화라도 하려고 다가갈 때면 어떻게 눈치 챘는지 빠르게 사라졌다. 다자이는 한숨을 내쉬며 매점에서 산 빵을 뜯었다. 일단 츄야와 가까운 친구들에게 절대 주번 바꿔주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그는, 학교가 끝날 시간만을 기다리며 계속 그녀가 도망가지는 않을까 주시했다. 결국 마지막 교시의 종이 치자, 츄야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채로 가방을 챙긴 뒤, 아이들이 나가기를 기다렸다.
“츄야, 내가 대충 정리는 해뒀으니까. 오늘은 쓰레기만 버리면 된다는군.”
츄야는 그의 말이 마치 도살장에 가자는 이야기와도 같이 들렸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린 그녀는 말 없이 그와 같이 학교 뒤 공터로 가 쓰레기 버리는 곳에 쓰레기 봉투를 던져넣었다. 둘은 서로의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쓰레기를 버린 다음에도 ‘오늘은 일찍 끝났군.’이라 말하는 다자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한 츄야는, 이 자리를 피해보려는 듯 ‘나 가도 되지?’라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할 말이 있어.”
올게 왔구나. 츄야는 긴장한 듯 그의 앞에 똑바로 서서는 시선을 내리 깔았다. 아직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물이 나는 듯 눈가가 뜨거워졌다. 다자이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긴장한 듯 자신의 머리를 헤집으며 고개를 숙인 그녀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결국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츄야였다.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싫었냐, 나쁜 새끼야...’라고 중얼거린 츄야는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싫으면... 흑... 그냥 모른척 하면 되잖아...”
눈물을 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며 말한 그녀는 엉망이 된 얼굴은 보이기 싫다는 듯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영문 모를 얼굴을 한 다자이는 ‘그거야 말로 츄야가 싫어서 피한 거 아닌가. 내가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다며.’라고 말한 그는 그게 무슨 말이냐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훌쩍거리는 그녀와 서로를 빤히 응시했다.
“너... 나 좋아한다고?”
아 진짜 안고... 다자이는 훌쩍거리며 자신의 말을 되묻는 그녀의 질문에 붉어진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려버렸다. 마치 뒤통수를 맞은 듯한 얼얼함에 잠시 관리가 안 되는 표정을 갈무리 하던 다자이는 ‘야, 다시 말해봐. 너가 날 좋아한다고?’라고 저돌적으로 묻는 츄야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대로 넘어가버렸군...”
다자이는 멍하게 자신을 바라보다가 새빨개진 얼굴로 당황한 듯이 보이는 츄야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꼴사납게 말해버렸지만... 좋아한다네, 츄야.’라고 다시 말하며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모르겠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리는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서는 픔에 안았다. 자신이 작다며 놀리던 그녀의 체구가,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품에 들어왔다. 이렇게 저돌적이게 들키는 것도 나름 괜찮다고 생각한 다자이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품에 숨기며 자신의 허리를 꽉 안는 츄야의 행동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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