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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마키는 이제 전부 기력을 되찾은 듯 했다. 궁녀들이 성심성의껏 돌봐, 기력을 되찾았을 뿐만 아니라 궁녀들과도 친해져 이제는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해줄 사이가 되어있었다. 뒤뜰 정원에서 산책도 하고 오이카와가 궁녀를 통해 전해준 서책을 읽기도 했다.
“있지요, 메이누나. 이 저택은 그럼 마츠카와님 것이에요?”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와 첫 대면을 한 뒤로 하루에 몇 번은 마츠카와에 대해 궁녀에게 물어왔다. 그가 대지의 신인 것이라던가, 신은 무엇을 하는지 궁녀에게 꼬치꼬치 물어댔다.
“그렇지. 이 신전 전체가 마츠카와님의 것이란다. 하나가 좋아하는 정원도 마츠카와님께서 직접 가꾸시던 곳이야.”
아이의 여러 가지 질문에도 친절히 답해주는 궁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하나마키는 걷던 정원을 다시 훑어보았다. 보기 좋게 자란 나무들과 신전 근처를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들, 그리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정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자신을 ‘하나.’라고 부르던 마츠카와를 떠올렸다.
“꽃을 좋아하시나...”
하나마키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궁녀와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그러자 조금 뒤 궁녀가 갑자기 궁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츠카와님이시네.”
마츠카와는 일이 막 끝났는지 입에 담뱃대를 문 채 멍하니 서있었다. 오래 걸리는 일을 한 듯 눈 밑이 까맣게 되어 피곤해 보였다. 궁녀들은 그런 마츠카와의 얼굴이 일상다반사였던 것인지 ‘오늘까지인 일이 있으셨나보네.’라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나마키만이 멈춰서 마츠카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하나, 어서 오렴. 이제 정원 끝자락이야.”
궁녀의 부름에 하나마키는 궁녀 쪽을 향해 돌아보았다. 하지만 돌아 본 것은 하나마키 뿐만이 아닌 듯 했다.
“하나인가.”
마츠카와는 물고 있던 담뱃대를 빼내고 연기를 흘려내었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하나마키에게 손짓을 하자, 하나마키는 당황한 것인지 멀어져 가는 궁녀와 마츠카와를 번갈아 보았다.
“하나.”
다시 한 번 마츠카와가 하나마키를 부르자, 그가 오지 않아 다시 돌아온 궁녀가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서 가봐야지, 하나.”
하나마키는 궁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마츠카와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계단을 한 칸씩 오를 때마다 점점 가까워지는 마츠카와의 시선에 하나마키는 긴장했다. 하나마키가 계단을 다 올랐을 무렵, 마츠카와는 재떨이를 열어 재를 털어내고 담뱃대를 치우고 있었다. 하나마키는 옷을 털어내 냄새를 없애는 마츠카와를 인기척 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아, 벌써 다 올라왔었군. 잠시 들어왔다 가거라.”
마츠카와가 고개를 들어 하나마키에게 방을 가리켰다. 곧바로 궁녀에게 저번에 오이카와가 사둔 과자와 차라도 가져오라 명하고 먼저 들어가 침상 옆 의자에 앉았다.
하나마키는 자연스럽게 마츠카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마츠카와는 가만히 하나마키를 뜯어보았다. 궁녀들에게 사랑받고 지낸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아이라 그런 건가 싶었지만, 이제 보니 천성이 애교스러운 것 같았다. 아무 말 없이 자신이 쳐다보기만 하자, 아이는 꼼지락 거리기 시작했다.
“지내는데 어려움은 없느냐.”
마츠카와의 물음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아이는 뭔가 생각하는 듯 입술을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누나들도 무척 잘 대해주시고... 맛있는 것들도 항상 나와서 지내는데 아주 좋아요.”
하나마키가 또박또박 말하자 마츠카와는 ‘다행이군.’이라며 끄덕였다. 때마침, 궁녀들이 들어와 상 가득 간식들을 올려두고 차를 내려 앞에 놓았다. 하나마키는 형형색색의 과자들에게서 눈을 뗄수 없었다.
“오이카와가 이런 주전부리를 좋아하다 보니... 많이 있으니 여기서 먹고 싶은 만큼 먹고 후에 별궁으로 가서 궁녀에게 말하면 더 가져다 줄거다.”
마츠카와의 말에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서 먹어보라는 마츠카와의 말에 감사의 인사를 한 하나마키는 바로 앞에 놓인 반짝거리는 사탕을 하나 입에 넣었다. 그대로 입안에서 녹아버리는 설탕의 달콤함에 하나마키는 마음에 들었는지 한두 개를 더 들어 입에 넣었다. 마츠카와는 한동안 하나마키가 먹는 것만을 바라보았다. 단 것이 취향에 맞는지 하나하나 집어 먹는 하나마키를 바라보던 마츠카와는, 옆에 놓아둔 책을 펼쳐들어 한 장 한 장 넘겼다. 그러다 접어둔 페이지가 나오자 잠시 읽던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말했다.“네 이름을 정해주고자 들어오라 한 것인데...새로운 것도 알게 되었군. 궁녀들이 단 것을 좋아한다는 말은 안 해 줬던 것 같았는데.”
‘사탕이 정말 맛있다’는 하나마키의 마음을 드러내는 듯 한 바닥을 보이는 나무그릇을 보며 마츠카와는 말했다.
“부족하면 더 가져오라 하겠다. 그리고 네 이름을 지었는데...”
책을 넘겨보던 마츠카와가 책 너머로 하나마키를 바라보니, 하나마키는 입 안 가득 사탕을 문 채 자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마츠카와는 그 모습이 퍽 귀여웠는지 피식 웃었다.
“타카히로(貴大)가 어떨까 싶은데.”
마츠카와가 책 너머로 하나마키에게 ‘어때.’라고 물었다.
“귀하고 크게 될 사람이라는 뜻이다. 너는 사랑받는 아이니 말이지.”
마츠카와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하나마키는 얼굴을 붉히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아니라 반박했다.
“별궁 궁녀들이 누군가를 그렇게 챙기는 것을 본게 벌써 200년 전인데 말이지... 네게는 무척 잘해주는군.”
하나마키는 200년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눈이 사탕만큼 커졌다. 그리고는 입안에 있던 과자를 씹어 삼키고는 마츠카와에게 물었다.
“그...그럼 마츠카와님께서는 도대체 나이...아니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하나마키의 물음에 난감하다는 표정이 된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기다리라 한 뒤 옆에 쌓아둔 책 더미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한숨을 쉬고는 하나마키에게 말했다.
“너무 나이가 많아 세다가 포기했었다. 그러다 오이카와가 저번에 적어 주었는데, 그 책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는 구나. 자주 쓰던 공책이었는데 말이지.”
혀를 차며 아쉽다는 듯이 말하던 마츠카와는 ‘나중에 생각나거나 하면 알려주겠다. 그래도 너보다 몇 천살은 많을 것이다.’라 말하며 싱긋 웃었다. 하나마키는 ‘몇 천살이라니...’라 중얼거리며 사탕을 입으로 가져갔다.
“이정도 살면 나이같은 건 그냥 잊게 되더군.”
하나마키의 중얼거림에 마츠카와가 말하며 미소 지었다. 하나마키는 아직도 가늠이 되지 않는 듯한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말하지 않았고, 마츠카와는 서책을 덮었다.
“타카히로, 더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말 하거라.”
마츠카와는 거의 비워져 가는 과자 그릇들을 보며 묻자 하나마키는 맛있게 먹던 하얀 사탕의 마지막 조각을 집어 보였다.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마츠카와는 아무 말 없이 끄덕이며 밖에 있는 궁녀를 불러 사탕을 더 가져오라 말했다. 하나마키가 마지막 조각을 입에 넣고 굴리며 뭘 먹을까 궁리하는 표정으로 그릇들을 보자, 마츠카와는 뭔가 귀엽다는 생각에 손을 뻗어 하나마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자 하나마키는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군.”
마츠카와가 먼저 사과해오자 하나마키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고개를 저었다.
“말씀해주시고 만지신다면야... 저는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만지셔서 놀란 것뿐이에요.”
하나마키의 말에 마츠카와는 ‘그럼 쓰다듬어도 되겠느냐.’라 물어왔다. 하나마키는 긍정의 뜻인지 머리를 좀 더 가까이 숙였다. 궁녀들의 합작인지 가지런히 빗겨진 긴 머리칼을 하나로 묶어놓은 하나마키의 머리를 마츠카와는 정수리부터 쓸어내렸다.
“이와이즈미가 왜 그리 말했는지 이해가 가는 군...”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는 머리카락을 묶고 있던 머리끈을 풀어헤쳤다. 가지런히 묶여있던 머리칼이 어깨를 따라 흘러내렸다.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나마키가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들어 마츠카와를 바라보았다.
“아...”
마츠카와는 자신의 행동이 조금 충동적이었다고 생각했다. 마츠카와조차도 자신의 행동에 놀랐는지 커진 눈으로 하나마키를 바라보다가 손을 거두었다.
“미안하군...궁녀가 공들여 묶어준 것일 터인데...내 궁녀를 시켜 다시 묶어주도록 하마.”
마츠카와가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하자 하나마키가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묶으면...’이라 말하며 머리를 대충 모아 머리끈으로 묶으려 했다.
“아니다. 그 편이 내가 별궁 궁녀들에게 덜 혼날 듯하니... 묶고 가도록 하거라.”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의 손을 저지했다. 하나마키는 부드럽고도 완강히 말하는 마츠카와의 말에 끄덕이며 머리카락을 풀어내었다.
“마츠카와님, 사탕을 가지고 왔습니다.”
궁녀가 문 밖에서 말하자, 마츠카와가 들어오라 답했다. 궁녀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그릇에 사탕을 가득 담아 가지고 왔다. 하나마키는 그 양을 보고 당황해하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많이는 먹지 못 할 텐데...”
하나마키가 손사래를 치자 마츠카와가 ‘천천히 많이 먹고 가거라. 갈 때는 남은 것도 싸줄 터이니 걱정 말고.’라며 하나마키를 안심시켰다. 하나마키는 그 말에 마지못해 끄덕거리며 사탕을 입에 넣었다.
“타카히로라는 이름... 생각보다 부르기에는 길 군. 하나라는 쪽이 애칭이 되겠는걸.”
하나마키는 안 그래도 이름을 많이 불린다며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챈 마츠카와는 피식 웃었다.
“별궁 궁녀들은 예쁘지 않으면 그다지 반기지 않으니까 말이야.”
그게 외모가 되었든 심성이 되었든 이름이 되었든 간에 말이지. 마츠카와가 이어 말하며 하나마키를 보자 하나마키는 고개를 기울이며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예쁘다하기엔 저는 사내인걸요.”
마츠카와는 ‘그건 그녀들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어.’라며 고개를 저었다.
“별궁 궁녀들이 좋아하는 사람이라야... 오이카와보다는 이와이즈미 쪽이지. 아, 츠츠지도 꽤나 따랐었고...”
마츠카와는 무의식중에 내뱉은 이름에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그래, 그 정도군.’ 이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하나마키는 그 이름이 누구인지 묻고 싶었으나, 갑자기 들려온 궁녀의 목소리에 물을 수 없었다.
“마츠카와님, 아이노님께서 오셨습니다.”
마츠카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잠시 하나마키를 보며 고민했다. 그리고는 궁녀에게 말했다.
“지금은 손님이 있으니 잠시 기다리라 전하도록해라.”
궁녀는 알겠다며 물러났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와서는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쁘시니 지금 오시지 않으신다면 직접 찾아뵙고 싶다고 하시온데... 어찌하시겠사옵니까?”
궁녀의 말에 이번에는 깊이 한숨을 쉰 마츠카와는 그녀를 불러오라 말했다. 궁녀는 아무 말 없이 물러났다. 마츠카와가 이야기를 바꿔 하나마키에게 말했다.
“요즘 서책을 많이 읽는다고 하였는데...”
마츠카와가 말하는 도중, 문이 열리며 부채로 얼굴을 가린 미인이 천천히 방으로 들어왔다. 마츠카와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이노, 네 주인이 적어도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 하지 않았느냐. 무례하군.”
하나마키는 미간을 좁힌 마츠카와가 위협적이라 느꼈다. 마츠카와를 보다 뒤를 돌아보자, 하늘하늘한 옷을 바닥에 끌며 천천히 들어오던 여자는 부채를 접었다.
“잇세이님께서 이번에 들이셨다는 아이와 같이 계시다기에,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왔습니다. 제가 기다리지 못한다는 것을 잇세이님께서도 아시지 않으십니까?”
아이노가 일부러 마츠카와를 이름으로 부르며 가까이 다가왔다. 하나마키는 마츠카와의 표정에 불안해지는지 마츠카와와 아이노를 연신 번갈아 볼 뿐이었다. 아이노는 하나마키가 자신을 쳐다 볼 때 눈을 마주했다. 그러고는 놀라 눈을 키우며 하나마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아이인가 보군요...”
아이노는 하나마키에게서 한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그녀는 처음에는 조금 당황한 듯 해보였지만 점차 처음에 보였던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다음에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까지 강령하시옵소서. 거기... 아이도 건강하거라.”
아이노는 마지못해 하나마키에게도 인사하며 방을 나갔다.
“쯧... 무례하고 제멋대로야...”
혀를 차며 고개를 저어오던 마츠카와는 하나마키에게 말했다.
“놀랐느냐. 내가 대신 사과하마.”
하나마키는 고개를 저으며 ‘아름다우신 분이시네요.’라며 그녀가 나간자리를 계속 응시했다.
“사랑의 신령이다 보니...사랑받고 자라서 오만방자해졌지. 상제의 말만 듣는 것을 보면 꼬리를 숨긴 여우가 따로 없더군.”
마츠카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나마키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사탕을 입으로 가져갔다. 자신을 빤히 보던 그녀의 눈빛이 어쩐지 매우 시리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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