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모리의 한마디에 탐정사에 있던 모든 사람은 얼어붙었다. 후쿠자와는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는 스승이자, 한 단체의 수장이었다. 그런 그가, 이렇게 세간에서 말하는 ‘나쁜 놈’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한 행동을 하다니. 두 사람의 사이에서 얼어붙은 나카지마는 결국 쿠니키다의 손에 이끌려 방을 나갈 수 있었다. 모리는 잘 우려진 홍차를 홀짝거리며 후쿠자와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많이 당황한 듯했다. 게다가 그 당황한 모습을 내보이기까지 하여 모리는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렇게… 자리를 피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 무척 당황스러웠을 텐데 죄송합니다.”
모리는 그의 사과에도 아무런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사과가 마음에는 든 것인지 모리는 아까만큼 공격적인 눈초리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었다. 후쿠자와는 평소 긴장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마치 어린아이가 된 듯이 긴장되었다. 스승님께 막 배움을 가지기 시작하던 때와 같이 하오리를 주먹으로 곽 쥐어오던 그는, ‘그럼….’이라고 운을 띄우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렇게까지 일을 키울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저 제 손으로 이 세포를 떼어내려 하는데, 그게 법에 걸린다는군요. 불법 의사가 되기에는 아직 제가 쌓아온 경력이 아쉬워서 이렇게 당신을 찾으려고 탐정사를 소개받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날 아침 돈뭉치를 두고 간 것도 사과받을 겸해서요.’ 모리의 말을 집중해 듣던 후쿠자와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하는 모리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모리는 생각 외로 잘 굽히고 들어오는 후쿠자와의 태도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모리는 연신 사과하는 후쿠자와에게 됐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금방이라도 무릎을 꿇을 듯이 구는 그에게 어서 일어나라고 말했다.
“우리 둘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니 만회하면 됩니다. 오늘 시간 괜찮으십니까? 바로 병원으로 가서 수술 날짜를 잡으려 하는데 동행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후쿠자와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평생에 있을까 말까 한 일을 한꺼번에 겪은 후쿠자와는, 조금 지친 기색이었지만 모리 앞에서 그것을 티 내지 않았다. 후쿠자와는 쿠니키다에게 대화가 잘 끝났다고 말하며 오늘 하루 동안 탐정사를 맡겼다. 쿠니키다는 여러모로 막중한 책임을 느끼는지 고개를 끄덕거리며 다시 일에 전념했다. 후쿠자와가 먼저 앞장서 탐정사를 나섰다. 문을 나설 때마다 문을 열어주는 그는 분명 다른 사람들보다 예의있고 배려심이 묻어났지만, 모리는 그에게 ‘문은 혼자 열 수 있으니 앞을 잘 보고 걸으시길 바라겠습니다.’라고 대꾸하고는 그와 같은 보폭으로 탐정사 건물을 나섰다. 모리를 배려하여 한 일임에도 그가 차갑게 대하는 것이 조금 마음이 쓰였지만, 후쿠자와는 그의 신경을 긁지 않는 쪽을 택했다. 병원은 작고 소박한 산부인과였다. 후쿠자와는 요새 누가 이런 병원을 찾지 싶었지만, 앞 장서는 모리를 따라 계단을 올라갔다. 병원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나름대로 명망 있으신 분이신데 눈에 띄면 안 되니까요. 물론 제가 자주 다니는 병원이라 온 겁니다.”
후쿠자와는 자신을 배려한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모리는 바로 병원 접수를 하고 자신을 부르는 간호사를 따라 진료실로 들어갔다. 후쿠자와는 아까같이 긴장된 모습으로 모리를 따라갔다. 모리와 의사는 괘나 친분이 있어 보였다.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은 문제없을 거라고 이야기하며 검사를 진행했다.
“안녕하세요, 후쿠자와 씨. 보통 베타 분들은 문제없이 중절 수술을 할 수 있지만, 모리 씨가 극도로 예민하신 우성 오메가 셔서요. 후쿠자와 씨도 같이 검사에 참여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번에 보니까 페로몬이 그다지 강하지는 않아서 분명 열성일 것 같은데 말이죠.“
손을 내저으며 걱정 없다는 듯이 말하는 모리는 웃으며 동의를 구하듯 후쿠자와를 바라보았다. 후쿠자와는 어렸을 때 받았던 검사에서나 볼법한 우성, 열성이 무슨 상관인지 전혀 모르겠으나, 검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알겠습니다.’라고 답하고는 간호사를 따라 검사실로 향했다. 검사는 매우 간단했다. 피를 조금 많이 뽑고, 러트사이클 주기를 물었다. 후쿠자와는 별거 아닌 검사를 마치고 다시 진료실로 돌아왔다. 모리는 아까보다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검고 곧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며 속 시원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모리의 모습은 후쿠자와까지도 기쁘게 만들었다. 얼마 걸리지 않는다던 검사결과는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듯했다. 모리는 아까같이 여유로운 표정이었으나, 조금 초조해진 듯 보였다. 모리는 결국 간호사와 의사가 검사결과를 가지고 나오자 미소를 띤 얼굴로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의사는 아까까지 모리와 화기애애하게 웃던 미소가 사라져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조금 가린 채 다시 자리에 앉은 의사는 ‘모리 씨, 중절 수술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모리는 그 한마디가 그곳의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후쿠자와는 조금 화가 나보이기까지 한 모리를 진정시키며 의사에게 정중한 투로 ‘무슨 일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의사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모리의 성격을 알아서인지, 여유롭던 표정이 가시고 조금 걱정 어린 표정이 된 의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후쿠자와 씨도 극 우성 알파이신 관계로 법적으로 중절 수술이 불가능합니다.“
모리는 배신당한 표정으로 후쿠자와를 바라보았다.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얕은 그 페로몬이 무슨 극 우성. 속으로 불만을 토로하다 한숨을 크게 내쉰 모리는, ‘설마요.’라고 말하며 후쿠자와를 응시했다. 후쿠자와는 ‘그게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라고 물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의 말에 의하면, 얼마 남지 않은 알파와 오메가의 개체 수를 맞추기 위해, 알파와 오메가의 중절 수술을 막는다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이 평범한 알파와 오메가였다면 특수한 경우라는 이유로 예외가 생길 수 있었지만, 극 우성 알파는 나라 안에서 개체 수 보존을 신경을 쓰고 있는 터라 법원을 거치지 않고는 무리였다.
”그리고 법원을 거치면 이미 기간이 지나죠,“
이런 뭣 같은 상황이 있을 수 있지. 모리는 순간 입 앞까지 튀어나온 욕지기를 참을 수가 없어졌다. 모리는 후쿠자와 쪽이 당연히 열성이라 생각한 것이라 당당하게 중절 수술을 말할 수 있던 것이었다. 개 같은 나라 법. 모리는 조금 전까지 부드럽게 쓸어넘겼던 머리를 잔뜩 헝클이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속전속결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지. 후쿠자와는 짜증이 가득 찬 모리에게 무어라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지금 아무도 입 열지 마십쇼. 아무것도 듣기 싫으니까.“
말 한마디를 내뱉으려던 후쿠자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탈출구가 단단히 막혀 있었다. 모리는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난 것인지, 고개를 번쩍 들어 의사를 바라보았다.
”해외에서 수술은 어떻습니까.“
”그… 기록이 남아 분명 나중에 걸리게 될 겁니다. 두 분께서 연이시라면 되도록 낳는 쪽으로….“
모리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후쿠자와조차 고개를 저으며 ‘저희 둘, 모두에게 안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답하며 모리에게 진정하라고 말했다. 이미 탐정사를 이끄는 후쿠자와보다, 인근 요코하마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모리의 경력은 이 사건으로 인해 위태로워 졌기 때문일까. 모리는 진정이 힘들어 보였다. 게다가 아이를 가지고 있는 것은 모리의 몸인지라 모리가 감수해야 할 일들이 더욱 커졌다. 모리는 혹시라도 후쿠자와가 여기서 발을 뺀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지 생각했다. 제정신으로 만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그가 사람을 쉽게 배신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태의 모리는 그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선생님, 법원 청원 넣게 소견서 작성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후쿠자와 씨. 따라 나오세요.“
의사는 모리의 방법이 최선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운이 좋다면 수술 가능 기간 전에 결과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리는 긴장에 입술을 뜯으며 진료실 밖에서 소견서를 기다렸다. 초조해 보이는 표정과 행동이 그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후쿠자와는 그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며 일단 조금 진정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리는 그런 그의 행동조차 고까워 보이는지 ‘됐습니다. 진정 가능한 후쿠자와 씨나 많이 드시죠.’라고 말하고는 다시 진료실 쪽을 바라보았다. 의사는 걱정이 되는지 그에게 직접 봉투를 전해주러 나왔다. 모리는 그 소견서를 받고, 감사하다는 인사 외에 아무런 말 없이 병원을 나섰다. 후쿠자와는 모리의 뒤를 쫓아가며 그가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서 걷던 와중, 모리는 어느 카페 앞에 멈추어 섰다. 그의 시선은 창가에 앉은 학생들의 파르페에 가 있었다.
”후쿠자와 씨, 이리로 오세요.“
멈춰선 모리를 따라 선 그는, 모리의 부름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라서 카페로 들어갔다. 모리는 일부러 햇볕이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오랜만에 쓴 연차가 아까울 정도로 해결된 일이 없었다. 모리는 잠시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다가, 후쿠자와에게 뭘 마실 건지 물었다.
”아니. 제가 사겠습니다. 모리 씨는 무슨 음료를 드시겠습니까.“
”저는 저기 파르페요. 두 개 다 시켜주세요.“
후쿠자와는 학생들이 먹는 파르페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는 딸기와 바나나,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시럽이 가득 올려져 있었고. 하나는 키위와 딸기 생크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후쿠자와는 바로 자신의 녹차와 그의 파르페를 주문했다. 분명 임신 초기 때는 먹고 싶은 것을 잘 먹어야 한다고 했으니 두 개를 먹던, 세 개를 먹든 상관없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모리는 카페와 이질적이게 동떨어져 있는 후쿠자와를 가만히 응시했다. 과묵하고, 다부지고, 나름의 예의도 있고. 분명 생긴 것까지 쳤을 때 모리가 만났던 사람 가장 좋은 사람일지도 몰랐다. 차라리 번호만 묻고 나올 걸 술이 원수지. 모리는 자신의 실수에 혀를 차며 쟁반을 들고 오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후쿠자와는 별다른 말 없이 그의 앞에 파르페를 놓아주었다. 모리가 그다지 이야기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기 때문이라 생각한 건지, 그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모리는 그가 사 온 파르페를 바로 먹기 시작했다. 빠르게 하나를 해치우고, 조금 기분이 나아졌을 때쯤, 자신을 빤히 바라보던 후쿠자와를 발견한 모리는, ‘왜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라고 물으며 다른 파르페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잘 먹으니 보기 좋아 보고 있었습니다. 실례했습니다.“
예의가 묻어나는 말투가 몸에 배 있었다. 모리는 ‘원래 그렇게 고지식하게 말씀하십니까?’라고 물으며 크림에 붙어있던 키위를 입에 물었다. 후쿠자와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재미없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말에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린 모리는 잠시 크림을 깔끔히 먹는 데 집중하며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후쿠자와 씨, 만약에. 정말 정말 만약에라도 법원 청원이 잘 해결되지 않아서 아이를 낳아야 할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 실수이니만큼 제가 해결하고 싶습니다.“
망설임 없이 말하는 그의 대답에 모리는 꽤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생각했던 대답이랑 다르네. 만약 조금이라도 망설였거나 말 같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면 모리는 그대로 얼굴에 물이라도 뿌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예상외로 더욱 고지식하고 더욱 책임감이 강한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고개를 끄덕거린 모리는 반쯤 먹은 파르페에 긴 파르페 숟가락을 꼽았다.
”후쿠자와 씨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조금 위안이 되네요. 이 뒤로 아이를 낳을 가능성을 고려하고 임하려면 후쿠자와 씨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거라면 걱정하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준비하겠습니다. 일단 제 집에 편안하게 지내실 방을 준비해 둘 테니….“
”너무 가지는 말아주세요. 전 제 집에서 지낼겁니다. 지금도 나중에도 말이죠.“
모리는 단칼에 거절하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후쿠자와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면서도 뭔가 고민스러운 표정이었다. 딱히 정한 규칙도, 별다른 이야기도 없었다. 모리는 자신의 전화번호와, 집 주소, 근무하는 병원 위치를 알려준 뒤 그에게도 같은 정보를 요구했다. 후쿠자와는 특위의 바른 글씨로 그에게 자신의 정보를 적었다. 살면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일이 있었나. 후쿠자와는 단연코 없었다고 생각하며 한결 ㅍ난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모리를 마주 보았다.
”잘 부탁합니다. 역시 설탕이 좀 들어가니 사람이 마음이 유해지는군요.“
한 가지씩 알아 두어야 할 점이 생기고 있다. 이렇게 하나씩 쌓이다 보면 분명 서로에게 깊게 빠져버리는 것은 아닐까. 후쿠자와는 제 생각이 이상하다고 느끼면서 모리를 바라보았다. 모리는 파르페를 마저 다 먹고, ‘후쿠자와 씨는 단 것이 부족해 보이시는데. 허니 버터 토스트를 더 시키는 건 어떻습니까?’라고 물었다. 후쿠자와는 수첩에 설탕이 중요하다는 말을 적으며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모리의 질문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토스트를 주문하기 위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핑크림은 얼마나 올리시겠습니까.“
지금 모리에게 제일 중요한 질문을 하며 말이다.
'문스독 > 다른 커플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후쿠모리]알오버스 임신물.3 (0) | 2019.04.12 |
---|---|
[후쿠모리] 알오버스 임신물.1 (0) | 2019.03.29 |
[후쿠모리]사랑 한 조각을 삼켰다. (0) | 2019.02.04 |
[후쿠모리]때늦은 해열 (0) | 2019.02.01 |
[후쿠모리]새벽을 기다리며 (0) | 2019.02.01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